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길담이 후원회원 백기생에게 묻다
7개월 만에 아빠를 만났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통화 시간, 대화를 주고받는 횟수가 네 번을 넘기는 일이 드문 27년간의 관계.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인터뷰라는 커어다란 산이 놓였다. 아빠는 아동후원단체를 통해 세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으니 이번엔 다른 곳에 후원하는 것이 어떠냐며 넌지시 재단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작에 다른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는 것. 혹시라도 부담될까 그럼 다음에 생각해보라며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여행학교를 통해 베트남전쟁을 공부하고 재단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7년 동안 아빠와 나는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무뚝뚝함의 정석인 아빠와 딸 백록담, 재단 활동가 길담(백록담 활동가의 활동명이다)과 후원회원 백기생 사이. 어색함에 몸부림치는 동안 엄마는 ‘백록담’ 맥주를 꺼내 들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활동가 길담이 후원회원 백기생에게 물었다.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요?”
백기생: 자영업이지 뭐.
충청남도 홍성에서 정보통신분야 자영업을 하는 백기생. 본래 이름은 ‘기상’이지만 거창 산골에서 태어나 마을 주민이 읍내에 나갈 때 출생신고를 부탁한 결과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주민등록상 이름이 달라져 버렸다고 한다. 10년 전쯤 우리도 이제 후원을 좀 하고 살자, 라는 엄마의 말에 아동후원단체를 지속해서 후원해 오고 있었고 작년부터 한베평화재단 후원을 시작했다. 9년간 후원하던 아이가 올해 스무 살이 되어 대학을 간다는 말을 듣고 첫 학기 등록금을 내주었다고 옆에 있던 엄마가 거들었다.
백기생: 뭐 특별한 이유가 있나, 후원하던 애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을 간다는데 등록금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첫 학기 등록금이라도 해주고 싶었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고 그러다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겠지. 진로는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그냥 한 거지.
엄마가 세팅해준 인터뷰 테이블, 백록담 맥주를 마셔보자며 들고 왔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원해 줄 테니 해’ 라는 말을 종종 내게 하곤 했었다. 아동후원을 오래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그 아이들에게도 닿아 있는 줄은 몰랐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아빠의 옛 이야기는 대부분 엄마에게 들은 것이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 가끔 떨리는 목소리를 내가 닮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예를 들면 그가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백기생: 예전부터 한베평화재단이 하는 활동 같은 게 있다는 걸 알았다기보단, 대학 때 ‘전환시대의 논리’라고, 리영희 교수가 베트남전쟁에 관해 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게 됐지. 단순하게 공산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가서 도와주고 그런 개념하곤 완전히 다른 전쟁이었구나 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베트남에서 백마부대라던지 몇몇 부대들이 심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니까 이걸 나보다 더 빨리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네가 재단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런 단체를 알거나 하지 않았지.
85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땐 광주 5.18과 민주화가 더 시급한 문제여서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민간인학살에 대해서도 한국군들이 베트남에서 독하게 했다, 마을 하나를 몰살시켰다, 이런 이야기가 돌았던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다시 그 이야기를 떠올린 건 99년 들어 실제로 증언들이 나왔을 때였다고 한다. 그에게 혹시 그 뒤로 베트남에 관심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백기생: 어떻게 베트남을 알았다고 매일 생각하겠어. 관련 단체들과 연결돼있지 않는 이상 잊어버리고 살다 은연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생각이 나는 거지. 나도 먹고살기 바빴으니까.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가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거나 이런 부분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근데 또 막상 내가 전투에 참여했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제 연결이 되어있으니 잊어버리고 살진 않겠네” 라는 생각을 했고. 동시에 아빠는 “네가 이제 재단에서 일을 하니까 소식 같은 게 오면 보고 그렇게 된 거지” 라고 말했다. 연결이라는 말을 들으니 궁금한 것이 있었다. 우리 가족 중에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어른이 있었을까, 기대하며 물었지만, 친가에도 외가에도 참전했다는 어른이 없었다. 그저 전쟁에서 팔, 다리를 잃은 참전군인을 마을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라고.
