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책상에 노트북 두 대가 마주 올려졌다. 마치 조별과제를 하는 것 같다고 하니 정우 씨는 까르르 웃으며 맞다고 손뼉을 쳤다. 곧이어 올라오는 길이 조금 힘이 들었는지 은종 씨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숨도 돌릴 겸 잠시 이야기를 하는데 두 사람이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며 책을 꺼내 들었다. 책으로 공부하면 성조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사무실에 와서 물어보면 안 되냐며 또 까르르 웃는다.
100일차 만만한 릴레이에 한복과 아오자이를 입고 광화문에 나갔던 김정우, 여은종이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1월 평화기행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지기처럼 가까웠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김정우(이하 '김’) 단체 너머(청년좌파의 새 이름)와 연꽃아래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방학이라 별일없이 편히 지내고 있다.
여은종(이하 '여')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에는 베트남 평화기행에 다녀와서 같이 여행 다녀온 분들도 만나고 글도 쓰고 있다.
김) 아, 은종언니랑 북스터디도 하고 있다. 둘이 같이 책 읽고 이야기하는. 첫 번째 모임에는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음 책으로는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읽기로 했다.
여) 처음에는 페미니즘 공부를 같이 해보자! 했는데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우리가 베트남을 다녀왔으니 베트남 이야기를 같이 해보는 게 어떤가 해서 이전에 이야기했던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전 함께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온 분들과 1박2일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모이게 되는 건가?
여) 지금까지 세 번 정도 만났는데 밤의 단장님이라고 있다. (웃음) 기행 단장님은 아닌데 사람들을 모으는 저희의 베트남 아버지라고.
김) 김해일 선생님이라고. 정말 대단하시다. 그런데 김해일 선생님이 모으시긴 하지만 진짜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모이는 분들이 많다. 광주에서 올라오고 제주에서 바로 만나러 오고. 이게 베트남에서 있던 기억이 훨씬 의미 있고 소중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기억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평화기행이 많이 있지만 구성원이 그때그때 다르고 분위기가 다를 텐데. 굉장히 편안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이야기하기도 훨씬 편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좋은 것 같다. 정말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게.
두 사람 어떻게 평화기행을 가게 되었나? 정우 씨는 자유여행을 가려고 했다가 평화기행을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김정우 평화기행 후기 http://kovietpeace.org/b/board01/5210)
김) 유럽을 가려고 했는데 포기하고 베트남을 가게 되었다. 사실 포기한 건 아니다. 아직은 간직하고 있다. (웃음) 프레시안 기사를 보고 갔다. 거기서 빈호아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우리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는 말이 마음속에 가장 깊게 꽂혔던 것 같다.
[프레시안] '아가야, 한국군이 우리를 쏴 죽였단다. 꼭 기억하거라'
-원래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나?
김) 아니다. 하나도 몰랐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고.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기사를 보니까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화기행을 간 것이 부채의식이었던 것 같다. 기사를 보기 전에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책을 봤었다. 사회 여러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 같아 반성을 많이 했었다. 그 후 아까 말한 기사를 읽게 되었고,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만만만 릴레이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평화기행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어서 평화기행도 신청하게 되었다.
여) 엄마가 평화기행을 소개를 해주었다. 엄마는 지인인 김명희 선생님에게 소개를 받았다. 그렇게 추천에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다. 평화기행을 가기 전부터 엄마와 김명희 선생님을 따라 역사 관련 강연회를 다니고 책을 읽으며 베트남 전쟁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잘못 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내 주변에 그런 정보가 너무 많아서 ‘아- 우리가 그랬나 보다, 잘못했나보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었다. 사실 작년에 임용고시준비 이후에 이제 다 끝났다 싶기도 하고 지원해줄 때 여행이나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갔었다. 그런데 가보니 더 많은 걸 생각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확실히 내가 성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복과 아오자이를 입고 100일차 만만한 릴레이를 함께 했다. 은종 씨의 후기는 들었으니 정우 씨의 후기가 듣고 싶다.
김)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웃음) 아오자이가 뭘 껴입을 수 있는 종류의 옷이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피켓을 들고 광화문에 서 있을 때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피켓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가시더라. 그냥 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고개를 끄덕인다는 게 여기에 동의하고 동참하고 싶다는 뜻으로 보여서 행복하고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나만해도 동의하는 피켓을 보더라도 슬쩍 보고 지나간 뒤에 검색을 해보는 편이었는데 피켓을 드는 사람에게는 그 작은 행동 하나가 힘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한복과 아오자이를 입고 만만한 릴레이를 하고있는 여은종(좌)과 김정우(우)
-릴레이나 평화기행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어떻게 생각할지 또래의 반응이 궁금하다.
