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인터뷰[인터뷰] 하모니카 부는 숲해설사의 베트남 이야기 / 신영옥
[인터뷰] 하모니카 부는 숲해설사의 베트남 이야기
- 후원회원 신영옥 -
까똑, 까똑! 베트남에 살던 때, 잊을만하면 그에게 연락이 왔다. 베트남 평화기행 당시의 일을 글로 쓰고 있다는 신영옥 선생님의 깨알 질문이었다. 평화기행에 참여한 지 수개월,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그는 베트남전쟁을 자신의 마음과 글에서 놓지 않았다.
2022년 가을, 한국에 정착한 내가 재단에서 베트남어 수업을 개설했을 때 첫 번째 신청자가 신영옥 선생님이었다. 추측컨대 그는 12명의 베트남어 수강생 중에 유일하게 집에서 복습을 꾸준히 하는 학생이었고 당연히 실력도 좋았다. 한번은 학생들의 대거 결석으로 그와 일대일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없어 강사로서 힘이 빠질 법도 했지만 그가 품은 베트남어에 대한 열의에 나도 으라차차 힘을 내며 신명나게 수업을 했었다.
한베평화재단 활동가에게 늘 힘을 주는 환한 얼굴의 사람 신영옥. 베트남어 수업이 있는 목요일이면 일찌감치 재단에 찾아와 베트남어 복습을 하거나 최근 배우고 있다는 하모니카 연주 연습을 하곤 한다. 이번 5월, 바쁜 업무로 심신이 피로한 우리 활동가들에게 그가 들려준 하모니카 연주 소리가 산바람 같은 밝고 시원한 에너지를 선물했다는 것을... 정작 그는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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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여름, 자신의 세 번째 베트남 평화기행을 앞두고 있는 신영옥 선생님
[짜노] 제가 신영옥 선생님을 알게 된지 9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어떠한 인연으로 베트남 평화기행에 오셨나요?
[영옥] 평화박물관이 인연이었어요. 2014년으로 기억하는데 한겨레신문이 백범기념관에서 현대사 관련 연속 강의를 하던 중 한홍구 선생님의 베트남전쟁 강의를 들었고 평화박물관 후원도 하게 되었죠. 몇 달 뒤 베트남으로 평화기행을 간다고 해서 저도 신청을 했고요. 그 후 계속 베트남을 마음에 두고 있다가 2018년에 또 베트남에 갔어요. 한베평화재단이 주최한 하미학살 50주기 위령제 참배단 평화기행이었죠. 그때는 제가 좋아하는 강우일 이사장 님이 위령제에 가신다고 해서 참가를 결심했어요. 저처럼 강우일 주교 님을 존경하는 촛불 동지 한 명도 꼬셔서 평화기행을 다녀왔지요.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한베평화재단 후원회원이 되었고요.
[짜노]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경험이나 기억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영옥] 제 고향이 충청도 예산의 삽교라는 곳이에요. 어렸을 때 친한 이웃집의 장 씨 오빠가 있었는데 그분이 베트남전쟁에 다녀왔어요. 월남에 다녀온 장 씨 오빠가 이웃들에게 씨레이션 같은 걸 나눠졌죠. 그때 베트남에서 벌어온 돈으로 텔레비전도 샀는데, 아마 1972년의 일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는 장 씨 오빠가 베트남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물어볼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베트남전쟁 문제에 관심이 생긴 후 그 오빠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그 양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연락을 해봤어요. 오빠는 지금도 삽교에 살고 있고 당시는 청룡부대원이었는데 고엽제 등의 피해는 없다고 했어요. 나는 사실 민간인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깊어지려하자 오빠가 ‘고향에서 만나면 간만에 밥이라도 먹으며 더 이야기를 하자’고 해서 더는 물어보지 못했어요. 삽교에는 제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서 고향에 갈 일이 없어 그 오빠를 아직 만나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제가 2013년에 사이버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참전군인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고엽제 후유증으로 두 번이나 암에 걸린 분이었어요. 그분에게 조심스럽게 민간인학살 이야기를 물어봤었는데 전혀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죠.