문득 그에게 6년 전 여행학교를 수료하며 올렸던 연극을 어떻게 보았는지 물었다.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만난 6명의 사람과 그들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듣는 기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이야기였고, 내가 맡은 역할은 그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기자였다. 그리고 내가 연극에서 한 마지막 대사는 ‘미안해’였다.
백기생: 뭐 어때, 옛날부터 이야기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구나 했지. 그 사과에 관한게. 우리가 일본에 사죄하라고 하듯이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도 그때 진심으로 잘못했다는 한 마디거든. 한국이 베트남에 지원을 많이 하는게 하나의 사과일 수도 있는데 진짜 사과는,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한 거지. 그 안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과는 그런 거 아닐까. 내가 미안하니까 이만큼 해줄게 그런 걸 바라진 않을 것 같아.
그는 한 번 더 한국이 베트남에 지원을 많이 한다는 말을 붙였다. 그의 표현으로 하자면 ‘그래도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무지하게 해.’ 그 말을 듣던 엄마가 ‘뭘 또 무지하게 한댜~’며 입을 열었다.
하미선(엄마): 그런건 우리 좋다고 하는 거지. 그게 피해자들을 위한 건 또 아니잖아. 한국 기업이 들어가고 하는 그런 거나 지원해주는게 결국 민간인학살에 대한 문제를 덮어버리잖아. 이건 덮고 다른 걸로 보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주석을 만나서 유감이다 이러는건 의미가 없는 거지 어찌 보면 입바른 소리지. 한베평화재단 같은 단체가 그래서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백기생: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사과하는건 어렵겠지. 정권마다 사과하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재단을 지원해주는 형태가 돼야겠지. 그런데 베트남전쟁에 관해 뭘 해도 신문에 많이 나지도 않고.
아빠는 아직까지도 재단이 하는 활동이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듯이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아직까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베트남전쟁에 대한 책임 의식을 안 가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우리의 책임 있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는 곳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음으로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재단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 나가길 바라는지 물어보았다.
백기생: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지역이 다 촌구석일 거야. 나는 후원은 얼마 안 하지만 피해입은 사람들의 2세, 3세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어. 피해자들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고 그 지역에 계속 살겠지만, 자녀들은 잘 배워서 도시로 나가고 다양한 일을 하는게 모든 부모들 꿈일거 같아. 직업 교육이라든지 교육자재, 도서 지원 같은 거. 부모 입장에선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하미선(엄마): 아빠를 인터뷰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데. 전쟁이 얼마큼 사람을 파괴하는지 인지할 수 있는 평화교육을 우리나라에서 많이 했으면 좋겠어.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가해국이기도 하고 일본에 피해국이기도 하잖아.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을 수혜 이런 걸 넘어서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이번에 한베평화재단에서 참전군인 트라우마에 관한 행사를 열거나 하는 것도 결국 전쟁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사람을 갉아먹는지 알아내고 모아서 보여주고, 교육 시키는 거잖아. 그런 자료들을 남기는게 의미 있는 것 같아.

아빠와 엄마, 백기생(왼쪽)과 하미선(오른쪽)
후원하던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던 아빠와 30년간 일했던 어린이집을 관두고 교육연구소를 차린 엄마의 대답이 각자의 삶과 닿아 있어 신기했다. 서로의 말이 오가던 중 아빠는 최근 이슈가 되었던 시민단체 회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 사회가 시민단체를 이해하는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백기생: 후원금을 받는 단체가 회계처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후원을 하는 사람들도 후원자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믿고 후원을 한 것이라면 끝까지 믿고 결론이 나는 걸 보고 판단해도 되는 거야. 후원금을 반환해라 이런 소송은 그때 가서 해도 돼. 모든 후원금이 피해자나 수혜자에게 가면 좋겠지만 지원을 하는 단체도 유지가 돼야 하고 일하는 사람도 생활을 할 수 있어야지. 사업비를 지원받을 때도 인건비는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단 말이야. 자원봉사를 하는건 아니잖아. 이번 일들을 보면서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사람들도 단체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거 같은 거지.
