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의 자리에서 세계시민을 만나다 / 권현우

202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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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자리에서 세계시민을 만나다

 

평화활동가 권현우(한베평화재단 사무처장)

 

* 이 발제문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베트남 다큐<평화로 가는 길> 상영회와 반전/평화토론회(2026.1.31)에 발표된 글입니다.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사에서 일본 시민사회를 만나다

 

한국 시민 사회의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은 베트남 피해자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다큐 <평화로 가는 길>에서 평화활동가 구수정(한베평화재단 이사)이 증언한 것처럼 그는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의 전쟁범죄를 담은 베트남 정부의 보고서 ‘남베트남에서 남조선 군대의 죄악’의 내용을 처음에는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앞서 한국에서는 1990년 월간지 [말]의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 그 역사적 진실’이란 글에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가 매우 사실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처음 폭로가 되었는데, 미국 퀘이커교도가 작성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것이었다. 당시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집단 항의를 하여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여파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때 한국 사회는 베트남 피해자의 살아있는 얼굴을 만나기 전이었다. 구수정은 1999년 베트남 정부의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45일간 베트남 중부의 한국군 피해 마을을 답사하고 수많은 피해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들의 증언을 온몸으로 듣고 기록하며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진실을 믿게 된 그는 <한겨레21>과 함께 베트남전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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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베트남 피해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당시 한겨레21 베트남 통신원 구수정


한국 시민으로서 베트남 피해자의 얼굴을 최초로 마주한 것이 구수정은 아니었다. 그보다 앞선 1998년 일본의 피스보트에 승선했던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피스보트 참가자들과 함께 하미 마을을 방문해 피해생존자 팜티호아(당시 70세), 쯔엉티투(60세), 유가족 응우옌꼬이(53세)를 만나 증언을 들었다. 이 세 사람은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도 하미학살 피해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다. 이후 이들은 베트남 남부 호찌민시에 살고 있던 유학생 구수정을 만나 충격적인 경험담을 전했고, 이것을 계기로 구수정이 베트남 중부 답사를 결심한 것이었다. 이때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불과 35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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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보트 소식지 1998년 5월호에 수록된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쯔엉티투(당시 60세)와 팜티호아(70세).
사진 우측에 하미학살 피해 관련 내용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제주 4.3, 일본군 ‘위안부’, 광주 5.18, 노근리 학살 등 한국 사회의 20세기 여러 과거사 문제들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시기를 비교하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는 확실히 빨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일본 피스보트와의 만남은 운동의 발화점을 앞당긴 역사의 한 순간이 되었다. 1980년대 초,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을 계기로 일본의 젊은 평화운동가들이 일제가 동아시아에 남긴 야만의 역사를 마주하는 다크투어를 추진한 것이 피스보트의 시작이었다. 피스보트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활동 영역이 동아시아에서 세계로 확장되어 다양한 국제 평화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피스보트가 확장되고 변화했으나 이들의 정체성은 배에서 벌어지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나 헌법 9조 개정 문제 토론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 바로 보기와 평화 문제에 대한 성찰에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 부정에 저항한 일본 시민들이 세계 시민의 시각으로 가해자의 자리를 마주한 발걸음이 15년 뒤에는 한국 시민들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과 만나게 한 것이었다. 일본의 피스보트가 없었다면, 한국 시민사회의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은 그 시발점이 20세기가 아닌 21세기로 늦춰질 수도 있었다.

