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현충원에 자리잡은 두 분의 사연을 들어보셨나요? 베트남전 최초의 국군포로였던 고 유종철 님. 군단장의 허가를 받고 성확정 수술을 받았으나 강제전역 조처되고 이듬해 생을 마감한 고 변희수 님.
300일 넘는 포로 억류기간 전사 처리돼 가짜 묘직을 만들었다가 1년 만에 파묘하고 51년간 비워놓았던 그 자리에 고 유종철 님이 돌아와 잠들게 되었습니다. 22세의 나이로 변희수 님이 생을 뒤로 한 이듬해 법원은 강제전역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고 결국 국방부가 순직처리하여 그도 현충원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공식 국군포로로 인정해주지 않아 평생 울화에 시달렸다는 유종철 님,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겠다”며 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변희수 님. 국가는 두 분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고나서야 겨우 쉴자리를 하나씩 내어주었습니다. 유종철 님과 변희수 님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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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현충원에 자리잡은 두 분의 사연을 들어보셨나요?
베트남전 최초의 국군포로였던 고 유종철 님.
군단장의 허가를 받고 성확정 수술을 받았으나
강제전역 조처되고 이듬해 생을 마감한 고 변희수 님.
300일 넘는 포로 억류기간 전사 처리돼 가짜 묘직을 만들었다가
1년 만에 파묘하고 51년간 비워놓았던 그 자리에
고 유종철 님이 돌아와 잠들게 되었습니다.
22세의 나이로 변희수 님이 생을 뒤로 한 이듬해
법원은 강제전역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고
결국 국방부가 순직처리하여 그도 현충원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공식 국군포로로 인정해주지 않아
평생 울화에 시달렸다는 유종철 님,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겠다”며
군인으로 살고자 했던 변희수 님.
국가는 두 분에게 수많은 상처를 주고나서야
겨우 쉴자리를 하나씩 내어주었습니다.
유종철 님과 변희수 님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일까요?
진상규명
하미 사건 행정소송 패소 판결 규탄 기자회견
진실화해위원회의 하미학살 사건 각하 처분에 대한 정당성을 다툰 행정소송 1심 선고(6월 25일)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실망스럽게도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과거사기본법에 대한 너무도 제한적이고 보수적인 해석이었고 베트남전 피해자인 원고에 대한 이해 등이 매우 부족한 판결이었습니다. 규탄의 목소리를 높인 시민들과 낙담과 좌절감 속에서 성토의 발언을 하신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평화교육
진상규명을 가로막는 권력 분석하기
4월부터 시작된 베트남전 진상규명 운동설계사를 위한 비폭력트레이닝이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7월에는 진상규명을 더디게 하는 권력을 분석하고, 함께 연대하여 목소리를 높일 궁리도 하고, 더 많은 시민을 우리편으로 끌어오기 위한 메시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보면 볼수록 함께하고 싶어지는 운동설계사들의 모임 소식을 만나보세요.
평화의 mat
뭐라도 하려는 마음 / 희음
희음 님은 과자를 쥔 작은 손을 보았습니다. '한 아이가 생일에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고, 울고 기도하며 제발 멈추라고 외칩니다. 오래된 구조적 부정의가 야기한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로서 희음 님은 멸종으로 향해가는 걸음을 멈추자고 합니다. 전쟁 폭력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무참히 가해지는 것을 보며 뭐라도 하려는 마음이라도 품자며 우리를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