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
구두리(극작가)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최근에 겪었던 일로 새롭게 감각하게 된 이런 저런 나의 심상을 편안히 나눠보면 어떨까하여 두서없이 적어나가본다.
나는 연극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작가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인데 나는 연출이 처음이었고 내 동료는 희곡 작가가 처음이었던 그때 우리는 우리의 첫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났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동료는 부담이 컸던지 자신이 없었던지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는 잠적해버렸고 극장 대관 계약금이 아까웠던 나는 내 일기 같은 이야기를 엮어 희곡이랍시고 공연을 올렸는데 그 이후에도 작가님을 못 만나다 보니 그게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할 이야기도 많았고 쓰는 일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 안에서 퍼올리는 일에 한계가 찾아오면서부터는 새로운 소재를 찾는데 매진했다. 특히 공연을 올리기 전 단계로 낭독공연이나 쇼케이스를 거치면서 희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올해 5월에도 그 작업이 있었다. <언니들>이라고 써놓기는 몇 년 전에 써서 이미 한 번의 낭독을 거친 희곡이었다. 그 후 잊고 있었는데 기획팀이 새롭게 뮤지컬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내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늘 입버릇처럼 푸념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획팀의 조언에 적잖이 당황했다. 뮤지컬은 처음인지라. 하지만 왠지 설렜다.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바꿔서 해보기로 하고는 우선 낭독 공연 일정부터 잡으며 대본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너무 무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뮤지컬 낭독 공연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으니 스페인 답사 준비였다. 스페인 현지에 살고 계신 영상 감독님의 초청으로 스페인 극장을 둘러보고 공연도 보면서 그곳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2년 전이었고 비행기표까지 다 예약해뒀었는데 공연 일정이 겹쳐 취소했었다. 너무 아쉬웠다. 나는 예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대학로에 조연출을 시작하며 공연계로 들어온, 말하자면 무명이라 그런 레지던시가 나에게는 ‘여행유학’처럼 느껴져 꼭 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올해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행기야 언제든지 뜨는 거, 우선 낭독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터졌고 유류할증료가 하루아침에 몇십만 원씩 올라가 있었다. 어차피 예약하지도 않았던 비행기표였건만 나는 올라간 가격을 보며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그러던 중에 적성검사를 받고 운전 면허를 어서 갱신하라는 문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일이 주민번호상으로 11월이라 아직 한참 남았지만 나는 왠지 ‘6개월 전후 가능하다’는 그 문구가 마치 6일 전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행기표 앞에 닥친 전쟁이라는 천재지변이 운전면허 적성검사 앞에도 비슷한 불운의 형태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스페인 레지던시는 한 달도 더 되는 기간 동안 체류하는 건데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오토 밖에 못 모는 주제에 거의 대부분의 차가 수동 기어인 유럽에서?
나는 자동차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위해 대본을 고쳐야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 굳이 금식해가며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받은 후 더 미루지 않고 스페인행 비행기표도 아주 비싼 값에 결제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병원에서 재검사가 필요하다며 문자로 연락을 해왔다. 공연이 열흘도 안 남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답도 하지 않았는데 병원 담당자분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꼭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술시면 찾는 반주를 참고 연습 전 시간을 내서 병원을 다시 찾았고 그 자리에서 초음파 상으로는 유방암 0기라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다시 병원을 예약하고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를 기다리는데 공연은 이제 일주일도 안 남은 때였다. 출국은 공연 다다음 날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의사선생님께 스페인 에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뒀다는 말씀을 넌지시 드렸더니 모든 과정을 최대한 당겨보겠다 하셨고 그렇게 마지막 결과 확인은 출국 바로 전날로 잡혔다.
어차피 취소해서 수수료를 무는 상황이라면 결과 듣고 진행해도 무방하겠구나 싶었다. 잡생각이 일 때마다 극장 가장 어두운 구석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봤다. 내가 좋아하는 어둡고 조용한 자리에서 정신없이 준비한 낭독공연이 <아카시아 나무 위의 언니들>이란 새 제목으로 올라가고 또 끝이 나는 걸 봤다.
다행히 결과는 양성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스페인 다녀와서 수술을 해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비행비표를 끊어놓기만 하고 다른 준비는 전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공항 근처 숙소 예약 외에는 아무 계획도 없이 마드리드에 떨어지게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다시 영상 감독님이 계신 지역으로까지 가야 하는데 한숨이 났다. 적응되지 않는 시차에, 사방에서 들리는 낯선 외국어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의 영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지난 2주간 나에게 닥친 일들과 지금 외국이라는 이 현실이 도대체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배는 고팠다. 나는 숙소에 가방을 대충 부려놓고는 근처 식당을 검색해 들어갔다. 그나마 어디서 들은 귀로 번역앱을 열어 문어 요리를 시켰다. 웬일이야 너무 맛있잖아. 순식간에 배속으로 사라졌다. 뭘 하나 더 먹어야지 싶었다. 같은 방법으로 작은 접시에 담긴 돼지고기 요리가 있다는 번역을 읽게 되었고 바로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는데 처음 주문을 받고 서빙해줬던 웨이터가 아니라 주방에서 앞치마를 맨 요리사가 직접 요리를 갖다주었다. 그것도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닌 엄청나게 큰 감자가 깔린 대왕 고기 요리였다.
