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 평화연대평화기행단 "Recall 1964"가 전하는 피해자·유가족들의 목소리

평화기행단 <Recall 1964>가 전하는 피해자·유가족들의 목소리


* 2024년 8월, 한베평화재단이 주최한 <Recall 1964>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5박 6일 일정(8.1~8.6)으로 베트남의 피해자·유가족 분들을 뵈었습니다. 21명의 평화기행단이 퐁니‧퐁녓, 빈호아, 하미 마을의 피해자·유가족 분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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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함께 해줘 고마워요."
-퐁니·퐁녓학살 유가족 응우옌티바, 응우옌티호아와의 만남 -

 
퐁니 마을 퐁꽝사에서 학살 피해자, 유가족들과 만난 평화기행단


퐁니‧퐁녓 마을의 또 다른 유가족, 응우옌티바 님과 응우옌티호아 님을 만났습니다. 두 분은 얼마 전 아버지 응우옌전 님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평화기행단은 퐁니 마을에 있는 ‘퐁꽝사’에서 두 분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유가족 응우옌전 부고 보기
“우리는 어린 시절 학살 피해로 어머니, 큰 언니를 잃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셨어요.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때는 그래도 기뻤는데 돌아가셔서 참 슬펐지요. 그런데 오늘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애도의 말을 전해주니 기뻐요.”
- 유가족 응우옌티호아
퐁니‧퐁녓학살로 한국군에게 처참하게 희생된 여성 피해자 응우옌티탄(20세)의 사진. 2000년에 <한겨레21>의 표지 사진이 되었을 정도로 한국 사회에 많이 알려진 바 있습니다. 이날 평화기행단은 희생자 응우옌티탄의 유가족을 뵙는 시간을 가졌고, 얼마전 타계한 응우옌전 님의 부고를 알린 한겨레 신문을 가족 분들에게 전하며 다시 한번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아버지 응우옌전의 부고가 실린 한겨레 신문을 보고 있는 응우옌티바(맨 왼쪽)와 응우옌티호아(가운데)

 
유가족 응우옌티호아. 기행단과의 만남 후 프로필 사진 촬영 요청에 그가 환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유가족 응우옌티바. 전화 인터뷰 때에도 말수가 적었던 그는 이 날 만남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화기행단과 헤어지며 그는 연신 손을 흔들어주었다. 

 
퐁꽝사 법당에서 응우옌티바, 응우옌티호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트남 평화기행단이 바 님과 호아 님을 찾아뵌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두 분 모두 마을의 안쪽에 위치한 퐁녓 마을에 살고 계셔서 찾아뵙기 어려웠는데, 퐁꽝사의 도움을 받아 이번 만남을 진행했습니다. 퐁꽝사는 매년 음력 7월에 학살 희생자를 위한 초혼제를 지내고 있고 희생자들의 명복과 해탈을 기원하는 크고 작은 제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약 10년 전 퐁꽝사를 처음 세웠습니다. 절을 오가며 위령비를 늘 보게 되고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알게 되어 그들의 해탈을 기원하는데 절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와주신 한국 친구분들처럼 많은 한국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아픔을 나누는 일에 함께 하길 희망합니다.”
- 퐁꽝사 주지 스님
“유가족으로서 저는 퐁꽝사에 너무 감사해요. 학살 때 죽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서 천도제를 지내고 싶은데 그럴만한 돈이 우리 유가족들은 없어요. 그런데 퐁꽝사가 나서서 제례를 위한 돈을 모금하고 초혼제까지 지내주어서 정말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한국 친구들도 퐁꽝사에 많은 관심을 주길 희망해요.”
-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2021년 퐁꽝사 주최로 열린 퐁니·퐁녓 학살 초혼제

 
법당에서 평화기행단에게 인사말을 전하고 있는 주지 스님

 
위령비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


호아 님은 2023년 1월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지만, 이후 당시의 승리가 완전한 승소가 아니었고 한국 정부가 항소하여 계속 재판이 진행 중인 사실을 알게 되어 한편으로는 슬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만남을 진행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조금씩 미소를 띄는 바 님과 호아 님의 모습에 평화를 느꼈습니다. 두 분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국 친구들이 아버지 응우옌전을 비롯한 가족들의 묘를 참배할 수 있게 안내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습니다.
슬픔을 나누고 기억하고 연대하는 일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퐁니 퐁녓 학살 사건은 국가배상소송 2심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마땅히 그날의 진실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과 사죄를 이행해야할 것입니다.


