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른이 되면 산으로 둘러싸인 집을 떠나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전쟁은 내가 미처 어른이 되기 전에 총을 들고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이 되게 했다. 알 수 없는 적에게 붙잡혀 보내진 섬에서, 산을 깎고 땅을 메워 ‘우리’를 가둘 집을 ‘우리’ 손으로 지었다. 수용소는 이념으로 갈린 또 하나의 작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어느 날 나타난 두꺼비가 계속 아이들을 데려 왔고, 무시무시한 포로수용소는 아침저녁 여기저기서 뛰어나온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아기 포로를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파도를 만나기로 한다. 섬을 벗어나 더 높은 파도를 만난 아기포로들은 두려움과 경이로움에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지난 10월, 신작 <아기 포로>를 발표한 김지연 그림책작가는 한베평화재단의 신규 후원회원이다. <아기 포로>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모티브로 하여 판화로 제작한 그림책. 예리하게 현대사를 파헤치듯 뾰족하고 날카로운 판화와 천진난만 해맑은 표정으로 두꺼비와 뛰노는 아이들의 얼굴이 대비를 이룬다. 이질적인 광경에 떠오르는 시 하나. 베트남의 대표적인 민족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감독 故 반레의 작품이다.
꼬마 *수인(囚人)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다 / 반레
적들이 감옥 문을 잠시 연 날
두 살박이 다섯 살 박이 수인들이 햇빛 속으로 엉금엉금 나왔다
담장 밖 풀을 뜯는 물소 한 마리
아이들이 서로 다툰다.
저건 물소야, 저건 코끼리야
담장에 기대앉은 여자 수인들 저마다 웃음이 터지는데
볼에는 눈물이 가득 흐르네
*수인(囚人) : 옥에 갇힌 사람
*1973년은 미국과 베트남전쟁 평화협정이 진행되며 정치범들이 잠시 사동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수감된 여성들은 감옥에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수인’이었던 아이들은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감방 밖 쏟아지는 햇빛을 마주했다.
‘아기’와 ‘포로’, ‘아이들’과 ‘수인’. 쉽게 와 닿지 않는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은 상상력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처럼 김지연 작가의 책은 늘 낯설다. 그래서 재미있고, 놀랍고, 신기하고, 어렵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이면‘이런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생각하게 된다. 공간 한 켠 작업실 커튼을 열고, 그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 * * * *
인터뷰를 위해 재단 사무실 5초 거리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사진은 한창 그림 작업 중인 김지연 작가. ⓒ짜미
내년 1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김지연 작가는 현재 한베평화재단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평화 동료이기도 하다.
Q. 매일 보던 사이에 새삼스레 질문을 하려니 어색하지만(하하),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 지도 궁금해요. 코로나19로 작가님 활동하는 영역에도 변화가 있겠죠?
안녕하세요, 그림책 ‘만드는’ 김지연입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고, 시인‧소설가는 작품을 ‘쓴다’고 하죠? 그림책 작가는 글과 그림 모두 해서 ‘만든다’고 소개해요. 저는 그림책 수업을 많이 하는데, 코로나19 이후 대부분 비대면으로 전환하며 큰 변화가 있었어요. ‘줌(zoom)’이나 ‘유튜브(YouTube)’를 활용하려면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하거든요. 장비도 필요하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해야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인터넷은 안정적인지, 소리나 영상이 잘 나가고 있는 지 확인할 게 참 많죠. 예전에는 오전에 강의 나갔다 오면 그래도 오후에는 작업할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틈새 시간에도 수업 준비를 해야 하니 따로 작품 준비를 위해 자료를 보거나 그림그릴 시간조차 내기 쉽지 않아요. 좋은 점도 있어요. 노르웨이에 계신 분, 상하이에 계신 분과도 소통할 수 있고 장시간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어린이와도 쉽게 만날 수 있죠. 코로나랑 한 2년 살아보니, 뭔지 감을 좀 잡았어요. 내년에는 이렇게 해야지, 어이쿠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요령이 생겼달까?
Q.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되셨나요? 원래도 그림을 전공하신 건지 궁금해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졸업하며 자연스레 화가를 직업으로 삼았고, 강남 갤러리에서 전시도 했죠. 젊은 나이에 성공한 편이죠?(하하) 멋진 전시장에 그림을 쫙- 걸어놨는데 사람이 정말 안 오는 거예요. 그때 작가의 유명세를 떠나서 ‘미술관 문턱이 높다’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구미에서 자랐는데, 부모님께서 시장에서 장사하며 저를 키우셨어요. 시장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도 초대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 다 모셔서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데 미술관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교양 있는 사람’만 가는 공간인 거예요. 그분들은 제 그림 하나 보러 서울 오면 왕복 시간, 그날 접은 장사 벌이, 사람 많은 데 가는 체력까지 정말 하루를 온전히 포기해야 하잖아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이 방 벽지에 어울리는 그림을 고르기 위해 갤러리를 찾더라고요.
굉장히 불편했어요. 진짜 같지 않은 예술을 계속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까이서 만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가다 그림책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직접 오지 않으면 책을 보내주면 되고, 한번 만들면 똑같은 그림을 몇 천 명이 나눠 보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제 그림 작업에서 판화를 주로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판이 하나만 있어도 수십, 수백 장을 복사할 수 있죠. ‘나눠 갖는 그림’이라니. 참 좋죠?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37살이었어요. 뒤늦게 그림책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고, 41살에 첫 그림책을 냈어요. 그림책작가 경력은 한 10년 밖에 안 된 셈이죠. 이제 그림책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난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림책도 잘 하겠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게 훨씬 중요하더라고요.
