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배상소송으로 주목 받고 있는 퐁니‧퐁녓 마을을 찾았습니다. 이곳에는 원고 응우옌티탄 님 뿐만 아니라 재판 소식을 주목하고 있는 여러 피해자‧유가족들이 있습니다. 평화기행단이 마을을 찾아 응우옌티탄 님과 더불어 유가족 레딘믁과 피해생존자 레딘먼, 두 형제 분을 만났습니다.
“탄 씨의 소송을 3-4년간 계속 지켜봤다. 작년에 승소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의 응어리도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국방부가 항소를 하지 않았나. 한국군은 우리 퐁니 마을은 물론 근처 하미 마을과 꽝응아이성에서도 수많은 학살을 저질렀다. 다 죽였고, 다 불태웠고, 다 없애버렸다.
이날 만남의 장소는 레딘믁 님의 자택이었습니다. 두 분과 둥글게 마주 앉아 몸과 마음으로 들은 학살 피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가슴 아팠고,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레딘믁, 레딘먼 두 형제 분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늦은 방문이었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두 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이날 마음 속 깊은 곳에 쌓아두었던 진심을 들려주셨습니다.
평화기행단 참가자들 한 명 한 명이 두 분께 공감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 퐁니‧퐁녓의 진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작은 약속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야유나무 아래에서 응우옌티탄 님을 만났습니다.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에 의한 퐁니‧퐁녓 학살 사건을 이곳 피해자들은 야유나무 학살이라고 부릅니다. 1월 20일(토) 오후, 야유나무와 위령비를 마주한 베트남 평화기행단에게 탄 님은 56년 전 그날의 기억을 들려주셨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탄 님의 손이 떨릴 때, 야유나무도 함께 떨렸습니다. 탄 님의 베트남어가 고통으로 굽이 칠 때, 퐁니 마을의 바람이 들판을 파도치고 또 파도쳤습니다. 그는 여전히 고통을 품고 있는 피해자였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며 한국 정부에 당당히 진실을 요구하는 ‘응우옌티탄’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탄 님은 현재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가배상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3년 2월, 1심에서 승소했지만,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하여 2심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만남이 있었던 하루 전인 1월 19일(금)에는 2심 첫 번째 공판이 있었습니다.
“학살 피해 당시 마을에 있었던 참전군인도 법정에서 사건을 증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를 했습니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한국의 친구들과 시민들이 저와 베트남의 피해자들과 함께 해주길 바랍니다.”
- 국가배상소송 원고 응우옌티탄(64세)
이날 위령비에서는 유가족 응우옌득쩌이 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탄 님의 삼촌이자, 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원으로 퐁니‧퐁녓학살 현장을 목격하여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쩌이 님은 짧지만 아주 강렬한 메시지를 평화기행단에게 전했습니다.
“나는 딱 하나만 이야기할게요. 배보상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내가 오직 바라는 것은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목격자 응우옌득쩌이(84세)
19일(금), 2심 첫 번째 공판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응우옌티탄, 응우옌득쩌이 두 분이 방청을 했더라면 너무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주장과 궤변들 투성이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그러한 태도에, 부끄러움은 시민들의 몫이 되는 현실을 이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한겨레] “베트남전 학살은 그냥 다 거짓말”이라는 정부 / 고경태 기자
https://v.daum.net/v/20240121113002750
응우옌티탄 님과 헤어지며 다 같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모두가 주먹을 불끈 지고 베트남어로 승소를 외쳤습니다. 탕끼엔, 탕끼엔! 진실이 승리하는 날까지 더 많은 연대와 마음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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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 위령비 뒤편의 연꽃 대리석을 보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응우옌티탄
평화기행단에게 하미학살 사건과 가족이 겪은 학살 피해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는 응우옌티탄
평화기행단은 하미 위령비에서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님과 함께 위령비를 참배했습니다. 사건 피해 장소이기도 한 위령비에서 응우옌티탄 님은 1968년 그날의 기억을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자신이 한국 정부와 한국 시민사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미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도 결연하고 당당한 모습에 참가자들이 통역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탄 님의 진정성을 느끼고 함께 가슴이 아팠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응우옌티탄 님이 들려주신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위령비의 뒤편의 연꽃 무늬 대리석 앞이었습니다. 너무도 슬프고 망연한 표정으로 연꽃을 바라보던 탄 님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탄 님이 비문에 대해 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번역해 전합니다.
