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얼굴의 사람입니까
정리나(하노이 인사대 역사학과 박사과정, 베트남 주재 특파원)
지난 2월 9일, 3월 10일은 베트남 외교부의 정례브리핑이 열렸던 날이었습니다. 2월 초 브리핑에선 2월 7일 서울지방법원 재판부가 ‘퐁녓·퐁니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63) 씨가 지난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한 질의가, 3월 초 브리핑에선 해당 판결에 한국 정부가 항소한 것과 관련해 베트남의 입장을 묻는 질의가 나왔습니다. 현장에는 일본 기자들도,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직원도 있었고 심지어는 북한 대사관에서도 나와 지켜보았습니다.
처음 서울지방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던 2월 초 베트남은 “퐁녓·퐁니 학살이 20세기 말 외국 군대가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많은 학살 중 하나”로 실제 벌어진 학살로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냈고 “한국의 판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국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중시한다면서도 늘 그렇듯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정신’에 기반해 전쟁이 남긴 잔재를 극복하고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자고 밝혔죠.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내놓을 ‘무난한’ 말이었고, 저를 포함한 현장에 있던 내외신 기자들도 모두 예상했던 답이었습니다.

2월 9일 베트남외교부 정례브리핑
한국 정부가 항소를 결정한 이후 브리핑에서 베트남 외교부는 "베트남 정부는 한국이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한 데 큰 유감을 표한다"며 "이는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조처"라고 밝혔습니다. 과거를 닫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방침이지만 이것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란 점을 힘주어 말했죠. 학살은 분명히 있었고,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백히 밝힌 부대변인의 얼굴엔 단호한 표정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탄 씨의 1심 승소 판결과 한국 정부의 항소 결정 이후 현지에 머물고 있는 제가 베트남 사람들이나 이 사회의 극적이거나 격한 반응을 겪었더라면 차라리 이 글의 좋은 소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접한 모든 ‘격한’ 반응들은 같은 한국사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하노이의 사람들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깊고 큰 만큼 시간도 많이 필요할테지만 역사는 역사다”라면서도 “(민간인) 학살을 겪은 대상자가 아니라 내가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끼곤 했습니다.
저는 한국과 베트남의 월남전 참전 군인 몇몇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다양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자신의 손으로 일궈낸 참전 ‘용사’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 피와 땀을 흘렸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옛 생각에 괴로운 것인지 그리운 것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의 얼굴까지 다양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제가 봤던 가장 평온한 얼굴은 수십년이 지난 뒤 베트남에 돌아와 한때는 총부리를 맞댔을 베트남측 참전·재향군인들을 위해 기부도 하고 베트남의 절을 찾아 그들을 기리는 한 참전군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 어깨와 등을 쓸어 내리거나 포옹하던 베트남측 참전 군인들의 표정도 한없이 평온했습니다.
한없이 평온한 얼굴을 가지고 있던 그는 민간인 학살 문제가 나오자 한번도 보지 못한 노여움이 가득한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차마 글로 옮기질 못할 거친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참전군인들을 욕보이고, 명예를 훼손하고, 자신이나 참전자회 나아가 정부에서 화해를 위해 노력하려는 것을 다 망쳐놓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국 참전 군인 몇몇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한베평화재단 관련 기사를 작성한 후 “정 기자가 뭘 몰라서 그런다. 그런 글을 쓰면 어떡하냐”는 비교적(!) 점잖은 반응부터 “이러는 것은 배신이다”라거나 애국심도 없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베트남 대학 역사학과의 교수님들도, 베트남 참전군인들도, 베트남 외교 당국자들도 한국 정부의 항소에 대해 그렇게까지 격하거나 감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던 지라 저로선 다소 당혹스러웠습니다.