Q. 이렇게 멋진 사연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림책의 매력은 뭘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책의 멋진 점은 내가 만든 이야기가 독자에게 가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살아난다는 거예요. 굉장히 근사한 일이죠. 오히려 내가 하는 건 20% 정도고, 독자의 역할과 수고와 성취가 80%랄까? 동화책과 그림책을 구별해서 생각하기 쉽지 않죠. 그림책을 어린 아이들이 보는 ‘동화’라고 생각하거나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잘 만든 그림책일수록 의미를 알기는 어렵답니다. 작가들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최대한 덜어내거든요. 그래야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그림책작가들이 책 한 권 만들 때,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4년을 들여요. 그걸 어떻게 5분 만에 한 번 읽고 알겠어요?지금 한국 그림책은 전 세계에서 유명해요. 아동‧청소년 문학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LMA)’을 지난해에 백희나 작가(<구름빵>, <달 샤베트> 등)가 수상했죠. 그만큼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 수준이 높아졌어요. 성인을 포함해서 많은 연령대가 그림책을 보게 되었고 예술의 영역이 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은 점점 줄고 있어죠.
김지연 작가의 작품 속 장면들. 위에서부터 <백년아이>, <꽃살문>, <호랑이 바람>, <한밤중에 강남귀신>, <부적>
ⓒ그림책박물관(http://www.picturebook-museum.com)
Q. 한국 근현대사 백 년을 담은 <백년아이>부터 2019년 강원도 고성을 뒤덮은 산불 진화 과정을 담은 <호랑이 바람>, 도시에서의 삶을 다룬 <한밤중에 강남귀신>,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야기를 담은 <아기 포로>까지. 매 작품마다 사회 이슈를 그림책에 녹이기 위한 노력을 해오셨어요. 그림책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할 때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거의 비슷해요. 한결같이 ‘불편한’ 이야기를 하죠. 처음으로 낸 책은 <부적>이에요. 제목만 들어도 요상하죠?(하하) 부적을 연구하며 전국에 무당을 만나러 다녔어요. 자료조사차 매우 용하다는 무당집에 간 적이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문 밖에서 성호를 그었죠. 이것저것 물으니 “너는 입이 돌아가고 앉은뱅이가 될 것이야!”하고 소리치더니 “이런 걸 왜 알려고 해!”하고 구박했어요. 굉장히 어렵게 만든 책이지만, 첫 작품을 어렵고 불편한 것으로 하니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도 덤덤하더라고요?(하하) 첫 책이 두려움을 뛰어 넘는 연습을 시켜줬죠. 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이야기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고요. 불편하고 어려울수록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내 주머니에 꼭 품고, 자꾸 꺼내보고 만져서 닳을 때까지 봐야죠. 보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면 난 영원히 그것과 만날 수 없잖아요. 첫 책 <부적>을 만들 때 주변 사람들이 “세상에 아름다운 게 얼마나 많은데, 꼭 그런 불편하고 어려운 걸 만드냐? 그만둬라”하는 얘기를 정말 했어요. 작품을 준비하는 3년 내내 들었죠. 그 시간을 버티고 나니 이제 못할 얘기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고(하하).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서 유연해졌어요.
Q. 신작 <아기 포로> 이야기와 자랑도 해주세요. 재단 후원자분들이 관심 갖고 많이 구매하실 수 있도록! (하하)
한국 현대사에서 <아기 포로>는 실존했고, 한국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난 전 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민간인’이고 ‘아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깊게 다루지 않아요. 그래서 ‘아기 포로’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존재를 부각시켰어요.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가령 미얀마와 시리아의 아이들과 같은 ‘아기 포로’들이 자유를 찾기를, 행복하기를, 안전하기를 바랐고,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예요. 아이들의 손에 총을 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할 수 있는 지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Q. 그림책으로 평화를 이야기한다니!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한국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분단국가잖아요? 물론 역사나 평화에 예민하고 어려운 경향도 있죠. 그렇니 역으로 우리가 먼저 더 이상 누구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는 ‘K-평화’를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K-드라마, K-POP만 홍보할 게 아니라, K-평화! 멋지지 않나요? (하하)
“이제는 더 이상 전쟁 영웅들을 만들지 말아야하고 증오도 키우지 말아야 한다. 민간인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과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평화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징집된 소년소녀병들과 아기 포로들이 이념을 어찌 알았겠는가? 전쟁은 피어 보지도 못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 <아기포로> 갈무리 글 중
Q. <백년아이>에는 자전적 경험도 담겨 있다고요?
역사에 엄청난 사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전 완전 문외한이에요(하하). 정말 그림 아니면 예술밖에 몰랐죠. 심지어 대학 다닐 때 미대 회장이었는데, 우리 단과대는 학생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모르고 무서우니까. ‘나도 왜 나가야하는 지 잘 모르겠는 데, 아래 학년들은 당연히 모르겠지’하면서 아예 참여도 안했다니까요? 정말 몰라서 안 한 것도 맞고, 모르는 척 한 것도 맞아요. 그러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임감이 생겼죠. 책은 공공성을 지닌 출판물이기 때문에 작가도 사회적 책임에서 배제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내용을 담는 지가 매우 중요하니까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할머니의 출생년도를 처음 알았어요. 1919년생이셨죠. 머리를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손자손녀 중에 제일 친했고, 나를 엄청 예뻐해 주셨는데도 할머니 나이를 이제야 알았다니! 진즉 알았다면 일제강점기는 어땠어? 6.25 전쟁은 어땠어? 물어도 보고 많이 이야기 해봤을 텐데. 역사는 교과서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했지 우리 가족의 삶에도 있을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제야 아빠에게 전쟁 기억을 물으니 피난 간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너무 놀라 엄마에게도 물으니 4.19 혁명이 있던 날 기억에 대해 생생히 들려줬어요. 이렇게 가까이에 살아있는 역사가 있는데 난 왜 책에서만 찾으려 애썼을까? 그때부터 한국사, 세계사, 철학, 사회과학 가리지 않고 막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태어나던 1919년부터 2019년을 정리하면 딱 100년이고, 그 삶 자체가 한국 역사겠구나 싶어 <백년아이>를 만들었죠.
<백년아이> 도서로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 중인 김지연 작가.