[짜노] 베트남 평화기행을 두 번이나 다녀오셨는데, 어떠한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영옥] 퐁니 마을에서 만난 탄 아주머니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하미 마을 이야기는 참 가슴이 아프고 화도 나고 그래요. 월남참전전우복지회가 지원금을 줘서 위령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비문을 문제 삼아서 연꽃으로 비문을 덮은 사건이나 구수정 선생이 들려준 기공식 당시 일화 등이 지금도 가슴에 사무쳐요. 그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면 너무도 기가 막혀요. 이런저런 대의명분을 내걸기는 했지만 참 인간 말종 같은 짓을 했구나…. 너무 속이 상했어요. 평화기행 때 구수정 선생님이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보고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끊어야 하지 않겠냐 권한 적이 있었어요. 하미위령비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땅콩밭 뚝길을 걸으며 “담배라도 피우며 속상한 마음을 달래셨겠군요.” 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럼 계속 피워도 되는 거지요?”라고 말씀하셔서 둘이 씁쓸하게 웃었지요.

2018년 3월 하미학살 50주기 위령제. 제사 후 음복연을 나눈 후 마을의 피해자, 유가족들과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환한 웃음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 신영옥.
[짜노] 퐁니‧퐁녓 사건 국가배상소송 1심 때에는 법정 방청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법정에서 오간 이야기를 들은 소감, 그리고 승소 소식을 접했을 때는 어떠셨나요?
[영옥] 그때 박진석 변호사가 90분에 걸쳐 열변을 토하며 최종 변론을 했잖아요. 퐁니‧퐁녓 사건 관련 저렇게 많은 증거가 있구나, 사진이 포함된 미군조사보고서도 있고 저렇게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 변호인단이 정말 세세하게 준비를 많이 했구나, 그야말로 감탄을 했죠. 원고 측 대리인의 변론 이후 휴식 시간에 저는 저녁 준비를 해야 해서 집에 가야했는데 대한민국 측 대리인의 변론을 듣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런데 제가 먼저 간다고 하니 한 사람이 “아마 대한민국 측에서 엉뚱한 소리를 많이 할 텐데, 듣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예요”라며 농담을 하더라고요. 사실 그 정도 증거가 있으면 승소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석열 정권이라 당연한 것도 부당한 일이 되는 기막힌 일들이 계속 이어져 판결 결과도 매우 걱정되었는데 승소 소식을 듣고 너무 다행이다 싶었어요.
[짜노] 한베평화재단이나 열시꽃의 베트남전쟁 관련 강연,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뵈어요. 베트남전쟁 문제에 이렇게 식지 않는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함께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영옥] 베트남전쟁 문제에만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인권, 평화, 정의 등의 이슈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어요. 한베평화재단에서는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어 수업을 듣고 있는데 재단을 통해 계속 강의나 프로그램 소식을 듣게 되어서 참가를 하게 되었고 구수정 선생의 열시꽃도 제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최근 책방 모임에서 홍세화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의 권유로 인권연대를 후원하게 되어서 그곳의 강연도 조만간 신청해서 듣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광명시의 빛누리 독서회에 참여하면서 꾸준히 책을 읽었어요. 어려운 내용의 책은 버거워서 재미있는 책 위주로 선택하는 편입니다. 사회 문제나 정의 실현과 관련하여 내가 직접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원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고 염치도 없어서 후원회원이라도 되어주자! 그렇게 후원을 여러 곳에 하고 있습니다.
[짜노] 베트남어를 6개월 넘게 배우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영옥] 아무래도 제가 베트남에 대한 편애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베트남에 대한 부채감이 편애가 되었다고나 할까. 재단에서 베트남어 교실을 열어주셔서 기회가 왔다 싶어 신청을 했죠. 우리 언니네 아들의 부인이 베트남 새댁이에요. 그리고 우리 동네에도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이 있어서 베트남어로 “오래간만이네요” 정도의 말은 하고 싶었어요. 외국어를 배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막상 공부하니 지겹다는 생각은 안 들더군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개별적으로 시간을 내서 공부를 하고 있고 윤선애 선생님의 베트남어 인강도 들을 수 있어 좋고 재밌더라고요.
