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베트남전 피해생존자·참전군인·시민이 함께하는 간담회(2025.6.21) 스케치

* 지난 6월 21일(토)에 있었던 베트남전 피해생존자·참전군인·시민이 함께하는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후기를 늦었지만 올립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님(이하 하미 탄)과 퐁니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님(이하 퐁니 탄)의 여러 이야기들 중 이날 간담회 이야기가 후기로 꼭 기억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시일이 많이 늦었지만 공유합니다. |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행사의 제목은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베트남에서 온 두 명의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하미 탄님과 퐁니 탄님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기존의 베트남 피해자 방한 대중 행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트남 피해생존자와 참전군인을 함께 무대에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고민 끝에 준비한 간담회였습니다. 베트남 피해자와 참전군인분께서 함께 나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많은 시민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참전군인 김영만 선생님은 이날 행사를 위해 아내분과 마산에서 오셨습니다. 2000년에 김영만 선생님은 한겨레21을 통해 참전군인 전우들에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를 내셨던 분이었습니다. 선생께서는 네트워크의 간담회 제안을 받고 바로 수락은 하셨지만 날짜가 다가오며 많은 고민과 걱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권현우 활동가에게 전화로 “베트남에서 오신 피해자분께 내가 무슨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라며 걱정과 부담을 토로하셨을 정도였습니다.
하미 탄님과 퐁니 탄님은 이번 방한 때 학살 피해자들이 겪은 진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연대하는 참전군인과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하니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두 분은 평소에도 한국을 찾았을 때 자신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참전군인과의 만남을 뜻깊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계셨는데, 그동안 ‘김영만’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며 이번 만남에 적지 않은 기대와 호기심을 보이셨습니다.

퐁니 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님

하미 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님
간담회를 앞두고 한 시간 정도 하미 탄님, 퐁니 탄님, 김영만 선생님이 차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조용한 자리에서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차담에는 참전군인 류진성 선생님도 함께 했습니다. 퐁니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에서 증언을 해주신 류진성 선생님은 두 피해자분과 만난 인연이 있었고 이날 다시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산에서 온 김영만님

서울 양천구에서 온 류진성님

악수를 나누고 있는 두 응우옌티탄님과 김영만님
간담회 사회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도 차담부터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반가움과 따스한 연대감 그리고 약간의 긴장 속에 네 분의 차담이 잘 마무리되었고 수많은 시민들 앞에서 간담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메인 게스트는 하미 탄님, 퐁니 탄님 그리고 김영만 선생님이었고, 류진성 선생님이 잠깐 무대에 올라 말씀을 청해들었습니다.
* * * * *
김영만 선생님은 참전군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참전으로 겪은 심각한 부상과 그로 인해 겪은 마음의 상처, PTSD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월남에 다녀온 후 부모님이 ‘네 눈빛이 달라졌다’라고 했을 정도로 청년 김영만의 영혼은 일그러져 있었고 결혼 후에는 자신이 입은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아내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절대로 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하는 군인보다는 훨씬 더 민간인이 많이 죽는다는 사실을 내가 내 눈으로 봤습니다.”라며 자신이 참전 이후 시민운동가로 살면서 평생 이야기한 반전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제일 미웠던 사람들이 북한과 문제가 생기면 걸핏하면 전쟁하자고 나서는 사람들”이었다는 한탄의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날 국방부는 전쟁 시기 채명신 장군이 각 부대에 전했다는 훈령인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라는 문구를 전쟁기념관의 베트남전쟁 전시관에 커다란 전시물로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영만 선생님은 이 훈령에 대해서 호된 비판의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발언하고 있는 김영만 선생님
-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거꾸로 백 명의 민간인을 죽이더라도 한 명의 베트콩을 잡아라! 그게 전쟁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었고 한 번이라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저와 전우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 참전군인 김영만
선생께서는 참전 당시 자신과 청년 장병들이 베트남의 역사를 알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했을지 모르겠다며 12·3 계엄 당시 국회에서 군인들이 정당성 없는 계엄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고 주저했던 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12·3 계엄의 밤은 참전군인 김영만에게 베트남전쟁의 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던 것 같았습니다.