 

일본의 평화운동이 베트남전쟁 관련 한국 시민사회에 영향을 준 또 한번의 일이 있었다. 2018년 4월 서울에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이틀에 걸쳐 개최되었다. 퐁니·퐁녓 학살 사건과 하미 학살 사건을 다룬 이 모의법정에는 한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이 20년간 한국 정부의 외면과 침묵에 막혀 정체되어 있을 때, 한국의 평화운동가들은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을 떠올렸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큰 영감과 교훈을 주었던 도쿄에서의 법정을 모티프로 2018년 베트남전쟁 시민평화법정을 추진했다. 이때의 시민평화법정은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의 전환점이 되었을 정도로 많은 관심과 참여 속에 추진되어 의미있는 성과를 남겼다. 약 1,300명의 시민들이 법정을 방청했을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고, 2000년대의 ‘미안해요 베트남’운동을 이끌었던 세대도 있었지만 다른 인권·사회 운동 분야에서 합류한 새로운 운동가들이 법정을 이끈 새로운 축으로 등장했고 다양한 층위의 시민들이 법정을 함께 했다. 이 모의법정은 단순히 소송으로 가기 위한 예비적 과정에 그치지 않았다.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가 성찰해야 할 가해자의 자리와 가해자성에 대한 논의를 한층 더 깊이 있게 끌어낸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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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냄에듀 한국사 교과서(22년 개정판) 144쪽, 주제탐구 '동아시아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과 2018년 베트남전쟁 시민평화법정이 소개되었다. 


2000년 일본의 시민들이 동아시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거 도쿄로 초청하여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지구적 기억의 장으로 승화시킨 역사적 사건은 한국의 평화운동가들에게 단순한 아이디어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주었다. 그것은 국경을 넘는 평화 운동의 선순환이었고,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국가에 대항해 가해국의 시민이 피해자와 연대하여 벌인 진실 투쟁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어진 아시아 시민 운동의 역사를 만들어낸 의미 있는 작업이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 시민사회가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스스로를 가해자의 자리에 세운 모의 법정 프로젝트는 한국의 교육계에도 주목을 받았다. 현재 한국의 거의 모든 고교 역사 교과서들이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중 한 교과서는 2000년 도쿄의 일본군 ‘위안부’ 모의법정과 2018년 서울의 베트남전쟁 모의법정의 교차성을 의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도안홍레, 시민연대에 주목하며 ‘평화’를 묻다

 

다큐 <평화로 가는 길>을 일본 시민사회에 소개하며 영화의 몇몇 장면을 다시금 곱씹어봤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퐁니·퐁녓 위령비에 참배를 온 한국의 시민들과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만난다. 응우옌티탄의 손을 어루만지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한국인은 30년 넘게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 김동희 평화활동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응우옌티탄과 구수정의 동행을 다룬 인상적인 장면들 속에서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겹쳐서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연대했던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의 존재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것 뿐일까.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응우옌티탄과 구수정의 자리는 세계 곳곳에 존재해온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에 선 평화활동가의 여러 존재들을 비추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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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시기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과 한국 시민들의 온라인 화상 연결을 지켜보고 있는 도안홍레 감독(왼쪽)