김) 두 명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한 명은 평화기행이 어땠냐고 묻기에 그 느낌을 장문의 글로 보내줬다. 그걸 보더니 내가 베트남에서 굉장히 많은걸 보고 느낀 것 같아서 자기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이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더라. 그러면서 자기는 알면서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볼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고 나에게 칭찬해주더라. 혹시나 20대들 중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도 내가 말했던 사람들은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여) 친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미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또 반대로 아예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모르는 친구들은 평화기행이 어땠냐며 많이 궁금해 했다. 이야기해주니 어떤 친구는 그런 역사가 있었냐며 자기도 궁금하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하는 친구도 있었고 베트남에 다녀와서 내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에게 평화기행을 추천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김) 우리 세대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 않나. 그리고 저는 역사 교과서 같은 곳에서도 베트남 전쟁 중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관해 설명하는 글을 한 줄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베트남 전쟁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글은 많이 봤다. 그리고 학살에 대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베트남과 한국은 물리적 거리도 멀고 한국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베트남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평화기행을 추천하고 싶다. 베트남 피해자라는 단어가 추상적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다가올 때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여) 만약에 어떤 사실도 모르고 있는 아직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 친구라면 일본과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이 우리에게 한 일과 우리가 베트남에 한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우리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일본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한번 다녀와 보고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너무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느낌으로 말할 것 같다.
김) 음, 그럼 언니가 먼저 문제의식을 딱 심어주고 내가 그다음에 말하면 되겠네. 좋은 것 같다.(웃음)
-은종씨는 3월에 평화기행도 간다고 들었다
여) 3월에 하미위령제 참배단으로 간다. 50주기라는 것이 아무 때나 있는 것도 아니라 정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감사하게 엄마가 돈을 빌려주셨다. 지난 평화기행을 갔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하면 매일 일기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바람에 못 썼다. (웃음) 이번엔 키보드를 들고 가서 핸드폰에 일기를 쓰려고 한다. 그리고 지난번보다 좀 더 배경지식을 쌓아서 가려고 한다. 전엔 약간 놀러 가는 것처럼 가서 사실 옷차림에 더 신경 썼었고 이 틈에 이걸 해야지, 하는 계획만 빠듯했었다. 이번엔 정우가 말한 것처럼 더 문제의식을 가지고 배경지식을 쌓아서 갈 계획이다.
-언젠가 둘이 함께 베트남에 갈 계획이 있나?
여) 어, 계획은 없지만
김) 어? 그래? 언니 가기로 했잖아. 내가 듣기론 이번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가기로 하지 않았나?
여) 아, 미안해 내가 잊어버렸나 봐...
큰 책상에 노트북 두 대가 마주 올려졌다. 마치 조별과제를 하는 것 같다고 하니 정우 씨는 까르르 웃으며 맞다고 손뼉을 쳤다. 곧이어 올라오는 길이 조금 힘이 들었는지 은종 씨가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숨도 돌릴 겸 잠시 이야기를 하는데 두 사람이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다며 책을 꺼내 들었다. 책으로 공부하면 성조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사무실에 와서 물어보면 안 되냐며 또 까르르 웃는다.
100일차 만만한 릴레이에 한복과 아오자이를 입고 광화문에 나갔던 김정우, 여은종이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1월 평화기행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지기처럼 가까웠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나?
김정우(이하 '김’) 단체 너머(청년좌파의 새 이름)와 연꽃아래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방학이라 별일없이 편히 지내고 있다.
여은종(이하 '여')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에는 베트남 평화기행에 다녀와서 같이 여행 다녀온 분들도 만나고 글도 쓰고 있다.
김) 아, 은종언니랑 북스터디도 하고 있다. 둘이 같이 책 읽고 이야기하는. 첫 번째 모임에는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이라는 책을 읽었다. 다음 책으로는 '사랑하는 안드레아'를 읽기로 했다.
여) 처음에는 페미니즘 공부를 같이 해보자! 했는데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우리가 베트남을 다녀왔으니 베트남 이야기를 같이 해보는 게 어떤가 해서 이전에 이야기했던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전 함께 베트남 평화기행을 다녀온 분들과 1박2일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모이게 되는 건가?
여) 지금까지 세 번 정도 만났는데 밤의 단장님이라고 있다. (웃음) 기행 단장님은 아닌데 사람들을 모으는 저희의 베트남 아버지라고.
김) 김해일 선생님이라고. 정말 대단하시다. 그런데 김해일 선생님이 모으시긴 하지만 진짜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모이는 분들이 많다. 광주에서 올라오고 제주에서 바로 만나러 오고. 이게 베트남에서 있던 기억이 훨씬 의미 있고 소중해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 기억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여)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평화기행이 많이 있지만 구성원이 그때그때 다르고 분위기가 다를 텐데. 굉장히 편안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이야기하기도 훨씬 편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 그래서 좋은 것 같다.
-좋은 것 같다. 정말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그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게.
두 사람 어떻게 평화기행을 가게 되었나? 정우 씨는 자유여행을 가려고 했다가 평화기행을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김정우 평화기행 후기 http://kovietpeace.org/b/board01/5210)
김) 유럽을 가려고 했는데 포기하고 베트남을 가게 되었다. 사실 포기한 건 아니다. 아직은 간직하고 있다. (웃음) 프레시안 기사를 보고 갔다. 거기서 빈호아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 우리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는 말이 마음속에 가장 깊게 꽂혔던 것 같다.
