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빈딘성 낌따이학살 유가족 똥티텀(Tống Thị Thơm)

202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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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똥티텀(Tống Thị Thơm), 1961년생


▶ 1966년 1월 9일(양력), 빈딘성 안년시 년퐁사 낌따이학살(Vụ thảm sát Kim Tài, xã Nhơn Phong, thị xã An Nhơn, tỉnh Bình Định) 유가족


▶ 1966년 낌따이학살 당시, 똥티텀(당시 5세)은 어머니와 함께 낌따이 마을에서 약 7~8km 떨어진 곳으로 피난 중이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만 마을에 남아 있던 할머니와 고모는 한국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똥티텀의 아버지 보꾸옥바우(32세)는 당시 혁명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학살 당시에는 북베트남으로 집결해 타인호아를 비롯한 북부 지역에 머물고 있었다. 한국군이 마을을 수색할 때, 가족이 혁명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할머니 응우옌티끼(60세)와 고모 보티트어(6세)가 붙잡혔다. 한국군은 할머니가 혁명군을 숨겨주고 지원했다고 의심했다. 실제로 할머니는 혁명군에게 쌀을 전하고 식사를 챙겨주곤 했다. 


할머니와 고모는 한국군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은 뒤 현재 낌따이 위령비가 있는 장소의 방공호에 결박된 채 갇혔다. 이후 한국군이 총격을 가하고 수류탄을 던져 두 사람을 비롯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방공호 안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으며,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수류탄을 던지고 총격을 가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방공호 안에서 함께 불에 타 숨진 어머니도 있었다. 똥티텀은 낌따이 마을에서 37명이 희생되었고, 당시 마을에 와 있던 다른 지역 출신 주민들까지  합하면 약 5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군은 마을에 들어오면 심한 폭행과 위협을 일삼았다. 특히 혁명군을 도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주민들은 더욱 가혹한 폭행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마을 곳곳으로 땅에 질질 끌려다녔는데, 한국군이 직접 끌고 다닌 것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같은 마을 사람을 끌고 다니도록 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일로 주민들은 더욱 큰 공포를 느꼈고, 결국 마을을 떠나기도 했다.


사건 이후 똥티텀은 어머니와 함께 북베트남으로 떠나 혁명군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를 따라 타인호아와 하이퐁 등 여러 지역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주둔지를 옮길 때마다 함께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82년 낌따이로 돌아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로부터 학살의 구체적인 경위를 들었다.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이미 불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토지를 지원받아 가족과 함께 다시 삶을 꾸려나갔으며, 생활은 어려웠지만 근근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똥티떰은 한국에서 매년 위령제에 조화를 보내는 것은 지원의 크기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한국 사람들이 낌따이 마을을 자주 찾아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연대와 지원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군의 학살은 매우 잔혹한 일이었다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배상과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증언 출처: 2026년 6월 11일, 7월 14일 똥티텀 인터뷰(진행: 도안당땀바오)


▶ 사진: 2026년 2월 25일 한베평화재단 제공


낌따이학살 위령관


낌따이학살 희생자 명단


▶ 비고: 2025년 베트남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낌따이학살 피해 지역은 지아라이성 안년박동(phường An Nhơn Bắc, tỉnh Gia Lai)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