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7화]
전쟁기념관에 올라온 이상한 소감문
포병 장교 출신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작가 최우현이 마주한 전쟁기념관의 얼굴
최우현
| 연간 방문객 300만 명을 넘어선 용산 전쟁기념관은 대한민국의 전쟁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념시설이다. 그러나 이 공간이 보여주는 국가주의·군사주의적 시각과 반인권적 전시에 대해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으며, 변화의 필요성 또한 꾸준히 이야기되어 왔다. 이번 연재에서는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활동과 함께, 전쟁을 '기념'하는 공간을 시민의 힘으로 새롭게 상상하고 바꾸려는 시민·활동가·작가의 이야기를 총 8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번 글은 포병 장교 출신의 독립연구자로 지난해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를 출간해 큰 주목을 받은 최우현 작가의 기고글이다. |
어쩌다 이런 소감이 나오고 말았을까
"전쟁은 필요하다!!"
2026년 5월 7일 오전 11시경, 용산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유엔참전실) 전시코너 'UN 참전용사에 보내는 편지'에 띄워져 있던 문장이다. 편지글이라기보다는 전쟁기념관 전시 전체에 대한 소감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한참을 이 문장 앞에서 서성였다. 대체 누가 썼을까. 아이일까, 어른일까. 어떤 표정으로 썼을까. 쓰고 나서는 뭐라고 말했을까. 동시에 곱씹어보았다. 전쟁의 필요를 끌어다가 어디에, 누구를 향해 투사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그 '필요'하다는 전쟁에서 본인의 위치를 어느 지점에 상정해두고 이 글을 썼을까.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유엔참전실) 전시코너 ‘UN 참전용사에 보내는 편지’에 띄워져 있던 편지글(소감문)들 ⓒ 최우현
사실 참 명쾌하긴 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선성(善性)은 눈곱만큼도 신뢰하지 않는 "니힐리스트의 명쾌함"(마루야마 마사오)을 담아낸 문장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소감문의 주인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류의 여러 역사적 노력·실험·고민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쟁을 선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구절절한 프레임들—방어를 위한 전쟁, 예방전쟁, 정의의 십자군 등등—마저 가차 없이 깨부수면서 전쟁 그 자체만을 지상의 가치로 밀어올리고 있다. 전쟁은 필요하다···? 2024년 한국에서 계엄을 일으켜 자기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내란수괴'조차도 감히 대놓고는 뱉지 못했던 말 아니던가.
어쩌다 이런 소감이 나오고 말았을까. 매우 당연하게도, 전쟁기념관의 역할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소감문이 게시된 전시실은 3층 6·25전쟁실Ⅲ. 2층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6·25전쟁실Ⅰ,Ⅱ부터 관람을 시작하여 3층의 Ⅲ로 이어지게끔 하는 전시 동선을 고려할 때 이 소감문은 전쟁기념관이 제시한 전쟁관(戰爭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추정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 같은 맥락에서 소감문 작성자의 다음 관람지가 3층의 남은 하나의 상설전시실인 '해외파병실'로 이어졌을 거라고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전쟁은 필요하다"고 외친 그의 신념이 마지막 전시에 이르러 약화되었을지 아니면 더 강화되었을지.
전쟁의 추악함을 씻어내는 워싱(washing)
A
그(소감문 작성자)의 흔적을 좇아 도달한 해외파병실 입구에서 거대한 세계지도 하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그냥 세계지도는 아니었다. 미국의 뒤를 잇는 '아류 기지국가' 한국의 자부심을 담아낸 해외파병, 아니 사실상의 세계분쟁 지도였다. 이 지도를 굳이 전면에 배치한 전쟁기념관 측의 의도는 알만 했다. 기념관이 설명하는 파병의 명분은 '세계평화에 기여'라는 일곱 글자로 정리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서 '기여'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를 전쟁의 영역에서 재가공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은 이렇게 말한다.
