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읽기[평화의 mat]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꽃에 물을 줄 수 있기를 / 김자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꽃에 물을 줄 수 있기를


김자영(고양자유학교 방울)


 

 ‘압도’되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마주하자마자 말문이 막히고 아무런 판단이 들지 않으며 그저 쏟아지는 감각을 살갗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는 순간. 나에게 한베평화재단의 베트남 평화기행은 그러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몰려드는 어떠한 것들 속에서 휘청대는 것을 감추려 추레한 미소를 짓던 몇 장면이 떠오른다. 죄스럽고 부끄럽다는 단어보다 더 알맞은 언어는 없을까 잇새로 혀를 굴려보지만 차마 소리가 되지 못했다. 그러한 까닭에 어떠한 말도 보태지 못한 순간이 태반이었다. 마치 아무런 준비 없이 어떠한 무대에 내던져진 사람처럼 얼이 빠진 채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들 앞에서 몸을 옹송그렸다. 실재했던 학살의 피해를 격렬하게 고발하는 증오비와 한국군의 만행에 찢긴 영혼들을 위로하는 위령비 앞에서. 고통과 순수가 느껴지는 학살 피해 생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의 눈동자 앞에서. 나는 그저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기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그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모자란 글줄로 주워섬기고 있음을 굳이 숨기고 싶진 않다. 하나의 개인이지만 동시에 어딘가에 속한 일부로서 나의 무지와 날 것의 감정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를 먼저 전하고 싶다.


 내가 이번 기행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제법 우연한 계기였다. 우연. 세상에 이처럼 묘한 말이 또 있을까. 사실 우연이라고 하였지만 우연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우연보다는 필연을 믿는 사람이기에 기행이 결정된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이 기행에 참여하게 될 팔자였나,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다만 삶의 속도에 몰려 깊이 있는 이야기나 배경을 잘 살피지 못한 나의 상황이 겸연쩍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베트남으로 향하게 되었다.


 낯선 풍경,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그런데도 익숙한 무언가. 최초로 발을 디딘 다낭 공항의 모습은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공항의 안내 표지에 한국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어와 영어, 그리고 그 옆에 한국어. 다른 언어들을 제치고 자리한 한국어. 공항에 한국어를 표기하는 곳이 어디 이곳뿐이랴. 하지만 공항이라는 상징성 있는 관문 공간에 들어찬 한국어를 ‘베트남 다낭’이라는 도시에서의 한국이 가진 위상이라고 읽어내기에는 거칠한 거스러미가 이는 순간이었다. ‘경기도 다낭시’라는 언어유희를 나눌 만큼 한국인들이 관광으로 많이 방문하는 이곳에 내가 온 이유를 겹쳐보는 순간 아찔함이 먼저 발끝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 감정은 여행 내내 묵직하게 매달려 와 내 걸음을 늦추게 만들었다.



 

한국어 표기가 눈에 띄는 다낭 공항의 안내 표지


한국인 중심의 관광 상품_바구니 배 체험



 일정 가운데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순간을 꼽자면 나는 지체 없이 빈호아 마을을 방문했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기행 초반 방문했던 빈호아 마을, 그리고 마을 초입에 있던 빈호아학살 증오비. 활자와 사진을 통해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중압감과 죄책감이 나를 덮쳐왔다. ‘하늘에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는 글귀 아래 빽빽하게 채워진 한국군의 끔찍한 만행들. 한 글자, 한 글자마다 서린 분노와 비통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몸을 굳게 만들었다. 거기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한국군과 같은 한국인이 아닌가. 아주 거대한 불길 앞에 홀로 서 심판을 기다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향을 피우고 꽃을 올리며 참배를 하는 내내 울렁이는 속을 다잡을 수 없었다. 울컥하는 감정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이 감정을 좀 더 설명한다면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솔직하게 나는 무서웠던 것 같다. 이토록 처참하고 잔혹한 참상에 머리가 굳어 버릴 정도로 겁이 났다. 막연한 생각들이 집채만 한 파도가 되어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누가 어떠한 권리로 그들의 생을 가져갈 수 있으며, 왜 그토록 심한 고통을 받아야만 했단 말인가. 그 상황에 놓인 것이 자신이라면, 자신의 가족이라면, 친구라면. 아니 모든 걸 다 떠나 사람이라면. 사람으로서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하늘에 가닿을 죄악을 만대가 기억하는 한 지점에 내가 서 있었다. 염치없이 눈물만 차올라 티내지 않으려 찔끔 훌쩍였었다. 그 모든 것을 품은 채로 그날따라 하늘은 맑고 높았다.



 

하늘이 높았던 그 날의 빈호아 학살 증오비



 이러한 충격에 휩싸인 채 일정을 참여하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감사히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쳐주셨던 학살 피해 생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 앞에서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내가 부끄럽고 죄스러워 그분들의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내가 저지른 잘못도 아닌데 나는 움츠러들었었다. 아니, 내가 저지른 잘못이 아니던가. 정말로 아닌가. 진실로 아닐 수 있는가. 현재를 살아가며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아무 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살아가던 내가 한 잘못은 진정 하나도 없는가. 아릿한 자조와 수치에 나는 시선을 애매한 곳에 두고 그저 귀만 쫑긋 열었다. 피할 수 없는, 당당하진 못 해도 피하고 싶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 분들과의 만남을 지속하면서 그 분들이 내어주시는 이야기와 염원, 진심에 스스로에게 냉소적이었던 내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었다. 위로를 드려야 마땅할 판국에 오히려 더 많은 위로를 받고야 말았다. 모임의 자리가 끝날 무렵마다 어느 분도 빠지지 않고 언제나 항상 ‘와주어서 고맙다,’ ‘또 만나자,’ ‘건강해라,’하며 챙겨주시는 모습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사함이 스며들었다. 내 걱정이 기우일 정도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주시는 그 마음에 현재를 사는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점차 결심하게 된 순간들이었다.


진중한, 마음이 울리는 순간의 연속이었던 만남의 자리들

 

 나는 교사이다.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내가 아이들과 만나서면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가장 크게 배우고자 하는 가치는 ‘존중’이다. 아이들에게 주문처럼 외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매일 나누며 일상을 지낸다. 그러면서 또 하나 나누는 것은 말이 말만으로 끝나면 그것은 공허한 것이요, 말이 나의 손과 발로 가야한다는 이야기다. 기행 동안 만났던 하미 응우옌티탄님, 도안응이어님, 탄타오님 판탐꽁님, 퐁니 응우옌티탄님, 응우옌득쩌이님, 도안 홍레님, 응우옌티본님, 쯔엉티투님을 비롯하여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로 인해 피해를 입고 상처 받은 모든 분들의 마음과 의지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현재에 지속적으로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작고 부족하지만 손과 발을 움직이고 싶다. 언제나 닥쳐오는 일상과 생활, 젖어드는 피곤함에 늘어지기 일쑤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렇게 끊임없이 두드리며 살아가는 어느 날 스며든 평화가 어느새 피어나 반짝 얼굴을 내민 꽃처럼 반가이 다가올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빈호아 마을 학살 피해 장소 중 꺼우 마을 학살지 위령비 곁에 핀 꽃



더하여.

 기행을 통해 한베평화재단의 활동가 분들의 삶과 열정을 짧게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움직이시는 활동가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순간은 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된 상황 속에서도 옳은 일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활동가님들과 한베평화재단을 함께 지지하며 연대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시 한 번 깊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

사진 : 김자영(방울), 아침

#2023여름평화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