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디어몽구, 베트남을 향하다
1인 미디어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미디어몽구. 소외받고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 주류 언론에 외면 받는 고통의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그의 행보를 많은 시민들이 응원하고 있다. 그는 현장과 함께한다. 단순히 뉴스를 영상으로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미디어몽구는 영상으로도 주목받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2017년 11월, 미디어몽구가 베트남 평화기행단과 함께 베트남을 찾았다. 그런데 쿨럭쿨럭? 심한 감기 몸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인 미디어몽구. “아이고, 이렇게 몸이 안 좋은데 결국 오셨네요”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자 그는 “베트남이라 안 올 수가 없었어요”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디어몽구와 베트남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에게 베트남이 무엇이건데, 병중에도 베트남에 꼭 와야했던 것일까. 미디어몽구의 베트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평화기행 첫날에는 굉장히 아파보였어요. 감기 몸살이 너무 심해서 하마터면 못 올 뻔했다고.
A. 얼마 전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감기 몸살을 크게 앓았어요. 베트남 평화기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아내가 베트남행을 만류할 정도였죠. 그런데 베트남과 한 약속이라서 차마 취소를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에는 “베트남은 더운 나라니까 추운 한국에 있는 것보다 베트남에 가면 건강에 더 좋을지도 몰라”하고 아내를 설득했죠. 그런데 베트남에 와보니 덥기는커녕 비만 계속 오네요 하하!(웃음)

베트남 꽝응아이성에서 '만만만 캠페인'에 참여한 미디어몽구.
종이에는 베트남어로 '미안해요 베트남, 사랑해요 베트남'이 적혀있다
Q. 이번이 베트남 두 번째 방문입니다. 베트남과의 첫 인연이 궁금한데요.
A. 제가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수요시위 현장에서 만난 황금자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했고요. 미디어몽구의 시작점에 위안부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어느 날 김복동 할머니께서 자신도 피해자이지만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베트남의 한국군 피해자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사과를 전하신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그 말씀이 준 울림이 제게는 정말 각별했죠. 그러던 차에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님으로부터 베트남 평화기행 참여를 제안 받았고요. 곧바로 마음이 베트남으로 향하더라고요. 베트남에 직접 가서 현장을 느껴보고 피해자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렇게 베트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2015년에 처음 베트남에 왔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Q. 2년 전 왔을 때 “정말 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데요”라고 저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베트남의 어떤 면이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던가요?
A. 그전까지 베트남전쟁이라고 하면 영화를 통해 본 장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참전 군인들의 영웅적인 모습이나 베트남전쟁 당시의 대한뉴스를 통해 소개된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이미지들이 대부분이었죠.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베트남에 와서 증오비를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제 안에 있던 베트남의 이미지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군요. 학살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피해자 분들의 눈물을 직접 보게 되니까 그동안 너무도 중요한 역사의 진실을 한국 사회가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충격이 저에게는 너무도 컸어요.
비오는 날 하미 위령비 참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평화기행 팀 / 사진: 미디어몽구
Q. 베트남의 피해자 분들을 만나면서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을 것 같아요.
A.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죠.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움이 컸어요. 베트남의 피해자분들이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그날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사회 전면에 나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한국의 피해자 할머니들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그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어요.
Q. 2년 전 베트남을 다녀간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만들었고 <파파이스>에서 방영이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만 영상 조회수가 60만 건이 넘었고 댓글도 3400개가 넘더군요. 당시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A. 그동안 미디어몽구를 신뢰해주신 많이 분들이 그 영상을 통해 베트남전쟁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신 것 같아요. 몽구 덕분에 중요한 역사 문제를 알게 되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큰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라고 소감을 준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악플도 많이 있었는데, 저는 반대 의견이라도 일단 새겨듣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무엇이 옳은 지는 결국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악플들을 보면서 베트남전쟁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 저 같은 언론인이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저에게 직접 연락을 준 단체도 있었는데, 영상에 담긴 구수정 씨의 이야기를 반론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꽝응아이성의 밀라이 박물관에서 참가자들의 표정을 영상에 담고 있는 미디어몽구
Q. 몽구 님이 특히 청년 층에 인기가 많으세요. (웃음) 강연 요청도 많이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런 기회가 있을 때 베트남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A. 네, 꼭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베트남전쟁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요. 영상으로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비를 보여주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죠. 그리고 청중들에게 베트남 피해자분들의 속마음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만 베트남의 한국군 피해자 분들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증오의 감정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아픔이나 고통을 먼저 생각하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Q.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증오’의 감정이란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A. 이를 테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갖는 감정을 예로 들 수 있겠어요. 최근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문 파문 때도 그랬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에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터트리면서도 정작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받을 상처나 고통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욕하고 화내면서 우리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피해자분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면서 그분들과의 지속된 동행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베트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느 날 누군가의 아픔이 내게 찾아오면 외면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자, 함께 그 이야기를 마음에 품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평화기행 중 '만만만 캠페인'에 참여한 대학생, 고등학생 참가자들