김영만 선생님은 참전군인으로서 베트남에서 온 피해자를 만나는 것의 부담과 오늘 간담회를 한 소감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제가 어떤 부담을 가지고 있었냐면, 내가 여기 온다면 저분들을 도와드리는 입장이 되면 좋겠는데 현재 저로서는 두 분을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요. 그랬는데 두 분과 (간담회를 앞둔 차담에서) 대화를 하면서 두 분이 말씀하시는 내용과 표정을 딱 보니까, 학살을 인정하는 참전군인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내 역할이 바로 이거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제가 잘 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참전군인 김영만
하미 탄님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는 방한 일정 중에 하미 탄님이 “내가 없더라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하신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미 탄님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한국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제 소원이며, 그 소원이 이루어져야 제가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후 누구에게 사과받고 싶냐는 질문에 하미 탄님은 진심을 들려주셨습니다.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 “참전군인들한테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보상금은 필요 없습니다. 다만 참전군인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악수를 원합니다. 그래서 류진성 선생님께서 그 많은 압력을 받고도 법정에서 증언해주신 일에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류진성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미학살 사건에) 참전하여 직접 학살을 했던 자들에게 사과를 받고 싶고요, 한국 정부나 대통령은 그 다음으로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진실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하미 탄님은 퐁니학살과 달리 하미학살의 경우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해줄 참전군인의 증언이 없는 점을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참전군인에게 사과를 바라는 하미 탄님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하미의 진실을 증언해줄 참전군인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간절한 소망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퐁니학살을 법정에서 증언한 류진성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은 하미의 진실을 위해 나서줄 제2의 류진성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미 탄님은 하미 위령비 비문에 대한 바람도 들려주셨습니다. 2000년, 참전자단체의 지원으로 하미 위령비가 건립되지만 학살의 진실이 담긴 비문 내용을 한국 대사관과 참전자단체가 문제를 제기해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결국 유가족들이 비문을 삭제하지 않고 연꽃 그림을 그린 대리석으로 덮게 됩니다. 그후 아무런 변화 없이 20년 넘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하미 마을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하미 위령비 비문을 그렇게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비문에 새겨진 모든 내용에 하미 마을의 역사가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문이 텅 비어 있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우리 후세대가 마을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저와 다른 하미 마을 사람들도 그 비문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다른 자리에서는 듣지 못했던 퐁니 탄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하루 앞두고 퐁니 탄님은 베트남전쟁 관련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김태환 감독과 긴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중 ‘탄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탄님은 ‘그러한 질문을 한국 친구들에게 참 많이 받는데 내가 학교를 다니지 못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잘 모르겠고 잘 표현하지 못한다’라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는 당시 인터뷰를 지켜본 일화를 청중에 전하며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탄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요.
자신과 인연이 있는 한국 시민에게 화답하고 있는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
- “이제 다시 이야기하자면 저에게 평화는 한국 정부와 국방부가 진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가 한국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학살 사건 당시 제가 8살이었고 그후 고아가 되었고 학교를 다니지 못했어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어떻게 말을 하고 표현을 해야하는지, 제 마음과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답니다. 여러분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안타깝고 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
탄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단에 증언을 들려주신 수많은 피해생존자 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피해자분들이 학살 사건에 대해서 원통해하며 증언을 하시는데, 학살 피해 이후 가난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점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을 매우 한스럽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평화기행이나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 시민들과의 이야기 자리가 끝난 뒤, 탄님께서 활동가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내 이야기가 괜찮았니?’라고 물으셨던 순간들도 떠올랐습니다. 활동가들이 엄지척을 하며 너무 잘하셨다, 최고였다, 정말 인상 깊었다, 라고 화답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었던 순간들도 생각났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한국 시민들과 만날 때, 탄님께서 얼마나 진심이셨는지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아버지로 둔 한 시민 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퐁니 탄님께는 대법원에서 승소한다면 이후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탄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신 후 간결하지만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 “만약에 마지막 소송인 대법원에서 이긴다면 그 다음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다른 피해자와 함께 계속 싸워나가는 것입니다.”
