* 2023년 7월,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5박 6일 일정(7.27~8.1)으로 베트남의 피해자, 유가족 분들을 뵈었습니다.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결정에 행정소송을 시작한 하미 마을의 이야기와 국가배상소송 2심이 진행 중인 퐁니·퐁녓 마을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난 7월 31일(월), 하미 마을에서 평화기행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본
"나는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본입니다.“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본(Nguyễn Thị Bôn) 님을 만났습니다. 본 님이 베트남 평화기행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건 당시 6살이었던 그는 학살 피해로 머리에 수류탄 파편상을 입었고 그의 여동생 봉(Bông)도 수류탄 피해로 턱이 함몰되는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46세), 오빠(16세), 언니(12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날 아침 집에서 밥을 먹고 있던 본 님의 가족들은 갑작스럽게 집에 불을 지르고 수색을 한 한국군에 의해 끌려나와 집단학살 피해를 겪었습니다. "당시 나는 겨우 6살이라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몰랐습니다. 훗날 아버지와 다른 유가족들에게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그날의 일을 이해할 수 있었죠." 본 님은 눈물을 머금으며 55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학살 사건에서 살아남아 겨우 6살에 불과한 자신이 생계를 위해 온갖고생을 하며 버틴 세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여동생이 다낭의 독일의료선에 후송된 후 2년 뒤에는 연락마저 끊겨 생이별을 했던 아픔을 이야기하며 결국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습니다.
가족의 학살 피해를 증언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응우옌티본
2022년 4월, 한국의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했던 본 님은 최근의 각하 결정에 대해 "그나마 그것이 나에게는 희망이었는데 너무도 슬펐습니다. 이제는 (하미학살 진실규명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할 지 더는 모르겠습니다."라며 위원회 결정에 대한 실망과 마음의 상처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본 님은 “나는 그동안 너무도 힘든 삶을 살아왔어요. 세월이 많이 흘러도 아픔은 계속 되살아납니다. 그래도 한국 친구들이 이렇게 찾아주면 힘이 나고 너무도 위로가 된답니다.”라고 평화기행단에 여러차례 고마움을 표해주셨습니다.
본 님은 하미학살 위령제에서 한국 참배단을 만난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위령제는 다른 유가족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아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하미 위령비 앞에서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절을 했는데 그걸 보며 정말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이 왈칵 날 정도였어요.” 말씀을 하는 내내 본 님은 자신의 마음을 계속 다잡아가며 이야기를 한 땀 한 땀 이어갔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울컥 쏟아질 것만 같은 커다란 슬픔이 느껴질 때도 있었고, 울음을 삼키며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또박또박 이어가는 ‘증언을 하는 피해자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평화기행 참가자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는 응우옌티본
응우옌티본을 포함한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 5명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결정에 대한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지난 7월 19일에 제기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이 함께 하고 있는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가 하미학살 피해자 분들의 행정소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소송으로 진실화해위원회의 잘못된 결정이 반드시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미 마을에 대한 더 많은 한국 시민들의 연대와 응원이 모아져 하미의 진실이 규명되고 하미의 아픔에서 평화의 길을 여는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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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학살 희생자 관련 아카이브 자료를 재단에 전달한 유가족 협회 대표 응우옌응옥마이
“위령비 명단에 없는 또 다른 희생자가 있습니다.”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 협회 대표 마이 할아버지께서 한베평화재단에 소중한 아카이브 자료를 주셨습니다. 현재 하미 위령비에는 135명의 희생자 명단이 있지만, 위령비 건립 당시 명단에 포함되지 못한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유가족이 없거나 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명단 작성 당시의 실수 등으로 누락된 희생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베평화재단은 그동안의 하미학살 아카이브 관련 사업으로 누락된 16명의 희생자를 찾아 현재까지 모두 151명의 희생자를 확인했습니다. 이번에 마이 할아버지께서 주신 자료의 희생자는 재단이 이미 파악하고 있는 희생자였습니다. 하지만 협회에서 작성한 자료를 읽어보니 희생자가 누락된 경위와 유가족·희생자에 관한 신빙성 있는 정보 등이 정성스레 적혀 있어 가슴이 먹먹하고 또 먹먹했었습니다.