기자들이 그런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기사를 쓰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사회부 기자가 되려면 시민단체에서 1, 2년 정도 일을 하면서 단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곤 이내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끝내도 되지? 하며 일어서는 것을 붙잡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평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들은 제일 어려워했던 질문에 그는 쉬운 건데 뭐, 하며 막힘없이 말했다.
백기생: 너하고 나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나쁜 감정 없이 이야기 하는게 평화지. 미워하는 감정, 증오하는 감정 없는 그런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거.
그에 반해 엄마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미선(엄마): 평화는 존중에서 온다고 생각해. 둘, 셋 사이의 존중이 이루어지면 평화가 이루어지는 건데 부부관계나 가족 안에서도 존중이 부족하다 보니 평화가 깨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당신(아빠)과 나, 우리 둘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다. 어휴, 내가 말하고도 너무 멋있는 말 같다.
엄마와 나는 손뼉을 쳤고 아빠는 피식하고 웃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것이 있는지.
백기생: 네가 어디에 있건 열심히 살고 재미있게 사는 거지. 재미있는 일 하고, 보람을 느끼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다른 바랄게 있나.

1년에 한 번 찍는 것 같은 가족사진. 하미선, 백기생, (아래 왼쪽부터) 해담, 지담, 록담
뻔한 답이라 느껴질 수 있는 마지막 대답은 얼굴을 보고 주고받는게 어색하여 결국 전화 통화로 이루어졌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되려 많은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내가 아빠에 대해, 나와 동생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가족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의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평소엔 듣지 못했던 그가 바라는 세상의 퍼즐을 맞춰본다. 말투는 무뚝뚝하지만 넓은 생각으로 세상에 대해 따뜻하게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 아빠 백기생, 후원회원 백기생과의 만남에 따뜻한 마침표를 찍는다.
글 백록담(길담)

활동가 길담이 후원회원 백기생에게 묻다
7개월 만에 아빠를 만났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통화 시간, 대화를 주고받는 횟수가 네 번을 넘기는 일이 드문 27년간의 관계. 그런 두 사람 사이에 인터뷰라는 커어다란 산이 놓였다. 아빠는 아동후원단체를 통해 세 명의 아이를 후원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으니 이번엔 다른 곳에 후원하는 것이 어떠냐며 넌지시 재단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작에 다른 아이를 후원하고 있다는 것. 혹시라도 부담될까 그럼 다음에 생각해보라며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여행학교를 통해 베트남전쟁을 공부하고 재단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7년 동안 아빠와 나는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무뚝뚝함의 정석인 아빠와 딸 백록담, 재단 활동가 길담(백록담 활동가의 활동명이다)과 후원회원 백기생 사이. 어색함에 몸부림치는 동안 엄마는 ‘백록담’ 맥주를 꺼내 들고 옆에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활동가 길담이 후원회원 백기생에게 물었다.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요?”
백기생: 자영업이지 뭐.
충청남도 홍성에서 정보통신분야 자영업을 하는 백기생. 본래 이름은 ‘기상’이지만 거창 산골에서 태어나 마을 주민이 읍내에 나갈 때 출생신고를 부탁한 결과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주민등록상 이름이 달라져 버렸다고 한다. 10년 전쯤 우리도 이제 후원을 좀 하고 살자, 라는 엄마의 말에 아동후원단체를 지속해서 후원해 오고 있었고 작년부터 한베평화재단 후원을 시작했다. 9년간 후원하던 아이가 올해 스무 살이 되어 대학을 간다는 말을 듣고 첫 학기 등록금을 내주었다고 옆에 있던 엄마가 거들었다.
백기생: 뭐 특별한 이유가 있나, 후원하던 애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을 간다는데 등록금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첫 학기 등록금이라도 해주고 싶었지. 계속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고 그러다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겠지. 진로는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그냥 한 거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지원해 줄 테니 해’ 라는 말을 종종 내게 하곤 했었다. 아동후원을 오래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말이 그 아이들에게도 닿아 있는 줄은 몰랐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아빠의 옛 이야기는 대부분 엄마에게 들은 것이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할 때 가끔 떨리는 목소리를 내가 닮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예를 들면 그가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과 같은 것들을 말이다.