"국군,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국제 사회의 도움에 보답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국군을 해외에 파병하고 있습니다."
-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전시해설 자료집(2020)>
요컨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문구 안에는 '파병을 받던 나라에서 파병을 하는 나라로' 나아가 '전쟁에 시달리던 나라에서 전쟁에 나가는 국가로'라는 암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필요'를 '기여'라는 인도적 차원의 행위로 바꾸는 말의 공정을 우리는 워싱(washing)이라 부른다.

해외파병실의 베트남전쟁 전시관 입구. 베트남의 정글을 재현한 디오라마에 한국군 수색대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전쟁기념관은 한국군의 '기여'가 가닿은 최초의 국가로 베트남을 호명한다. 달리 말하면 해외파병실을 찾은 관람객이 최초로 마주하는 '워싱'의 현장이 베트남이다. 그 초입에는 베트남의 '정글'을 재현한 거대한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다. 문명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열대식물 오브제와 새, 원숭이, 곤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 속에 관람객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립감을 해소해 주는 장치가 있으니, 바로 정글을 개척하고 전진하는 한국군 수색대의 영상이다.
관람객으로서는 자신이 한국군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자연스럽게, 정글 어딘가에 원숭이처럼 웅크리고 있을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멸칭)의 얼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고초를 겪었다는 군인들의 서사는 문명화에 대한 '기여'의 레토릭을강화하고 그 나라 국민들의 가슴 속에 감사와 동정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동남아를 지배했던 식민제국—영국, 네덜란드, 미국, 일본—이 원주민에 대한 탄압(식민화)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글을 '미개와 야만'의 상징으로 묘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순결한' 민간인은 없었다는 전쟁 프로파간다
베트남 정글에 곧바로 이어지는 전시는 '베트콩 마을'을 재현해 놓은 미니어처 세트다. 해외파병실에서 '베트콩' 인간 조형이 등장하는 유일한 전시이기도 하다. 다시 관람객의 눈으로 보면, 한국군과 함께 정글을 헤쳐 나오자마자 적(敵)을 맞닥뜨리는 체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도 베트남은 멸시의 대상이다. 전시된 '베트콩' 조형은 기껏해야 레고 정도 크기이고, 개중에는 표정은 물론 아예 얼굴이 없는 것도 있다. 그에 비해 한국군은 월등한 존재로 표상된다. 실제로 미니어처 세트 맞은편에는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실물 크기의 한국 초병 마네킹(표정이 뚜렷한)과 단단한 콘크리트 골조의 주월한국군사령부 건물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작고 조악한 '베트콩', '베트콩 마을'과의 극적인 대비를 연출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이 같은 분별을 우리는 '타자화'라 부른다.

해외파병실 베트남전쟁 전시관의 구찌땅굴 모형을 보고 있는 베트남 피해생존자들 ⓒ 한베평화재단
그러나 해당 전시는 단순히 '베트콩 마을'을 재현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베트콩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치는 '땅굴'이다. 그렇다.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사에서 핵심적인 위협으로 간주된 바로 그 땅굴 말이다. 전시를 자세히 보면 마을 상층부의 민가지대가 함정·무기·탄약으로 가득한 하층부(지하)의 땅굴과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 마을들이 사실상 적의 소굴이었다는, 베트남 지상과 지하 어디에도 '순결한' 민간인은 없었다는 전쟁 프로파간다를 실체화한 오브제라 할 수 있다. 기실 베트남 마을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나 민간인 학살이 '전쟁범죄가 아니'라는 한국의 주장은 이 같은 '땅굴'의 존재를 핑계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류의 면피 논리는 세계의 여러 분쟁 지역에서, 특히 전범국들이 즐겨 쓴다. 예컨대 2003년, 이스라엘 국방부 대변인 샤론 파인골드 소령은 팔레스타인 라파의 민가를 공격한 이스라엘군의 범죄를 다음과 같이 정당화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터널은 수배 중인 테러리스트, 무기, 군수품이 은밀히 오가는 데 사용됐습니다… 그 집이 우리 군에게 대전차 로켓포를 사용하는데 이용됐다면, 그곳은 전쟁터입니다… 집이 전투 행위에 이용되었다면 그때부터는 집이 아닙니다. 