"한국의 대사관과 지역 인민위원회까지도 비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죠. 하지만 우리 유가족들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어요. 비문을 닫고 싶지 않았고, 닫힌 비문을 열고 싶습니다!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고 사죄할 때 그때서야 비로서 우리 피해자들은 만족할 수 있으며 우리의 고통도 조금은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 피해자들의 고통은 너무도 크게 남아 있습니다. 연꽃 그림으로 비문을 이렇게 가린 행위야말로 우리 피해자들에게 고통이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누구라도 안다면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것입니다. 우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비문을 덮으라고 말한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도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 피해자들과 동행하여 여기까지 와준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여러분 앞에 선 이 자리에서 나는 모두 진실만을 이야기했습니다."
-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6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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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퐁니‧퐁녓학살 사건은 국가배상소송 2심이 진행 중이며, 하미학살 사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24년 <끝나지 않은 이야기> 베트남 평화기행단과 한베평화재단, 윤미향 의원실, 강민정 의원실은 2월 1일(목) 오전 11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고 대한민국이 하루 속히 진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국회에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군대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조사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강력하게 호소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 그리고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글 | 권현우 활동가
사진 | 아침 활동가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학살에 대한 기억은 없다. 다만 가족과 이웃들에게 내가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어머니가 나를 품고 죽은 덕분에 아기였던 나는 살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피투성이가 된 어머니(하티지엔, 당시 34세)의 품에 아기였던 내가 상처하나 없이 살아있었는데 울지도 않고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었다고 했다. 만약 아기였던 내가 울었다면 분명 한국군에게 살해당했을 거라고 했다. 학살 피해로 우리는 어머니를 잃었고, 이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고아가 된 우리 형제의 이후의 삶은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 생존자 레딘먼(57세)
위령비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응우옌티탄
이날 위령비에서는 유가족 응우옌득쩌이 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탄 님의 삼촌이자, 전쟁 당시 남베트남 민병대원으로 퐁니‧퐁녓학살 현장을 목격하여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쩌이 님은 짧지만 아주 강렬한 메시지를 평화기행단에게 전했습니다.
“나는 딱 하나만 이야기할게요. 배보상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내가 오직 바라는 것은 한국 정부가 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목격자 응우옌득쩌이(84세)
19일(금), 2심 첫 번째 공판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응우옌티탄, 응우옌득쩌이 두 분이 방청을 했더라면 너무도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주장과 궤변들 투성이었습니다. 한국 정부의 그러한 태도에, 부끄러움은 시민들의 몫이 되는 현실을 이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한겨레] “베트남전 학살은 그냥 다 거짓말”이라는 정부 / 고경태 기자
https://v.daum.net/v/20240121113002750
응우옌티탄 님과 헤어지며 다 같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모두가 주먹을 불끈 지고 베트남어로 승소를 외쳤습니다. 탕끼엔, 탕끼엔! 진실이 승리하는 날까지 더 많은 연대와 마음이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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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기행단은 하미 위령비에서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님과 함께 위령비를 참배했습니다. 사건 피해 장소이기도 한 위령비에서 응우옌티탄 님은 1968년 그날의 기억을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고, 자신이 한국 정부와 한국 시민사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하미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너무도 결연하고 당당한 모습에 참가자들이 통역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탄 님의 진정성을 느끼고 함께 가슴이 아팠던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이날 응우옌티탄 님이 들려주신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위령비의 뒤편의 연꽃 무늬 대리석 앞이었습니다. 너무도 슬프고 망연한 표정으로 연꽃을 바라보던 탄 님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탄 님이 비문에 대해 하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번역해 전합니다.
"한국의 대사관과 지역 인민위원회까지도 비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죠. 하지만 우리 유가족들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어요. 비문을 닫고 싶지 않았고, 닫힌 비문을 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