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 한베평화재단 활동가를 마치며 -
도안당땀바오

바오 활동가와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누군가는 전쟁은 총성이 멈추는 순간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전쟁은 결코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전쟁은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노년의 불안한 꿈속에,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인 듯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긴 침묵 속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내 것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내 삶을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저는 2002년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을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는 공습경보도, 방공호도 없었고, 화약 냄새나 한밤중에 도망쳐야 하는 공포도 알지 못했습니다. 제 세대에게 전쟁은 교과서 속 한 부분이었고, 4월이 되면 텔레비전에서 보던 기록영상이었으며, 역사 시험에 몇 줄 나오는 내용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큰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때로는 잊고 살아갑니다.
한베평화재단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에게 전쟁은 아마도 그 정도의 의미로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3년 전, 저는 4학년 대학생의 마음으로 재단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곳이 제 청춘에서 이렇게 특별한 자리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연세 많은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싫어서가 아니라, 세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괜한 질문을 할까 두려웠고, 그분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반세기 넘게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피해자들의 아픔을 무심코 건드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단은 제게 많은 '이모'와 '삼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저를 마치 가족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안부를 다정하게 물어봐 주시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재회하는 날이면 오래 헤어졌던 가족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빈호아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방 님의 증언을 통역하고 있는 바오 활동가
3년쯤 지나면 전쟁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감정도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결국 익숙해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모와 삼촌들이 전쟁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그 참혹했던 풍경은 상상력이 많은 제 머릿속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그 당시 그분들도 여덟, 아홉 살,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여덟 살이었을 때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졸린 눈을 비비고 학교에 가던 아침이 있었고, 여름이면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며 과자를 졸랐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 가장 무서운 일은 부모님께 혼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여덟 살은 달랐습니다. 눈앞에서 가족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악몽을 꾸고도 안길 부모님이 더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배워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셀 수 없이 많이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익숙해진 적이 없습니다. 그분들 앞에서 저는 전쟁의 증언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맨발로 마당을 뛰어놀고,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며, 엄마 품에서 편안히 잠들어야 했던 평범한 아이를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전쟁은 그분들에게 그런 어린 시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저는 전쟁이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전쟁에는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고, 아주 구체적인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도 그 기억을 꺼내는 순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눈빛은 마치 어제 일처럼 조용히 흔들립니다.

평화기행 참가자와 빈호아학살 피해생존자 도안응이어의 대화를 통역하고 있는 바오 활동가
전쟁은 사람의 생명만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거의 60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메우지 못한 빈자리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집을 기억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가족을 영원히 완전할 수 없는 조각들로 남겨두었습니다. 저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그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멀어지는 눈빛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마다 나누었던 뜨거운 포옹도 기억할 것입니다. 다음 만남이 너무 멀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은 저에게 삶을 더욱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쟁에 빼앗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품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 제 어린 시절의 슬픔은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는 것, 매일 아침 익숙한 집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거리의 자동차 경적이 폭탄 소리를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오늘의 아이들이 두려움이 아니라 꿈을 품고 자란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앞선 세대의 피와 뼈, 청춘, 그리고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선하게, 더욱 충실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낍니다. 제 또 다른 행운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재단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감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지원금 전달식에서 만난 카인럼학살 유가족의 연락처를 받고 있는 바오 활동가.
아카이브, 평화기행 등 베트남에서 진행된 재단의 모든 사업에 그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곳곳에 있었다.
올해 한베평화재단은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거의 60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10년은 아주 짧습니다. 하지만 그 10년 동안 수많은 증언이 기록되었고, 수많은 만남이 이어졌으며, 한국과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편견이 아닌 이해를 통해 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전쟁의 마지막 생존 증언자들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젊은 세대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증오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잊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베평화재단이 1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건강하게, 더 많은 동행자들과 함께, 더 큰 믿음을 품고 지금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쟁 피해 생존자들과의 치유와 연결을 위한 재단의 노력이 반드시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저는 언제나 재단의 활동을 응원하고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노, 아침, 라니, 두부, 언제나 바오를 응원하고 사랑해 주며 모든 일에서 힘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 * * * *
※ 재단의 베트남 현지 활동가로 지난 3년의 시간을 함께 해주신 바오 님이 재단 활동가에서 든든한 연대자로 자리를 바꿉니다. 재단의 든든한 동반자로,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의 연대자이자 벗으로 함께 해주신 바오 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8월부터는 응우옛 님이 재단의 베트남 활동가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한베평화재단에 대한 더 많은 응원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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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 한베평화재단 활동가를 마치며 -
도안당땀바오
바오 활동가와 하미 마을 응우옌티탄
누군가는 전쟁은 총성이 멈추는 순간 끝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전쟁은 결코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전쟁은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 속에, 노년의 불안한 꿈속에, 이미 다 끝난 이야기인 듯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긴 침묵 속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어떤 기억은 내 것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내 삶을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저는 2002년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세상에 첫 울음을 터뜨렸을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난 지 거의 3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는 공습경보도, 방공호도 없었고, 화약 냄새나 한밤중에 도망쳐야 하는 공포도 알지 못했습니다. 제 세대에게 전쟁은 교과서 속 한 부분이었고, 4월이 되면 텔레비전에서 보던 기록영상이었으며, 역사 시험에 몇 줄 나오는 내용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큰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때로는 잊고 살아갑니다.