Q. 2년 만에 다시 베트남을 찾게 된 계기나 목적이 있다면요?
A. 우선, 따뜻한 베트남에 가면 감기몸살에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정 중에 계속 비가 내려서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네요. (웃음) 이번 평화기행에 고등학생 참가자들이 참가비를 후원받아서 왔고 제가 그 후원금을 모금하는 일을 도왔어요. 처음 베트남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직접 그 이유를 물어봤어요. 이메일로 장문의 답장을 받았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한 깊이 있는 고민을 갖고 있더군요. 저는 이번 기행에서 학생들의 그러한 마음과 생각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베트남의 현장과 직접 마주할 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싶었고요. 생존자 분들에게 말을 건넬 때 학생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지 듣고 싶었고 그걸 영상에 담고 싶었어요.
Q. 이번 평화기행 팀이 한국군 피해 마을 학생들에게 자전거를 전달했는데요, 다른 참가자 분과 “자전거 수여식 참 좋았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었어요.
A. 자전거 수여식을 보고 있는데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한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베평화재단과 정대협과 같은 시민 단체가 대신해서 챙겨주고 있는 걸 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있었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학부모의 표정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자전거를 받고 환한 미소를 짓는 아이의 표정, 그런 아이를 보고 같이 방그레 웃는 엄마의 미소. 그런데 그 미소를 보면서 저 또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어요.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하더군요. 학살의 상처와 고통을 위로하는데 자전거 1대는 가당치도 않죠. 복잡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것이 자전거든 장학금이든, 한국군 피해 마을에 사과와 평화의 뜻을 전하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 수여식 내내 비가 내렸는데, 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꽝응아이성 빈호아 초등학교 자전거 수여식 풍경 / 사진: 미디어몽구
Q. 앞으로 베트남과 관련하여 미디어몽구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A. 베트남에 계속 오려고요. 적어도 2년에 한번은 올 겁니다. 그런데 저 혼자가 아니라 학생들이나 후배들과 함께 오고 싶어요. 그들에게 제가 베트남에서 보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누어 주고 싶어요. 저는 실현가능한 일에 대해서만 꼭 말씀을 드리는데, 제가 친구들과 베트남에 2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피해자분들에게 작별 인사를 드릴 때도 “꼭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Q. 마지막 질문은 짧게. 몽구 님에게 베트남은?
A. 음... 옆동네! 베트남과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제가 평소에 베트남 사람 닮았다는 소리도 자주 듣기도 하고 베트남에 다시 오니까 옆동네처럼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식민지와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겪었고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계속 찾아올 곳이니까 ‘옆동네’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나라의 역사적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되어서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한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미 위령비의 집단묘지 앞에 고개 숙인 고등학생 참가자 / 사진: 미디어몽구
베트남에 대한 미디어몽구의 다음번 계획은 다시 베트남에 오는 것, 계속 베트남에 오는 것,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에 오는 것. 베트남에 대한 영상 작품에 대한 답변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순간, 그의 책 ‘미디어몽구, 사람을 향하다’가 떠올랐다. 그는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 것보다 우선 자신이 진심으로 사람을 향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베트남을 향하는 나침반 같은 것이 있어서 그를 계속 베트남으로 돌아오게 할 것 같다. 안녕 미디어 몽구, 다시 베트남에서 만날 때는 아프지 말아요. 그의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 이어질 때까지,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평화기행도 계속될 것이다.