[프레시안] '아가야, 한국군이 우리를 쏴 죽였단다. 꼭 기억하거라'
-원래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었나?
김) 아니다. 하나도 몰랐다. 역사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없고.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기사를 보니까 충격이 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화기행을 간 것이 부채의식이었던 것 같다. 기사를 보기 전에 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책을 봤었다. 사회 여러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굉장히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 같아 반성을 많이 했었다. 그 후 아까 말한 기사를 읽게 되었고,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만만만 릴레이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평화기행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어서 평화기행도 신청하게 되었다.
여) 엄마가 평화기행을 소개를 해주었다. 엄마는 지인인 김명희 선생님에게 소개를 받았다. 그렇게 추천에 추천을 받아 가게 되었다. 평화기행을 가기 전부터 엄마와 김명희 선생님을 따라 역사 관련 강연회를 다니고 책을 읽으며 베트남 전쟁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잘못 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내 주변에 그런 정보가 너무 많아서 ‘아- 우리가 그랬나 보다, 잘못했나보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었다. 사실 작년에 임용고시준비 이후에 이제 다 끝났다 싶기도 하고 지원해줄 때 여행이나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가볍게 갔었다. 그런데 가보니 더 많은 걸 생각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서 확실히 내가 성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복과 아오자이를 입고 100일차 만만한 릴레이를 함께 했다. 은종 씨의 후기는 들었으니 정우 씨의 후기가 듣고 싶다.
김) 날씨가 따뜻해서 다행이었다. (웃음) 아오자이가 뭘 껴입을 수 있는 종류의 옷이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피켓을 들고 광화문에 서 있을 때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피켓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가시더라. 그냥 보고 지나갈 수도 있는데 고개를 끄덕인다는 게 여기에 동의하고 동참하고 싶다는 뜻으로 보여서 행복하고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나만해도 동의하는 피켓을 보더라도 슬쩍 보고 지나간 뒤에 검색을 해보는 편이었는데 피켓을 드는 사람에게는 그 작은 행동 하나가 힘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릴레이나 평화기행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어떻게 생각할지 또래의 반응이 궁금하다.
김) 두 명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한 명은 평화기행이 어땠냐고 묻기에 그 느낌을 장문의 글로 보내줬다. 그걸 보더니 내가 베트남에서 굉장히 많은걸 보고 느낀 것 같아서 자기도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다른 한 명은 이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알고 있더라. 그러면서 자기는 알면서도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볼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고 나에게 칭찬해주더라. 혹시나 20대들 중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 그래도 내가 말했던 사람들은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여) 친구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미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또 반대로 아예 모르는 친구들도 있다. 모르는 친구들은 평화기행이 어땠냐며 많이 궁금해 했다. 이야기해주니 어떤 친구는 그런 역사가 있었냐며 자기도 궁금하다 한번 가보고 싶다 하는 친구도 있었고 베트남에 다녀와서 내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에게 평화기행을 추천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김) 우리 세대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아니지 않나. 그리고 저는 역사 교과서 같은 곳에서도 베트남 전쟁 중 일어난 민간인 학살에 관해 설명하는 글을 한 줄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베트남 전쟁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하는 글은 많이 봤다. 그리고 학살에 대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베트남과 한국은 물리적 거리도 멀고 한국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피부로 느끼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베트남에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평화기행을 추천하고 싶다. 베트남 피해자라는 단어가 추상적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다가올 때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여) 만약에 어떤 사실도 모르고 있는 아직 진실을 마주하지 못한 친구라면 일본과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이 우리에게 한 일과 우리가 베트남에 한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우리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일본과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걸 이야기하면서 한번 다녀와 보고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너무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느낌으로 말할 것 같다.
김) 음, 그럼 언니가 먼저 문제의식을 딱 심어주고 내가 그다음에 말하면 되겠네. 좋은 것 같다.(웃음)
-은종씨는 3월에 평화기행도 간다고 들었다
여) 3월에 하미위령제 참배단으로 간다. 50주기라는 것이 아무 때나 있는 것도 아니라 정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감사하게 엄마가 돈을 빌려주셨다. 지난 평화기행을 갔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거나 하면 매일 일기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바람에 못 썼다. (웃음) 이번엔 키보드를 들고 가서 핸드폰에 일기를 쓰려고 한다. 그리고 지난번보다 좀 더 배경지식을 쌓아서 가려고 한다. 전엔 약간 놀러 가는 것처럼 가서 사실 옷차림에 더 신경 썼었고 이 틈에 이걸 해야지, 하는 계획만 빠듯했었다. 이번엔 정우가 말한 것처럼 더 문제의식을 가지고 배경지식을 쌓아서 갈 계획이다.
-언젠가 둘이 함께 베트남에 갈 계획이 있나?
여) 어, 계획은 없지만
김) 어? 그래? 언니 가기로 했잖아. 내가 듣기론 이번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가기로 하지 않았나?
여) 아, 미안해 내가 잊어버렸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