강의가 진행 중인 공간은 한베평화재단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시 옥수동의 평화공간 '옥수수'이다. ⓒ피스북스
평화공간 '옥수수'에서 그림 수업을 진행 중인 김지연 작가.
즐거운 에너지와 넘치는 입담으로 김지연 작가의 수업은 늘 인기가 많다. ⓒ피스북스
Q. 예민하고 불편한 이야기도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걸 내가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세상에 내놓는 순간까지 계속 고민이 될 것 같아요. 내가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내 의견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될까?
맞아요, <백년아이>에 이승만 전 대통령 이야기가 나오는데, 출판사에 전화해서 작가 바꾸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엄청 많대요(하하) 직접 찾아와 화내거나 야단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도 계속 한국 역사를 세계와 연결 짓는 시도를 해나가고 싶어요. 누구를 공격하고 미워하자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미워하지 않게 하려고 책을 만드는 거거든요. <백년아이>를 처음 기획했을 때, 출판사에서도 ‘어린이책에서 이런 내용을 다루기는 어렵다’며 곤란해 했어요. 다음 책도, 다다음 책도, 그 다음 책도 매번 낼 때마다 어려워하는 반응을 느끼죠. 그래도 제가 해야 하는 몫이라는 걸 부정한 적은 없어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일부러 위험하고 겁나는 일을 하려고 작가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하하)
Q. 맞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작가님이 ‘활동가’라는 생각을 해요. 저의 편견일 수 있지만(하하)...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쓰고 홍보하는 데에만 매진하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그림책 강연도 하고, 교육청 워크숍도 하고, 성교육도 하고, 민주시민 교육도 하고, 독서 교육도 하고… 휴, 읊기만 해도 바쁘네요. 활동 범위가 정말 넓고 실제로 다양한 역할을 하시는데.
실제로 외부에 가면 다 제가 어디 단체 활동가인 줄 알아요. 관계자들은 저에게 ‘가성비 좋은 작가’라고도 하거든요? 어떤 행사, 어떤 주제, 어떤 강의를 요청해도 다 소화한다고(하하). 그게 다 결국 제 작업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에너지가 생겨요. 어떤 작가는 이런 활동을 ‘시간 낭비’라고도 하더군요. 저는 이 시간이 진짜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오히려 수강료를 받기 미안할 때도 많아요. 놀이와 대화 속에서 영감을 받을 때도 많거든요. 게다가 저는 꾀부릴 줄 모르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배운 대로 행동해야죠. 알게 된 책임을 지는 것이 훨씬 편하지, 모르는 척 상관없는 척 하는 게 훨씬 힘들더라고요.
Q. <피스북스> 웹툰&만화 출판학교 'about Vietnam'* 에 참여하셨어요. 1년간의 배움과 작업 끝에 드디어 책이 나왔죠? 어떤 경험이었나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작업이었어요. 만화를 만드는 방식은 그림책을 만드는 방식과 완전히 달라서 어려움이 많았죠. 무엇보다도 저는 보통 자료조사를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찾아가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서 모으는데, 코로나19로 베트남에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모든 자료 조사를 사진과 책, 영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정말 힘들었어요. 누군가의 언어와 관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작가로서 수용하기 쉽지 않은 점이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책을 실제 베트남 분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였어요.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학살 문제를 비롯한 베트남전쟁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그분들을 슬프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무지하고, 안타까운 대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특히 지금 한국에 굉장히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살고 있잖아요. 그들에게 자기 역사 속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맞서 싸운 여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성의 역사도 결국 평화로 이어지잖아요. 신화부터 시작해서 베트남전쟁을 지나, 현대까지 베트남 여성사를 짚는 만화를 그렸죠.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여성사, 그 중에서도 더 관심 받지 못한 아시아 여성사를 그리다 보니 아시아 여성 연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나라의 여성사를 그리고 나누는 여성작가들의 모임! 자료 찾으며 공부해보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왜 그림은 안 그리고 책만 보냐고 할 정도로 푹 빠져서 봤죠(하하).
*‘about Vietnam’은 <피스북스> 웹툰&만화 출판학교 프로젝트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대중 창작물을 제작하고 확산해서 베트남전에 대한 문제인식을 바로 세우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베트남전쟁 관련 강의와 만화에 필요한 취재와 인터뷰, 스토리텔링 수업을 듣고 각자 작품을 하나씩 내는 방식. 2020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2021년 11월 마무리를 지었고, 총 7명이 창작자로 참여하여 <일곱 시>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지난 11월 출판된 피스북스 출판 <일곱 시>는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일곱 명의 창작자가 각기 다른 시선과 이야기로 풀어낸 만화책이다.
사진은 <일곱 시> 도서와 그 중 김지연 작가의 작품 <어우 꺼의 선물> ⓒ짜미
Q. 언젠가 베트남 이야기를 담은 김지연 작가님만의 작품이 또 나올 거라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재단과 가까이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저도 베트남에 정말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베트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또 하고 싶고, 베트남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아가고 싶어요. 코로나19가 끝나면 바로 짐 싸서 베트남 가려고요(하하). 베트남 나무는 어떻게 생겼나, 베트남 거리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나, 전부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 또래 베트남 사람들과 교감해보고 싶어요. 제가 71년생이라, 베트남전 말미에 태어난 어린이들과 비슷한 나이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같을지 궁금해요.
남북공동언어 평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북한 어디에 맛있는 음식이 있고, 어떤 지역은 술이 유명하고, 어느 동네는 차가 맛있고, 어디에 가면 떨어지는 꽃이 멋지고, 하나하나 알게 됐죠. 그랬더니 더 알고 싶고, 가보고 싶고, 결국 자연스레 “통일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통일’을 배우고 알리고 설득하려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제대로 알아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닿았어요. 앞으로 재단이 고민하는 평화교육도 그런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트남에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하고 몸서리 처지는 사실이 있는 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귀엽고 생기 있는 아이들이 있고, 멋지고 담대한 여성사가 있고, 그들이 어떤 꿈을 꾸는 지 알아가는 시도에서부터 출발해보면 어떨까요? 잘잘못을 가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가, 정말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 결국 진심과 애정에서 시작하는 평화가 필요하더라고요.
