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인터뷰[인터뷰] 함께하는 힘 / 양승호

함께하는 힘

 - 후원회원 양승호 

지난 4월 한베평화재단에서 진행한 베트남 다큐 평화로 가는 길 상영회에서 회원가입을 한 양승호 님을 만났습니다2019나비기금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한베평화재단·정의기억연대 공동 진행)’에 다녀온 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승호 님은 올해 재단에서 3월부터 시작한 <함께 읽는 베트남전쟁 책읽기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고 4개월간의 베트남어 수업도 함께 했습니다취업으로 잠시 인권·평화 활동을 떠나있었던 승호 님이 어떤 마음으로 한베평화재단에 찾아와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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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했잖아요어땠어요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승호] 감정적으로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아무래도 피해자·유가족분들을 만났을 때예요다른 피해자분들도 그렇지만 특히 당민코아 아저씨가 기억에 남아요아저씨는 당소가족학살(증언보기) 유가족이신데사건 당시 대학생이라 마을을 떠나있었고 나중에 소식을 들었다고 해요저희에게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했나요?”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오늘은 나의 가족이 모두 한국군에게 죽은 날이에요나에게는 아주 슬픈 날인데 어떤가요여러분도 저처럼 슬프신가요?”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그때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기행 가기 전에 피해자분들 얘기도 책으로 보고 구수정 박사님 강의라던가 고경태 기자님 전시회에 가서 얘기도 들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잡고 갔다고 생각했어요이 기행을 통해서 제대로 알고 제대로 알리자 이런 마음이었는데 정작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복잡했어요그때 다짐했던 건 앞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걸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살면서 잊지는 말아야겠다, 잊지 말고 계속 이 사실을 기억하고 적어도 나는 흘려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아요


이성적인 생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하미마을과 퐁니마을의 위령비에요이 두 위령비가 대조적으로 저한테 다가왔어요하미마을의 경우는 위령비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알고 갔어요가보니 깔끔하고엄청 크고길도 잘 포장되어있었어요반면에 퐁니마을 위령비는 가는 길도 힘들고 뭔가 투박한 느낌이었어요거기서 평화캠프에 참여했던 한국과 베트남 청년들이 위령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직접 나무를 심고흙도 직접 옮기고 그랬다고 해요마을 사람들도 참여해 함께 완성한 위령비라고 했어요그게 하미마을 위령비와 대비가 되더라고요퐁니마을의 위령비가 우리가 베트남 피해자들에게 해야 할 사과의 형식이나 모습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당시에 평화나비 활동을 하면서 갔으니까 제가 활동을 하며 만났던 할머니들 생각하면서 보게 되었거든요위안부 한일 합의가 하미마을 위령비 건설 같은 형식이란 느낌이 들었어요돈을 많이 줘서 설립하고 중요한 의미는 변질되었고요오히려 할머니들께 또 다른 가해를 하는 우리나라 정부와 일본 정부가 같아 보였어요화해의 방향이나 사과의 방향에서 그나마 이상적으로 보였던 것이 퐁니마을 위령비 이야기인거죠다른 것도 다 너무 기억에 남았지만 이런 게 크게 기억에 남아요.

푸옌성의 붕따우-토럼학살 위령비에 참배하고 있는 승호 님



[아침] 평화나비 활동을 하던 시기에 베트남 평화기행을 갔는데평화나비는 어떻게 시작했고당시 활동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승호] 동아리니까 해보고 아니면 말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조금씩 활동하면서 알아갔던 것 같아요평화나비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에요이전에는 사회 문제에 대해 잘 모르면 난 그거 잘 모르는데’ 이러면서 거리를 두는 자세였던 것 같아요그런데 평화나비를 하면서는 모르니까 하지 말자가 아니라 나 이거 모르네내가 어떤 걸 모르지?’로 바뀌는 거죠모르니까 다가가려고 하는 게 생겼어요일본군 성노예문제해결을 위해서 할머님들 얘기도 들었고 자연스럽게 수요시위도 가서 참석해보고 여러 경험을 하다보니까 점점 다른 주변에 있는 것들도 눈에 들어오고 그동안 몰랐던 것들도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그중에서도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고 또 공부를 하게 되고 그러다가 평화기행까지 가고 이렇게 점점 넓혀져 간 것 같아요



"우리가 증인이다" 평화나비 활동 당시의 승호 님






[아침] 평화나비 활동을 하다가 졸업을 하고 취업도 하셨어요그러면서도 올해 재단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어떤 마음이신가요?