하루는 지하철에서 내릴 때 함께 수업을 들은 수연 씨와 헤어지며 제가 베트남어로 “땀비엣(잘가)”이라고 인사를 했어요. 그런데 그걸 본 베트남 유학생이 베트남어를 배우고 있냐, 어떤 목적으로 배우냐 물어보며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그 친구가 베트남어로 “꼬렌”이라고 했는데 내가 못 알아들으니 웃으며 “파이팅!”이라고 했죠. 나중에 수업을 통해 ‘꼬렌(cố lên)’의 뜻을 알았죠. 베트남어를 배워서 더 많은 말을 해보고 싶었는데 막상 베트남 사람을 만나면 베트남어가 떠오르지 않아요(하하). 그래도 베트남어로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하면 베트남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늘 반겨줍니다.

수강생들의 대거 결석으로 신영옥 선생님과 일대일 베트남어 수업을 한 날
[짜노] 숲해설사로 오랜 기간 활동하셨습니다. 요즘은 하모니카도 배우고 있는데요. 선생님의 최근 일상과 생활은 어떠신가요?
[영옥] 2010년부터 13년간 숲해설가로 일을 했고 최근 은퇴를 했어요. 숲해설사는 그야말로 숲을 해설하는 일인데 나무나 풀 등의 생태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숲속 생태를 기반으로 놀이도 하고 산책 코스를 안내하기도 해요. 나무, 꽃, 곤충을 함께 관찰하고 작은 꽃을 확대경으로 보며 암술과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도 해줍니다. 주로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진행을 했어요. 제가 광명에 살아서 지역에 있는 안터생태공원을 자주 갔어요. 그곳에 내륙습지나 금개구리 서식지 등이 있거든요. 어른들도 재미있어할 코스와 이야기들이 있어서 은퇴는 했지만 기회가 되면 어른들을 대상으로 숲해설을 해보고 싶어요. 숲에는 양육강식의 관계가 있어요. 먹고 먹히는 게 그네들에게는 또 평화에요. 최상위 포식자만 있으면 공멸하거든요. 숲해설사를 하면서 더불어 사는 평화의 깊은 뜻을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얼마 전 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글을 써야겠다, 그런 마음이 생겨서 숲해설사를 정리했어요. 매달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작은책> 글쓰기 교실에 참여하고 있고, <작은책> 5월호에 제 글도 실렸죠. 앞으로는 에세이 등으로 문학상에 도전해볼까 해요. 그리고 제가 이번 여름 베트남 평화기행에 신청을 했어요. 예전에 써둔 평화기행 글이 다 사라져 버렸는데,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또 베트남에 가네요. 이번에는 베트남어 수업 동지 김수연 씨(후원회원)와 함께 갑니다!
[짜노] 베트남전쟁이 한국 사회에 남긴 숙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영옥] 베트남전쟁 당시 파병이 정치 외교적인 상황에 휘말려서 벌어진 일이다, 그때는 파병이 불가피했고 전쟁 상황이라 벌어진 일이다, 라고 하더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우리 후손들에게 그나마 떳떳한 어른으로 남을 수 있을 거구요. 비록 베트남전쟁 관련 문제가 당장은 해결되지 않더라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우리 사회가 마땅히 추구해야할 정의나 공동선을 바로 세우는 측면에서 베트남전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참여하는 일이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한베평화재단 활동가처럼 뛸 수는 없지만, 자신의 생활이나 삶속에서 1%의 관심 정도는 계속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베평화재단이 개발한 하미 연꽃 비문 퍼즐 1호 체험자 신영옥
글 | 권현우 활동가(사무처장)
사진 | 한베평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