하노이 재향군인회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 대사관 관계자들이나 현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는 늘 비슷합니다. “베트남 정부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전 참전이나 민간인 학살 문제로 사과해야 한다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베트남의 역사, 문화,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라고요. 베트남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는 자리에서도 베트남어로 뭐라 그런 것인지를 몰라 저에게 와서 (부)대변인이 말한 내용을 다시 물어보고, 관련 주제로 베트남 사람과 베트남어로 5분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저렇게 강한 확신으로 가득 찬 주장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의 말은 들어 봤을까, 피해자들의 입장은 어디에 갔나. 정부나 참전군인끼린 화해를 했다손 쳐도 그럼 탄 씨와 같은 피해자들과는 누가 화해를 했다는 것인가? 그 전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없는 화해가 가능한 것인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축사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애국’에 감사의 뜻을 전했을 때 베트남 정부가 “양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며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베트남 군(軍) 원로 일부는 민간인 학살이 있었으며 “한국 정부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한다”는 강한 목소리를 분명히 냈습니다. 군 원로인 응우옌 꾸옥 투옥 중장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학살한 살인자 한국 용병들로 베트남 국민들의 아픔을 건드렸다”며 “증오를 조장하기 위해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은 역사적 진실이다.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고 양측이 외면하려는 과거의 전쟁과 고통을 언급한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인민무력영웅이자 군 역사박물관장을 지낸 레 마 르엉 소장 역시 무고한 베트남인들을 학살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참전군인의 업적을 기리는) 그런 말로 칭찬하는 것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며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아직 공식적으로 사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죠. 베트남 정부가 먼저 나서서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사과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베트남 정부 사람들’의 말은 민간인 학살이나 과거사 문제에 한국이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로 한국에 많이 알려졌지만 공영방송을 통해 보도된 군 원로들의 이 같은 말은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학살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진상을 규명해보자는 목소리에 한국 정부는 조사 대상자 이름 달랑 열다섯 글자만 내놓고, 기록 공개와 진상규명을 거부했습니다. 절절한 목소리로 학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생존자가 있는데 사실관계 확인조차 거부하며 저쪽도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훗날 역사에 우리는 어떤 얼굴의 사람들로 기억될까요?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
#베트남외교부 #베트남전민간인학살 #역사적사실
당신은 어떤 얼굴의 사람입니까
정리나(하노이 인사대 역사학과 박사과정, 베트남 주재 특파원)
지난 2월 9일, 3월 10일은 베트남 외교부의 정례브리핑이 열렸던 날이었습니다. 2월 초 브리핑에선 2월 7일 서울지방법원 재판부가 ‘퐁녓·퐁니 마을 학살 사건' 생존자인 응우옌 티 탄(63) 씨가 지난 2020년 4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과 관련한 질의가, 3월 초 브리핑에선 해당 판결에 한국 정부가 항소한 것과 관련해 베트남의 입장을 묻는 질의가 나왔습니다. 현장에는 일본 기자들도,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에서 나온 직원도 있었고 심지어는 북한 대사관에서도 나와 지켜보았습니다.
처음 서울지방법원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던 2월 초 베트남은 “퐁녓·퐁니 학살이 20세기 말 외국 군대가 베트남 국민들을 상대로 저지른 많은 학살 중 하나”로 실제 벌어진 학살로 분명히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냈고 “한국의 판결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국민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중시한다면서도 늘 그렇듯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정신’에 기반해 전쟁이 남긴 잔재를 극복하고 우호·협력 관계를 강화하자고 밝혔죠. 베트남 정부 차원에서 내놓을 ‘무난한’ 말이었고, 저를 포함한 현장에 있던 내외신 기자들도 모두 예상했던 답이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항소를 결정한 이후 브리핑에서 베트남 외교부는 "베트남 정부는 한국이 법원의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한 데 큰 유감을 표한다"며 "이는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조처"라고 밝혔습니다. 과거를 닫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방침이지만 이것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란 점을 힘주어 말했죠. 학살은 분명히 있었고,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백히 밝힌 부대변인의 얼굴엔 단호한 표정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탄 씨의 1심 승소 판결과 한국 정부의 항소 결정 이후 현지에 머물고 있는 제가 베트남 사람들이나 이 사회의 극적이거나 격한 반응을 겪었더라면 차라리 이 글의 좋은 소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접한 모든 ‘격한’ 반응들은 같은 한국사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하노이의 사람들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깊고 큰 만큼 시간도 많이 필요할테지만 역사는 역사다”라면서도 “(민간인) 학살을 겪은 대상자가 아니라 내가 말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끼곤 했습니다.