Q. 한베평화재단과 서로 이웃으로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건 어떤가요?
재단과 공간을 함께 사용하면서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는 늘 어려운 숙제였어요. <일곱시> 작업을 계기로 베트남전쟁을 징검다리 삼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죠. 사실 제가 궁금했던 건 베트남전쟁이 아니라,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였어요.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어떻게 평화를 고민할 수 있을까?’도 궁금했고요. 무엇보다도 재단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좋았어요. 재단과 만나며 일상에서의 평화를 고민하는 감수성이 늘었거든요. 어려운 말과 이론이 아니더라도 평화를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재단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많이 배웠어요. 예를 들어 건물 관리자가 ‘~금지’라고 붙여놓은 경고문의 강압적인 명령형 어투를 지적하고 청유형, 제안형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냐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길거리에 저런 문구가 수천 개 있어도 문제일 수 있다고 전혀 생각 못했거든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도 평화 렌즈를 끼고 보면 다시 볼 것들이 많다고 깨닫는 나날이에요.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재단 후원으로 이어졌고요.
Q. 재단도 작가님과 공간을 함께 하면서 여러 힘을 받았어요. 특히 평화 교육 측면에서요. 여러 교안과 교구를 만들었지만 실제 교육 공간에서의 경험은 부족하다보니 여러 걱정이 있었거든요. 실제 수업에서 ‘평화꾸러미’를 사용하고 후기와 평가를 남겨주신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수업 나갈 때마다 재단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하하). 아이들과 평화 수업을 할 때 하나의 시각, 하나의 주제만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이 한국에만 해당되지 않는 다는 걸 말해주죠. 베트남전쟁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아프가니스탄 이야기, 미얀마 이야기, 독일 이야기… 모두 함께 말해주죠. 아이들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적극적으로 평화 수업에 참여해요. 이유를 물으니 “지금까지 어른들은 아무도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거든요”라고 하더라고요. 수업 후에 양육자들과 이야기 해봐도 역시나 마찬가지에요. 대부분 평화 교육과 역사 교육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베트남전쟁은 대부분 가족의 역사에 있어요. 우리 가족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역사를 되짚어 보았듯, 재단의 평화교육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길 바라요.
김지연 작가가 '평화꾸러미'로 학생들과 평화수업을 진행하고 만든 결과물 ⓒ짜미
한베평화재단 창립 5주년 기념 웨비나 '베트남전쟁과 평화교육'에서
'평화꾸러미'를 활용한 교육 사례를 발표한 김지연 작가 ⓒ한베평화재단
Q. 작가님의 활동과 강연 속에 재단의 이야기가 담긴다니 뿌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네요. 함께하는 힘이라는 게 이런 걸까요?
무엇보다도 추상적일 수 있는 평화를 일상에서 가꾸고 실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다는 걸 본 경험이 저에게는 큰 배움이었어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초등학교 학생들과 미얀마 민주주의 항쟁 상황을 공유하고, 미얀마 친구들과 함께 할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수업을 했어요. 6학년 아이 한 명이 저에게 “선생님, 미얀마 걱정할 때가 아니라 선생님이나 잘 하세요. 작가라서 돈도 잘 못 번다면서 마감 걱정이나 하세요!” 이러더라고요? (하하하) 도발적인 질문을 받으니까 나도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설명을 해요. “미얀마에서 지금 시민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어. 은행 직원이 은행에 출근을 안 해. 그럼 돈이 없어서 군인들 월급을 못 준다? 그러면 군대는 총알도 폭탄도 살 수 없어. 정말 멋진 일이지? 만약에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어떤 감정이 들까? 그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힘들고 속상할까?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나의 일처럼 걱정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평화란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 하면서 재단의 미얀마 피스-피켓팅 얘기를 했죠. 저도 제가 직접 재단의 활동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아이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이 공간은 정말 좋은 평화 교류 공간이에요. 제 작업실에 문이 없잖아요?(하하) 그래서 이 공간에서 나누는 말이 다 들리고 오가는 사람도 다 보여요. 베트남 청년이 올 때도 있고, 참전군인 할아버지가 올 때도 있고, 청소년들이 올 때도 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문’을 가지고 책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니까요? 왜 여기 문이 없어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나(하하).
김지연 작가에게 선물받은 <아기 포로> 도서와 함께 찍은 사진 ⓒ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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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은 ‘야근 동지’이다. 인터뷰라 쓰고 신나는 수다 떨기라 읽는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저녁 8시. 늦은 마무리에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니 김지연 작가는 오늘도 셀프 야근을 자처한다. 오전과 오후 내내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열심히 수업을 한 터라 피곤할 법도 한데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그렇다. 조용히 작업실 문이 아닌 커튼을 닫고 나온다.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공간을 보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도 나에게서 그런 반짝임을 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인터뷰] 높고 낮은 파도를 만나고 만나며 삶은 기적처럼 이어진다
/ 김지연 후원회원, 그림책작가 인터뷰
‘나’는 어른이 되면 산으로 둘러싸인 집을 떠나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전쟁은 내가 미처 어른이 되기 전에 총을 들고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이 되게 했다. 알 수 없는 적에게 붙잡혀 보내진 섬에서, 산을 깎고 땅을 메워 ‘우리’를 가둘 집을 ‘우리’ 손으로 지었다. 수용소는 이념으로 갈린 또 하나의 작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어느 날 나타난 두꺼비가 계속 아이들을 데려 왔고, 무시무시한 포로수용소는 아침저녁 여기저기서 뛰어나온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아기 포로를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파도를 만나기로 한다. 섬을 벗어나 더 높은 파도를 만난 아기포로들은 두려움과 경이로움에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다.
