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월례강좌 스케치>
비정규전에서 국군 또는 한국군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폭력의 그늘
- 월례강좌 김태수 시인 -
월례강좌 <베트남전쟁 & 안과 밖>에서 김태수 시인을 모셨습니다. 10월 26일(목) 저녁 7시부터 2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강연에 15명의 참가자들이 한베평화재단을 찾아주셨습니다. 베트남전쟁 연구자 윤충로 교수 님, 베트남 유학생 팜티미 님, 베트남전쟁 관련 그림책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진선 작가 님 등이 와주셔서 김태수 시인 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태수 시인. 이날 강연을 위해 용인에서 재단까지 발걸음을 해주셨습니다.
김태수 시인은 1971년 10월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1년간 백마부대원으로 참전을 했습니다. 전투서열병이란 직책을 맡았던 그는 전쟁 당시 첩보병이나 정보원들이 수집해온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검토하여 이를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병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베트남전쟁 당시의 다양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들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김태수 시인은 1987년 베트남전쟁 경험을 담은 연작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를 출간합니다. 이 시집에는 명분 없는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병사라는 자신의 부끄러운 정체성을 통절하게 되새기며 자신과 수많은 생명붙이들이 겪은 전쟁의 고통을 담아낸 시편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시인은 참전 이후 많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베트남전쟁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교사였던 시인이 제대 후 복직하여 마산 근처의 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통했던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자주 어울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 ‘왜 우리가 베트남에 갔을까’, ‘어째서 우리 전우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를 자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년간 이야기를 나누고 한편으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공부와 조사를 한 끝에 시인은 허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가 갈 이유가 없는 전쟁터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시인의 마음 속에서 전쟁은 끝날 수가 없었습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이 방향을 잡게 되자 참전군인으로서 느꼈던 죄책감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전투서열병 당시 백마부대에 희생당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게릴라의 시신을 찍은 수많은 사진을 봐야만 했었는데 너무도 처참하고 끔찍한 모습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사진들은 전투의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었는데 사진으로 남지 않은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단 한명의 결석자 없이 2시간을 가득 채웠던 시간.
강연날 다른 행사와 일정으로 오지 못해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시인은 전쟁 당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게릴라들이 한국군을 두려워하며 ‘한국군과의 교전을 절대 피하라’라는 지침이 있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매우 부끄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게릴라들이 한국군에게 조금이라도 저항을 하면 한국군이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라는 지침을 세웠지만 그것은 실재 전장에서 적용되기 힘든 애매한 지침이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한국군의 수많은 민간인학살과 잔인한 행동의 뒤에는 미군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말씀해주셨습니다.
35년 전 작성한 거창군 신원면 학살 피해 지도를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김태수 시인
1987년,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의 출간으로 인해 국군모독죄로 고초를 겪는 과정에서 시인은 거창양민학살과 만나게 됩니다. 마산에 살았던 그가 거창으로 거처를 옮겼을 정도로 거창양민학살 문제에 진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날 강연에 시인은 35년 전 본인이 직접 작성한 거창군 신원면의 학살 피해 현황 지도 복사본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지도를 함께 보며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한 아픔의 기록과 이야기들을 공유해주셨습니다. 시인이 평생 잊지 못할 피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이야기들은 김태수 시인이 15년에 걸쳐 쓴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에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합니다. 시인은 한국전쟁 당시 국가가 주민들을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이후 정치적인 목적으로 주민들을 말살한 점을 일갈했습니다.
이날 김태수 시인은 중대한 사안일수록 자꾸 감추려하지 말고 어떻게든 외부로 끄집어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1987년에 베트남전쟁 경험을 녹여낸 시집을 출간한 것이었고 음지에 있던 거창민간인학살 문제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인으로서 300행에 달하는 장시를 쓴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태수 시인의 그러한 바람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그리고 수많은 국가폭력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양지로 나와야할 것입니다.