제네바 협약에 따라서, 그런 곳은 목표물이 될 수 있습니다…그들이 이 지역을 전투 지대로 만든 겁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단 전쟁기념관뿐만 아니라, 한국에 산재한 거의 모든 베트남 전쟁 관련 전시가 마을과 땅굴의 '교묘한' 협조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그것이 베트남 국가와 민족의 위선적 민낯인 양, 또 전쟁 범죄에 의한 피해가 베트남 사람들의 자업자득 업보인 양 설명하는 캡션과 함께 말이다(그곳은 베트남 사람들의 땅이고 집이었다. 그들이 한국군을 편하게 해주었어야 한다는 걸까? 그들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게 과연 우연일까? 어쨌든 관람객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평화를 말하며 전쟁을 추동하는 정신분열
나는 다시 그를 떠올렸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전시들을 관람했을까. 아마도 감탄해 마지않았을 것이다. 남베트남 정부 "국가평정사업 지원"의 핵심거점이었다는 베트남 중대전술기지 모형을 볼 때는 말이다(그러나 그것이 베트남 사람들을 소개·축출·처벌·살해하기 위한 전술모델의 일부임을 알았을까?). 자부심도 느꼈을 것 같다.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대민지원 활동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보면서는 말이다(그러나 그것이 조선의 '식민지 근대화'를 찬양한 일본 제국의 선전기법을 빼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베트남 전쟁에서 활용되었다는 전투무기 쇼케이스 앞을 서성일 때는 흥분에 젖어들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무기가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할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때로는 숙연히 고개도 숙였을 것이다. 참전 군인들의 흉상·수기·군복과 부대 깃발 등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대면서 '나도 이 영웅들처럼…'하고 되뇌었으리라(그러나 수많은 군인들이 반강제로 동원되었고, 때로는 국가를 원망하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그리고 마침내 완성했을 것이다. 우리가 치른 모든 전쟁은 정당했다는 신념을.

퐁니·퐁녓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과 사건 목격자 응우옌득쩌이가 한국군 중대전술기지 디오라마 앞에서 한국 시민들에게 모형의 이면에 담긴 한국군의 잔혹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나는 약간의 열패감을 느꼈다. 이토록 편향적인, 압도적 규모의 전시(展示) 프로파간다 앞에서 그 누군들 설득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물론 전쟁기념관 측은 웃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또 한 명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국민'을 양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전시 방향을 수정할 의지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관련하여 얼마 전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변을 남겼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지킨 분들의 공헌을 기리는 공간이며 한국군의 명암(明暗) 중 '명'에 집중하는 것은 전쟁기념관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며, 암을 은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전쟁기념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는 답변이다. 특히 명(明)에 집중한다는 언급은 자신들이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기념관이 아닌 전쟁을 추동하는—"전쟁은 필요하다"고 말하는—기념관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암(暗)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말도 우습다. '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긴 안다는 말인가. 알면서도 '특수성'을 방패삼아 전시 프로파간다를 지속하겠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전쟁기념관은, 일본의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가 갈파한 대로, 단지 "전쟁의 기억을 전 국민적으로 동일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세뇌하려 들고 있는 것인가?
