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학살의 증거잖아”
베트남 피해자, 신분증을 기증하다
- 베트남전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중…> 에필로그-
“전시회가 끝난 후, 꼭 다시 찾아와 돌려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1월, 한베평화재단이 개최한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전시회 [확인중…]. 다들 기억하시죠? 재단은 한국군 학살 피해자 여덟 명의 신분증을 유가족 분들에게 건네받아 한국에 전시를 하였고 신분증에 얽힌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함께 전하였습니다. 전시회를 마친 후 재단은 지난 2월에 유가족 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신분증을 돌려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방문 일정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가족 분들에게 약속을 드렸던 재단의 구수정 상임이사가 코로나19로 베트남 입국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진지 몇 개월. 결국 재단은 유가족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고 베트남에 있는 재단의 활동가가 직접 마을을 방문하여 신분증을 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띤토학살 유가족 쩐민. 오른손에는 희생자인 어머니의 신분증 원본, 왼손에는 재단이 선물한 신분증 복원본.
수개월 만에 돌아온 어머니의 신분증을 환한 미소를 띠며 받아든 띤토학살 유가족 쩐민 할아버지. “아이고~ 한국군 때문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나도 못한 한국 여행을 다녀오셨네”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후 말없이 신분증에 담긴 어머니의 사진을 애초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셨습니다. 불에 타고 사진만 남은 어머니 응우옌티제의 신분증... 재단은 쩐민 할아버지에게 원본 신분증과 함께 불에 탄 부분을 복원한 복제본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이름, 생년월일, 본적지가 적혀 있는 되살아난 신분증을 보며 “와~ 이거 진짜 같구먼.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며 기뻐해주셨습니다.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응우옌티즈아
“여기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어째서 인정을 안 하는 거야?” 아버지의 신분증을 돌려받은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응우옌티즈아 할머니의 첫 마디였습니다. 할머니는 2019년 4월에 청와대에 청원서를 보낸 103명의 청원인 중 한 명입니다. 같은 해 8월에 전시회를 위해 할머니는 아버지의 신분증을 한국으로 보냈고 그 후 2개월 뒤 국방부로부터 청원 회신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보유한 전투 사료에 학살 관련 자료가 없다는 국방부의 답변에 대한 할머니의 항변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게(신분증) 바로 증거인데, 자료가 없다고? 지금도 학살을 떠올리면 울분이 터져... (들판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때 마을 사람들이 한국군을 피해 사방팔방 도망치고, 시체더미가 곳곳에 널려 있던 게 지금도 생생한데! 옆집에 사는 띠엔 할머니한테도 물어봐. 저 건네 동네 사는 즈엉 할머니한테도 물어보라구!”
지난 6월 중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판반득.
늦었지만 그의 곁으로 돌아온 할아버지 판히에우의 신분증
한국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 신분증을 기다리다, 세상과 이별한 분도 계셨습니다. 그는 바로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판반득(향년 58세) 아저씨.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에 온 가족이 죽은 방공호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남은 네 살배기 판반득. 그는 전시회를 위해 할아버지의 신분증을 재단에 빌려주면서 연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 분이셨습니다. 신분증이 한국에 가 있는 중에는, 몇 번은 약주를 하시다 전화를 주셔서 “할아버지 신분증은 잘 있지? 코로나 끝나고 올 때 되면 꼭 연락해라!”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던 아저씨. 그러나 재단은 지난 6월 중순, 판반득 아저씨께서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였습니다. 판반득 아저씨의 아내 분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조의를 표했습니다. 신분증을 돌려드리니 아내 분께서 판반득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지엔니엔학살 생존자 판히에우(판반득의 할아버지)의 제단
“우리 남편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너무 그리워했어요. 학살로 부모 형제 다 죽고 할아버지밖에 없었거든. 평소에 신분증을 제단의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아래에 두었었는데, 한국에 신분증 원본을 빌려준 동안에는 복사본을 코팅해서 매일 아침 향불을 올릴 때마다 보더라고.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참 극진했어요.”
지엔니엔 마을 인근에 위치한 하떠이 마을. 시어머니의 신분증과 마주한 하떠이학살 유가족 쩐티키엣 할머니는 신분증을 보자마자 “그때 시어머니랑 같이 마을에 남았으면 나도 분명 죽었을 거야”라며 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모르겠어. 그때 우리 마을에는 유격대도 없었는데 한국군이 왜 다 죽였을까.” 키엣 할머니는 직접 집까지 찾아와 전시회 이야기를 들려주고 약속대로 신분증을 돌려준 재단에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보낸 조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하떠이학살 유가족 쩐티키엣
“그거 너희들이 보내는 거지? 위령제 때마다 한국에서 조화를 보내주잖아. 우리 아들 손잡고 위령비에 가서 한국 사람들 이름이 적힌 조화를 보곤 해. 11월 26일이야. 오늘도 와줘서 정말 고마운데, 위령제 때 찾아와주면 나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정말 기뻐할 거야.”