백기생: 예전부터 한베평화재단이 하는 활동 같은 게 있다는 걸 알았다기보단, 대학 때 ‘전환시대의 논리’라고, 리영희 교수가 베트남전쟁에 관해 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게 됐지. 단순하게 공산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가서 도와주고 그런 개념하곤 완전히 다른 전쟁이었구나 하면서 베트남전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베트남에서 백마부대라던지 몇몇 부대들이 심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니까 이걸 나보다 더 빨리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네가 재단에서 일하기 전까지 그런 단체를 알거나 하지 않았지.
85년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땐 광주 5.18과 민주화가 더 시급한 문제여서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민간인학살에 대해서도 한국군들이 베트남에서 독하게 했다, 마을 하나를 몰살시켰다, 이런 이야기가 돌았던 것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다시 그 이야기를 떠올린 건 99년 들어 실제로 증언들이 나왔을 때였다고 한다. 그에게 혹시 그 뒤로 베트남에 관심이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백기생: 어떻게 베트남을 알았다고 매일 생각하겠어. 관련 단체들과 연결돼있지 않는 이상 잊어버리고 살다 은연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생각이 나는 거지. 나도 먹고살기 바빴으니까. 전투부대가 베트남에 가서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거나 이런 부분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근데 또 막상 내가 전투에 참여했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제 연결이 되어있으니 잊어버리고 살진 않겠네” 라는 생각을 했고. 동시에 아빠는 “네가 이제 재단에서 일을 하니까 소식 같은 게 오면 보고 그렇게 된 거지” 라고 말했다. 연결이라는 말을 들으니 궁금한 것이 있었다. 우리 가족 중에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어른이 있었을까, 기대하며 물었지만, 친가에도 외가에도 참전했다는 어른이 없었다. 그저 전쟁에서 팔, 다리를 잃은 참전군인을 마을에서 보았던 것이 전부라고.
문득 그에게 6년 전 여행학교를 수료하며 올렸던 연극을 어떻게 보았는지 물었다.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만난 6명의 사람과 그들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듣는 기자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이야기였고, 내가 맡은 역할은 그들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기자였다. 그리고 내가 연극에서 한 마지막 대사는 ‘미안해’였다.
백기생: 뭐 어때, 옛날부터 이야기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구나 했지. 그 사과에 관한게. 우리가 일본에 사죄하라고 하듯이 피해자들이 바라는 것도 그때 진심으로 잘못했다는 한 마디거든. 한국이 베트남에 지원을 많이 하는게 하나의 사과일 수도 있는데 진짜 사과는, 진심 어린 사과가 중요한 거지. 그 안에 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과는 그런 거 아닐까. 내가 미안하니까 이만큼 해줄게 그런 걸 바라진 않을 것 같아.
그는 한 번 더 한국이 베트남에 지원을 많이 한다는 말을 붙였다. 그의 표현으로 하자면 ‘그래도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무지하게 해.’ 그 말을 듣던 엄마가 ‘뭘 또 무지하게 한댜~’며 입을 열었다.
하미선(엄마): 그런건 우리 좋다고 하는 거지. 그게 피해자들을 위한 건 또 아니잖아. 한국 기업이 들어가고 하는 그런 거나 지원해주는게 결국 민간인학살에 대한 문제를 덮어버리잖아. 이건 덮고 다른 걸로 보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주석을 만나서 유감이다 이러는건 의미가 없는 거지 어찌 보면 입바른 소리지. 한베평화재단 같은 단체가 그래서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백기생: 대통령이 피해자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사과하는건 어렵겠지. 정권마다 사과하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재단을 지원해주는 형태가 돼야겠지. 그런데 베트남전쟁에 관해 뭘 해도 신문에 많이 나지도 않고.
아빠는 아직까지도 재단이 하는 활동이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듯이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아직까지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베트남전쟁에 대한 책임 의식을 안 가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우리의 책임 있는 모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는 곳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음으로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재단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 나가길 바라는지 물어보았다.