전쟁기념관이 모르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 자체가 이미 암(暗)이라는 사실이다. 전쟁기념관은 피학살자들의 시신 위에서 평화를 외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명'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전쟁기념관은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을 추동하는' 정신분열에서 헤어날 수 없다. 즉 그들이 전쟁범죄를, 학살을 외면하려하면 할수록 피해자들의 존재가 평화의 가치와 함께 솟아오르는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존재를 '원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원혼은 그들이 자랑스레 전시한 전투 무기에, 그들이 왜곡한 전쟁사 패널에, 그들이 타자화한 조형물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비단 해외파병실만 그런 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남한군'에 의해 학살당한 수십만의 '남한 민간인'들의 원혼은 어찌할 것인가. 전쟁기념관은 그 원혼들을 감히 암(暗)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전쟁기념관 내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원혼—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틀어 100만이 넘어가는—들의 항쟁을 전쟁기념관이 진압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군인들의 '숭고한' 호국서사조차도 이 항쟁을 진압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학살에 참여한 군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리라 생각한다. "살해자가 느끼는 고통의 핵심은 그의 영혼 속에서 영원히 메아리치는 피해자의 고통과 죽음"(데이브 그로스먼, <살인의 심리학>)이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의 한 장면.
채명신 장군 훈련 팻말에 ‘거짓’ 포스트잇을 붙인 탄탄이의 비폭력 직접행동 이야기를 담았다. ⓒ 한베평화재단
나는 전쟁기념관이 이 같은 원혼들의 항쟁에 전복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그 항쟁에 연대하는 시민활동가들도 있다. 최근 그들은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채명신(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의 훈령 팻말에 "거짓"이라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활동을 벌였고, 이에 전쟁기념관은—지질하기 짝이 없게도—활동가들을 고소했다. 그런다고 채명신의 훈령이 협잡(bullshit)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을 추동하는' 정신분열만 한층 더 심각해졌을 뿐이다. 이런 점점(點點)의 생채기가 가는 실금이 되고 실금이 균열이 되어, 전쟁기념관을 군사주의의 거대한 무덤으로 화하게 만들 것이다. 그날을 나는 기다린다. 꼭 보고 싶은 광경이다.
[참고 자료]
조사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정수란 옮김, 글논그림밭, 2012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전시해설 자료집』, 2020
데이브 그로스먼, 『살인의 심리학』, 이동훈 옮김, 열린책들, 2023
신스완, 한국의 전쟁 '기념'을 다시 묻다: 반기념비로 살펴보는 새로운 기억의 방식, 2026
글: 최우현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나는 전쟁 '기념'에 반대한다 7화]
전쟁기념관에 올라온 이상한 소감문
포병 장교 출신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작가 최우현이 마주한 전쟁기념관의 얼굴
최우현
어쩌다 이런 소감이 나오고 말았을까
"전쟁은 필요하다!!"
2026년 5월 7일 오전 11시경, 용산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유엔참전실) 전시코너 'UN 참전용사에 보내는 편지'에 띄워져 있던 문장이다. 편지글이라기보다는 전쟁기념관 전시 전체에 대한 소감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한참을 이 문장 앞에서 서성였다. 대체 누가 썼을까. 아이일까, 어른일까. 어떤 표정으로 썼을까. 쓰고 나서는 뭐라고 말했을까. 동시에 곱씹어보았다. 전쟁의 필요를 끌어다가 어디에, 누구를 향해 투사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그 '필요'하다는 전쟁에서 본인의 위치를 어느 지점에 상정해두고 이 글을 썼을까.
전쟁기념관 6·25전쟁실Ⅲ(유엔참전실) 전시코너 ‘UN 참전용사에 보내는 편지’에 띄워져 있던 편지글(소감문)들 ⓒ 최우현
사실 참 명쾌하긴 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선성(善性)은 눈곱만큼도 신뢰하지 않는 "니힐리스트의 명쾌함"(마루야마 마사오)을 담아낸 문장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소감문의 주인공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인류의 여러 역사적 노력·실험·고민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전쟁을 선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구절절한 프레임들—방어를 위한 전쟁, 예방전쟁, 정의의 십자군 등등—마저 가차 없이 깨부수면서 전쟁 그 자체만을 지상의 가치로 밀어올리고 있다. 전쟁은 필요하다···? 2024년 한국에서 계엄을 일으켜 자기 국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내란수괴'조차도 감히 대놓고는 뱉지 못했던 말 아니던가.