퐁니·퐁녓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는 평화기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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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난 건 처음입니다."
- 빈호아학살 피해생존자 도안년과의 만남 - 

그의 이름은 도안년입니다. 1966년 12월 빈호아학살 피해 생존자로 당시 6살이었습니다. 그는 빈호아사의 꺼우 마을 들판에서 141명이 목숨을 잃은 현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한국군의 수류탄과 총격을 그의 할머니가 온몸으로 막아내 도안년을 살려냈습니다. 도안년이 평화기행단을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빈호아사의 깊숙한 곳인 꺼우 마을 학살 위령비 앞에서 그를 만나 함께 참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몇몇의 한국 사람들을 만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학살 피해 당시 저는 6살, 누나 팜티언은 10살, 동생 도안응이어는 6개월 아기였어요. 저랑 도안응이어는 여기서 피해를 당했지만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고 도안응이어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죠. 누나는 그날 아침 마을밖에 소를 몰러나가 목숨을 구했어요. 한국 친구 분들이 오늘 여기 위령비까지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해 정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더 잘 협력하여 우리 고향 빈호아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 도안년, 빈호아학살 피해생존자

 
빈호아사 학살 피해 지점들 중 하나인
꺼우 마을 학살 위령비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안년

 
빈호아사에서도 매우 깊숙한 곳에 위치한 꺼우 마을 학살 위령비.
도안응이어와 평화기행단이 마주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행 참가자들은 도안년과 함께 위령비 근처에 있는 동코 우물도 방문했습니다. 꺼우 마을 들판 학살과 관련된 우물로 당시 한국군이 우물가에 주민들을 모은 후 총격을 가했고 학살 이후 한국군은 우물을 파괴했습니다. 마을에서는 우물을 재건립해 역사 유적으로 간직해 왔는데 2023년 우물 개보수 지원을 한베평화재단에 요청하여 시민모금을 통해 당년 10월에 사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물에 서려 있는 가슴 아픈 역사에 평화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평화기행 참가자 김학준 님(재단 후원회원)은 그 어떤 말로도 도안년의 아픔을 위로할 수 없다며 오늘 위령비에서 평화기행단을 맞이해준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도안년은 베트남 국영방송 VTV 다큐, 한국의 아리랑 TV 다큐, 한겨레 신문을 통해 빈호아 학살 피해를 증언해왔고 2019년에는 동생 도안응이어와 함께 한국에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꺼우 마을 학살 위령비에서 평화기행단을 맞이해준, 학살 피해를 증언하고 진실을 요구해온 도안년 님의 마음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이 개보수 지원을 한 동코 우물 앞에서 도안년과 함께.
우물의 왼쪽에는 1999년 뚜오이째의 우물 건립 지원 현판이
오른쪽에는 2023년 10월 한베평화재단의 우물 개보수 지원 현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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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저 진실만을 요구합니다.”
 -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과의 만남 - 

평화기행 마지막 날 하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 님을 만났습니다. 이날 위령비 앞에서 들려준 탄 님의 이야기에서는 ‘진실(sự thật)’과 ‘실망(thất vọng)’이라는 단어가 참 여러 번 나왔습니다.
자신의 집 방공호에서 가족과 이웃 주민들이 한국군의 수류탄에 집단 학살 당한 당시의 참극은 지금도 탄 님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당시 피해로 탄 님은 한 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고 수류탄 파편 상을 잃었으며 어머니와 남동생 등 다섯 명의 가족과 친척을 잃었습니다.
탄 님은 한국군의 수류탄이 날아오기 전까지 방공호에서 자신을 품고 있던 어머니가 지금도 기억난다며 당시의 공포와 슬픔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학살 피해 이후 탄 님은 다낭에서 2개월간 입원해 치료를 받았습니다. 전쟁고아가 된 그는 다낭의 고아원에서 지내야했고 1975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하미 마을로 돌아와 살아남은 형제 자매들과 다시금 생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평화기행단에게 하미학살 사건을 증언하고 있는 피해자 응우옌티탄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모두 진실입니다.”
증언을 마친 후 탄 님은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담담한 말씀 속에는 진실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와 현재까지의 좌절감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여러 번 방문해 한국 정부에 진실규명을 요구했고 진실화해위원회에도 희망을 갖고 진상조사를 요청했으나 각하 결정을 당한 최근 이야기를 하면서 탄 님은 여러 차례 실망감을 토로했습니다.
하미 위령비 뒷면의 연꽃 그림을 보면서도 비문을 덮고 있는 너무도 "이상한 연꽃 그림"에 대한 소감을 말씀하시며 한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하루 빨리 비문이 열리길 바란다는 간절한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미 위령비는 2001년 한국의 참전자단체의 지원으로 건립되었으나 위령비 뒤편에 새겨진 비문을 문제시한 한국 대사관과 참전자단체의 압력으로 비문이 연꽃 그림 대리석으로 덮이고 말았습니다.
현재 탄 님을 비롯한 5명의 하미학살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진실화해위원회의 하미 사건 조사 각하 결정의 위법성을 다투는 행정소송 항소심을 벌이고 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위법성이 꼭 밝혀져야할 것이고 하미학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도 수많은 한국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갈 것입니다!

 
하미 위령비 앞에서 응우옌티탄

호아쓰 배지를 착용한 응우옌티탄 님과 함께


글 | 권현우 활동가
사진 | 아침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