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인터뷰[인터뷰] 낯선 이로 만나 친구가 되다_김기언, 유이분, 장기원
무술년 첫 인터뷰 주인공은 재단에 마실 나온 평화기행(平和紀行) 기행(奇行) 삼총사입니다.
세 분은 지난해 11월 평화기행을 통해 처음 만났는데요. 낯선 이로 만나 여행을 통해 친구가 된 김기언(풀씨), 장기원, 유이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미소가 싱그러운 세 분. 왼쪽부터 장기원, 유이분, 김기언(풀씨) 선생님
풀씨: 교육공동체 벗(이하 벗) 사무국에서 일합니다. 벗은 협동조합 밖의 협동조합으로서 《오늘의 교육》이란 교육전문지를 내면서 출발해 벌써 여덟 살이 되었네요. 단행본 출판도 같이 하고 있어요. 요즘 재봉질에 재미를 붙여 가방이나 찻잔 받침을 만들고 있습니다. 큰 천 하나보다 조각조각 이어붙이기로 만드는 것에 더 묘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조만간 한베평화재단 사무처에도 찻잔 받침을 선물해 드립죠.ㅎㅎ
장기원: ISO 인증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외국계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유이분: 닉네임은 ‘이쁜’으로 실제 이름이 ‘유이쁜’이었는데, 한자에 ‘쁜’자가 없어서 ‘분’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을 갖고 있습니다. (웃음) 월간 <작은책>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 사람들 만나서 (술 마시고 수다 떨고) 세상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가치관도 뜻도 맞는 사람을 만나면 참 행복합니다. 지난 평화캠프 때 만난 풀씨나 장쌤 같은 분...ㅎ~
2017년 11월 평화기행에 참여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참가하게 되셨는지?
유이분: 인터넷 검색 중 ‘만만만’ 캠페인을 알게 되어 <작은책>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한베평화재단 홈피에 들어갔더니 평화기행 참가자를 모집하더라구요. 제가 <작은책>을 만들면서 휴가를 제대로 써 본 적이 없어요. 월간지의 경우 책이 나오면 또 바로 다음 책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꼭 가고 싶었어요. 제가 네 살 때인 1967년경 마흔 살의 친정아버지가 베트남에 일하러 가셨어요. 그래서 베트남이 남다르게 느껴졌을지도 몰라요. 베트남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SNS에 베트남 사람들 배경으로 ‘V’하며 사진 찍어 올리고, 우리나라 7, 80년대 같다며 동정하고, 먹자 여행하는 거 올리고 그러는데 그걸 보는 제 맘이 편치 않은 거예요. 한국이 베트남전쟁에 참가해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마음속에 베트남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그런 감정이 깔려 있거든요. 두 딸에게 그런 얘길 했더니 이번엔 평화기행 다녀오고 다음엔 자기들이랑 같이 편한 여행을 하자고 해요. 베트남이 어떤 곳인지 알고 놀아도 놀자고요. (사실 저도 그렇게 관광하듯 놀고먹기만 하는 편한 여행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먼저 이 마음의 빚을 좀 털고 다음에 먹고 노는 여행해 봐야지. ㅋㅋㅋ 그런 마음도 있어요.)
풀씨: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 군인들이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것을 예전 <한겨레21> 기사로 봤을 때 ‘이런 엄청난 일이 있었구나’ 놀라웠지만 시간이 지나 금세 잊었습니다. 그러다 2017년 연초(?) 다시 이를 다룬 기사를 한겨레에서 접했을 때는 가슴이 너무 무거워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한베평화재단 후원회원이 되었고, 기행 소식을 듣게 되어 참가했습니다.
장기원: 전에는 종교와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그와 관련된 지역을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베트남 여행도 그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난 평화기행이 베트남 중부지방의 홍수와 추위로 굉장히 고생스러웠다고 들었어요.
평화기행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우리 세 명 모두 하미 위령제 갔을 때 에피소드네요.
풀씨: 위령비 가는 길이 온통 진창길이었죠. 게다가 공사 중이라 쌓아놓은 흙무더기가 빗물에 뭉개지고 있어 길은 그 흔적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구수정 샘 “갈까요, 돌아갈까요.” 할 때 누구도 돌아가자는 이가 없었습니다. 대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을 벗고 바지를 걷어붙이는 것을 보고 ‘아, 이런 게 함께 한 분들의 마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서가는 구수정 선생의 맨발을 봤죠. 20여 년의 시간 동안 이 길로 이끌어 온 그 발이었습니다. 감동이 새롭네요.