지난 10월, 신작 <아기 포로>를 발표한 김지연 그림책작가는 한베평화재단의 신규 후원회원이다. <아기 포로>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모티브로 하여 판화로 제작한 그림책. 예리하게 현대사를 파헤치듯 뾰족하고 날카로운 판화와 천진난만 해맑은 표정으로 두꺼비와 뛰노는 아이들의 얼굴이 대비를 이룬다. 이질적인 광경에 떠오르는 시 하나. 베트남의 대표적인 민족 시인이자 소설가, 영화감독 故 반레의 작품이다.
꼬마 *수인(囚人)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다 / 반레
적들이 감옥 문을 잠시 연 날
두 살박이 다섯 살 박이 수인들이 햇빛 속으로 엉금엉금 나왔다
담장 밖 풀을 뜯는 물소 한 마리
아이들이 서로 다툰다.
저건 물소야, 저건 코끼리야
담장에 기대앉은 여자 수인들 저마다 웃음이 터지는데
볼에는 눈물이 가득 흐르네
*수인(囚人) : 옥에 갇힌 사람
*1973년은 미국과 베트남전쟁 평화협정이 진행되며 정치범들이 잠시 사동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수감된 여성들은 감옥에서 아이를 낳고 길러야 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수인’이었던 아이들은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감방 밖 쏟아지는 햇빛을 마주했다.
‘아기’와 ‘포로’, ‘아이들’과 ‘수인’. 쉽게 와 닿지 않는 어색한 두 단어의 조합은 상상력과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처럼 김지연 작가의 책은 늘 낯설다. 그래서 재미있고, 놀랍고, 신기하고, 어렵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이면 ‘이런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게 된다. 공간 한 켠 작업실 커튼을 열고, 그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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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재단 사무실 5초 거리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사진은 한창 그림 작업 중인 김지연 작가. ⓒ짜미
내년 1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김지연 작가는 현재 한베평화재단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평화 동료이기도 하다.
Q. 매일 보던 사이에 새삼스레 질문을 하려니 어색하지만(하하),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 지도 궁금해요. 코로나19로 작가님 활동하는 영역에도 변화가 있겠죠?
안녕하세요, 그림책 ‘만드는’ 김지연입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하고, 시인‧소설가는 작품을 ‘쓴다’고 하죠? 그림책 작가는 글과 그림 모두 해서 ‘만든다’고 소개해요. 저는 그림책 수업을 많이 하는데, 코로나19 이후 대부분 비대면으로 전환하며 큰 변화가 있었어요. ‘줌(zoom)’이나 ‘유튜브(YouTube)’를 활용하려면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하거든요. 장비도 필요하고, 어떤 자료를 어떻게 해야 잘 보여줄 수 있을지, 인터넷은 안정적인지, 소리나 영상이 잘 나가고 있는 지 확인할 게 참 많죠. 예전에는 오전에 강의 나갔다 오면 그래도 오후에는 작업할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틈새 시간에도 수업 준비를 해야 하니 따로 작품 준비를 위해 자료를 보거나 그림그릴 시간조차 내기 쉽지 않아요. 좋은 점도 있어요. 노르웨이에 계신 분, 상하이에 계신 분과도 소통할 수 있고 장시간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어린이와도 쉽게 만날 수 있죠. 코로나랑 한 2년 살아보니, 뭔지 감을 좀 잡았어요. 내년에는 이렇게 해야지, 어이쿠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요령이 생겼달까?
Q.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되셨나요? 원래도 그림을 전공하신 건지 궁금해요.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했어요. 졸업하며 자연스레 화가를 직업으로 삼았고, 강남 갤러리에서 전시도 했죠. 젊은 나이에 성공한 편이죠?(하하) 멋진 전시장에 그림을 쫙- 걸어놨는데 사람이 정말 안 오는 거예요. 그때 작가의 유명세를 떠나서 ‘미술관 문턱이 높다’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경북 구미에서 자랐는데, 부모님께서 시장에서 장사하며 저를 키우셨어요. 시장에서 같이 일하는 분들도 초대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아저씨 다 모셔서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데 미술관은 ‘많이 배운 사람’이나 ‘교양 있는 사람’만 가는 공간인 거예요. 그분들은 제 그림 하나 보러 서울 오면 왕복 시간, 그날 접은 장사 벌이, 사람 많은 데 가는 체력까지 정말 하루를 온전히 포기해야 하잖아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이 방 벽지에 어울리는 그림을 고르기 위해 갤러리를 찾더라고요.
굉장히 불편했어요. 진짜 같지 않은 예술을 계속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소통하는, 가까이서 만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고민을 이어가다 그림책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직접 오지 않으면 책을 보내주면 되고, 한번 만들면 똑같은 그림을 몇 천 명이 나눠 보고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제 그림 작업에서 판화를 주로 사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판이 하나만 있어도 수십, 수백 장을 복사할 수 있죠. ‘나눠 갖는 그림’이라니. 참 좋죠? 그 생각을 했을 때 이미 37살이었어요. 뒤늦게 그림책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했고, 41살에 첫 그림책을 냈어요. 그림책작가 경력은 한 10년 밖에 안 된 셈이죠. 이제 그림책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난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림책도 잘 하겠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게 훨씬 중요하더라고요.
Q. 이렇게 멋진 사연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림책의 매력은 뭘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림책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림책의 멋진 점은 내가 만든 이야기가 독자에게 가면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살아난다는 거예요. 굉장히 근사한 일이죠. 오히려 내가 하는 건 20% 정도고, 독자의 역할과 수고와 성취가 80%랄까? 동화책과 그림책을 구별해서 생각하기 쉽지 않죠. 그림책을 어린 아이들이 보는 ‘동화’라고 생각하거나 이야기가 너무 추상적이라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잘 만든 그림책일수록 의미를 알기는 어렵답니다. 작가들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최대한 덜어내거든요. 그래야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보통 그림책작가들이 책 한 권 만들 때, 최소 1년에서 길게는 3년-4년을 들여요. 그걸 어떻게 5분 만에 한 번 읽고 알겠어요? 지금 한국 그림책은 전 세계에서 유명해요. 아동‧청소년 문학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LMA)’을 지난해에 백희나 작가(<구름빵>, <달 샤베트> 등)가 수상했죠. 그만큼 우리나라 그림책 작가 수준이 높아졌어요. 성인을 포함해서 많은 연령대가 그림책을 보게 되었고 예술의 영역이 되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은 점점 줄고 있어죠.
