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빈안학살 유가족 응우옌티꾹

▶ 응우옌티꾹(Nguyễn Thị Cúc), 1927년생
▶ 1966년 2월 12일(양력),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빈안학살(Vụ thảm sát Bình An, xã Tây Vinh, huyện Tây Sơn, tỉnh Bình Định) 유가족
▶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떠이빈사(구 빈안사)의 15개 지점에서 모두 1,0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응우옌티꾹(당시 39세)은 이 빈안학살 중에서도 2월 12일에 일어난 송깐 시장 학살의 생존자다.
1996년 당시 응우옌티꾹은 남편, 그리고 세 명의 아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닥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의 남성들과 청년들은 마을 밖으로 달아났고 남편 응우옌흥(49세)는 큰 딸을 데리고 도망쳤다. 마을에 남은 응우옌티꾹과 두 아들은 집에서 300~400미터 떨어진 커다란 나무 맞은 편에 있는 방공호로 들어갔다. 마을로 들어온 한국군이 방공호를 발견했고 사람들을 밖으로 끌어내 줄을 세운 후 총을 난사했다. 그때 뒤쪽에 있었던 응우옌티꾹은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았으나 그의 앞에 있었던 두 아이는 총격을 당해 큰 아들 응우옌반민(10세)은 한 쪽 팔이 날아가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작은 아들 응우옌반띠엔(7세)는 오른쪽 발목에 가벼운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다. 이날 응우옌티꾹이 있었던 방공호에서는 6~7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으며 당일 빈안사 빈득촌의 송깐 시장 일대에서는 한국군에게 모두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군은 주민들을 사살한 후 그 일대의 집들을 모두 불태웠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난 후 남편 응우옌훙이 집에 돌아와 작은 아들을 치료했고 큰 아들의 시신을 땅에 묻었다. 한국군이 집을 불태워 가족은 인근의 빈응이사로 피난을 갔으며 몇 개월 후에는 지아라이성의 안캐사로 이주하여 그곳에 약 2년간 머물다가 1969년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응우옌티꾹은 평생 학살 피해로 죽은 큰 아들 응우옌반민에 대한 기억에 고통받아왔다. 그는 학살 피해 이후 낳은 딸들에게 이따금 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지금도 너희 큰 오빠가 그곳에 서서 피범벅이 된 팔을 안고 있는 게 보여.”라고 말하곤 했다.
▶ 증언 출처: 2019년 3월 6일, 3월 24일 응우옌티꾹 인터뷰(진행 쩐티타오꾸옌)
▶ 사진: 2019년 5월 5일, 정태환 촬영
▶ 송깐 시장 학살 위령비
▶ 빈안학살 위령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