-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가배상소송 관련 법정 증언을 했던 류진성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께서 무대에 오를 때 청중들의 박수가 이어졌는데 마이크를 잡은 첫마디로 “저는 이 자리에 박수받으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처벌받지 않은 전범입니다”라며 참전군인으로서 법정 증언에 나섰던 본인의 심정을 들려주셨습니다.
류진성 선생님은 자신의 법정 증언이 “이분들(베트남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해 법정에 섰고 그와 관련하여 겪은 여러 협박 전화와 비난들도 “어차피 짊어지고 가야할 제 운명과도 같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무대에 올라 이야기하고 있는 참전군인 류진성.
스크린의 사진은 2022년 8월, 그가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과 처음 만나 사죄와 위로의 말을 건냈을 당시의 모습.
-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가 있다면 적절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베트남 문제도 그들이 요구하기 전에 정부가 나서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올리는 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 참전군인 류진성
* * * * *
베트남 피해자와 참전군인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한 간담회가 진행되며 청중의 박수 소리가 여러 차례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베트남전쟁 관련 토론회나 간담회 중에 이렇게 자주 박수 소리가 이어졌던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 피해자와 참전군인, 둘의 발언이 서로 균형을 맞춰가며 이야기가 오가도록 진행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류진성 선생님이 김영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과정에서 김영만 선생님이 참전하고 부상을 당한 짜빈동 전투 이야기를 공적인 듯 언급한 점이나(피해자분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겠다며 양해를 구하긴 했음), 피해자를 위해 양심적인 행동을 한 두 참전군인분이 무대에서 서로에게 거듭 존경의 말을 보내는 대화들은 자칫하면 적절치 못한 발언이 될 수 있기에 아슬아슬함이 느껴진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두 응우옌티탄과 반갑게 재회한 베트남 평화기행 참가자들
이날 간담회에서 시민분들도 진심을 담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아쉽게도 이번 후기글에서 모든 내용을 정리하지는 못하네요. 다행히 간담회 이후 작성된 칼럼과 후기 글이 있어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에 많은 시민분들이 참여해주시고 의미 있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박수로 화답해주신 따스한 마음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후기글을 정리하며 앞으로 한국 시민사회가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또 어떠한 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오고간 이야기와 맺어진 인연이 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간담회 후기를 시민 여러분께 공유드립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 | 권현우 활동가
간담회 통역 | 응우옌응옥뚜옌(시내)
사진 |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작가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베트남전 피해생존자·참전군인·시민이 함께하는 간담회(2025.6.21) 스케치
* 지난 6월 21일(토)에 있었던 베트남전 피해생존자·참전군인·시민이 함께하는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후기를 늦었지만 올립니다. 지난 6월 한국을 방문한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님(이하 하미 탄)과 퐁니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님(이하 퐁니 탄)의 여러 이야기들 중 이날 간담회 이야기가 후기로 꼭 기억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시일이 많이 늦었지만 공유합니다.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행사의 제목은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 베트남에서 온 두 명의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하미 탄님과 퐁니 탄님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이날 간담회는 기존의 베트남 피해자 방한 대중 행사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트남 피해생존자와 참전군인을 함께 무대에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베트남전쟁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고민 끝에 준비한 간담회였습니다. 베트남 피해자와 참전군인분께서 함께 나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많은 시민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참전군인 김영만 선생님은 이날 행사를 위해 아내분과 마산에서 오셨습니다. 2000년에 김영만 선생님은 한겨레21을 통해 참전군인 전우들에게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를 내셨던 분이었습니다. 선생께서는 네트워크의 간담회 제안을 받고 바로 수락은 하셨지만 날짜가 다가오며 많은 고민과 걱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행사를 일주일 앞두고 권현우 활동가에게 전화로 “베트남에서 오신 피해자분께 내가 무슨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라며 걱정과 부담을 토로하셨을 정도였습니다.
하미 탄님과 퐁니 탄님은 이번 방한 때 학살 피해자들이 겪은 진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연대하는 참전군인과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하니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두 분은 평소에도 한국을 찾았을 때 자신에게 사과의 뜻을 밝힌 참전군인과의 만남을 뜻깊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계셨는데, 그동안 ‘김영만’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며 이번 만남에 적지 않은 기대와 호기심을 보이셨습니다.