김지연 작가의 작품 속 장면들. 위에서부터 <백년아이>, <꽃살문>, <호랑이 바람>, <한밤중에 강남귀신>, <부적>
ⓒ그림책박물관(http://www.picturebook-museum.com)
Q. 한국 근현대사 백 년을 담은 <백년아이>부터 2019년 강원도 고성을 뒤덮은 산불 진화 과정을 담은 <호랑이 바람>, 도시에서의 삶을 다룬 <한밤중에 강남귀신>, 거제도 포로수용소 이야기를 담은 <아기 포로>까지. 매 작품마다 사회 이슈를 그림책에 녹이기 위한 노력을 해오셨어요. 그림책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할 때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거의 비슷해요. 한결같이 ‘불편한’ 이야기를 하죠. 처음으로 낸 책은 <부적>이에요. 제목만 들어도 요상하죠?(하하) 부적을 연구하며 전국에 무당을 만나러 다녔어요. 자료조사차 매우 용하다는 무당집에 간 적이 있는데, 너무 무서워서 문 밖에서 성호를 그었죠. 이것저것 물으니 “너는 입이 돌아가고 앉은뱅이가 될 것이야!”하고 소리치더니 “이런 걸 왜 알려고 해!”하고 구박했어요. 굉장히 어렵게 만든 책이지만, 첫 작품을 어렵고 불편한 것으로 하니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도 덤덤하더라고요?(하하) 첫 책이 두려움을 뛰어 넘는 연습을 시켜줬죠. 사람들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이야기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알았고요. 불편하고 어려울수록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수록 내 주머니에 꼭 품고, 자꾸 꺼내보고 만져서 닳을 때까지 봐야죠. 보기 싫다고 고개를 돌리면 난 영원히 그것과 만날 수 없잖아요. 첫 책 <부적>을 만들 때 주변 사람들이 “세상에 아름다운 게 얼마나 많은데, 꼭 그런 불편하고 어려운 걸 만드냐? 그만둬라”하는 얘기를 정말 했어요. 작품을 준비하는 3년 내내 들었죠. 그 시간을 버티고 나니 이제 못할 얘기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고(하하).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면서 유연해졌어요.
Q. 신작 <아기 포로> 이야기와 자랑도 해주세요. 재단 후원자분들이 관심 갖고 많이 구매하실 수 있도록! (하하)
한국 현대사에서 <아기 포로>는 실존했고, 한국뿐 아니라 전쟁이 일어난 전 세계 어디에나 있어요. 그런데 어른들은 ‘민간인’이고 ‘아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깊게 다루지 않아요. 그래서 ‘아기 포로’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존재를 부각시켰어요.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가령 미얀마와 시리아의 아이들과 같은 ‘아기 포로’들이 자유를 찾기를, 행복하기를, 안전하기를 바랐고,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죠.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예요. 아이들의 손에 총을 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당신은, 우리는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할 수 있는 지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Q. 그림책으로 평화를 이야기한다니!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한국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분단국가잖아요? 물론 역사나 평화에 예민하고 어려운 경향도 있죠. 그렇니 역으로 우리가 먼저 더 이상 누구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는 ‘K-평화’를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K-드라마, K-POP만 홍보할 게 아니라, K-평화! 멋지지 않나요? (하하)
“이제는 더 이상 전쟁 영웅들을 만들지 말아야하고 증오도 키우지 말아야 한다. 민간인이 겪은 전쟁의 참혹함과 부당함을 이야기하며 소중한 일상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평화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징집된 소년소녀병들과 아기 포로들이 이념을 어찌 알았겠는가? 전쟁은 피어 보지도 못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았다.”
- <아기포로> 갈무리 글 중
Q. <백년아이>에는 자전적 경험도 담겨 있다고요?
역사에 엄청난 사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전 완전 문외한이에요(하하). 정말 그림 아니면 예술밖에 몰랐죠. 심지어 대학 다닐 때 미대 회장이었는데, 우리 단과대는 학생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어요. 모르고 무서우니까. ‘나도 왜 나가야하는 지 잘 모르겠는 데, 아래 학년들은 당연히 모르겠지’하면서 아예 참여도 안했다니까요? 정말 몰라서 안 한 것도 맞고, 모르는 척 한 것도 맞아요. 그러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임감이 생겼죠. 책은 공공성을 지닌 출판물이기 때문에 작가도 사회적 책임에서 배제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내용을 담는 지가 매우 중요하니까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할머니의 출생년도를 처음 알았어요. 1919년생이셨죠. 머리를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손자손녀 중에 제일 친했고, 나를 엄청 예뻐해 주셨는데도 할머니 나이를 이제야 알았다니! 진즉 알았다면 일제강점기는 어땠어? 6.25 전쟁은 어땠어? 물어도 보고 많이 이야기 해봤을 텐데. 역사는 교과서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했지 우리 가족의 삶에도 있을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제야 아빠에게 전쟁 기억을 물으니 피난 간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너무 놀라 엄마에게도 물으니 4.19 혁명이 있던 날 기억에 대해 생생히 들려줬어요. 이렇게 가까이에 살아있는 역사가 있는데 난 왜 책에서만 찾으려 애썼을까? 그때부터 한국사, 세계사, 철학, 사회과학 가리지 않고 막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태어나던 1919년부터 2019년을 정리하면 딱 100년이고, 그 삶 자체가 한국 역사겠구나 싶어 <백년아이>를 만들었죠.