백기생: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지역이 다 촌구석일 거야. 나는 후원은 얼마 안 하지만 피해입은 사람들의 2세, 3세들이 교육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어. 피해자들은 이미 나이가 많이 들고 그 지역에 계속 살겠지만, 자녀들은 잘 배워서 도시로 나가고 다양한 일을 하는게 모든 부모들 꿈일거 같아. 직업 교육이라든지 교육자재, 도서 지원 같은 거. 부모 입장에선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하미선(엄마): 아빠를 인터뷰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데. 전쟁이 얼마큼 사람을 파괴하는지 인지할 수 있는 평화교육을 우리나라에서 많이 했으면 좋겠어. 우리나라는 베트남에 가해국이기도 하고 일본에 피해국이기도 하잖아.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배워야 할 것을 수혜 이런 걸 넘어서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아. 이번에 한베평화재단에서 참전군인 트라우마에 관한 행사를 열거나 하는 것도 결국 전쟁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사람을 갉아먹는지 알아내고 모아서 보여주고, 교육 시키는 거잖아. 그런 자료들을 남기는게 의미 있는 것 같아.
후원하던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던 아빠와 30년간 일했던 어린이집을 관두고 교육연구소를 차린 엄마의 대답이 각자의 삶과 닿아 있어 신기했다. 서로의 말이 오가던 중 아빠는 최근 이슈가 되었던 시민단체 회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며 우리 사회가 시민단체를 이해하는 부분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백기생: 후원금을 받는 단체가 회계처리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후원을 하는 사람들도 후원자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내가 믿고 후원을 한 것이라면 끝까지 믿고 결론이 나는 걸 보고 판단해도 되는 거야. 후원금을 반환해라 이런 소송은 그때 가서 해도 돼. 모든 후원금이 피해자나 수혜자에게 가면 좋겠지만 지원을 하는 단체도 유지가 돼야 하고 일하는 사람도 생활을 할 수 있어야지. 사업비를 지원받을 때도 인건비는 지원금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단 말이야. 자원봉사를 하는건 아니잖아. 이번 일들을 보면서 시민단체에 후원하는 사람들도 단체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거 같은 거지.
기자들이 그런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기사를 쓰는 것도 문제가 있다며, 사회부 기자가 되려면 시민단체에서 1, 2년 정도 일을 하면서 단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곤 이내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끝내도 되지? 하며 일어서는 것을 붙잡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평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남들은 제일 어려워했던 질문에 그는 쉬운 건데 뭐, 하며 막힘없이 말했다.
백기생: 너하고 나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나쁜 감정 없이 이야기 하는게 평화지. 미워하는 감정, 증오하는 감정 없는 그런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거.
그에 반해 엄마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미선(엄마): 평화는 존중에서 온다고 생각해. 둘, 셋 사이의 존중이 이루어지면 평화가 이루어지는 건데 부부관계나 가족 안에서도 존중이 부족하다 보니 평화가 깨지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당신(아빠)과 나, 우리 둘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다. 어휴, 내가 말하고도 너무 멋있는 말 같다.
엄마와 나는 손뼉을 쳤고 아빠는 피식하고 웃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것이 있는지.
백기생: 네가 어디에 있건 열심히 살고 재미있게 사는 거지. 재미있는 일 하고, 보람을 느끼고. 돈을 많이 벌어야 행복한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다른 바랄게 있나.
1년에 한 번 찍는 것 같은 가족사진. 하미선, 백기생, (아래 왼쪽부터) 해담, 지담, 록담
뻔한 답이라 느껴질 수 있는 마지막 대답은 얼굴을 보고 주고받는게 어색하여 결국 전화 통화로 이루어졌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되려 많은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내가 아빠에 대해, 나와 동생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가족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의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평소엔 듣지 못했던 그가 바라는 세상의 퍼즐을 맞춰본다. 말투는 무뚝뚝하지만 넓은 생각으로 세상에 대해 따뜻하게 열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 아빠 백기생, 후원회원 백기생과의 만남에 따뜻한 마침표를 찍는다.
글 백록담(길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