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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사업[인터뷰] 빈호아 장학금 후원자 김재영, 박병현, 이문현, 황의탁씨

빈호아 장학금 후원, F4가 한다

베트남 장학사업 후원자 김재영, 박병현, 이문현, 황의탁씨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6월 16일, 한베평화재단 사무실에 네 명의 아저씨들이 찾아왔다. 친구사이인 이들은 베트남 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결의를 하고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재단을 방문한 것이다. 한베평화재단이 그동안 해왔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장학금 사업에 관한 짧은 브리핑 후, 사무실 부근 정겨운 이름의 ‘샛별당’에서 주님(^^)을 앞에 두고, 장학금 지원을 하게 된 동기를 비롯하여 여러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Q: 각자 소개를 좀 해주세요.


이문현: 네, 우리는 40년 지기입니다. 광주제일고 77년 졸업동기죠. (왼쪽부터 김재영, 황의탁, 박병현, 이문현) 

 

Q: 광주제일고를 명문으로 알고 있는데 모두 공부 잘하셨나 봅니다. ^^ 지금 찍은 사진과 함께 올릴 수 있도록 다른 사진을 주실 수 있을까요? 고등학교 사진이면 더 좋겠네요. 


박병현: 어휴, 우리 고등학교 때는 형편이 어려워서 사진을 지금처럼 쉽게 못 찍었어요. 그래서 사진도 없네요.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기에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거죠. 장학금을 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의미 있는 사업이라고 여겼고요.


Q: 그렇지 않아도 장학금 얘기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이런 뜻을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데, 좀 더 구체적으로 장학금 지원을 하게 된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어요?


박병현: 우리가 모임이 있어요. ‘무지개모임’이라고. 근데 7명이 아니라 8명 모임이네요.(^^) 스펙트럼에 잡히지 않는 색도 있다는 이유로 굳이 7명을 고집하진 않아요. 보통 월 2~3회 만나 친목 도모를 하고 있고, 지금은 장학금 지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우리 네 명으로 밀알처럼 시작했지만 각 회원들의 자질이 훌륭해 크게 확대할 수 있을 듯 하네요.


이문현: 김재영이 원래 의미 있는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다녀와서는 기행담을 꼭  전해줬어요. 이 친구가 2016년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때 굉장히 분개했어요. 우리가 일본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생각하게 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죠. 전쟁, 학살이 인류의 잔혹상으로 계속 있어왔지만 우리가 했다니 더욱 잔인하게 느껴져서, 사죄하는 심정으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박병현: 개인적으로는 저는 베트남과 인연이 있어요. 큰형이 1972~73년 월남에 생계 때문에 공병대로 갔거든요. 비록 어머니께서 부친이 없는 상황에서 장남을 보내 그 충격으로 몇 년 고생하셨지만, 그 당시 형이 매달 보내는 삼십 몇 불의 돈으로 힘든 형편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우리 집은 월남전 때문에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받은 경우라 할 수 있네요. 형은 현재 고엽제 피해자예요. 베트남 전으로 당시 가정경제에 혜택을 받았지만, 어쨌든 우리가 잘못한 부분들은 있으니... 장학금 지원에 동참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가깝고 아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못주고 있는데 굳이 ‘멀리 떨어진 베트남에 지원하는 게 정당한가?’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김사장이 평화기행 후 베트남을 얘기했을 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꼭 관계의 거리감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어 동참하게 되었죠. 내가 좁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거죠. 


황의탁: 제 경우는 구수정 상임이사와 페북 친구에요. 그동안 구 이사의 활동을 보아왔고 그 삶을 믿기에 후원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계속 있었죠.


김재영: 장학금 지원을 한다는 것이 좀 이기적이라고 생각도 들어요. 우리를 위해서 하는 일로 사실 희생이나 헌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박병현: 그렇죠, 모든 것들이 자기만족이고 자기 본위적인 것이죠. 장학금 지원도 베트남 대학생에게 하지만 결국은 우리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여겨져요.


Q: 장학금 지원결정을 하는데 김재영 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컸군요. 김재영 선생님, 평화기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뭐였죠?


김재영: 질문을 들으면서 ‘가는 곳마다 장면이 선명해서 어느 하나를 고르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네요.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참배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손을 바들바들 떨던 할머니. (빈딘성 쯔엉탄 위령비 갔을 때 우연히 만난 할머니. 학살 이후 마을이 사라졌는데 아무도 없는 마을에 할머니는 무덤을 돌보기 위해 다시 돌아옴). ‘내 가족 5명이 묻혀있다’고 말하는 웃는 표정의 할머니였죠. 우리 모습을 보고 고마워하는 표정을 보며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올라왔어요.


이문현: 왜 그렇게 학살을 했는지, 중요한 것은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네요. 


김재영: 48주년 빈안 학살 위령제에 갔다 왔어요. 68년에 발생한 학살을 추모하는 평화기행이었는데, 구수정 박사를 보면서 이 마을에서 돌아온 혼령이 환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웃음)


Q: 평화기행을 가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죠. 네 분이 장학금 지원을 결심하면서 가장 염두에 뒀던 점은 뭔가요?


황의탁: 여러 후원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기부할 때 원칙이 지속가능성을 갖자는 것이에요. 그러다보니 스스로도 못 믿을 상황이 올까봐 일정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5년간 월 얼마를 생각했으면, 총액을 일시불로 후원해왔어요. 이번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게는 못하지만 어쨌든 지속가능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문현: 장학금을 준다는 것 자체는 하나의 행위에 불과하지만 이로 인해 맺어질 인연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네요. 우리 아이 또래의 인도네시아 소녀를 후원해 지금 시집갈 나이가 되었는데 보면 가슴이 저려요. 아주 사소한 도움에 불과한 후원만 해서 그 아이에게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박병현: 이 나이에 제대로 못하면 시작도 안했을 것이어서 그 정도는 감당할 수도 감당하려고 장학금지원을 하려 합니다. 


Q: 장학사업의 기대하는 성과는 어떤 것이 있으세요?


이문현: 역사의 장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혔기에 사죄하는 의미로 하는 것이지만 장학금으로 공부하게 되는 젊은이들이 평화의식이 고양되어 미래지향적인 한국과 베트남, 세계에 평화 지향적 사고방식을 갖게 되길 바래요.


박병현: 평화의지를 마음속에 심어주는 노력을 어른들이 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교육이 중요하죠. 


Q. 선생님들의 결의를 한베평화재단이 실행하게 되는데, 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황의탁: 활동을 길게 보고 같으면 좋겠어요. 천천히 타박타박 꾸준히 간다는 마음으로 해주길 부탁합니다.


김재영: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의 추념사가 있었죠. 이에 대한 외교적 논란도 생겼고 여러 비판도 있었는데, 저는 문대통령은 현충일이어서 전몰군경 위로와 예우차원에서 한 것으로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조국경제에 보탬이 되었다는 말인데. 잘못 말했죠. 이에 관한 한베평화재단의 성명서는 적절했다고 봅니다. 이렇게 재단이 필요한 때 적절한 목소리를 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자네는 어떤가?’, ‘자네는 ~ 했는가?’ 등 서로를 ‘야, 혹은 너’라는 호칭에서 시작해 ‘자네’로 부르게 된, 긴 세월을 함께 한 친구들.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는 보통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원빈 아저씨’보다 더 멋짐을 드러내는 무지개 모임의 F4. 인터뷰가 끝난 며칠 후, 이들은 4천만 원의 장학금을 재단에 전했다. 

통 큰 후원을 받게 되면서, 고민은 깊어진다. ‘어떻게 하면 이 장학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하고. 


글.인터뷰: 전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