1987년 출간 당시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 표지(좌)와 2019년 복간된 시집의 표지(우)
김태수 시인의 베트남전쟁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을 보시길 다시 한번 추천드립니다. 각 시편들마다 절절한 사연들을 품고 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집에 담겨 있어 시집을 읽고 나면 시인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 한베평화재단이 준비한 월례강좌 <베트남전쟁 & 안과 밖>은 이날 김태수 시인의 강연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구성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년간 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권현우 활동가
사진|이정란 활동가
<10월 월례강좌 스케치>
비정규전에서 국군 또는 한국군이라는 이름으로 행한 폭력의 그늘
- 월례강좌 김태수 시인 -
월례강좌 <베트남전쟁 & 안과 밖>에서 김태수 시인을 모셨습니다. 10월 26일(목) 저녁 7시부터 2시간 넘게 진행된 이날 강연에 15명의 참가자들이 한베평화재단을 찾아주셨습니다. 베트남전쟁 연구자 윤충로 교수 님, 베트남 유학생 팜티미 님, 베트남전쟁 관련 그림책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서진선 작가 님 등이 와주셔서 김태수 시인 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태수 시인은 1971년 10월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1년간 백마부대원으로 참전을 했습니다. 전투서열병이란 직책을 맡았던 그는 전쟁 당시 첩보병이나 정보원들이 수집해온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검토하여 이를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병사의 신분이었음에도 베트남전쟁 당시의 다양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들의 진실과 거짓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김태수 시인은 1987년 베트남전쟁 경험을 담은 연작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를 출간합니다. 이 시집에는 명분 없는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병사라는 자신의 부끄러운 정체성을 통절하게 되새기며 자신과 수많은 생명붙이들이 겪은 전쟁의 고통을 담아낸 시편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날 강연에서 시인은 참전 이후 많은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베트남전쟁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교사였던 시인이 제대 후 복직하여 마산 근처의 섬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통했던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자주 어울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주 술잔을 기울이며 ‘왜 우리가 베트남에 갔을까’, ‘어째서 우리 전우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야만 했을까’를 자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수년간 이야기를 나누고 한편으로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공부와 조사를 한 끝에 시인은 허무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베트남전쟁은 우리가 갈 이유가 없는 전쟁터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시인의 마음 속에서 전쟁은 끝날 수가 없었습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성찰이 방향을 잡게 되자 참전군인으로서 느꼈던 죄책감이 더욱 커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전투서열병 당시 백마부대에 희생당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게릴라의 시신을 찍은 수많은 사진을 봐야만 했었는데 너무도 처참하고 끔찍한 모습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사진들은 전투의 성과를 보고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었는데 사진으로 남지 않은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전쟁 당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게릴라들이 한국군을 두려워하며 ‘한국군과의 교전을 절대 피하라’라는 지침이 있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매우 부끄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게릴라들이 한국군에게 조금이라도 저항을 하면 한국군이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채명신 장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라는 지침을 세웠지만 그것은 실재 전장에서 적용되기 힘든 애매한 지침이라는 말씀을 해주셨고 한국군의 수많은 민간인학살과 잔인한 행동의 뒤에는 미군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말씀해주셨습니다.
1987년,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의 출간으로 인해 국군모독죄로 고초를 겪는 과정에서 시인은 거창양민학살과 만나게 됩니다. 마산에 살았던 그가 거창으로 거처를 옮겼을 정도로 거창양민학살 문제에 진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날 강연에 시인은 35년 전 본인이 직접 작성한 거창군 신원면의 학살 피해 현황 지도 복사본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지도를 함께 보며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며 확인한 아픔의 기록과 이야기들을 공유해주셨습니다. 시인이 평생 잊지 못할 피해자들의 증언과 당시의 이야기들은 김태수 시인이 15년에 걸쳐 쓴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에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합니다. 시인은 한국전쟁 당시 국가가 주민들을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이후 정치적인 목적으로 주민들을 말살한 점을 일갈했습니다.
이날 김태수 시인은 중대한 사안일수록 자꾸 감추려하지 말고 어떻게든 외부로 끄집어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1987년에 베트남전쟁 경험을 녹여낸 시집을 출간한 것이었고 음지에 있던 거창민간인학살 문제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며 시인으로서 300행에 달하는 장시를 쓴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태수 시인의 그러한 바람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베트남전쟁과 한국전쟁 그리고 수많은 국가폭력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양지로 나와야할 것입니다.
김태수 시인의 베트남전쟁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시집 <베트남, 내가 두고 온 나라>을 보시길 다시 한번 추천드립니다. 각 시편들마다 절절한 사연들을 품고 있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시집에 담겨 있어 시집을 읽고 나면 시인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 한베평화재단이 준비한 월례강좌 <베트남전쟁 & 안과 밖>은 이날 김태수 시인의 강연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2024년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구성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년간 함께 해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권현우 활동가
사진|이정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