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미롱촌 학살 유가족 판딘라인

202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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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딘라인(Phan Đình Lánh), 1966년생 (주민등록상 1967년생)

▶ 1966년 3월 2일(음력), 빈딘성 푸깟현 깟흥사 미롱촌 (Thôn Mỹ Long, xã Cát Hưng, huyện Phù Cát, tỉnh Bình Định) 학살 유가족

▶ 판딘라인(당시 생후 약 2주)은 미롱촌에서 일어난 한국군 학살로 어머니 응우옌티떠이(약 22~23세)를 잃었다. 당시 판딘라인의 아버지 판쾌(약 25~27세)는 남베트남군에 붙잡혀 감옥에 있었고 집에는 할머니 응우옌티떠이(55세), 어머니, 누나 판티아인(3세), 판딘라인이 있었다. 한국군이 마을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얼마전 출산을 한 어머니 때문에 가족은 먼 곳으로 피신하지 못하고 집의 방공호에 숨었다. 총소리가 들렸던 것은 오전 8~9시 경이었는데, 한국군이 통역병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고 방공호에 있는 가족들을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할머니와 누나가 먼저 나갔고, 어머니는 판딘라인과 함께 방공호에 남아 있었다. 두 사람을 본 통역병이 “공산(cộng sản)은 없고 해산한 여자만 있다”라고 했는데 한국군은 어머니를 끌어내 품에 있던 판딘라인을 할머니에게 주고서 어머니를 방공호로 끌고 가 강간했으며 이후 수류탄을 던져 죽였다. 이후 통역병이 아기의 아버지가 어디있냐고 물어 “나라에 붙잡혀 갔다”고 답하자 한국군은 남은 가족들은 살려주고 떠났다. 당일 오후 3~4시 경에 마을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어머니의 시신을 방공호에 그대로 묻어 수습했다.
  사건 다음 날 판딘라인과 남은 가족은 푸깟현으로 피난을 갔다. 어머니가 죽어 할머니가 아기였던 판딘라인을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젖동냥을 다니는 등 힘겨운 삶을 살아갔다. 사건 후 1~2년 뒤 아버지가 감옥에서 풀려나 돌아왔으나 바로 징집되어 군대에 갔다. 판디라인은 당시 사건의 기억이 없으나 할머니 응우옌티떠이(1989년 타계)에게 사건 당시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2016년 2월, 판딘라인은 한베평화재단의 평화기행단이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깟띠엔사의 쯔엉탄학살 위령관을 방문한 소식을 듣고 찾아와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눈물로 호소했다. 판딘라인 어머니의 묘는 아직도 사건 현장의 방공호 자리에 있다. 

▶ 증언 출처: 2016년 11월 21일 판딘라인 인터뷰 (진행: 쩐티마이쑤언) / 2021년 6월 9일 판딘라인 인터뷰 (진행: 레티미느엉)

▶ 사진: 2016년 2월 27일 촬영, 조우혜 기자

▶ 비고: 같은 미롱촌 학살 사건의 유가족인 레반쩌우 (Lê Văn Châu, 당시 22세)는 2016년 4월 13일 인터뷰에서 당시 미롱촌에서는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주민 6~7명이 한국군에게 학살 피해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깟흥사 인민위원회에서 미롱촌 학살 피해를 조사한 적은 없으며 희생자 관련 위령비는 아직 없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