인터뷰, 글: 권현우
+ 베트남 관련 미디어몽구 영상 보기(아래 클릭)
베트남 전쟁, 한국군 증오비에 새겨진 잔혹한 내용
[인터뷰] 미디어몽구, 베트남을 향하다
1인 미디어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미디어몽구. 소외받고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 주류 언론에 외면 받는 고통의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그의 행보를 많은 시민들이 응원하고 있다. 그는 현장과 함께한다. 단순히 뉴스를 영상으로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곳의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미디어몽구는 영상으로도 주목받지만 이야기를 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2017년 11월, 미디어몽구가 베트남 평화기행단과 함께 베트남을 찾았다. 그런데 쿨럭쿨럭? 심한 감기 몸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인 미디어몽구. “아이고, 이렇게 몸이 안 좋은데 결국 오셨네요”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자 그는 “베트남이라 안 올 수가 없었어요”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디어몽구와 베트남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에게 베트남이 무엇이건데, 병중에도 베트남에 꼭 와야했던 것일까. 미디어몽구의 베트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평화기행 첫날에는 굉장히 아파보였어요. 감기 몸살이 너무 심해서 하마터면 못 올 뻔했다고.
A. 얼마 전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와서 감기 몸살을 크게 앓았어요. 베트남 평화기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아내가 베트남행을 만류할 정도였죠. 그런데 베트남과 한 약속이라서 차마 취소를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에는 “베트남은 더운 나라니까 추운 한국에 있는 것보다 베트남에 가면 건강에 더 좋을지도 몰라”하고 아내를 설득했죠. 그런데 베트남에 와보니 덥기는커녕 비만 계속 오네요 하하!(웃음)
베트남 꽝응아이성에서 '만만만 캠페인'에 참여한 미디어몽구.
Q. 이번이 베트남 두 번째 방문입니다. 베트남과의 첫 인연이 궁금한데요.
A. 제가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수요시위 현장에서 만난 황금자 할머니를 인터뷰하면서부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지속적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했고요. 미디어몽구의 시작점에 위안부 문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런데 어느 날 김복동 할머니께서 자신도 피해자이지만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베트남의 한국군 피해자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사과를 전하신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그 말씀이 준 울림이 제게는 정말 각별했죠. 그러던 차에 정대협의 윤미향 대표님으로부터 베트남 평화기행 참여를 제안 받았고요. 곧바로 마음이 베트남으로 향하더라고요. 베트남에 직접 가서 현장을 느껴보고 피해자 분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그렇게 베트남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죠. 2015년에 처음 베트남에 왔고,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Q. 2년 전 왔을 때 “정말 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데요”라고 저에게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베트남의 어떤 면이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주던가요?
A. 그전까지 베트남전쟁이라고 하면 영화를 통해 본 장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참전 군인들의 영웅적인 모습이나 베트남전쟁 당시의 대한뉴스를 통해 소개된 자랑스러운 한국군의 이미지들이 대부분이었죠.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베트남에 와서 증오비를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제 안에 있던 베트남의 이미지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군요. 학살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피해자 분들의 눈물을 직접 보게 되니까 그동안 너무도 중요한 역사의 진실을 한국 사회가 모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충격이 저에게는 너무도 컸어요.
Q. 베트남의 피해자 분들을 만나면서 위안부 할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을 것 같아요.
A.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죠.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움이 컸어요. 베트남의 피해자분들이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더라고요. 한국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그날의 역사를 이야기해주는 정도에 머물러 있었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사회 전면에 나서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한국의 피해자 할머니들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그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어요.
Q. 2년 전 베트남을 다녀간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만들었고 <파파이스>에서 방영이 되었습니다. 유튜브에서만 영상 조회수가 60만 건이 넘었고 댓글도 3400개가 넘더군요. 당시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A. 그동안 미디어몽구를 신뢰해주신 많이 분들이 그 영상을 통해 베트남전쟁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신 것 같아요. 몽구 덕분에 중요한 역사 문제를 알게 되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큰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라고 소감을 준해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악플도 많이 있었는데, 저는 반대 의견이라도 일단 새겨듣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무엇이 옳은 지는 결국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악플들을 보면서 베트남전쟁 문제와 관련하여 대중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 저 같은 언론인이 더욱 노력해야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어요. 저에게 직접 연락을 준 단체도 있었는데, 영상에 담긴 구수정 씨의 이야기를 반론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Q. 몽구 님이 특히 청년 층에 인기가 많으세요. (웃음) 강연 요청도 많이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그런 기회가 있을 때 베트남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시는지요?