저는 한국과 베트남의 월남전 참전 군인 몇몇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다양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자신의 손으로 일궈낸 참전 ‘용사’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얼굴, 피와 땀을 흘렸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옛 생각에 괴로운 것인지 그리운 것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의 얼굴까지 다양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제가 봤던 가장 평온한 얼굴은 수십년이 지난 뒤 베트남에 돌아와 한때는 총부리를 맞댔을 베트남측 참전·재향군인들을 위해 기부도 하고 베트남의 절을 찾아 그들을 기리는 한 참전군인의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손을 잡고, 어깨와 등을 쓸어 내리거나 포옹하던 베트남측 참전 군인들의 표정도 한없이 평온했습니다.
한없이 평온한 얼굴을 가지고 있던 그는 민간인 학살 문제가 나오자 한번도 보지 못한 노여움이 가득한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차마 글로 옮기질 못할 거친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참전군인들을 욕보이고, 명예를 훼손하고, 자신이나 참전자회 나아가 정부에서 화해를 위해 노력하려는 것을 다 망쳐놓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국 참전 군인 몇몇의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한베평화재단 관련 기사를 작성한 후 “정 기자가 뭘 몰라서 그런다. 그런 글을 쓰면 어떡하냐”는 비교적(!) 점잖은 반응부터 “이러는 것은 배신이다”라거나 애국심도 없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베트남 대학 역사학과의 교수님들도, 베트남 참전군인들도, 베트남 외교 당국자들도 한국 정부의 항소에 대해 그렇게까지 격하거나 감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았던 지라 저로선 다소 당혹스러웠습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 대사관 관계자들이나 현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는 늘 비슷합니다. “베트남 정부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베트남전 참전이나 민간인 학살 문제로 사과해야 한다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베트남의 역사, 문화,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라고요. 베트남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는 자리에서도 베트남어로 뭐라 그런 것인지를 몰라 저에게 와서 (부)대변인이 말한 내용을 다시 물어보고, 관련 주제로 베트남 사람과 베트남어로 5분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저렇게 강한 확신으로 가득 찬 주장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의 말은 들어 봤을까, 피해자들의 입장은 어디에 갔나. 정부나 참전군인끼린 화해를 했다손 쳐도 그럼 탄 씨와 같은 피해자들과는 누가 화해를 했다는 것인가? 그 전에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과 없는 화해가 가능한 것인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축사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애국’에 감사의 뜻을 전했을 때 베트남 정부가 “양국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며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베트남 군(軍) 원로 일부는 민간인 학살이 있었으며 “한국 정부는 베트남 국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한다”는 강한 목소리를 분명히 냈습니다. 군 원로인 응우옌 꾸옥 투옥 중장은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학살한 살인자 한국 용병들로 베트남 국민들의 아픔을 건드렸다”며 “증오를 조장하기 위해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은 역사적 진실이다.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고 양측이 외면하려는 과거의 전쟁과 고통을 언급한 것”이라 비판했습니다. 인민무력영웅이자 군 역사박물관장을 지낸 레 마 르엉 소장 역시 무고한 베트남인들을 학살한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참전군인의 업적을 기리는) 그런 말로 칭찬하는 것으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며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아직 공식적으로 사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죠. 베트남 정부가 먼저 나서서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는 것도 아니고, 한국이 사과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지 알 수도 없는 ‘베트남 정부 사람들’의 말은 민간인 학살이나 과거사 문제에 한국이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근거로 한국에 많이 알려졌지만 공영방송을 통해 보도된 군 원로들의 이 같은 말은 한국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학살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진상을 규명해보자는 목소리에 한국 정부는 조사 대상자 이름 달랑 열다섯 글자만 내놓고, 기록 공개와 진상규명을 거부했습니다. 절절한 목소리로 학살 피해 사실을 증언하는 생존자가 있는데 사실관계 확인조차 거부하며 저쪽도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해자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훗날 역사에 우리는 어떤 얼굴의 사람들로 기억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