어쩌다 이런 소감이 나오고 말았을까. 매우 당연하게도, 전쟁기념관의 역할을 추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소감문이 게시된 전시실은 3층 6·25전쟁실Ⅲ. 2층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6·25전쟁실Ⅰ,Ⅱ부터 관람을 시작하여 3층의 Ⅲ로 이어지게끔 하는 전시 동선을 고려할 때 이 소감문은 전쟁기념관이 제시한 전쟁관(戰爭觀)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 추정하기에 무리가 없다. 또 같은 맥락에서 소감문 작성자의 다음 관람지가 3층의 남은 하나의 상설전시실인 '해외파병실'로 이어졌을 거라고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궁금해졌다. "전쟁은 필요하다"고 외친 그의 신념이 마지막 전시에 이르러 약화되었을지 아니면 더 강화되었을지.
전쟁의 추악함을 씻어내는 워싱(washing)
그(소감문 작성자)의 흔적을 좇아 도달한 해외파병실 입구에서 거대한 세계지도 하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물론 그냥 세계지도는 아니었다. 미국의 뒤를 잇는 '아류 기지국가' 한국의 자부심을 담아낸 해외파병, 아니 사실상의 세계분쟁 지도였다. 이 지도를 굳이 전면에 배치한 전쟁기념관 측의 의도는 알만 했다. 기념관이 설명하는 파병의 명분은 '세계평화에 기여'라는 일곱 글자로 정리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서 '기여'는 한국의 경제성장 신화—'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를 전쟁의 영역에서 재가공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전쟁기념관은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문구 안에는 '파병을 받던 나라에서 파병을 하는 나라로' 나아가 '전쟁에 시달리던 나라에서 전쟁에 나가는 국가로'라는 암시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쟁의 필요'를 '기여'라는 인도적 차원의 행위로 바꾸는 말의 공정을 우리는 워싱(washing)이라 부른다.
해외파병실의 베트남전쟁 전시관 입구. 베트남의 정글을 재현한 디오라마에 한국군 수색대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전쟁기념관은 한국군의 '기여'가 가닿은 최초의 국가로 베트남을 호명한다. 달리 말하면 해외파병실을 찾은 관람객이 최초로 마주하는 '워싱'의 현장이 베트남이다. 그 초입에는 베트남의 '정글'을 재현한 거대한 디오라마가 설치되어 있다. 문명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열대식물 오브제와 새, 원숭이, 곤충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간 속에 관람객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립감을 해소해 주는 장치가 있으니, 바로 정글을 개척하고 전진하는 한국군 수색대의 영상이다.
관람객으로서는 자신이 한국군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자연스럽게, 정글 어딘가에 원숭이처럼 웅크리고 있을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멸칭)의 얼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미개한' 원주민들에게 고초를 겪었다는 군인들의 서사는 문명화에 대한 '기여'의 레토릭을강화하고 그 나라 국민들의 가슴 속에 감사와 동정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동남아를 지배했던 식민제국—영국, 네덜란드, 미국, 일본—이 원주민에 대한 탄압(식민화)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글을 '미개와 야만'의 상징으로 묘사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순결한' 민간인은 없었다는 전쟁 프로파간다
베트남 정글에 곧바로 이어지는 전시는 '베트콩 마을'을 재현해 놓은 미니어처 세트다. 해외파병실에서 '베트콩' 인간 조형이 등장하는 유일한 전시이기도 하다. 다시 관람객의 눈으로 보면, 한국군과 함께 정글을 헤쳐 나오자마자 적(敵)을 맞닥뜨리는 체험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서도 베트남은 멸시의 대상이다. 전시된 '베트콩' 조형은 기껏해야 레고 정도 크기이고, 개중에는 표정은 물론 아예 얼굴이 없는 것도 있다. 그에 비해 한국군은 월등한 존재로 표상된다. 실제로 미니어처 세트 맞은편에는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실물 크기의 한국 초병 마네킹(표정이 뚜렷한)과 단단한 콘크리트 골조의 주월한국군사령부 건물 모형이 설치되어 있다. 작고 조악한 '베트콩', '베트콩 마을'과의 극적인 대비를 연출하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이 같은 분별을 우리는 '타자화'라 부른다.