장기원: 그렇게 위령비까지 도착을 했는데 문이 잠겨 들어갈 수는 없고 비는 계속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던 끝에 어느 한분이 비를 피하게 해줄 요량으로 열쇠에 핀을 꽂아 돌리는 중 그만 안에 꽂혀 뺄 수 없는 지경에 처했지요. 설상가상으로 마침 그때 문을 열어주러 하미 마을 관계자 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게 보였죠. 제가 간신히 그 분 도착 바로 직전에 핀을 뽑아 동행했던 분들께 박수도 받고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고 칭찬 받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유이분: 위령비 앞에 향과 꽃을 놓으며 오래 기도를 했어요. 1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났지요. 아버지는 베트남 사람들과 어떻게 지냈을까, 죄를 짓지는 않았을까 등 여러 생각을 하면서 참배를 했어요. 용서해 달라고 빌었고요. (ㅠㅠ) 그날 동행한 기자분이 위령비 앞에 왜 그렇게 오래 서 있었냐고 물어요. 그냥 미안해서 그랬다고 했어요. 그날 이후 몸이 많이 아팠는데, 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맘이 아파서 몸이 더 아팠던 거 같더라구요. 가는 곳마다 한국군이 저지른 참상들을 구수정 쌤이 너무 리얼하게 전해 주시는 거예요. 한 번 보고 들은 제가 이렇게 아픈데 그걸 수도 없이 전하고 알리는 구쌤은 얼마나 힘들까 싶더만요.
2018년 1월 소식지 인터뷰인데.. 올 한 해 각자의 결심이나 소망이 있는지? (재밌고 좋아 보이면 따라 해요, 우리^^)
유이분: 재미는 없는데 해마다 하는 결심은 “술을 끊자”였거든요. 근데 하루도 못 지켰어요. 또 하나 “나는 소중해”라고 생각하는 거요. 그걸 지키려면 “일 좀 덜 하고 놀기”를 먼저 실천해야 해요.
장기원: 살도 빼고 외국어 공부도 하고 그리고 제가 후원하는 단체에 후원 및 일손이 필요하면 일손도 도와주고자 합니다.
풀씨: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들을 조직해서 베트남 평화기행을 가는 것입니다. 2019년 1월을 기약하며 올해는 진상을 잘 알려내며 뜻 깊은 기행으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김기언 샘은 한베평화재단이 하는 1인 릴레이 시위를 월 1회씩 하고 계시고, 두 분은 아직 함께 하지 못하셨는데... (장샘께서는 허약체질이시고 일정상(^^) 불가능, 유샘은 예약한 상황) 1인 릴레이에 동참한 이유와 참가 후 느낌을 말씀해주신다면?
풀씨: 월 1회의 1인 시위가 크다면 큰일이고 작다면 작은 일인데요,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형태든 진상을 밝히고 실질적 사죄에 이르기까지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유이분: 뭐든 함께해야 덜 미안해서요. 제 마음 편하자고 그러는 거예요. 하하. 참가소감은 후에 말씀드릴게요~~.
한베평화재단에 바라는 한 마디
장기원: 일본이 과거 한국에 잘못 했던 일을 진심으로 사과를 받으려면 우리 또한 베트남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민간인들에게 입힌 피해에 대해서 모르듯이 일본 국민들도 일제치하에 우리 국민들에게 자행했던 만행을 자세히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두 전쟁의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이 민간인들에게 입힌 피해와 전쟁의 참혹성에 대해서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유이분: 너무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 더 열심히 하시란 말씀은 못 드리구요. 행사나 강좌 같은 계획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작은책> 독자들에게도 알릴 수 있게요.
풀씨: 저도 그렇습니다만, 실무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그 일에 익숙해서, 섬세하게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안을 당연하게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도 늘 삐그덕 합니다.^^;
끝으로 평화란?
유이분: 더불어 사는 것! 나 혼자 아무리 잘 먹고 잘 살면서 행복하다고 해도 다른 지구 한편에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평화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일도 밥도 행복도 나누고 더불어 해야 그게 바로 평화죠! (개인적으론 마음에 욕심-일 욕심, 사람 욕심-을 버려야 평화가 오더만요. ㅎ~)
장기원: 사전적 의미의 평화란 인간집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겠지만 저한테 내재적 의미의 평화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마음의 고요가 생겨 비로소 서로를 존중해주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풀씨: 평화를 뭐라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출발은 갈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 안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남남인 너와 나 사이에 갈등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갈등을 다루는 ‘기술’에 집착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것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힘을 발휘하는 것도 또한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이렇게 출발하고 가는 거죠.^^ 어렵다!
인터뷰 · 글 전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