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빈안학살 유가족 도안반엠(Đoàn Văn Em)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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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안반엠(Đoàn Văn Em), 1965년생(주민등록상 1967년생)


▶ 1966년 2월 26일(양력),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빈안학살(Vụ thảm sát Bình An, xã Tây Vinh, huyện Tây Sơn, tỉnh Bình Định) 유가족


▶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로 떠이빈사(구 빈안사)의 15개 지점에서 모두 1,004명의 주민이 희생되었다. 도안반엠(당시 1세)은 빈안학살 가운데 2월 26일에 일어난 고자이학살의 유가족이다. 


사건 당시 도안반엠은 생후 1년이 조금 넘은 아기였고, 가족은 빈안사의 년투언촌에 살고 있었다.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왔을 당시 어머니 후인티티엣(37세)은 세 남매와 함께 집에 있었고 아버지 도안호앙(47세)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인근에 살던 친척들은 자신의 아이들 6~7명을 도안반엠의 어머니에게 맡겼다. 당시 도안반엠의 집이 있던 곳은 다른 마을들처럼 주민들을 한곳에 집결시키지는 않아 가족은 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왔을 때  도안반엠은 배가 고파 계속 울었는데, 한국군이 떠난 뒤 어머니는 그들이 먹고 남긴 통조림을 먹였고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그날 년투언촌에서 남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안빈촌 고자이에서는 한국군에 의한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난 뒤 고모 도안티느(50세)는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행방을 알 수 없어 학살 현장까지 찾아가 주검들을 뒤졌지만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고자이학살 희생자들 가운데는 중 도안반엠의 아버지처럼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아버지 도안호앙의 이름은 현재 고자이학살 위령비에 새겨진 희생자 380명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사건 이후 어머니는 혼자 세 남매를 키우며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집에 논이 많지 않아 어머니는 주로 날품팔이를 하며 생계를 꾸려갔고, 형과 누나도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도안반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떠이빈사 인민위원회에서 근무해 부당서기장을 지낸 뒤 퇴직했다. 


도안반엠은 학살 당시 너무 어려 직접적인 기억은 없지만, 1973년경 한국군과 관련된 한 장면은 기억한다. 한국군 병사 한 명이 부대를 탈영해 마을 주민의 집에 숨어 지냈다. 도안반엠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그를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며칠 뒤 다른 한국군이 찾아와 그 병사를 데려갔다.


1999년 인민위원회에서 일하던 당시, 민간인학살 조사를 위해 마을을 찾은 구수정을 처음 만났다. 이후 정수시설 지원 사업을 한 이주민과함께, 체육관 건립을 지원한 한양대학교 등 여러 한국 단체와 지원사업을 함께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한국 단체와의 만남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도안반엠은 이러한 활동들이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우호와 연대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며, 한국 단체들이 매년 위령제에 꾸준히 조화를 보내주는 일도 매우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증언 출처: 2026년 4월 22일, 5월 12일 도안반엠 인터뷰(진행: 도안당땀바오)


▶ 사진: 2026년 2월 26일 한베평화재단 제공


빈안학살 위령제단


고자이학살 위령비


▶ 비고: 2025년 베트남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과거 떠이빈사로 불리던 빈안학살 피해 지역은 현재 지아라이성 빈안사(xã Bình An, tỉnh Gia Lai)로 편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