퐁니 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님
하미 마을에서 온 응우옌티탄님
간담회를 앞두고 한 시간 정도 하미 탄님, 퐁니 탄님, 김영만 선생님이 차담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조용한 자리에서 서로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차담에는 참전군인 류진성 선생님도 함께 했습니다. 퐁니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에서 증언을 해주신 류진성 선생님은 두 피해자분과 만난 인연이 있었고 이날 다시 반가운 재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산에서 온 김영만님
서울 양천구에서 온 류진성님
악수를 나누고 있는 두 응우옌티탄님과 김영만님
간담회 사회를 맡은 임재성 변호사도 차담부터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반가움과 따스한 연대감 그리고 약간의 긴장 속에 네 분의 차담이 잘 마무리되었고 수많은 시민들 앞에서 간담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메인 게스트는 하미 탄님, 퐁니 탄님 그리고 김영만 선생님이었고, 류진성 선생님이 잠깐 무대에 올라 말씀을 청해들었습니다.
* 초심자를 위한 참전군인/시민운동가 김영만 선생님 관련 읽을 거리
[한겨레21] 죄의식이 평생을 따라다녔다(2000.8.9)
[한겨레21] 진정한 명예를 위한 긴급제안(2000.8.23)
[경남도민일보] 베트남 파병 해병대원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202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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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선생님은 참전군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참전으로 겪은 심각한 부상과 그로 인해 겪은 마음의 상처, PTSD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월남에 다녀온 후 부모님이 ‘네 눈빛이 달라졌다’라고 했을 정도로 청년 김영만의 영혼은 일그러져 있었고 결혼 후에는 자신이 입은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아내에게 전해졌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선생께서는 “절대로 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을 하는 군인보다는 훨씬 더 민간인이 많이 죽는다는 사실을 내가 내 눈으로 봤습니다.”라며 자신이 참전 이후 시민운동가로 살면서 평생 이야기한 반전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제일 미웠던 사람들이 북한과 문제가 생기면 걸핏하면 전쟁하자고 나서는 사람들”이었다는 한탄의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날 국방부는 전쟁 시기 채명신 장군이 각 부대에 전했다는 훈령인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라는 문구를 전쟁기념관의 베트남전쟁 전시관에 커다란 전시물로 자랑스럽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김영만 선생님은 이 훈령에 대해서 호된 비판의 목소리를 내셨습니다.
발언하고 있는 김영만 선생님
- 참전군인 김영만
선생께서는 참전 당시 자신과 청년 장병들이 베트남의 역사를 알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했을지 모르겠다며 12·3 계엄 당시 국회에서 군인들이 정당성 없는 계엄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고 주저했던 점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12·3 계엄의 밤은 참전군인 김영만에게 베트남전쟁의 시간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던 것 같았습니다.
김영만 선생님은 참전군인으로서 베트남에서 온 피해자를 만나는 것의 부담과 오늘 간담회를 한 소감에 대해서도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 참전군인 김영만
하미 탄님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는 방한 일정 중에 하미 탄님이 “내가 없더라도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하신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미 탄님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한국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진실을 인정하는 것이 제 소원이며, 그 소원이 이루어져야 제가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후 누구에게 사과받고 싶냐는 질문에 하미 탄님은 진심을 들려주셨습니다.
