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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푸옌성 토럼학살 유가족 부이티찐(Bùi Thị Chỉnh)

2026-07-09
조회수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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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이티찐(Bùi Thị Chỉnh), 1961년생


▶ 1966년 5월 14일(양력), 푸옌성 동호아시 호아히엡남구 토럼학살(Vụ thảm sát Thọ Lâm, phường Hòa Hiệp Nam, thị xã Đông Hòa, tỉnh Phú Yên) 피해생존자


▶ 1966년 부이티찐의 가족은 토럼 마을 '쏨소이(xóm Soi)'에 살고 있었다. 당시 이 일대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활동이 활발해 교전이 빈번한 지역이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과 친척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피난을 떠났지만, 조상 대대로 일궈온 논밭을 떠날 수 없었던 가족은 마을에 남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부이티찐(당시 5세)은 토럼학살에서 어머니 부이티껌(44세), 언니 부이티농(9세)과 함께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여동생 부이티딴(2세)과 오빠 부이반루언(16세)을 잃었다. 당일 한국군은 주민들을 공터로 불러 모은 뒤 총격을 가했다. 찐은 어머니와 언니 곁에 엎드려 있었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꼭 끌어안은 채 죽은 척하고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러나 두 살배기 여동생 딴은 몸을 움직이다가 한국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찐은 어머니 곁에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고, 총에 맞은 주민들이 잇달아 모녀의 몸 위로 쓰러지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격이 끝난 뒤에도 겁에 질린 찐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어머니는 두 딸을 데리고 근처 움막과 소우리로 몸을 피했다. 그때 한국군이 주변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했고 그 총탄에 어머니가 어깨를 다쳐 많은 피를 흘렸다. 세 모녀는 소우리 안에서 소똥을 상처에 발라 지혈한 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숨어 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당시 아버지 부이시는 산기슭의 방공호에 숨어 있었다. 마을로 돌아온 그는 가족이 모두 희생된 줄 알고 시신을 찾았으나, 막내딸의 시신만 발견했다. 나머지 가족은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행방을 알 수 없어 다시 산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한편 오빠 부이반뉴(14세)는 소를 치러 마을 밖에 나갔다가 한국군에게 붙잡혀 헬리콥터로 연행되었으나,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풀려났다. 또 다른 오빠 부이반루언은 총상을 입었지만 치료를 받지 못해 상처가 감염되어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학살 이후 가족은 더 안전한 곳으로 피난해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어머니는 과일 장사와 품팔이, 물 긷기와 빨래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자녀들을 키웠고, 언니 농과 오빠 뉴도 어린 시절부터 생계를 도왔다. 찐은 열 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학교를  마친 뒤 뚜이호아의 제약회사에서 일했다. 현재는 은퇴해 토럼에서 살아가고 있다.

찐에게 가장 깊이 남은 기억은 전쟁 속에서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폭격을 피해 피난을 다니던 시절,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작은 주머니를 하나씩 메게 하고 그 안에 볶음밥을 넣어 주었다. 혹시 자신이 총에 맞아 죽더라도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다. 찐은 당시를 떠올리며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너무 가엾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는 무슨 일인지 잘 몰랐지만, 자라면서 한국군에 의한 학살을 이해하게 되자 그들에 대한 미움도 커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는 전쟁이라는 상황이 그런 비극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군이 주민들을 학살하고 집을 모두 불태운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해마다 같은 날 제사를 지내며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찐은 "한국 정부가 전쟁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며, "이제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고 개인적으로 더는 바라는 것은 없지만, 토럼학살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증언 출처: 2026년 5월 8일 부이티찐 인터뷰 (진행: 도안당땀바오)


▶ 사진: 2026년 2월 24일 한베평화재단 제공 


토럼학살 위령비


토럼학살 희생자 명단


▶ 비고: 2025년 베트남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토럼학살 피해 지역은 현재 닥락성 호아히엡동(phường Hòa Hiệp, tỉnh Đắk Lắk)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