나는 손짓 발짓으로 내가 주문한 요리가 아니라고 돌려보냈고 주방 입구에서는 그 요리를 놓고 주인이 누군가 하는 설왕설래가 잠깐 있는 듯했다. 이어 처음 나에게 서빙했던 남성 웨이터가 다시 그 음식을 가져와 내 앞에 놓고는 내가 주문한 게 맞다며 친절히 메뉴판과 가격을 다시 짚어주었다. 약간 겸연쩍어진 나는 내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랐고 그래서 내가 주문한 게 아닌 줄 알았다는 소리를 영어로 했다. 투 빅 투 미. 아이 해드 미스언더스탠드. 그랬더니 그 웨이터가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what’s wrong with a lot? Just enjoy.‘
마법같은 말이었다. 이 세상에 ENJOY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달고 있었던 내 몸에 대한 걱정이나 완벽하지 못한 공연에 대한 후회를 그제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준비하지 못한 여행으로 이미 초과 비용이 발생했고 현지 사정 또한 모르고 있으니 돈을 조금씩 더 쓰게 될 스페인 체류에 대한 스트레스도 그 순간만큼은 잊었다. 내 의지로 진행된 일과 예상 밖의 사건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행운 같은 일들이 내 남은 인생에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것, DNA 메모리는 삼신할머니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양 많은 감자 돼지고기 요리 때문에 나는 멀리, 잠시 죽음까지 생각해보게 되었지만 그건 정말 멀고 먼 이야기가 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스페인 특유의 향과 맛 덕분에 건강한 삶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불태울 수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 앞에서 고민할 것이라고 얼마만큼이 적당히 일까 정도 아닐까 싶었다.
여전히 길은 모르겠고 카드를 꺼냈다가 현금을 꺼냈다가 정신이 없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니 조금씩 여기 스페인 생활도 적응이 돼간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슈퍼마켓에서 파는 갓 짠 오렌지 쥬스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뭐가 문제일까 즐기자.
* 사진: 스페인에서 구두리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
스페인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
구두리(극작가)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최근에 겪었던 일로 새롭게 감각하게 된 이런 저런 나의 심상을 편안히 나눠보면 어떨까하여 두서없이 적어나가본다.
나는 연극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작가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었다.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인데 나는 연출이 처음이었고 내 동료는 희곡 작가가 처음이었던 그때 우리는 우리의 첫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났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동료는 부담이 컸던지 자신이 없었던지 중도 포기를 선언하고는 잠적해버렸고 극장 대관 계약금이 아까웠던 나는 내 일기 같은 이야기를 엮어 희곡이랍시고 공연을 올렸는데 그 이후에도 작가님을 못 만나다 보니 그게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할 이야기도 많았고 쓰는 일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내 안에서 퍼올리는 일에 한계가 찾아오면서부터는 새로운 소재를 찾는데 매진했다. 특히 공연을 올리기 전 단계로 낭독공연이나 쇼케이스를 거치면서 희곡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올해 5월에도 그 작업이 있었다. <언니들>이라고 써놓기는 몇 년 전에 써서 이미 한 번의 낭독을 거친 희곡이었다. 그 후 잊고 있었는데 기획팀이 새롭게 뮤지컬로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내 방식에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고 늘 입버릇처럼 푸념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기획팀의 조언에 적잖이 당황했다. 뮤지컬은 처음인지라. 하지만 왠지 설렜다. 나는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바꿔서 해보기로 하고는 우선 낭독 공연 일정부터 잡으며 대본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너무 무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 뮤지컬 낭독 공연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으니 스페인 답사 준비였다. 스페인 현지에 살고 계신 영상 감독님의 초청으로 스페인 극장을 둘러보고 공연도 보면서 그곳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다. 2년 전이었고 비행기표까지 다 예약해뒀었는데 공연 일정이 겹쳐 취소했었다. 너무 아쉬웠다. 나는 예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대학로에 조연출을 시작하며 공연계로 들어온, 말하자면 무명이라 그런 레지던시가 나에게는 ‘여행유학’처럼 느껴져 꼭 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올해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행기야 언제든지 뜨는 거, 우선 낭독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쟁이 터졌고 유류할증료가 하루아침에 몇십만 원씩 올라가 있었다. 어차피 예약하지도 않았던 비행기표였건만 나는 올라간 가격을 보며 미리 비행기표를 사두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했다.
그러던 중에 적성검사를 받고 운전 면허를 어서 갱신하라는 문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일이 주민번호상으로 11월이라 아직 한참 남았지만 나는 왠지 ‘6개월 전후 가능하다’는 그 문구가 마치 6일 전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비행기표 앞에 닥친 전쟁이라는 천재지변이 운전면허 적성검사 앞에도 비슷한 불운의 형태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스페인 레지던시는 한 달도 더 되는 기간 동안 체류하는 건데 국제면허증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오토 밖에 못 모는 주제에 거의 대부분의 차가 수동 기어인 유럽에서?