청중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하미 탄님은 퐁니학살과 달리 하미학살의 경우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해줄 참전군인의 증언이 없는 점을 늘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참전군인에게 사과를 바라는 하미 탄님의 이야기는 한편으로 하미의 진실을 증언해줄 참전군인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간절한 소망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퐁니학살을 법정에서 증언한 류진성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은 하미의 진실을 위해 나서줄 제2의 류진성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미 탄님은 하미 위령비 비문에 대한 바람도 들려주셨습니다. 2000년, 참전자단체의 지원으로 하미 위령비가 건립되지만 학살의 진실이 담긴 비문 내용을 한국 대사관과 참전자단체가 문제를 제기해 수정과 삭제를 요구한 일이 있었습니다. 결국 유가족들이 비문을 삭제하지 않고 연꽃 그림을 그린 대리석으로 덮게 됩니다. 그후 아무런 변화 없이 20년 넘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 하미 마을의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다른 자리에서는 듣지 못했던 퐁니 탄님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행사를 하루 앞두고 퐁니 탄님은 베트남전쟁 관련 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김태환 감독과 긴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중 ‘탄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탄님은 ‘그러한 질문을 한국 친구들에게 참 많이 받는데 내가 학교를 다니지 못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지 잘 모르겠고 잘 표현하지 못한다’라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임재성 변호사는 당시 인터뷰를 지켜본 일화를 청중에 전하며 다시 한번 물었습니다. 탄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요.
-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
탄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재단에 증언을 들려주신 수많은 피해생존자 분들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피해자분들이 학살 사건에 대해서 원통해하며 증언을 하시는데, 학살 피해 이후 가난과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 점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을 매우 한스럽게 이야기하시기 때문입니다.
평화기행이나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 시민들과의 이야기 자리가 끝난 뒤, 탄님께서 활동가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오늘 내 이야기가 괜찮았니?’라고 물으셨던 순간들도 떠올랐습니다. 활동가들이 엄지척을 하며 너무 잘하셨다, 최고였다, 정말 인상 깊었다, 라고 화답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었던 순간들도 생각났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한국 시민들과 만날 때, 탄님께서 얼마나 진심이셨는지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베트남전 참전군인을 아버지로 둔 한 시민 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퐁니 탄님께는 대법원에서 승소한다면 이후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탄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신 후 간결하지만 묵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가배상소송 관련 법정 증언을 했던 류진성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선생께서 무대에 오를 때 청중들의 박수가 이어졌는데 마이크를 잡은 첫마디로 “저는 이 자리에 박수받으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는 처벌받지 않은 전범입니다”라며 참전군인으로서 법정 증언에 나섰던 본인의 심정을 들려주셨습니다.
류진성 선생님은 자신의 법정 증언이 “이분들(베트남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빚을 갚는 길”이라 생각해 법정에 섰고 그와 관련하여 겪은 여러 협박 전화와 비난들도 “어차피 짊어지고 가야할 제 운명과도 같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스크린의 사진은 2022년 8월, 그가 퐁니 마을 응우옌티탄과 처음 만나 사죄와 위로의 말을 건냈을 당시의 모습.
- 참전군인 류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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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피해자와 참전군인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한 간담회가 진행되며 청중의 박수 소리가 여러 차례 이어졌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베트남전쟁 관련 토론회나 간담회 중에 이렇게 자주 박수 소리가 이어졌던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베트남 피해자와 참전군인, 둘의 발언이 서로 균형을 맞춰가며 이야기가 오가도록 진행하는 것의 어려움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류진성 선생님이 김영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과정에서 김영만 선생님이 참전하고 부상을 당한 짜빈동 전투 이야기를 공적인 듯 언급한 점이나(피해자분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겠다며 양해를 구하긴 했음), 피해자를 위해 양심적인 행동을 한 두 참전군인분이 무대에서 서로에게 거듭 존경의 말을 보내는 대화들은 자칫하면 적절치 못한 발언이 될 수 있기에 아슬아슬함이 느껴진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시민분들도 진심을 담은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아쉽게도 이번 후기글에서 모든 내용을 정리하지는 못하네요. 다행히 간담회 이후 작성된 칼럼과 후기 글이 있어 참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간담회 관련 에세이/후기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무대에... 우리는 어떻게 말을 '주고받을' 것인가/심아정(독립연구활동가, 네트워크 운영모임)
베트남전 피해생존자와 함께 하는 시민 간담회 / 정예은(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에 많은 시민분들이 참여해주시고 의미 있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박수로 화답해주신 따스한 마음에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후기글을 정리하며 앞으로 한국 시민사회가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또 어떠한 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오고간 이야기와 맺어진 인연이 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간담회 후기를 시민 여러분께 공유드립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글 | 권현우 활동가
간담회 통역 | 응우옌응옥뚜옌(시내)
사진 |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