다큐 <평화로 가는 길>은 베트남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법정 투쟁기를 다룬 영화다. 소재의 특성상 이 영화는 베트남 피해자의 험난하고 드라마틱한 진실 투쟁기를 다루며 피해자의 영웅주의적 서사의 면모를 띌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의 주제 의식을 베트남 피해자와 한국 시민사회간의 연대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된 청자를 베트남의 시민들로 잡았다. 감독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문제는 물론 이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의 평화운동을 잘 모르는 베트남인들을 고려해 평화운동가 구수정과 언론인 고경태의 인터뷰로 이른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 이야기를 베트남에 소개했다. 그렇다면 베트남의 시민들에게 이 영화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있을 법한 존재가 다큐 <평화로 가는 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곁에서 그를 지원하고 함께하는 베트남 시민들의 존재다. 굳이 꼽아보자면 베트남인 통역사와 다큐 감독 도안홍레 정도다. 베트남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정부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시민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베트남 정부는 1986년부터 시행한 개혁개방 정책 ‘도이머이’를 분기점으로 '과거를 닫고 미래로 향하자'라는 슬로건을 지금까지 유지하며 과거사 문제를 전면적으로는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에서는 통상 ‘베트남전쟁’이라고 부르지만 베트남에서는 ‘항미전쟁'이라고 부르듯 전쟁의 주된 책임을 미국에게 묻고 있으며, 한국군의 참전과 그에 따른 전쟁범죄들도 미군의 용병이 저지른 차원의 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베트남의 한국군 피해자들은 한국군의 용병 지위를 초월해 한국군과 정부의 전쟁범죄 책임을 묻는다.) 더욱이 베트남은 현재를 평화의 시대로 부른다. 1945년부터 1975년까지, 항불전쟁과 항미전쟁의 30년 투쟁과 이후의 캄보디아, 중국과의 전쟁을 끝낸 후 더는 전쟁이 없는 지금을 평화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도안홍레 감독은 베트남 시민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한국 시민들과의 연대로 나홀로 법정 투쟁을 하는 응우옌티탄의 ‘평화롭지’ 못한 여정을 베트남 사회에 보여주며 제목처럼 ‘평화로 가는 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한베평화재단과의 인터뷰에서 “베트남처럼 수십 년의 전쟁 이후 평화를 얻은 민족에게는 평화라는 두 글자의 의미가 단순히 전쟁의 반대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넓다. 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어째서 평화를 찾는 여정에 있는 거지? 라고 묻게 되는 것이다. 단지 한 국가를 위한 평화나 외교적 의미의 우호적 평화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위한 평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망자를 위한 평화, 우리의 양심을 위한 평화까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라며 영화의 제목에 담은 의도를 밝혔다. 도안홍레는 이 영화를 통해 베트남인들에게 평화에 대한 답이 아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이 힘을 발휘한 이야기의 순간은 응우옌티탄의 승소보다는 베트남의 피해자와 한국 시민들의 동행에 있었다.

 

베트남전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만날 때 뒤틀리는 한국 사회의 자화상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와 연동되어 사고되는 경우가 많다. 사회학자 윤충로가 말한 것처럼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 초기였던 1999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을 읽어내는 두 개의 사회적 언어 중 하나는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노근리였고 다른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한국 시민들은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외면하는 한국 정부의 모습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제 강제동원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모습이 유사함을 보고 자기 모순을 깨닫는다. 이러한 아픈 각성이 한국 사회의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에 많은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했다. 다큐 <평화로 가는 길>에 김동희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위령비 참배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국인들의 내면에서 연동될 때 이러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과거사 문제 제기가 당위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베트남전 문제에 대한 해결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2023년 2월, 대한민국 사법부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국가배상소송 1심 판결에서 원고 응우옌티탄의 승소를 판결했을 때, 당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일제 강제동원 문제 역시 법정 투쟁을 겪으며 첨예한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베트남전 판결을 논평하는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들 중에는 ‘대한민국은 전쟁범죄를 인정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일본은 각성하라’와 같은 논리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원고 응우옌티탄의 입장에서는 승소의 주인공인 자신의 인권 문제는 사라져 버린 순간이었고 나와 같은 평화활동가들은 참으로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문제가 된 사건과 피해자에 대한 성찰은 사라지고 ‘나’ 혹은 ‘우리’의 도덕성과 당위성이 앞설 때 벌어진 촌극이 아닐 수 없었다. 베트남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진실규명의 요구가 사실은 우리의 죄책감을 떨쳐내고 정의로움을 추구하기 위한 것에 그친 것은 아니었는지, 베트남전쟁 평화운동에서 한국 시민사회가 과연 어느 수준의 성찰에 이르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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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소송 1심 승소 판결  소식을 권현우 활동가가 ‘수요시위’에서 전한 장면의 기사 제목은 “대한민국은 전쟁범죄 부인하는 일본과 다르다"였다. 당시 발언 중에 두 국가의 도덕성을 비교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베트남전 진실규명 운동이 한국 언론과 사회에서 소화되고 재생산되는 방식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   