해외파병실 베트남전쟁 전시관의 구찌땅굴 모형을 보고 있는 베트남 피해생존자들 ⓒ 한베평화재단
그러나 해당 전시는 단순히 '베트콩 마을'을 재현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베트콩 마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치는 '땅굴'이다. 그렇다. 한국군의 베트남 전쟁사에서 핵심적인 위협으로 간주된 바로 그 땅굴 말이다. 전시를 자세히 보면 마을 상층부의 민가지대가 함정·무기·탄약으로 가득한 하층부(지하)의 땅굴과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 마을들이 사실상 적의 소굴이었다는, 베트남 지상과 지하 어디에도 '순결한' 민간인은 없었다는 전쟁 프로파간다를 실체화한 오브제라 할 수 있다. 기실 베트남 마을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나 민간인 학살이 '전쟁범죄가 아니'라는 한국의 주장은 이 같은 '땅굴'의 존재를 핑계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류의 면피 논리는 세계의 여러 분쟁 지역에서, 특히 전범국들이 즐겨 쓴다. 예컨대 2003년, 이스라엘 국방부 대변인 샤론 파인골드 소령은 팔레스타인 라파의 민가를 공격한 이스라엘군의 범죄를 다음과 같이 정당화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단 전쟁기념관뿐만 아니라, 한국에 산재한 거의 모든 베트남 전쟁 관련 전시가 마을과 땅굴의 '교묘한' 협조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그것이 베트남 국가와 민족의 위선적 민낯인 양, 또 전쟁 범죄에 의한 피해가 베트남 사람들의 자업자득 업보인 양 설명하는 캡션과 함께 말이다(그곳은 베트남 사람들의 땅이고 집이었다. 그들이 한국군을 편하게 해주었어야 한다는 걸까? 그들이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이게 과연 우연일까? 어쨌든 관람객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평화를 말하며 전쟁을 추동하는 정신분열
나는 다시 그를 떠올렸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전시들을 관람했을까. 아마도 감탄해 마지않았을 것이다. 남베트남 정부 "국가평정사업 지원"의 핵심거점이었다는 베트남 중대전술기지 모형을 볼 때는 말이다(그러나 그것이 베트남 사람들을 소개·축출·처벌·살해하기 위한 전술모델의 일부임을 알았을까?). 자부심도 느꼈을 것 같다. 베트남 파병 한국군의 대민지원 활동을 재현한 디오라마를 보면서는 말이다(그러나 그것이 조선의 '식민지 근대화'를 찬양한 일본 제국의 선전기법을 빼닮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베트남 전쟁에서 활용되었다는 전투무기 쇼케이스 앞을 서성일 때는 흥분에 젖어들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그 무기가 베트남 민간인들을 학살할 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때로는 숙연히 고개도 숙였을 것이다. 참전 군인들의 흉상·수기·군복과 부대 깃발 등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대면서 '나도 이 영웅들처럼…'하고 되뇌었으리라(그러나 수많은 군인들이 반강제로 동원되었고, 때로는 국가를 원망하며 고통 속에 죽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그리고 마침내 완성했을 것이다. 우리가 치른 모든 전쟁은 정당했다는 신념을.