[승호] 평화나비를 하면서 2년 반을 되게 치열하게 살았어요계속 공부하고학업도 하고 실천도 하고요정세에 대응도 하면서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요서명운동이라든지 1인 시위도 많이 하고요학교 안팎에서 내가 마음 가는 만큼 열심히 했었거든요컴퓨터 게임 좋아하는 사람이 컴퓨터 게임 많이 하는 것처럼 저도 내가 좋아서 마음 가는 만큼 한 거였어요그 마음이 좀 컸던 거죠

그러던 와중에 결국은 취업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취업 때문에 억지로 활동을 멈춘 거죠취업 준비기간에도 취업하고 나서도 정신이 없었어요모든 게 다 처음이고집도 구해야 되는 그런 기간을 보냈어요이후 여유가 생기자 지금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어요활동하던 때는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살다보니 마음이 사라진 것도 같았어요그런 내 모습이 싫다고 해야하나막 흘러가는 대로 살기는 싫어요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돈 벌고 지내고 이런 거요어느 날 불쑥 짜노(권현우 활동가)에게 연락을 해서 고민을 이야기했죠사실 저도 제 감정을 잘 모르겠고 너무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해본거죠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참여한 건 아니지만 참여를 하다보면 그래도 좀 더 생각이 정리가 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고민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요그렇게 책읽기 모임도 가보고 베트남어도 배워보고 그랬어요그리고 몽당연필 활동도 그런 의미로 시작했어요일단 부딪혀보려고요생각이 정리가 잘 안되니까요.


[아침] 그래서 올해 한베평화재단의 활동에 참여하게 된 건데 어땠어요?


[승호] 책읽기 모임에 세 번 참석했어요책을 스스로 읽게 되고참석해서 대화를 해야하니까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그런 과정이 좋았어요제가 바라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들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보는 과정이 좋았어요그런 것들도 물론 좋았지만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가 좋았어요독서모임에 올 정도면 이 일에 진심이기도 하고에너지가 되게 큰 사람들이잖아요그러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저한테 주는 에너지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사실 혼자 책 읽고 혼자 찾아보고 학습을 할 수 있지만 같이 하는 것에 대한 효과가 있어요누군가와 함께하는 힘이 있나봐요혼자 해결할 수 없는 고민에 대해서는요


[아침] 베트남어 초급반 수업도 함께 하셨죠평화로 가는 길」 상영회에도 참석하고 베트남전 시민평화기록전에는 설치작업도 도와주셨어요전시회 오프닝 행사도 보셨는데 어땠나요?


[승호] 베트남어 수업은 다른 일들에 비해 마음이 덜 했나 봐요우선 순위에서 좀 밀려서 몇 번 빠져서 아쉬워요오면 재밌고 배우는 즐거움이 있었어요베트남어 선생님이나 다른 분들 만난 것이 저에게는 너무 값진 일이에요


도안홍레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그 재판 과정 시기가 제가 취업 준비를 하던 기간이에요그래서 탄 아주머니가 저런 걸 하셨구나하면서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영화 이후에 GV하면서 구수정 선생님과 임재성 변호사님 이야기 듣는 시간도 좋았어요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임재성 변호사님 이야기였어요재판도 하나의 운동이고재판이 승소를 하던 안 하던 사람들의 인식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재판을 바탕으로 잘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승소를 해도 제대로 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점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저는 감성적인 사람이고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그러다 보니 감성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임재성 변호사님 같은 경우는 이성적으로 보려고 하고 그런 점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전시회는 오프닝 때 설명을 안 들었으면 크게 안 와 닿았을 것 같아요. 사진은 잘 찍으시는 분들이지만 사진만 보면 잘 몰랐을 것 같아요. 확실히 작가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찍었는지 듣고 나니까 다르더라고요. 특히 이동석 선생님은 정말 많은 차별을 받으셨던 분이잖아요. 일본 안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간첩단 조작사건도 겪으셨고요. 그러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를 알게 되고 접근하게 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사진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냥 봤으면 잘 몰랐을 텐데 사진 하나하나를 어떠한 마음으로 찍었는지 얘기해주시니까 사진 안에서 이동석 선생님이 좀 보인다고 해야 할지, 사진에서 작가의 마음이 겹쳐 보였어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저건 어떤 감정이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실화해위원회 앞 하미사건 조사개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승호님은 왼쪽에서 세번째)




[아침] 사람들이 한베평화재단에 대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승호]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있는 게 한베평화재단이잖아요. 그 안에서 나름 고민들도 있을 테고요 그런 거 보면 대단하다 싶어요. 문제해결의 중심은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얘기를 듣고 전해주는 창구의 역할을 하는 가장 큰 부분을 한베평화재단이 맡고 계시잖아요. 적어도 그 목소리를 우리가 들어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록 진실화해위원회의 하미학살 사건 조사 같은 문제도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아침] 책읽기 모임에서 내년에 다시 평화기행을 가보고 싶다고 했어요. 이미 다녀왔는데 또 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승호] 물론 가는 장소나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많이 다르지는 않겠죠. 하지만 제 상황이 변했고요, 그때 하지 않았던 새로운 고민들도 생겼고요, 그때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달라요. 제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면 또 다른 걸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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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기간에도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시민평화기록전 설치 작업에도 함께 하는 등 한베평화재단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양승호 님. 평화를 고민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을 응원합니다.

 

 

글 | 아침 활동가

사진 | 한베평화재단, 양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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