<백년아이> 도서로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 중인 김지연 작가.
강의가 진행 중인 공간은 한베평화재단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시 옥수동의 평화공간 '옥수수'이다. ⓒ피스북스
평화공간 '옥수수'에서 그림 수업을 진행 중인 김지연 작가.
즐거운 에너지와 넘치는 입담으로 김지연 작가의 수업은 늘 인기가 많다. ⓒ피스북스
Q. 예민하고 불편한 이야기도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걸 내가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세상에 내놓는 순간까지 계속 고민이 될 것 같아요. 내가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내 의견이 논리적으로 납득이 될까?
맞아요, <백년아이>에 이승만 전 대통령 이야기가 나오는데, 출판사에 전화해서 작가 바꾸라고 항의하는 사람도 엄청 많대요(하하) 직접 찾아와 화내거나 야단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도 계속 한국 역사를 세계와 연결 짓는 시도를 해나가고 싶어요. 누구를 공격하고 미워하자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미워하지 않게 하려고 책을 만드는 거거든요. <백년아이>를 처음 기획했을 때, 출판사에서도 ‘어린이책에서 이런 내용을 다루기는 어렵다’며 곤란해 했어요. 다음 책도, 다다음 책도, 그 다음 책도 매번 낼 때마다 어려워하는 반응을 느끼죠. 그래도 제가 해야 하는 몫이라는 걸 부정한 적은 없어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일부러 위험하고 겁나는 일을 하려고 작가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하하)
Q. 맞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작가님이 ‘활동가’라는 생각을 해요. 저의 편견일 수 있지만(하하)...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쓰고 홍보하는 데에만 매진하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그림책 강연도 하고, 교육청 워크숍도 하고, 성교육도 하고, 민주시민 교육도 하고, 독서 교육도 하고… 휴, 읊기만 해도 바쁘네요. 활동 범위가 정말 넓고 실제로 다양한 역할을 하시는데.
실제로 외부에 가면 다 제가 어디 단체 활동가인 줄 알아요. 관계자들은 저에게 ‘가성비 좋은 작가’라고도 하거든요? 어떤 행사, 어떤 주제, 어떤 강의를 요청해도 다 소화한다고(하하). 그게 다 결국 제 작업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록 에너지가 생겨요. 어떤 작가는 이런 활동을 ‘시간 낭비’라고도 하더군요. 저는 이 시간이 진짜 살아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 오히려 수강료를 받기 미안할 때도 많아요. 놀이와 대화 속에서 영감을 받을 때도 많거든요. 게다가 저는 꾀부릴 줄 모르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배운 대로 행동해야죠. 알게 된 책임을 지는 것이 훨씬 편하지, 모르는 척 상관없는 척 하는 게 훨씬 힘들더라고요.
Q. <피스북스> 웹툰&만화 출판학교 'about Vietnam'* 에 참여하셨어요. 1년간의 배움과 작업 끝에 드디어 책이 나왔죠? 어떤 경험이었나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작업이었어요. 만화를 만드는 방식은 그림책을 만드는 방식과 완전히 달라서 어려움이 많았죠. 무엇보다도 저는 보통 자료조사를 직접 발로 뛰며 현장을 찾아가고 사람을 만나 인터뷰해서 모으는데, 코로나19로 베트남에 직접 갈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모든 자료 조사를 사진과 책, 영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정말 힘들었어요. 누군가의 언어와 관점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작가로서 수용하기 쉽지 않은 점이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책을 실제 베트남 분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였어요. 베트남전쟁 시기 민간인학살 문제를 비롯한 베트남전쟁 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그분들을 슬프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무지하고, 안타까운 대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특히 지금 한국에 굉장히 많은 베트남 여성들이 살고 있잖아요. 그들에게 자기 역사 속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맞서 싸운 여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성의 역사도 결국 평화로 이어지잖아요. 신화부터 시작해서 베트남전쟁을 지나, 현대까지 베트남 여성사를 짚는 만화를 그렸죠.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여성사, 그 중에서도 더 관심 받지 못한 아시아 여성사를 그리다 보니 아시아 여성 연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나라의 여성사를 그리고 나누는 여성작가들의 모임! 자료 찾으며 공부해보니 너무 재밌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왜 그림은 안 그리고 책만 보냐고 할 정도로 푹 빠져서 봤죠(하하).
*‘about Vietnam’은 <피스북스> 웹툰&만화 출판학교 프로젝트로, 베트남전쟁에 대한 대중 창작물을 제작하고 확산해서 베트남전에 대한 문제인식을 바로 세우는 목표로 시작되었다. 베트남전쟁 관련 강의와 만화에 필요한 취재와 인터뷰, 스토리텔링 수업을 듣고 각자 작품을 하나씩 내는 방식. 2020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2021년 11월 마무리를 지었고, 총 7명이 창작자로 참여하여 <일곱 시>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사진은 <일곱 시> 도서와 그 중 김지연 작가의 작품 <어우 꺼의 선물> ⓒ짜미
Q. 언젠가 베트남 이야기를 담은 김지연 작가님만의 작품이 또 나올 거라 기대해도 되는 걸까요?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재단과 가까이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저도 베트남에 정말 많은 관심이 생겼어요. 베트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또 하고 싶고, 베트남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아가고 싶어요. 코로나19가 끝나면 바로 짐 싸서 베트남 가려고요(하하). 베트남 나무는 어떻게 생겼나, 베트남 거리에서는 어떤 향기가 나나, 전부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 또래 베트남 사람들과 교감해보고 싶어요. 제가 71년생이라, 베트남전 말미에 태어난 어린이들과 비슷한 나이거든요. 비슷한 시기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같을지 궁금해요.
