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고통을 닫을 수 없게 하는 끝없는 폭력
응우옌티남(다낭외대 한국언어문화학부 4학년)
전쟁은 지나갔지만,
땅은 여전히 스며든 사람의 피를 기억한다.
지도에서 마을은 사라졌고
그저 인간의 울음소리만이 기억 속에 매달려 있네
미처 자라지도 못한 아이들,
미처 늙지도 못한 어머니들,
그 모두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던 한순간에 멈춰 섰다.
베트남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 전쟁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은 여전히 여러 세대에 걸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상처들 가운데에는 한국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라는, 특히 민감하고도 아픈 역사가 존재한다. 평화로운 시대에 살아가는 베트남인으로서 나는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평화 활동에 참여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 고통을 민족 공동의 기억으로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한국 방문단과 함께 통역을 맡아 꽝남성 디엔반현 디엔즈엉사 하미 마을에 사는 응우옌티본 할머니의 집을 찾았을 때였다. 그날 할머니의 증언은 놀랄 만큼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와 친형제자매를 잃은 고통이 너무도 깊이 담겨있어,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듯했다. 아마도 할머니 안의 눈물은 세월과 함께 서서히 말라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섬뜩할 만큼의 평온함이 나의 눈물이 숨을 자리를 없게 했다.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본(가운데)과 그의 딸, 손녀와 만남 브이(V)로드 평화기행단
응우옌티남(왼쪽)이 한국 시민들과 함께 한 두번째 평화기행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눈물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 순간의 침묵이야말로 민족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역으로서 나는 감정을 선택할 권리는 없었지만, 진실을 선택할 책임은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애썼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를 거치며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기억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노력했다.
한베평화재단과 함께한 ‘브이(V) 로드’ 여정에서 나는 베트남 사람들뿐 아니라, 자국의 역사와 용기 있게 마주하려는 한국 시민들의 존재도 목격했다. 그들은 진실규명, 사죄,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표어를 들고 있었다. 평화를 위해 베트남인과 한국인이 손을 맞잡는 그 장면은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역사라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인도적인 길과 대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응우옌티남의 통역으로 평화의 시간을 나눈 두사람
하꽝학살 피해생존자 팜티뜨와 시민사회방문단 참가자 정인성
베트남인으로서 나는 민간인 학살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윤리와 인권의 문제로 바라본다. 군사 전략이나 상부의 명령 그 어떤 것도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은 결코 그리고 절대로 전쟁의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학살은 생명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믿음 자체를 파괴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전쟁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침묵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야기조차 되지 못한 채 살아가다 세상을 떠났고, 단 한 번의 공식적인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나에게 이 침묵은 또 다른 형태의 지속적인 폭력이다. 고통을 끝내 닫지 못하게 만드는 폭력이다. 역사가 이름 붙여지지 않고, 고통이 인정되지 않는 한, 화해는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베평화재단과 함께한 평화 활동을 통해 나는 희망의 신호 또한 보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한국의 학자, 언론인, 사회운동가들이 재단과 함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있고 과거와 마주하는 일을 피해자와 한국 사회 모두를 위한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모습은 진실을 직시할 용기만 있다면 화해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믿게 한다.
'
2025년 11월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지역 시민사회 방문단'과 함께 밀라이학살 위령탑 앞에서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로서 나는 이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전해야 할 책임을 분명히 느낀다. 기억은 증오를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비슷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쟁 속 민간인의 고통을 잊는 순간,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역사를 무심결에 허용하게 된다.
한베평화재단과 함께한 모든 여정을 마칠 때마다 내 안에는 두 감정이 동시에 남는다. 깊은 슬픔과 조용한 희망이다. 과거가 너무도 참혹하기에 슬프지만, 베트남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진실과 정의, 평화를 위해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을 품게 된다. 민간인 학살의 이야기가 정직하고 온전하게 기록되고 전해질 때에만, 우리는 인간과 인간의 품격을 존중하는 미래를 세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번역: 짜노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평화기행의 통역활동가 뿐만 아니라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진료단 통역단 등에 참여하며 한국 시민사회와 연대의 발걸음을 이어가주고 계신 응우옌티남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
침묵은 고통을 닫을 수 없게 하는 끝없는 폭력
응우옌티남(다낭외대 한국언어문화학부 4학년)
전쟁은 지나갔지만,
땅은 여전히 스며든 사람의 피를 기억한다.
