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빈안학살 유가족 따오티옌

▶ 따오티옌(Tào Thị Yển), 1960년생(주민등록상 1964년생)
▶ 1966년 2월 15일(양력), 빈딘성 떠이선현 떠이빈사 빈안학살(Vụ thảm sát Bình An, xã Tây Vinh, huyện Tây Sơn, tỉnh Bình Định) 유가족
▶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로 1966년 1월 23일부터 2월 26일까지 떠이빈사(구 빈안사)의 15개 지점에서 모두 1,004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따오티옌의 남편 쩐반타인(당시 7세)의 가족은 이 빈안학살 중에서도 2월 13일에 일어난 까인브엄 들판 학살로 피해를 입었다.
사건을 며칠 앞두고 시아버지 쩐쫑낌(33세)은 시어머니 당티꾹(33세)에게 빈안사의 안빈촌에서 3~4킬로미터 떨어진 빈미사로 피난을 가자고 했으나 당티꾹은 이에 반대하며 집과 땅을 지키기 위해 남겠다고 했다. 결국 시아버지 쩐쫑낌은 남편 쩐반타인(7세)을 데리고 피난을 갔고 집에는 당티꾹과 그의 두 자녀인 딸 쩐티호아(11세), 아들 쩐반동(4세)이 남았다. 사건 당일 당티꾹은 탱크가 오는 것을 보고 두 아이와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으로 도망쳐 그곳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군에게 발각되어 까인브엄 들판으로 끌려가 학살 피해를 당했다. 당티꾹, 쩐티호아, 쩐반동 모두 목숨을 잃었는데 피해 직후 네 살배기 쩐반동이 엄마 당티꾹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마을 주민들이 목격했으나 약 한 시간 뒤에 죽고 말았다.
사건 다음날 시아버지 쩐쫑낌과 따오티옌의 시외숙 당전(37세)이 안빈촌으로 돌아와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후 쩐쫑낌은 빈미사로 돌아갔으나 당전은 계속 안빈촌에 머물렀고 2월 26일에 벌어진 고자이 학살로 목숨을 잃고 만다. 학살 피해 이후 몇 년 뒤 시아버지 쩐쫑낌은 재혼했는데 새어머니와 남편 쩐반타인의 사이가 좋지 않아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종전 후에는 쩐반타인이 새어머니를 참지 못하고 집을 떠났고, 시아버지도 쩐반타인을 따라 다른 집에서 함께 살았다.
전쟁 당시 따오티옌의 가족은 빈안사의 빈득촌에 살았는데 전쟁 시기에는 뀌년으로 피난을 떠나 학살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빈안사의 안빈촌에 머물렀던 따오티옌의 외할머니는 빈안학살 이후인 1966년 4월 3일(3월 13일(음력))에 한국군의 학살로 목숨을 잃었다. 따오티옌은 어머니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을 전해 들어 자세한 경위는 알지 못하지만 한국군의 학살 피해였다는 점을 분명히 들었다고 밝혔다.
▶ 비고: 따오티옌은 남편 쩐반타인과 1982년에 결혼하였고 그때부터 남편 가족의 학살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 쩐반타인은 2013년에 타계했고 시아버지 쩐쫑낌은 2020년에 타계하여 따오티옌이 피해 사실을 대신 증언하였다. 학살 관련 이야기는 주로 시아버지에게 자주 들었다.
▶ 증언 출처: 2021년 5월 10일, 13일, 26일 따오티옌 인터뷰(진행 레티미느엉)
▶ 사진: 2021년 6월 2일, 따오티옌 가족 촬영 제공
▶ 까인브엄 들판 학살 위령비
▶ 빈안학살 위령제단
▶ 비고: 따오티옌은 학살 피해날짜가 음력 1966년 1월 23일이라고 했다. 양력으로는 1966년 2월 13일이다. 빈안학살 자료집과 까인븜들판 위령비에는 피해날짜를 양력으로만 1966년 2월 15일로 밝히고 있는데 인민위원회에서 기재 당시 양음력 계산에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는 피해자의 증언에 따라 피해 날짜를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