남북공동언어 평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북한 어디에 맛있는 음식이 있고, 어떤 지역은 술이 유명하고, 어느 동네는 차가 맛있고, 어디에 가면 떨어지는 꽃이 멋지고, 하나하나 알게 됐죠. 그랬더니 더 알고 싶고, 가보고 싶고, 결국 자연스레 “통일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통일’을 배우고 알리고 설득하려고 시작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제대로 알아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닿았어요. 앞으로 재단이 고민하는 평화교육도 그런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트남에 얼마나 참혹하고 끔찍하고 몸서리 처지는 사실이 있는 지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귀엽고 생기 있는 아이들이 있고, 멋지고 담대한 여성사가 있고, 그들이 어떤 꿈을 꾸는 지 알아가는 시도에서부터 출발해보면 어떨까요? 잘잘못을 가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가, 정말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 결국 진심과 애정에서 시작하는 평화가 필요하더라고요.
Q. 한베평화재단과 서로 이웃으로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건 어떤가요?
재단과 공간을 함께 사용하면서도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는 늘 어려운 숙제였어요. <일곱시> 작업을 계기로 베트남전쟁을 징검다리 삼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죠. 사실 제가 궁금했던 건 베트남전쟁이 아니라,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였어요. ‘베트남전쟁을 통해서 어떻게 평화를 고민할 수 있을까?’도 궁금했고요. 무엇보다도 재단 활동가들과의 만남이 좋았어요. 재단과 만나며 일상에서의 평화를 고민하는 감수성이 늘었거든요. 어려운 말과 이론이 아니더라도 평화를 힘 있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재단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많이 배웠어요. 예를 들어 건물 관리자가 ‘~금지’라고 붙여놓은 경고문의 강압적인 명령형 어투를 지적하고 청유형, 제안형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냐는 문제 제기를 한 것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길거리에 저런 문구가 수천 개 있어도 문제일 수 있다고 전혀 생각 못했거든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도 평화 렌즈를 끼고 보면 다시 볼 것들이 많다고 깨닫는 나날이에요. 그런 경험들이 자연스레 재단 후원으로 이어졌고요.
Q. 재단도 작가님과 공간을 함께 하면서 여러 힘을 받았어요. 특히 평화 교육 측면에서요. 여러 교안과 교구를 만들었지만 실제 교육 공간에서의 경험은 부족하다보니 여러 걱정이 있었거든요. 실제 수업에서 ‘평화꾸러미’를 사용하고 후기와 평가를 남겨주신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수업 나갈 때마다 재단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하하). 아이들과 평화 수업을 할 때 하나의 시각, 하나의 주제만 다루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여러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이 한국에만 해당되지 않는 다는 걸 말해주죠. 베트남전쟁을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에요. 아프가니스탄 이야기, 미얀마 이야기, 독일 이야기… 모두 함께 말해주죠. 아이들은 생각보다 재미있게 적극적으로 평화 수업에 참여해요. 이유를 물으니 “지금까지 어른들은 아무도 전쟁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지 않았거든요”라고 하더라고요. 수업 후에 양육자들과 이야기 해봐도 역시나 마찬가지에요. 대부분 평화 교육과 역사 교육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몰라서’ 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베트남전쟁은 대부분 가족의 역사에 있어요. 우리 가족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역사를 되짚어 보았듯, 재단의 평화교육이 그러한 역할을 하게 되길 바라요.
김지연 작가가 '평화꾸러미'로 학생들과 평화수업을 진행하고 만든 결과물 ⓒ짜미
한베평화재단 창립 5주년 기념 웨비나 '베트남전쟁과 평화교육'에서
'평화꾸러미'를 활용한 교육 사례를 발표한 김지연 작가 ⓒ한베평화재단
Q. 작가님의 활동과 강연 속에 재단의 이야기가 담긴다니 뿌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네요. 함께하는 힘이라는 게 이런 걸까요?
무엇보다도 추상적일 수 있는 평화를 일상에서 가꾸고 실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다는 걸 본 경험이 저에게는 큰 배움이었어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초등학교 학생들과 미얀마 민주주의 항쟁 상황을 공유하고, 미얀마 친구들과 함께 할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수업을 했어요. 6학년 아이 한 명이 저에게 “선생님, 미얀마 걱정할 때가 아니라 선생님이나 잘 하세요. 작가라서 돈도 잘 못 번다면서 마감 걱정이나 하세요!” 이러더라고요? (하하하) 도발적인 질문을 받으니까 나도 자극을 받아서 더 열심히 설명을 해요. “미얀마에서 지금 시민불복종 운동을 하고 있어. 은행 직원이 은행에 출근을 안 해. 그럼 돈이 없어서 군인들 월급을 못 준다? 그러면 군대는 총알도 폭탄도 살 수 없어. 정말 멋진 일이지? 만약에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어떤 감정이 들까? 그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힘들고 속상할까?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도 나의 일처럼 걱정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평화란다. 그리고 그걸 실제로 하는 사람들이 있어” 하면서 재단의 미얀마 피스-피켓팅 얘기를 했죠. 저도 제가 직접 재단의 활동을 보고 느꼈기 때문에 아이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이 공간은 정말 좋은 평화 교류 공간이에요. 제 작업실에 문이 없잖아요?(하하) 그래서 이 공간에서 나누는 말이 다 들리고 오가는 사람도 다 보여요. 베트남 청년이 올 때도 있고, 참전군인 할아버지가 올 때도 있고, 청소년들이 올 때도 있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문’을 가지고 책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니까요? 왜 여기 문이 없어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나(하하).
김지연 작가에게 선물받은 <아기 포로> 도서와 함께 찍은 사진 ⓒ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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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은 ‘야근 동지’이다. 인터뷰라 쓰고 신나는 수다 떨기라 읽는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저녁 8시. 늦은 마무리에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니 김지연 작가는 오늘도 셀프 야근을 자처한다. 오전과 오후 내내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열심히 수업을 한 터라 피곤할 법도 한데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그렇다. 조용히 작업실 문이 아닌 커튼을 닫고 나온다.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공간을 보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도 나에게서 그런 반짝임을 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