피해자의 신분증은 유가족 분들이 갖고 있는 피해자의 유일한 유품이자 학살의 역사를 품고 있는 증거물이기도 합니다. 호이안의 껌안학살 유가족 지에우 아주머니는 자신과 같은 유가족들에게 이러한 신분증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껌안학살 유가족 즈엉독의 아내 지에우
“이게 정말 귀한 물건인거 알지? 여기 ‘월남공화’라고 적혀 있잖아. 전쟁 때 주민들이 갖고 있었던 신분증이야. 이 신분증을 갖고 있는 유가족들이 정말 드물어. 한국군이 다 쏴죽이고 집이고 뭐고 다 불태워버렸으니 어떻게 신분증이 남았겠어.”
* * * * * * *
유가족 분들에게 신분증을 돌려드리며 전시회 이야기, 신분증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 등을 소상히 말씀드렸고 그분들 역시 다시금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시며 마음속에 쟁여놓았던 이야기들을 저희에게 털어놓으셨습니다. 저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유가족 분들에게 신분증 원본을 돌려드리며 한국에서 제작한 복제본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드렸습니다. 차후에 있을 한베평화재단의 아카이브 전시회나 베트남전쟁 기록관(가칭) 등을 위한 신분증의 영구 기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덟 명의 유가족 분들 중 고심 끝에 네 명의 유가족이 재단에 신분증을 기증해주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이 신분증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이제 베트남을 완전히 떠나 한국에 오게 된 네 개의 학살 피해자 신분증. 긴 세월을 지나며 희생자의 유품으로, 역사의 증거물로 남게 된 이 신분증이 앞으로 수많은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평화의 반딧불로 환하게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염원한 유가족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한베평화재단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든든한 응원과 성원,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재단 후원 안내)

동한학살 유가족 쩐반민. 그는 할아버지의 신분증을 인연으로 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기증한 네 개의 신분증.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지엔니엔학살 피해자 판히에우, 하떠이학살 피해자 박티럽,
동한학살 피해자 쩐꾸에, 띤토학살 피해자 응우옌티제
- 참고 기사: [한겨레21] 유품은 알고 있다
“이게 학살의 증거잖아”
베트남 피해자, 신분증을 기증하다
- 베트남전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중…> 에필로그-
“전시회가 끝난 후, 꼭 다시 찾아와 돌려드리겠습니다.”
지난해 11월, 한베평화재단이 개최한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전시회 [확인중…]. 다들 기억하시죠? 재단은 한국군 학살 피해자 여덟 명의 신분증을 유가족 분들에게 건네받아 한국에 전시를 하였고 신분증에 얽힌 있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함께 전하였습니다. 전시회를 마친 후 재단은 지난 2월에 유가족 분들을 직접 찾아뵙고 신분증을 돌려드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방문 일정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가족 분들에게 약속을 드렸던 재단의 구수정 상임이사가 코로나19로 베트남 입국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진지 몇 개월. 결국 재단은 유가족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하고 베트남에 있는 재단의 활동가가 직접 마을을 방문하여 신분증을 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수개월 만에 돌아온 어머니의 신분증을 환한 미소를 띠며 받아든 띤토학살 유가족 쩐민 할아버지. “아이고~ 한국군 때문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나도 못한 한국 여행을 다녀오셨네”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그후 말없이 신분증에 담긴 어머니의 사진을 애초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또 바라보셨습니다. 불에 타고 사진만 남은 어머니 응우옌티제의 신분증... 재단은 쩐민 할아버지에게 원본 신분증과 함께 불에 탄 부분을 복원한 복제본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어머니의 이름, 생년월일, 본적지가 적혀 있는 되살아난 신분증을 보며 “와~ 이거 진짜 같구먼.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며 기뻐해주셨습니다.
“여기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어째서 인정을 안 하는 거야?” 아버지의 신분증을 돌려받은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응우옌티즈아 할머니의 첫 마디였습니다. 할머니는 2019년 4월에 청와대에 청원서를 보낸 103명의 청원인 중 한 명입니다. 같은 해 8월에 전시회를 위해 할머니는 아버지의 신분증을 한국으로 보냈고 그 후 2개월 뒤 국방부로부터 청원 회신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한국이 보유한 전투 사료에 학살 관련 자료가 없다는 국방부의 답변에 대한 할머니의 항변은 길게 이어졌습니다.