A. 네, 꼭 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할 때 항상 베트남전쟁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요. 영상으로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비를 보여주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죠. 그리고 청중들에게 베트남 피해자분들의 속마음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만 베트남의 한국군 피해자 분들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증오의 감정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아픔이나 고통을 먼저 생각하자는 이야기도 하고 있어요.
Q. ‘가해자에 대한 분노나 증오’의 감정이란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A. 이를 테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갖는 감정을 예로 들 수 있겠어요. 최근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문 파문 때도 그랬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순간에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터트리면서도 정작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받을 상처나 고통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욕하고 화내면서 우리 개인의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는 피해자분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면서 그분들과의 지속된 동행으로 나아갔으면 해요. 베트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느 날 누군가의 아픔이 내게 찾아오면 외면하지 말고 귀를 기울이자, 함께 그 이야기를 마음에 품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Q. 2년 만에 다시 베트남을 찾게 된 계기나 목적이 있다면요?
A. 우선, 따뜻한 베트남에 가면 감기몸살에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정 중에 계속 비가 내려서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네요. (웃음) 이번 평화기행에 고등학생 참가자들이 참가비를 후원받아서 왔고 제가 그 후원금을 모금하는 일을 도왔어요. 처음 베트남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제가 직접 그 이유를 물어봤어요. 이메일로 장문의 답장을 받았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한 깊이 있는 고민을 갖고 있더군요. 저는 이번 기행에서 학생들의 그러한 마음과 생각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베트남의 현장과 직접 마주할 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싶었고요. 생존자 분들에게 말을 건넬 때 학생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하는지 듣고 싶었고 그걸 영상에 담고 싶었어요.
Q. 이번 평화기행 팀이 한국군 피해 마을 학생들에게 자전거를 전달했는데요, 다른 참가자 분과 “자전거 수여식 참 좋았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들었어요.
A. 자전거 수여식을 보고 있는데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한국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베평화재단과 정대협과 같은 시민 단체가 대신해서 챙겨주고 있는 걸 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있었죠. 그런데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학부모의 표정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자전거를 받고 환한 미소를 짓는 아이의 표정, 그런 아이를 보고 같이 방그레 웃는 엄마의 미소. 그런데 그 미소를 보면서 저 또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어요. 일종의 죄책감이 들기도 하더군요. 학살의 상처와 고통을 위로하는데 자전거 1대는 가당치도 않죠. 복잡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것이 자전거든 장학금이든, 한국군 피해 마을에 사과와 평화의 뜻을 전하는 발걸음이 이어지는 것이 참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 수여식 내내 비가 내렸는데, 새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Q. 앞으로 베트남과 관련하여 미디어몽구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A. 베트남에 계속 오려고요. 적어도 2년에 한번은 올 겁니다. 그런데 저 혼자가 아니라 학생들이나 후배들과 함께 오고 싶어요. 그들에게 제가 베트남에서 보고 느낀 것을 함께 나누어 주고 싶어요. 저는 실현가능한 일에 대해서만 꼭 말씀을 드리는데, 제가 친구들과 베트남에 2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피해자분들에게 작별 인사를 드릴 때도 “꼭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Q. 마지막 질문은 짧게. 몽구 님에게 베트남은?
A. 음... 옆동네! 베트남과 많이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제가 평소에 베트남 사람 닮았다는 소리도 자주 듣기도 하고 베트남에 다시 오니까 옆동네처럼 친근한 느낌이 듭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식민지와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겪었고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잖아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계속 찾아올 곳이니까 ‘옆동네’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나라의 역사적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되어서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한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베트남에 대한 미디어몽구의 다음번 계획은 다시 베트남에 오는 것, 계속 베트남에 오는 것,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에 오는 것. 베트남에 대한 영상 작품에 대한 답변이 있을 거라 기대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순간, 그의 책 ‘미디어몽구, 사람을 향하다’가 떠올랐다. 그는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에 담는 것보다 우선 자신이 진심으로 사람을 향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베트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베트남을 향하는 나침반 같은 것이 있어서 그를 계속 베트남으로 돌아오게 할 것 같다. 안녕 미디어 몽구, 다시 베트남에서 만날 때는 아프지 말아요. 그의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 이어질 때까지,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평화기행도 계속될 것이다.
인터뷰, 글: 권현우
+ 베트남 관련 미디어몽구 영상 보기(아래 클릭)
베트남 전쟁, 한국군 증오비에 새겨진 잔혹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