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유가족 9인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


하미학살, 프억빈학살 피해자와 유가족 9인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
7월 30일,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와 유가족 9인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이번 신청에는 다낭시(구 꽝남성)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 7명과 꽝응아이성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2명이 함께했습니다. 평균 연령은 약 70세이며, 최고령 신청인은 올해 88세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쯔엉티투 할머니입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신청인들을 대신해 한국의 대리인들이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번 신청은 3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이후 처음 접수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신청입니다. 또한 프억빈학살 사건이 처음으로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사례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968년 2월 24일 하미학살에서는 한국군에 의해 주민 135명이 희생되었고, 1966년 11월 9일 프억빈학살에서는 주민 7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청인 대부분은 가족을 잃거나 중상을 입고 살아남은 피해생존자들입니다. 그들은 약 60년 동안 한국 정부가 진실을 밝히고 책임 있게 응답해 주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열려라 열려라 진실규명의 문!
이번 신청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변화된 입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7월 9일, 진실화해위원회는 하미학살 사건 행정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에 제출한 보충서면을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입법적 해결과 함께 현행 제도 안에서도 정책적·행정적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올해 3월 취임한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하미학살 사건은 적극적으로 조사 개시를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동안 닫혀 있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지금, 피해자들은 다시 한번 한국 국가기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번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신청인 가운데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 3명은 이미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도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위원회는 ’외국인’이며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했고, 이들은 현재 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다시 한번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국가폭력의 진실은 국적에 따라 달라질 수 없으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2명은 2019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한국 정부에 진실규명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신청은 이들이 한국 국가기관에 보내는 두 번째 공식적인 진실규명 요청입니다.
이제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남았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청서를 접수한 날부터 90일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필요할 경우 30일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민변 베트남전 TF 팀장, 한베평화재단 이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신청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 개시 결정을 하게 된다면 베트남전 종전 이후 최초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을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는 최초의 절차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임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사법부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진전된 결정을 내려야한다. 최근 사법부가 베트남전 퐁니·퐁녓학살 국가배상소송 1심과 2심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만큼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러한 흐름에 발맞춰 진전된 인권 기준과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신청인들을 직접 만난 황호준 변호사(대리인,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TF)는 “피해자분들 중에는 한국인에 대한 증오와 원망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다 안고 갔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다. 진상 조사와 진실규명 요청과 더불어 학살 사건 속에서 자신의 오빠를 살려준 한국군을 만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며 진상규명의 요구속에 담긴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60년을 기다렸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번 신청과 함께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진실규명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쯔엉티투(88)는 “대통령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 이 일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거의 60년 동안 저는 이런 상태로 살아왔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응우옌티탄(69)은 “한국 정부가 먼저 그 일이 사실이었다고 인정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오랜 고통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팜티프엉(78)은 “한국 정부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말하기 위해 살아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보티리엠(65)은 “어머니도 동생도 아버지도 잃었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청인 9인 메시지 하단 첨부)
진실은 더 이상 미뤄질 수 없습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이번 신청이 대한민국 국가기관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을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생존자 대부분은 이미 60~80대의 고령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앞으로도 피해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한국 사회가 진실을 마주하고, 국가가 책임 있는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이번 진실규명 신청의 진행 과정도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이 길을 함께 걸어주신 후원자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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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리 권현우 활동가
사진 아침 활동가
* * * * *


“대통령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 이 일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거의 60년 동안 저는 이런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백 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다 해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쯔엉티투(1938년생, 사건 당시 30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끔찍하고 아픕니다. 다만 오빠가 살아남도록 도와준 한국군을 찾아 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생존자로서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실대로 증언하고 싶습니다.”
- 응우옌티홍(1954년생, 사건 당시 14세, 하미학살 피해유가족)