나는 자동차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위해 대본을 고쳐야하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 굳이 금식해가며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받은 후 더 미루지 않고 스페인행 비행기표도 아주 비싼 값에 결제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병원에서 재검사가 필요하다며 문자로 연락을 해왔다. 공연이 열흘도 안 남은 상태였다. 처음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답도 하지 않았는데 병원 담당자분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꼭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술시면 찾는 반주를 참고 연습 전 시간을 내서 병원을 다시 찾았고 그 자리에서 초음파 상으로는 유방암 0기라는 소견을 듣게 되었다.
조직검사를 위해 다시 병원을 예약하고 검사를 받았으며 결과를 기다리는데 공연은 이제 일주일도 안 남은 때였다. 출국은 공연 다다음 날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의사선생님께 스페인 에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뒀다는 말씀을 넌지시 드렸더니 모든 과정을 최대한 당겨보겠다 하셨고 그렇게 마지막 결과 확인은 출국 바로 전날로 잡혔다.
어차피 취소해서 수수료를 무는 상황이라면 결과 듣고 진행해도 무방하겠구나 싶었다. 잡생각이 일 때마다 극장 가장 어두운 구석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봤다. 내가 좋아하는 어둡고 조용한 자리에서 정신없이 준비한 낭독공연이 <아카시아 나무 위의 언니들>이란 새 제목으로 올라가고 또 끝이 나는 걸 봤다.
다행히 결과는 양성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스페인 다녀와서 수술을 해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비행비표를 끊어놓기만 하고 다른 준비는 전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공항 근처 숙소 예약 외에는 아무 계획도 없이 마드리드에 떨어지게 되었다. 마드리드에서 다시 영상 감독님이 계신 지역으로까지 가야 하는데 한숨이 났다. 적응되지 않는 시차에, 사방에서 들리는 낯선 외국어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나의 영어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지난 2주간 나에게 닥친 일들과 지금 외국이라는 이 현실이 도대체가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배는 고팠다. 나는 숙소에 가방을 대충 부려놓고는 근처 식당을 검색해 들어갔다. 그나마 어디서 들은 귀로 번역앱을 열어 문어 요리를 시켰다. 웬일이야 너무 맛있잖아. 순식간에 배속으로 사라졌다. 뭘 하나 더 먹어야지 싶었다. 같은 방법으로 작은 접시에 담긴 돼지고기 요리가 있다는 번역을 읽게 되었고 바로 주문했다. 조금 기다리는데 처음 주문을 받고 서빙해줬던 웨이터가 아니라 주방에서 앞치마를 맨 요리사가 직접 요리를 갖다주었다. 그것도 내가 주문한 것이 아닌 엄청나게 큰 감자가 깔린 대왕 고기 요리였다.
나는 손짓 발짓으로 내가 주문한 요리가 아니라고 돌려보냈고 주방 입구에서는 그 요리를 놓고 주인이 누군가 하는 설왕설래가 잠깐 있는 듯했다. 이어 처음 나에게 서빙했던 남성 웨이터가 다시 그 음식을 가져와 내 앞에 놓고는 내가 주문한 게 맞다며 친절히 메뉴판과 가격을 다시 짚어주었다. 약간 겸연쩍어진 나는 내 생각보다 너무 커서 놀랐고 그래서 내가 주문한 게 아닌 줄 알았다는 소리를 영어로 했다. 투 빅 투 미. 아이 해드 미스언더스탠드. 그랬더니 그 웨이터가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what’s wrong with a lot? Just enjoy.‘
마법같은 말이었다. 이 세상에 ENJOY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달고 있었던 내 몸에 대한 걱정이나 완벽하지 못한 공연에 대한 후회를 그제야 날려버릴 수 있었다. 준비하지 못한 여행으로 이미 초과 비용이 발생했고 현지 사정 또한 모르고 있으니 돈을 조금씩 더 쓰게 될 스페인 체류에 대한 스트레스도 그 순간만큼은 잊었다. 내 의지로 진행된 일과 예상 밖의 사건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는 것, 행운 같은 일들이 내 남은 인생에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것, DNA 메모리는 삼신할머니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양 많은 감자 돼지고기 요리 때문에 나는 멀리, 잠시 죽음까지 생각해보게 되었지만 그건 정말 멀고 먼 이야기가 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스페인 특유의 향과 맛 덕분에 건강한 삶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불태울 수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 앞에서 고민할 것이라고 얼마만큼이 적당히 일까 정도 아닐까 싶었다.
여전히 길은 모르겠고 카드를 꺼냈다가 현금을 꺼냈다가 정신이 없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니 조금씩 여기 스페인 생활도 적응이 돼간다.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도 슈퍼마켓에서 파는 갓 짠 오렌지 쥬스도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뭐가 문제일까 즐기자.
* 사진: 스페인에서 구두리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