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읽기[평화의 mat] 그럼에도, 무력감을 끌어안고 / 이지원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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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무력감을 끌어안고


이지원 (평화활동가)


평화활동을 시작한 뒤로 배운 여러가지 것들 중 하나는 무력감이었다. 부정적인 내 성향도 한몫했겠지만 활동을 시작하며 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집단학살의 격화, 휴전 중에도 이어지고 있는 공습 등… “전쟁을 멈춰라!”, “공격을 중단하고 휴전 협상에 돌입하라”는 우리의 목소리가 닿고 있기는 한 것인지, 수천 만의 사상자와 파괴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참담했다.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를 향한 무차별적 집단학살과 만행을 국내에 알리기 위해 목소리 높여왔지만 점점 지쳐갔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 국가 하나 막을 수 없는 건지” 회의감과 함께 답답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평화운동을 지속하는 활동가들의 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이유는 다양했다.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아직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여러 활동가들이 평화운동을 해온 것이다. 나의 동력은 무엇일까. 내가 평화운동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한 이란 전쟁 초기에는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낙관적인 수사로 느껴지기도 했다.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시민들에게 무슨 명분으로 계속해서 행동하자고 호소할 수 있을까. 왜 나를 비롯한 시민들이 평화를 요구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내던 때 항해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됐다.   


가자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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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상단의 리나 알 나불시(Lina Al-Nabulsi)호가 해초, 승준 활동가가 탑승한 배이다.
ⓒFreedom Flotilla Coalition 유튜브 2026.05.10. 라이브 갈무리


이번 달 2일과 8일(현지시간), 평화활동가 해초·승준·김동현 님이 가자로 향하는 선박에 탑승했다. 해초·승준 활동가는 이탈리아에서 출항한 리나 알 나불시(Linah Al-Nabulsi)호에 김동현 활동가는 그리스에서 출항한 키리아코스 X(Kyriakos X)호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 활동가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부수기 위해, 항해라는 직접행동이 유일하게 이스라엘을 압박할 수 있는 행위이기에” 출항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통해 팔레스타인을 호명한 사실을 언급하며 나아가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자지구 집단학살 중단을 위해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스라엘과 한국이 맺고있는 협력을 끊고, 한국석유공사가 100%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통해 진행하는 가자지구 가스전 수탈도 중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였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간 휴전협정이 발효되었지만 재건은커녕, 이스라엘은 거의 매일 가자지구를 공격하며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다. 폐허 속에서도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가자 사람들, 항해를 시작한 세 활동가들의 명료하고 깊은 대답을 떠올리며 내가 가진 무력감에 대해 제고해본다. 무력감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활동한 뒤에 느껴도 되는 감정이 아닐까. 활동을 회고하며 세상을 더 오래 보고자 하는 긴 호흡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민의 행동이 모이면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말과 더불어  “행동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저항하고자 하는 용기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많은 이들이 무력감에만 갇히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무력함을 끌어안고 절망하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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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8 세계여성대회 기념 한국여성대회에서 이란의 평화를 요구하며 행진하는 이지원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군사비를 줄이고 무기를 내리라고 요구하는 일, ‘전쟁없는세상’을 원한다는 평화활동가들의 말이 혹자에게는 이상적으로 여겨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란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수단 등 세계 각국의 전쟁과 무력분쟁, 갈등은 반복되고 평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민들과 함께 평화를 요구하겠다는 약속을 해본다. 활동하는 내내 나는 무력감을 끝내 떨치지 못할 수도 있고 활동은 나를 지치게 할 테지만, 과감히 무력감을 끌어안는 일. 세상이 같은 자리에 오래 멈춰있거나 후퇴할 지라도 절망하지 않는 다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에게도 우리에게도, 세상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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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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