“그동안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는 지쳤습니다. 당시 학살을 저지른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도 원한과 분노가 정말 큽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아서 그 결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 응우옌럽 (1951년생, 당시 17세, 하미학살 피해유가족)
“학살 피해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어머니 배 밑에 깔려 있었어요. 지금도 제 머리에는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대가 완전히 끊겨 버렸고,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 응우옌티본(1962년생, 사건 당시 6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죽은 어머니의 시신 밑에서 아기였던 저는 구조되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한국군이 마을 사람들을 줄세워놓고 기관총을 쐈다고요. 당시 피해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저는 한쪽 발목이 불편합니다.”
- 부이티마이(1967년생, 사건 당시 1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총을 난사한 한국군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저는 가족 없이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과거의 일을 꺼내어 파헤치는 것은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제 정신적 고통을 헤아리고 지원하거나 배상하여 위로해 준다면 매우 기쁠 것입니다.”
- 당티카(1965년생, 사건 당시 3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학살이 일어난 지 약 60년이 지났습니다. 마음속 상처와 원한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먼저 그 일이 사실이었다고 인정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오랜 고통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 응우옌티탄(1957년생, 사건 당시 11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한국군의 학살 피해로 저는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을 다쳤습니다. 한국 정부에 당연히 있는그대로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가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말하기 위해 몸 건강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한국 정부에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 팜티프엉(1950년생, 사건 당시 16세,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어머니도 동생도 아버지도 잃었습니다. 나만 살아남아 전쟁고아가 되었고 학살 이후의 삶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왜 그때 나만 도망가서 총을 안 맞았지?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인지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습니다.”
- 보티리엠(1959년생, 사건 당시 7세,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유가족 9인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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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
7월 30일,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와 유가족 9인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이번 신청에는 다낭시(구 꽝남성)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 7명과 꽝응아이성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2명이 함께했습니다. 평균 연령은 약 70세이며, 최고령 신청인은 올해 88세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쯔엉티투 할머니입니다. 베트남에 거주하는 신청인들을 대신해 한국의 대리인들이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번 신청은 3기 진실화해위원회 출범 이후 처음 접수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신청입니다. 또한 프억빈학살 사건이 처음으로 진실화해위원회에 접수된 사례라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968년 2월 24일 하미학살에서는 한국군에 의해 주민 135명이 희생되었고, 1966년 11월 9일 프억빈학살에서는 주민 7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청인 대부분은 가족을 잃거나 중상을 입고 살아남은 피해생존자들입니다. 그들은 약 60년 동안 한국 정부가 진실을 밝히고 책임 있게 응답해 주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열려라 열려라 진실규명의 문!
이번 신청은 최근 진실화해위원회의 변화된 입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7월 9일, 진실화해위원회는 하미학살 사건 행정소송 상고심에서 대법원에 제출한 보충서면을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입법적 해결과 함께 현행 제도 안에서도 정책적·행정적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올해 3월 취임한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하미학살 사건은 적극적으로 조사 개시를 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동안 닫혀 있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지금, 피해자들은 다시 한번 한국 국가기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번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신청인 가운데 하미학살 피해자·유가족 3명은 이미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도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위원회는 ’외국인’이며 ’외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했고, 이들은 현재 그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다시 한번 진실규명을 신청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국가폭력의 진실은 국적에 따라 달라질 수 없으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2명은 2019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한국 정부에 진실규명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신청은 이들이 한국 국가기관에 보내는 두 번째 공식적인 진실규명 요청입니다.
이제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남았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청서를 접수한 날부터 90일 이내에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필요할 경우 30일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민변 베트남전 TF 팀장, 한베평화재단 이사)는 기자회견에서 이번 신청의 의미를 전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 개시 결정을 하게 된다면 베트남전 종전 이후 최초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인권침해에 대한 진실을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는 최초의 절차가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임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진실화해위원회는 사법부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진전된 결정을 내려야한다. 최근 사법부가 베트남전 퐁니·퐁녓학살 국가배상소송 1심과 2심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만큼 진실화해위원회가 그러한 흐름에 발맞춰 진전된 인권 기준과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신청인들을 직접 만난 황호준 변호사(대리인, 민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규명 TF)는 “피해자분들 중에는 한국인에 대한 증오와 원망은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다 안고 갔다고 말씀하신 분들이 있었다. 진상 조사와 진실규명 요청과 더불어 학살 사건 속에서 자신의 오빠를 살려준 한국군을 만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는 분도 있었다.”며 진상규명의 요구속에 담긴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60년을 기다렸습니다”
피해자들은 이번 신청과 함께 한국 정부가 더 이상 진실규명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쯔엉티투(88)는 “대통령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 이 일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거의 60년 동안 저는 이런 상태로 살아왔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응우옌티탄(69)은 “한국 정부가 먼저 그 일이 사실이었다고 인정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오랜 고통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팜티프엉(78)은 “한국 정부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말하기 위해 살아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보티리엠(65)은 “어머니도 동생도 아버지도 잃었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청인 9인 메시지 하단 첨부)
진실은 더 이상 미뤄질 수 없습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는 이번 신청이 대한민국 국가기관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을 공식적으로 조사하고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피해생존자 대부분은 이미 60~80대의 고령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을 직접 증언할 수 있는 분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앞으로도 피해생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 한국 사회가 진실을 마주하고, 국가가 책임 있는 응답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이번 진실규명 신청의 진행 과정도 계속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이 길을 함께 걸어주신 후원자 여러분의 관심과 연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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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리 권현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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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대통령과 직접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왜 이 일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거의 60년 동안 저는 이런 상태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백 살이 될 때까지 살아있다 해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쯔엉티투(1938년생, 사건 당시 30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끔찍하고 아픕니다. 다만 오빠가 살아남도록 도와준 한국군을 찾아 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생존자로서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실대로 증언하고 싶습니다.”
- 응우옌티홍(1954년생, 사건 당시 14세, 하미학살 피해유가족)
“그동안 너무 많이 이야기해서 이제는 지쳤습니다. 당시 학살을 저지른 사람을 생각하면 지금도 원한과 분노가 정말 큽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아서 그 결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십시오.”
- 응우옌럽 (1951년생, 당시 17세, 하미학살 피해유가족)
“학살 피해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어머니 배 밑에 깔려 있었어요. 지금도 제 머리에는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대가 완전히 끊겨 버렸고,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 응우옌티본(1962년생, 사건 당시 6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죽은 어머니의 시신 밑에서 아기였던 저는 구조되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들었습니다. 한국군이 마을 사람들을 줄세워놓고 기관총을 쐈다고요. 당시 피해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저는 한쪽 발목이 불편합니다.”
- 부이티마이(1967년생, 사건 당시 1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총을 난사한 한국군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저는 가족 없이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과거의 일을 꺼내어 파헤치는 것은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제 정신적 고통을 헤아리고 지원하거나 배상하여 위로해 준다면 매우 기쁠 것입니다.”
- 당티카(1965년생, 사건 당시 3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학살이 일어난 지 약 60년이 지났습니다. 마음속 상처와 원한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먼저 그 일이 사실이었다고 인정하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오랜 고통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 응우옌티탄(1957년생, 사건 당시 11세,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한국군의 학살 피해로 저는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을 다쳤습니다. 한국 정부에 당연히 있는그대로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가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나는 말하기 위해 몸 건강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한국 정부에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 팜티프엉(1950년생, 사건 당시 16세,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
“어머니도 동생도 아버지도 잃었습니다. 나만 살아남아 전쟁고아가 되었고 학살 이후의 삶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왜 그때 나만 도망가서 총을 안 맞았지?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인지 그 이유를 정말 알고 싶습니다.”
- 보티리엠(1959년생, 사건 당시 7세, 프억빈학살 피해생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