한베평화재단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에게 전쟁은 아마도 그 정도의 의미로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3년 전, 저는 4학년 대학생의 마음으로 재단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곳이 제 청춘에서 이렇게 특별한 자리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연세 많은 분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싫어서가 아니라, 세대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괜한 질문을 할까 두려웠고, 그분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반세기 넘게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피해자들의 아픔을 무심코 건드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다가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재단은 제게 많은 '이모'와 '삼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저를 마치 가족처럼 대해주셨습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안부를 다정하게 물어봐 주시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재회하는 날이면 오래 헤어졌던 가족처럼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빈호아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방 님의 증언을 통역하고 있는 바오 활동가
3년쯤 지나면 전쟁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감정도 무뎌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결국 익숙해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모와 삼촌들이 전쟁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그 참혹했던 풍경은 상상력이 많은 제 머릿속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그 당시 그분들도 여덟, 아홉 살,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었습니다.
제가 여덟 살이었을 때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졸린 눈을 비비고 학교에 가던 아침이 있었고, 여름이면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며 과자를 졸랐습니다. 제 어린 시절에 가장 무서운 일은 부모님께 혼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여덟 살은 달랐습니다. 눈앞에서 가족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악몽을 꾸고도 안길 부모님이 더는 없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배워야 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셀 수 없이 많이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익숙해진 적이 없습니다. 그분들 앞에서 저는 전쟁의 증언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맨발로 마당을 뛰어놀고, 부모에게 응석을 부리며, 엄마 품에서 편안히 잠들어야 했던 평범한 아이를 말입니다.
안타깝게도 전쟁은 그분들에게 그런 어린 시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저는 전쟁이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전쟁에는 얼굴이 있고, 이름이 있고, 아주 구체적인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도 그 기억을 꺼내는 순간,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의 눈빛은 마치 어제 일처럼 조용히 흔들립니다.
평화기행 참가자와 빈호아학살 피해생존자 도안응이어의 대화를 통역하고 있는 바오 활동가
전쟁은 사람의 생명만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거의 60년이 지나도록 누구도 메우지 못한 빈자리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집을 기억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가족을 영원히 완전할 수 없는 조각들로 남겨두었습니다. 저는 목이 메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그분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멀어지는 눈빛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마다 나누었던 뜨거운 포옹도 기억할 것입니다. 다음 만남이 너무 멀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3년은 저에게 삶을 더욱 사랑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쟁에 빼앗긴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품에서 자랄 수 있었던 것, 제 어린 시절의 슬픔은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는 것, 매일 아침 익숙한 집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거리의 자동차 경적이 폭탄 소리를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오늘의 아이들이 두려움이 아니라 꿈을 품고 자란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앞선 세대의 피와 뼈, 청춘, 그리고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선하게, 더욱 충실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느낍니다. 제 또 다른 행운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재단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감과 용기를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지원금 전달식에서 만난 카인럼학살 유가족의 연락처를 받고 있는 바오 활동가.
아카이브, 평화기행 등 베트남에서 진행된 재단의 모든 사업에 그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곳곳에 있었다.
올해 한베평화재단은 창립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거의 60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10년은 아주 짧습니다. 하지만 그 10년 동안 수많은 증언이 기록되었고, 수많은 만남이 이어졌으며, 한국과 베트남의 젊은이들은 편견이 아닌 이해를 통해 서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전쟁의 마지막 생존 증언자들도 모두 우리 곁을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젊은 세대가 그분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증오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는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 잊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베평화재단이 1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건강하게, 더 많은 동행자들과 함께, 더 큰 믿음을 품고 지금의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전쟁 피해 생존자들과의 치유와 연결을 위한 재단의 노력이 반드시 아름다운 결실을 맺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언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 저는 언제나 재단의 활동을 응원하고 함께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노, 아침, 라니, 두부, 언제나 바오를 응원하고 사랑해 주며 모든 일에서 힘이 되어 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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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단의 베트남 현지 활동가로 지난 3년의 시간을 함께 해주신 바오 님이 재단 활동가에서 든든한 연대자로 자리를 바꿉니다. 재단의 든든한 동반자로, 피해자와 유가족분들의 연대자이자 벗으로 함께 해주신 바오 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8월부터는 응우옛 님이 재단의 베트남 활동가로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한베평화재단에 대한 더 많은 응원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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