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빈안학살 피해자 응우옌티몽린

▶ 응우옌티몽린(Nguyễn Thị Mộng Linh), 1955년생(주민등록상 1956년생)
▶ 1966년 2월 13일(양력),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빈안학살(Vụ thảm sát Bình An, xã Tây Vinh, huyện Tây Sơn, tỉnh Bình Định) 피해자
▶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떠이빈사(구 빈안사)의 15개 지점에서 모두 1,0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응우옌티몽린(당시 11세)은 이 빈안학살 중에서도 2월 13일에 일어난 까인브엄 들판 학살의 피해자다.
사건을 며칠 앞두고 큰오빠 응우옌딘린(약 20세)과 언니 응우옌티봉(18세)은 마을의 상황이 좋지 않아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갔다. 사건 당일 아침, 한국군이 마을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 응우옌티엡(44세)는 도망쳤고 어머니 판티까인(41세)와 응우옌티몽린을 비롯한 아이들은 집에 남았다.
아침 6~7시 경부터 포격과 총격 소리가 이어졌다. 가족은 집 앞의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 옆에 있는 방공호에 숨었다. 9시 경 마을로 들어온 한국군이 방공호에 숨어 있는 가족과 인근의 이웃 주민들을 끌어내 50~70미터 떨어진 까인브엄 들판으로 끌고 갔다. 한국군은 주민들을 소개할 때 그들이 쌀과 옷가지를 챙겨가도록 해주었고, 까인브엄 들판에 있는 커다란 대나무숲 그늘에 주민들이 앉아있도록 해주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한국군은 주민들에게 직접 빵을 나눠주고 약 1시간가량 시간을 주어 먹도록 했다. 이후 응우옌티몽린은 한국군 병사가 무전 교신을 하는 것을 봤는데, 이후 한국군은 주민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 응우옌티몽린은 수류탄 하나가 자신 앞에 떨어진 것을 봤다. “도망쳐”, “엎드려”하며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는 와중에 수류탄이 터져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남동생 응우옌반승(9세)은 수류탄에 머리를 맞아 즉사했고 어머니 판티까인은 발가락에 부상을 입었으며 오빠 응우옌쫑바(13세)는 이마에 부상을 입었다. 응우옌티몽린은 오른쪽 무릎과 왼쪽 팔, 배 등에 부상을 입었다. 막내 동생 응우옌반따이(6세)는 어른들 사이에 있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살아남았다. 현장에 있었던 고모 응우옌티러(40세, 응우옌떤런의 어머니), 사촌 오빠 응우옌떤런(16세), 사촌 동생 응우옌티풍(9세)도 중상을 입었다. 부상이 심했던 응우옌티풍과 몸의 절반이 날아간 고모 응우옌티러는 사건 당일 밤 사망했다. 당일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 응우옌티엡이 막내아들 응우옌반승과 고모 응우옌티러, 사촌동생 응우옌티풍의 시신을 차례로 묻었다.
피해 직후 응우옌티몽린의 가족은 인근의 푸안촌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얼마 뒤인 1966년 2월 말, 응우옌티몽린은 고향인 안빈촌을 다시 찾았다가 고자이학살 피해로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모든 집들이 불타 마을이 폐허가 된 참극을 목격했다. 이후 응우옌티몽린과 가족은 푸안촌과 그 일대를 전전하며 힘겨운 피난민 생활을 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응우옌티몽린은 수류탄 파편 피해로 몸 곳곳에 상처가 남았고 피해 이후 현재까지 수시로 귀와 머리 통증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을 안고 살고 있다.
응우옌티몽린은 아버지 세대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이곳을 찾는 한국의 후세대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빈안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당시 사건을 자신이 두 눈으로 목격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부녀자들을 죽인 것은 분명한 죄악이라고 말했다.
▶ 증언 출처: 2021년 5월 17일, 5월 27일 응우옌티몽린 인터뷰(진행 레티미느엉)
▶ 사진: 2021년 촬영, 응우옌티몽린 제공
▶ 빈안학살 위령제단
▶ 까인브엄 들판 학살 위령비
▶ 비고: 응우옌티몽린은 학살 피해날짜가 음력 1966년 1월 23일이라고 했다. 양력으로는 1966년 2월 13일이다. 빈안학살 자료집과 까인븜들판 위령비에는 피해날짜를 양력으로만 1966년 2월 15일로 밝히고 있는데 인민위원회에서 기재 당시 양음력 계산에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증언에 따라 피해 날짜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