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우옌반땀(Nguyễn Văn Tam), 1942년생 (주민등록 1944년생)
▶ 1968년 1월 24일(음력),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학살 (Vụ thảm sát Hà My, phường Điện Dương, thị xã Điện Bàn, tỉnh Quảng Nam) 유가족
▶ 응우옌반땀(당시 26세)는 하미학살 피해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었다. 1968년, 한국군이 하미 마을로 들어와 주둔을 시작했고 음력 설연휴 이후에는 주민들을 내쫓았다. 응우옌반땀이 있던 서하미 마을도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흩어졌는데 남은 주민들은 5~6가구씩 모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사건 당일 아침 6시 경에 한국군이 마을로 들어오자 응우옌반땀은 마을의 남자 두세 명과 한국군이 없는 마을 외곽의 방공호로 몸을 피했다. 집에 남아있던 아내 응오티까이(24세)와 딸 응우옌티냐인(3세)는 옆집에 살고 있던 형수 팜티호아(40세)의 가족과 함께 한국군에게 붙잡혀 응우옌빈 할아버지의 집에 끌려갔고 그곳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집단으로 학살 피해를 당했다. 응오티까이는 만삭의 임신부로 뱃속의 아이도 목숨을 잃었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나고 당일 저녁 응우옌반땀은 방공호에서 나와 피해 현장으로 갔고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형수 팜티호아를 만났는데, 아내와 딸이 한국군에 목숨을 잃었고 당시 아내가 한국군에게 강간을 당한 후 죽임을 당한 사실을 전해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응우옌반땀은 평범한 농민이었고, 한국군이 집을 불태우고 사건 다음날 불도저로 피해 현장을 밀어버려 그는 집과 재산은 물론 가족의 시신마저 잃고 말았다.
종전 이후 그는 하미에 머물지 않고 다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그는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았으나 하미학살 위령제에는 해마다 참석하여 죽은 아내와 아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그의 집에는 아내와 두 아이를 상징하는 사진 없는 영정을 제단에 모시고 매일 아침 향불을 피우며 살아왔다. 그는 한국 정부가 혹시라도 누군가와 전쟁하려 한다면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라며, 두 번 다시는 한국군을 용병으로 보내 민간인이 피를 흘리게하지 말라 일갈했다.
▶ 증언 출처: 2021년 3월 8일 응우옌반땀 인터뷰(진행: 권현우)
▶ 사진: 2021년 3월 8일 촬영, 한베평화재단
▶ 꽝남성 하미학살 위령비
▶ 응우옌반땀(Nguyễn Văn Tam), 1942년생 (주민등록 1944년생)
▶ 1968년 1월 24일(음력), 꽝남성 디엔반시 디엔즈엉구 하미학살 (Vụ thảm sát Hà My, phường Điện Dương, thị xã Điện Bàn, tỉnh Quảng Nam) 유가족
▶ 응우옌반땀(당시 26세)는 하미학살 피해로 아내와 두 아이를 잃었다. 1968년, 한국군이 하미 마을로 들어와 주둔을 시작했고 음력 설연휴 이후에는 주민들을 내쫓았다. 응우옌반땀이 있던 서하미 마을도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흩어졌는데 남은 주민들은 5~6가구씩 모여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다.
사건 당일 아침 6시 경에 한국군이 마을로 들어오자 응우옌반땀은 마을의 남자 두세 명과 한국군이 없는 마을 외곽의 방공호로 몸을 피했다. 집에 남아있던 아내 응오티까이(24세)와 딸 응우옌티냐인(3세)는 옆집에 살고 있던 형수 팜티호아(40세)의 가족과 함께 한국군에게 붙잡혀 응우옌빈 할아버지의 집에 끌려갔고 그곳에서 다른 주민들과 함께 집단으로 학살 피해를 당했다. 응오티까이는 만삭의 임신부로 뱃속의 아이도 목숨을 잃었다. 한국군이 마을을 떠나고 당일 저녁 응우옌반땀은 방공호에서 나와 피해 현장으로 갔고 부상을 입고 살아남은 형수 팜티호아를 만났는데, 아내와 딸이 한국군에 목숨을 잃었고 당시 아내가 한국군에게 강간을 당한 후 죽임을 당한 사실을 전해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응우옌반땀은 평범한 농민이었고, 한국군이 집을 불태우고 사건 다음날 불도저로 피해 현장을 밀어버려 그는 집과 재산은 물론 가족의 시신마저 잃고 말았다.
종전 이후 그는 하미에 머물지 않고 다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그는 재혼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았으나 하미학살 위령제에는 해마다 참석하여 죽은 아내와 아이들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그의 집에는 아내와 두 아이를 상징하는 사진 없는 영정을 제단에 모시고 매일 아침 향불을 피우며 살아왔다. 그는 한국 정부가 혹시라도 누군가와 전쟁하려 한다면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라며, 두 번 다시는 한국군을 용병으로 보내 민간인이 피를 흘리게하지 말라 일갈했다.
▶ 증언 출처: 2021년 3월 8일 응우옌반땀 인터뷰(진행: 권현우)
▶ 사진: 2021년 3월 8일 촬영, 한베평화재단
▶ 꽝남성 하미학살 위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