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꽝남성 하미학살 유가족 팜반하

▶ 팜반하(Phạm Văn Hà), 1954년생, 2023년 타계
▶ 1968년 1월 24일(음력),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학살(Vụ thảm sát Hà My, phường Điện Dương, thị xã Điện Bàn, tỉnh Quảng Nam) 생존자
▶ 팜반하(당시 14살)는 하미학살 피해로 어머니와 친누나를 포함한 9명의 가족과 친척을 잃었다. 1968년 이전 미군이 하미 마을의 주민들을 다낭과 호이안으로 이주시켰고 이때 팜반하의 아버지는 다낭으로 갔지만 팜반하와 가족들은 하미 마을에 남았다. 사건 전날 밤, 팜반하는 마을 인근에서 포격 소리를 들었다.
사건 당일 한국군은 9시 경에 마을에 들어와 12시 경 마을을 떠났다. 당시 팜반하는 마을 밖 숲으로 소에 꼴을 먹이러 막 나갔던 터라 피해를 입지 않았다. 마을에서 총소리가 들리자 그는 숲의 나무 사이에 숨었다가 다시 근처의 인가에 몸을 피했다. 학살 피해 장소에서 4~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라 그는 1~2시간에 걸쳐 이어진 총소리를 계속 들었고 하늘로 치솟는 연기도 볼 수 있었다. 당시 한국군이 주민들을 3곳에 모아놓고 학살을 저질렀는데 어머니 쯔엉티터이(59세)는 하미쭝 마을에서 죽었고 누나 팜티응온(약 28세)과 7명의 친척들(형수 1명, 조카 6명)은 하미떠이 마을에서 죽었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난 후 팜반하는 주민들에게 마을에서 학살이 벌어졌고 집들이 모두 불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너무 무서워 시신을 수습하러 마을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학살 피해 이후 그는 주로 호이안에 머물며 홀로 피난민 생활을 했다. 소 키우는 일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이따금 친인척을 만나러 다낭을 다녀왔다. 그는 학살로 희생된 어머니의 얼굴과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 등을 떠올리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에 너무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도 그는 매년 제삿날을 2~3일 앞두고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는 꿈을 꾸곤 한다. 팜반하는 베트남도 한국도 모두 전쟁의 피해자였기에 한국군에 대한 증오나 원한은 없다고 했으며 다만 후세대들이 평화의 미래를 잘 일궈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 증언 출처: 2021년 3월 25일, 3월 26일, 3월 31일 팜반하 인터뷰(진행 흐아흐우응이)
▶ 사진: 2021년 3월 7일, 한베평화재단 촬영
▶ 꽝남성 하미학살 위령비
▶ 비고: 2001년에 건립된 하미학살 위령비의 희생자 명단에는 그의 조카 4명의 이름이 없다. 당시 판반하는 인민위원회에 가족과 친지의 희생자 명단을 작성하며 네 명의 3세 미만 조카를 무명(Vô Danh)이라고 적었는데, 확정된 명단에서는 이 네 명이 빠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