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응아이성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팜반닥

202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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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반닥(Phạm Văn Đắc), 1946년생 (주민등록상 1947년생)

▶ 1966년 10월 2일(음력), 꽝응아이성 선띤현 띤선사 지엔니엔학살 (Vụ thảm sát Diên Niên, xã Tịnh Sơn, huyện Sơn Tịnh, tỉnh Quảng Ngãi) 유가족

▶ 팜반닥의 아버지는 병환으로 그가 13살 때 세상을 떠났다. 1966년 당시 큰형 팜룩(28세)은 남베트남군 병사로 남부의 롱안성에 있었고 누나 팜티쭉(22세)는 출가하여 집을 떠나있었으며 팜반닥(20세)은 혁명 세력에 참여하여 꽝응아이성의 지휘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지엔니엔촌의 집에는 어머니가 그의 동생 4명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사건 하루 전날, 팜반닥의 가족들은 한국군에게 피해를 입을까 걱정되어 남베트남군 기지가 있던 마을 근처의 쫀(Tron)산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집과 마을을 텅 비워두면 한국군이 모든 것을 불태울까 걱정되어 사건 당일 아침 일찍 가족과 몇몇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갔다. 한국군은 마을에 있던 주민들을 소개하여 지엔니엔촌 마을 사당의 뒤편으로 모았다. 주민들은 한국군의 통제에 따라 사당에 모이면서도 조만간 풀려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오후 5시 경 한국군이 총을 난사하였고 주민들과 함께 있었던 팜반닥의 가족 5명 어머니 보티마이(49세), 남동생 팜반호앙(15세), 팜딘디엠(8세), 여동생 팜티러이 (7세), 팜티짱(2세)이 목숨을 잃었다. 사건 이후 2~3일 뒤 피해 소식을 듣고 팜반닥은 고향으로 달려왔으나 이때는 마을에 있던 그의 친지들이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한 뒤였다. 팜반닥은 학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매형 레반터이를 비롯한 마을의 친지, 주민들에게 들어 기억하고 있다. 당시 큰형 팜룩도 피해 소식을 전해 듣고 고향 근처까지 왔으나 한국군이 두려워 마을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에도 팜반닥은 혁명 활동을 이어갔으나 1969년에 포격 피해로 왼쪽 엄지 손가락을 잃고 목과 등에 파편상을 입는다. 학살 피해로 가족을 잃고 자신도 큰 부상을 입자 그는 혁명 활동을 그만두고 1970년 사이공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그는 운전기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고 지금까지 호찌민시에 거주하여 살고 있다.

베트남 언론에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가 자주 보도되던 2000년 어느 날, 팜반닥은 꿈에서 학살 피해로 죽은 어머니와 동생을 본다. 이후 그는 호찌민시의 한국 영사관에 학살 피해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의 요구한 청원서를 보냈으나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시기, 한국군을 파병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그에게 책임을 묻고자 다시 한번 청원서를 보내려고 했으나 박근혜가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가는 것을 보고는 청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2000년 당시 우편으로 한국 영사관에 청원서를 보내고 받은 EMS 송장을 20년 넘게 간직하고 있다. 2019년, 103인의 베트남전 한국군 학살 피해자·유가족의 청원 사실을 전해들은 그는 더 이상 한국 정부에 매달리고 싶지는 않지만 피해 사실에 대한 사과는 꼭 필요하며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은 받을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 증언 출처: 2021년 7월 8일, 2021년 10월 7일 팜반닥 인터뷰(진행: 권현우, 레티미느엉)

▶ 사진: 2021년 10월 7일 촬영, 한베평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