이번에
받은 하미학살 희생자 관련 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알리겠습니다. 마이 할아버지를 비롯한 피해자 유가족 분들의 마음을 한국 사회에 알리는 활동과 사업을 고민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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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대한민국의 항소를 비판하고 있는 퐁니·퐁녓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퐁니 마을에서 응우옌티탄 님과 응우옌득쩌이 님을 만났습니다. 두 분은 평화기행단에 대한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판결에 항소한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수많은 증거 자료가 존재하고 한국의 참전군인도 법정에서 증언을 했고 재판부도 진실을 인정했는데 한국 정부가 진실을 부정하며 이렇게 항소를 한 것을 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없고 참기 힘듭니다. 너무도 실망했고 화가 났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나를 찾으면 항소에 대한 이아기부터 하고 싶었습니다." - 응우옌티탄
이날 평화기행단은 국가배상소송의 원고 응우옌티탄(좌) 님과
목격자로 법정에서 증언을 했던 응우옌득쩌이(우)를 함께 만났습니다.
"승소
판결까지 났으니 한국 정부가 마을로 우리를 찾아와 이야기를 듣고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을 인정해야할 것입니다.
항소라니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 유가족, 목격자 응우옌득쩌이
지난 2월의 승소 이후 최근까지도 탄 님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승소 축하 인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재판 소식을 알고 있고 승소라는 말만 들어도 기쁘지만 반면 국방부의 항소 소식은 아직 베트남에 잘 알려지지 않아 그동안 탄 님은 홀로 답답하고 분한 심경을 참으며 지내왔다고 했습니다.
탄 님은 "승소라는 결과가 있기까지 한국 친구들과 변호사들의 열성적인 도움이 있었다"며 고마움을 늘 생각한다고 말씀해주셨고 쩌이 님도 "한국 친구들 그리고 김 변호사, 임 변호사 그리고 다른 변호사들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평화기행 참가자들도 항소에 대한 탄 님과 쩌이 님의 심정에 공감하며 오히려 이번 항소를 기회로 삼아 더 많은 한국 시민들이 국가배상소송에 관심 갖고 두 분의 법정 투쟁에 연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연대의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항소를 하든 뭐를 하든 마지막에는 꼭 이기자며 헤어지면서도 승소를 외치고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네트워크>에서 추진한 1심 승소 판결문의 베트남어 번역본을 탄 님과 쩌이 님에게 전했습니다. 판결문 전문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차근차근 내용을 보실 수 있다고 말씀드리니 두 분 모두 활짝 미소 지으며 너무 잘되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시민모금으로 진행한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판결문 번역. 판결문의 베트남어 번역본을
응우옌티탄 님(왼편에 단장 신영옥 님)과 응우옌득쩌이 님(오른편에 아침 활동가)에게 전했습니다.

34명의 평화기행단이 한 목소리로, 베트남어로 탕끼엔(Thắng Kiện, 승소)을 힘차게 외쳤습니다.
3월에 항소장을 제출한 피고 대한민국은 7월이 되어서야 120페이지에 달하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본격적인 국가배상소송 2심 재판 일정이 시작될듯합니다. 탄 님과 쩌이 님을 만나 두 분의 심경을 들으니 진실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고통스럽고 힘겹게 하는 지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연대와 응원의 마음이 탄 님과 쩌이 님을 비롯한 베트남의 수많은 피해자 분들의 곁에 함께 하길 바랍니다!
* 현재까지 국가배상소송 2심의 1차 공판 기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재판 일정이나 방청이 궁금하신 분은 한베평화재단 사무처로 문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권현우 활동가
사진|아침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