“이게(신분증) 바로 증거인데, 자료가 없다고? 지금도 학살을 떠올리면 울분이 터져... (들판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때 마을 사람들이 한국군을 피해 사방팔방 도망치고, 시체더미가 곳곳에 널려 있던 게 지금도 생생한데! 옆집에 사는 띠엔 할머니한테도 물어봐. 저 건네 동네 사는 즈엉 할머니한테도 물어보라구!”
한국으로 잠시 여행을 떠난 신분증을 기다리다, 세상과 이별한 분도 계셨습니다. 그는 바로 지엔니엔학살 유가족 판반득(향년 58세) 아저씨.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에 온 가족이 죽은 방공호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남은 네 살배기 판반득. 그는 전시회를 위해 할아버지의 신분증을 재단에 빌려주면서 연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 분이셨습니다. 신분증이 한국에 가 있는 중에는, 몇 번은 약주를 하시다 전화를 주셔서 “할아버지 신분증은 잘 있지? 코로나 끝나고 올 때 되면 꼭 연락해라!”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던 아저씨. 그러나 재단은 지난 6월 중순, 판반득 아저씨께서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였습니다. 판반득 아저씨의 아내 분을 찾아뵙고 진심으로 조의를 표했습니다. 신분증을 돌려드리니 아내 분께서 판반득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우리 남편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너무 그리워했어요. 학살로 부모 형제 다 죽고 할아버지밖에 없었거든. 평소에 신분증을 제단의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아래에 두었었는데, 한국에 신분증 원본을 빌려준 동안에는 복사본을 코팅해서 매일 아침 향불을 올릴 때마다 보더라고.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참 극진했어요.”
지엔니엔 마을 인근에 위치한 하떠이 마을. 시어머니의 신분증과 마주한 하떠이학살 유가족 쩐티키엣 할머니는 신분증을 보자마자 “그때 시어머니랑 같이 마을에 남았으면 나도 분명 죽었을 거야”라며 긴 한숨을 내뱉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모르겠어. 그때 우리 마을에는 유격대도 없었는데 한국군이 왜 다 죽였을까.” 키엣 할머니는 직접 집까지 찾아와 전시회 이야기를 들려주고 약속대로 신분증을 돌려준 재단에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보낸 조화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그거 너희들이 보내는 거지? 위령제 때마다 한국에서 조화를 보내주잖아. 우리 아들 손잡고 위령비에 가서 한국 사람들 이름이 적힌 조화를 보곤 해. 11월 26일이야. 오늘도 와줘서 정말 고마운데, 위령제 때 찾아와주면 나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정말 기뻐할 거야.”
피해자의 신분증은 유가족 분들이 갖고 있는 피해자의 유일한 유품이자 학살의 역사를 품고 있는 증거물이기도 합니다. 호이안의 껌안학살 유가족 지에우 아주머니는 자신과 같은 유가족들에게 이러한 신분증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이게 정말 귀한 물건인거 알지? 여기 ‘월남공화’라고 적혀 있잖아. 전쟁 때 주민들이 갖고 있었던 신분증이야. 이 신분증을 갖고 있는 유가족들이 정말 드물어. 한국군이 다 쏴죽이고 집이고 뭐고 다 불태워버렸으니 어떻게 신분증이 남았겠어.”
* * * * * * *
유가족 분들에게 신분증을 돌려드리며 전시회 이야기, 신분증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 등을 소상히 말씀드렸고 그분들 역시 다시금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시며 마음속에 쟁여놓았던 이야기들을 저희에게 털어놓으셨습니다. 저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한베평화재단은 유가족 분들에게 신분증 원본을 돌려드리며 한국에서 제작한 복제본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제안을 드렸습니다. 차후에 있을 한베평화재단의 아카이브 전시회나 베트남전쟁 기록관(가칭) 등을 위한 신분증의 영구 기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덟 명의 유가족 분들 중 고심 끝에 네 명의 유가족이 재단에 신분증을 기증해주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이 신분증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렸고 꼭 다시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이제 베트남을 완전히 떠나 한국에 오게 된 네 개의 학살 피해자 신분증. 긴 세월을 지나며 희생자의 유품으로, 역사의 증거물로 남게 된 이 신분증이 앞으로 수많은 한국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평화의 반딧불로 환하게 빛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염원한 유가족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한베평화재단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든든한 응원과 성원,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재단 후원 안내)
- 참고 기사: [한겨레21] 유품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