퐁니·퐁녓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과 사건 목격자 응우옌득쩌이가 한국군 중대전술기지 디오라마 앞에서 한국 시민들에게 모형의 이면에 담긴 한국군의 잔혹사에 대해 말하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나는 약간의 열패감을 느꼈다. 이토록 편향적인, 압도적 규모의 전시(展示) 프로파간다 앞에서 그 누군들 설득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고. 물론 전쟁기념관 측은 웃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또 한 명의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국민'을 양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전시 방향을 수정할 의지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관련하여 얼마 전에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답변을 남겼다고 한다.
빙빙 돌려 말했지만, 전쟁기념관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내는 답변이다. 특히 명(明)에 집중한다는 언급은 자신들이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이룩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기념관이 아닌 전쟁을 추동하는—"전쟁은 필요하다"고 말하는—기념관임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암(暗)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말도 우습다. '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긴 안다는 말인가. 알면서도 '특수성'을 방패삼아 전시 프로파간다를 지속하겠다는 의미인가. 그렇다면 전쟁기념관은, 일본의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가 갈파한 대로, 단지 "전쟁의 기억을 전 국민적으로 동일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세뇌하려 들고 있는 것인가?
전쟁기념관이 모르고 있는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 자체가 이미 암(暗)이라는 사실이다. 전쟁기념관은 피학살자들의 시신 위에서 평화를 외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명'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이러한 모순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전쟁기념관은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을 추동하는' 정신분열에서 헤어날 수 없다. 즉 그들이 전쟁범죄를, 학살을 외면하려하면 할수록 피해자들의 존재가 평화의 가치와 함께 솟아오르는 역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 존재를 '원혼'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원혼은 그들이 자랑스레 전시한 전투 무기에, 그들이 왜곡한 전쟁사 패널에, 그들이 타자화한 조형물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
비단 해외파병실만 그런 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남한군'에 의해 학살당한 수십만의 '남한 민간인'들의 원혼은 어찌할 것인가. 전쟁기념관은 그 원혼들을 감히 암(暗)이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전쟁기념관 내부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원혼—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틀어 100만이 넘어가는—들의 항쟁을 전쟁기념관이 진압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군인들의 '숭고한' 호국서사조차도 이 항쟁을 진압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불가능성에 대해서는 학살에 참여한 군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리라 생각한다. "살해자가 느끼는 고통의 핵심은 그의 영혼 속에서 영원히 메아리치는 피해자의 고통과 죽음"(데이브 그로스먼, <살인의 심리학>)이기 때문이다.
<전쟁기념관을 바꾸는 시민활동가들의 모임 탄탄이>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의 한 장면.
채명신 장군 훈련 팻말에 ‘거짓’ 포스트잇을 붙인 탄탄이의 비폭력 직접행동 이야기를 담았다. ⓒ 한베평화재단
나는 전쟁기념관이 이 같은 원혼들의 항쟁에 전복되리라 생각한다. 이미 그 항쟁에 연대하는 시민활동가들도 있다. 최근 그들은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는 채명신(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의 훈령 팻말에 "거짓"이라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활동을 벌였고, 이에 전쟁기념관은—지질하기 짝이 없게도—활동가들을 고소했다. 그런다고 채명신의 훈령이 협잡(bullshit)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을 추동하는' 정신분열만 한층 더 심각해졌을 뿐이다. 이런 점점(點點)의 생채기가 가는 실금이 되고 실금이 균열이 되어, 전쟁기념관을 군사주의의 거대한 무덤으로 화하게 만들 것이다. 그날을 나는 기다린다. 꼭 보고 싶은 광경이다.
[참고 자료]
조사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정수란 옮김, 글논그림밭, 2012
전쟁기념관, 『전쟁기념관 전시해설 자료집』, 2020
데이브 그로스먼, 『살인의 심리학』, 이동훈 옮김, 열린책들, 2023
신스완, 한국의 전쟁 '기념'을 다시 묻다: 반기념비로 살펴보는 새로운 기억의 방식, 2026
글: 최우현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