지도에서 마을은 사라졌고
그저 인간의 울음소리만이 기억 속에 매달려 있네
미처 자라지도 못한 아이들,
미처 늙지도 못한 어머니들,
그 모두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던 한순간에 멈춰 섰다.
베트남전쟁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그 전쟁이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은 여전히 여러 세대에 걸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상처들 가운데에는 한국군을 포함한 외국 군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이라는, 특히 민감하고도 아픈 역사가 존재한다. 평화로운 시대에 살아가는 베트남인으로서 나는 전쟁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평화 활동에 참여하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그 고통을 민족 공동의 기억으로 깊이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한국 방문단과 함께 통역을 맡아 꽝남성 디엔반현 디엔즈엉사 하미 마을에 사는 응우옌티본 할머니의 집을 찾았을 때였다. 그날 할머니의 증언은 놀랄 만큼 차분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쏟아져 나왔다. 어머니와 친형제자매를 잃은 고통이 너무도 깊이 담겨있어,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듯했다. 아마도 할머니 안의 눈물은 세월과 함께 서서히 말라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섬뜩할 만큼의 평온함이 나의 눈물이 숨을 자리를 없게 했다.
하미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본(가운데)과 그의 딸, 손녀와 만남 브이(V)로드 평화기행단
응우옌티남(왼쪽)이 한국 시민들과 함께 한 두번째 평화기행이었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눈물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 순간의 침묵이야말로 민족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역으로서 나는 감정을 선택할 권리는 없었지만, 진실을 선택할 책임은 있었다. 나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애썼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를 거치며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기억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노력했다.
한베평화재단과 함께한 ‘브이(V) 로드’ 여정에서 나는 베트남 사람들뿐 아니라, 자국의 역사와 용기 있게 마주하려는 한국 시민들의 존재도 목격했다. 그들은 진실규명, 사죄,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표어를 들고 있었다. 평화를 위해 베트남인과 한국인이 손을 맞잡는 그 장면은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역사라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인도적인 길과 대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응우옌티남의 통역으로 평화의 시간을 나눈 두사람
하꽝학살 피해생존자 팜티뜨와 시민사회방문단 참가자 정인성
베트남인으로서 나는 민간인 학살을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윤리와 인권의 문제로 바라본다. 군사 전략이나 상부의 명령 그 어떤 것도 무고한 민간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은 결코 그리고 절대로 전쟁의 ‘부수적 피해’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학살은 생명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믿음 자체를 파괴했다.
내가 무엇보다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전쟁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침묵이다.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야기조차 되지 못한 채 살아가다 세상을 떠났고, 단 한 번의 공식적인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나에게 이 침묵은 또 다른 형태의 지속적인 폭력이다. 고통을 끝내 닫지 못하게 만드는 폭력이다. 역사가 이름 붙여지지 않고, 고통이 인정되지 않는 한, 화해는 공허한 개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베평화재단과 함께한 평화 활동을 통해 나는 희망의 신호 또한 보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한국의 학자, 언론인, 사회운동가들이 재단과 함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역사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있고 과거와 마주하는 일을 피해자와 한국 사회 모두를 위한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모습은 진실을 직시할 용기만 있다면 화해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믿게 한다.
2025년 11월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지역 시민사회 방문단'과 함께 밀라이학살 위령탑 앞에서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젊은 세대로서 나는 이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전해야 할 책임을 분명히 느낀다. 기억은 증오를 키우기 위함이 아니라, 비슷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전쟁 속 민간인의 고통을 잊는 순간, 우리는 다른 모습으로 반복될 역사를 무심결에 허용하게 된다.
한베평화재단과 함께한 모든 여정을 마칠 때마다 내 안에는 두 감정이 동시에 남는다. 깊은 슬픔과 조용한 희망이다. 과거가 너무도 참혹하기에 슬프지만, 베트남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진실과 정의, 평화를 위해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을 품게 된다. 민간인 학살의 이야기가 정직하고 온전하게 기록되고 전해질 때에만, 우리는 인간과 인간의 품격을 존중하는 미래를 세울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번역: 짜노
*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평화기행의 통역활동가 뿐만 아니라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진료단 통역단 등에 참여하며 한국 시민사회와 연대의 발걸음을 이어가주고 계신 응우옌티남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평화의 mat]
'mắt'은 베트남어로 '눈(目)'을 뜻하는 단어로 '평화의 mat'은 평화의 눈으로 '맛 본'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