 

한국, 일본, 베트남이 얽혀 있는 20세기 과거사 트라이앵글 속에서 한 국가의 도덕성과 당위성이 강조되는 사이 피해자를 고통으로 몰아넣은 국가 폭력에 대한 구조적 성찰은 후퇴한다. 일본의 우익이 진실 규명의 차원이 아닌 논쟁의 차원에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과 전시성폭력 문제를 소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국군의 전쟁범죄와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하며 한국이 일본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자격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베트남전 국가배상소송 판결을 이야기하며 일본에 당당해지려는 한국인의 마음과 한국군의 베트남전쟁을 이야기하는 일본 극우의 심리는 슬프게 닮아있다. 둘 다 국가주의적 사고 속에서 국가의 도덕성/부도덕성을 경쟁하며 국민, 시민, 민중을 단위로 한 개별자들이 전쟁 문제에 대한 본질적 성찰을 하는 것을 저해한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를 성찰할 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물론 좋은 참고 사례가 된다. 그러나 두 사안은 문제의 성격에 많은 차이를 갖는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에는 오히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민간인학살 문제나 제3세계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투쟁을 제국의 군대가 압살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무수한 민간인학살 문제가 전쟁범죄의 구조적 문제를 성찰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베트남전쟁 관련 강연에서 한국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해 ‘위안부’가 운용된, 한국 시민들이 아직도 잘 모르는 자국의 흑역사를 소개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이 ‘위안부’ 운용을 검토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가적 차원의 가해/피해의 관점에서 보는 기존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젠더적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 등의 전시성폭력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의도다. 그리고 민간인학살과 전시성폭력이 지금도 전 지구적 전쟁과 분쟁 속에서 반복되고 있는 동시대성에 대한 성찰을 제안하는 점도 있다. 국가의 전쟁범죄에 나와 우리가 연루된 점을 끊임없이 성찰하되, 국민적 사고에 갇히지 않고, 인권·평화·반전·젠더·기후·생태와 같은 세계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기반으로 문제를 성찰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문제에 대한 구조적 성찰이 가능하고 본질을 파악할 때, 동일한 형태의 전쟁범죄가 국가와 민족을 바꿔가며 반복되는 비극의 연쇄를 끊어낼 수 있다.

 

가해자의 자리에서 세계 시민을 만나는 일

 

한베평화재단의 창립부터 현재까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주교는 히로시마 원폭 문제에 대한 평화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한국 시민 사회의 대표 원로 중 하나다. 그는 2026년 뉴욕에서의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원폭국제민중법정 국제조직위원회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그가 원폭 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는 피해자 중에 다수의 조선인들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원폭 피해가 갖는 세계사적 참극의 의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칼럼에서 초기에는 히로시마 원폭 문제에 공감을 하면서도 “히로시마 시민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세계에 평화를 호소하는 심정은 수긍하면서도 ‘왜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생각하고 아시아 대륙의 수많은 시민에게 일본이 입힌 가해 책임에 대한 성찰과 사죄는 못 하는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같은 칼럼에서 그는 오에 겐자부로가 쓴 「히로시마 노트」를 읽고 자신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 대한 이해가 협소했음을 깨닫고 작가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히로시마 시민들의 원폭 피폭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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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하미학살 50주기 위령제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는 한베평화재단 강우일 이사장

 

강우일 주교의 이러한 성찰은 흥미롭다. 처음 그에게 히로시마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자리가 중첩되어 있는 복합적인 역사적 공간이었다. 그는 히로시마가 온몸으로 기억하고 호소하는 원폭 피해 문제에 공감을 하면서도,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의 대표적 군사도시가 지닌 전쟁책임의 문제를 히로시마가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랬던 그의 성찰이 한걸음 더 나아간 계기가 「히로시마 노트」 덕분이었다고 밝혔는데, 나 역시도 그 책을 읽으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피폭의 고통과 역사를 품고 있는 다양한 히로시마인들의 절절한 삶의 이야기를 읽으며 국가를 단위로 한 피해와 가해의 구도가 허물어지며 ‘사람’이 보였다. 히로시마에 가해진 절멸의 폭력이 한국 전쟁 시기 한반도에서는 물론 베트남전쟁 시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도 반복될 수 있었던 역사와, 미 제국의 전쟁주의와 원폭주의에 놓인 아시아인의 폭압적인 운명을 생각하게 되었다. 뉴욕에서의 개최를 추진 중인 원폭국제민중법정의 원고는 원자폭탄 한국인 피해자들이다. 이 민중법정은 미국의 원폭 투하 불법성을 확인하고 미국의 사과와 피해자 배상을 촉구하는 민간 차원의 첫번째 국제법정이다. 그렇다면 이 법정의 또 다른 원고들은 다름 아닌 일본의 원폭 피해자들이기도 하다.

 

미국의 전쟁범죄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또 한 명의 세계 시민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베트남인 쩐또응아(올해 83세)가 주인공이다. 베트남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그는 미군의 고엽제 피해로 암과 당뇨병 등의 후유증을 앓았다. 딸이 심장질환으로 생후 17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으며 그의 다른 두 딸도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베트남에는 약 400만 명의 고엽제 피해자들이, 한국에는 약 14만 명의 베트남전 참전군인 고엽제 피해자들이 있다. 쩐또응아는 미군의 베트남전 고엽제 제조사 14개 기업들을 상대로 2013년부터 프랑스 법정에서 소송 투쟁을 벌이고 있다. 2021년 1심과 2024년 항소심에서 모두 패소했지만 쩐또응아는 현재 대법원에서의 법정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이 투쟁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자녀들과 수백만 피해자들을 위한 투쟁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나홀로 법정 투쟁이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는 문제임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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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고엽제 피해 책임을 요구하는 행진 시위를 하고 있는 쩐또응아


프랑스 법원은 국가면제의 원칙을 근거로 원고 패소 판결을 거듭 내렸지만 쩐또응아의 변호인단과 프랑스의 연대 시민들은 광장에서 전쟁범죄 책임에 면제가 있을 수 없다고 외친다. 쩐또응아의 법정 투쟁으로 피고에 선 이들은 현재 독일기업 바이엘에 인수된 몬산토,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우케미컬 등의 다국적기업들이다. ‘생태학살’이라는 개념을 낳은 베트남전쟁의 대표적인 화학무기인 고엽제 피해의 책임은 미국의 고엽제 제조사들이 다국적기업으로 변신하며 그 전쟁범죄의 유산과 책임이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쩐또응아의 투쟁이 자리한 공간은 프랑스 파리이자 지구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쩐또응아의 이 투쟁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고엽제 제조사들이 대법원에서 설령 승소하더라도 이 투쟁사를 기억할 세계 시민의 역사는 그들을 전쟁범죄 책임을 회피한 전범기업으로 판결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쩐또응아라는 영웅적 서사를 남긴 피해자의 곁을 함께 한 프랑스 시민들의 존재를 볼 것이다. 베트남의 도안홍레가 그러했듯 말이다. 전쟁범죄와 국가폭력이라는 가해자의 자리를 성찰하며 세계 시민을 만날 때, 우리는 세상을 바꿀 새로운 전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와 민족의 틀에 갇히지 않고, 세계의 시민들이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국가와 권력이 불편해할 새로운 평화의 가능성이 솟아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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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고글은 재일조선인 이동석 선생님께서 추진한 한-오사카 국제시민연대 프로젝트에 참여한 발제문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한 시민 모금이 아직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참여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모금 참여하기


계좌 후원 국민은행 095001-04-176496 한베평화재단

* 입금자명에 꼭 "동석"을 추가 기재해주세요. 예) 홍길동 동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