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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평화기행후기> 마음을 넘어 행동으로 잊힌 기억 조각 돌보기 / 함수민

2024.1.18~22(23) 베트남 평화기행 <끝나지 않은 이야기> 후기


Remembrance is a verb

: 마음을 넘어 행동으로 잊힌 기억 조각 돌보기



함수민


 삭제된 기억의 조각은 의식적으로 돌보고 마음 다해 발굴하지 않으면 쉽게 매몰된다. 지인 몇과 2020년 11월경 제주도로 평화기행을 다녀왔었다. ‘아름답고 이색적인 여행지’로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만날 수 없었던, 다른 풍경과 잊힌 목소리를 제주는 내놓았다. 유려한 절벽 전경과 세찬 물줄기가 어우러진 정방폭포에도, 푸른 구릉과 현무암 돌담이 파란 하늘과 더불어 명소가 되었던 길에도, 한적하고 고요했던 강정마을에도, 본토사에서 유리되었던 섬의 역사와 근현대를 아우르며 국가폭력에 맞선 핏빛 항쟁사가 가득하였다. 물론 제주도는 여전히 ‘아름답고 이색적인 여행지’임이 틀림없다. 다만 하나의 공간에는 여러 조각의 기억, 이미지, 서사가 공존한다. 치우쳐 드러나지 않았던 조각이, 가령 잊힌 역사와 같은 것이, 보다 적극적으로 돌봐져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2020.11.3. 제주 강정마을의 표지판(좌)과 제주 4.3 학살지인 정방폭포



2024년 새해가 밝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1월 18일~23일, 나는 한베평화재단에서 주최하는 평화기행에 올랐다. 내겐 첫 베트남행이었다. 전부터 생각하길, 처음 방문하는 베트남을 여행이 아닌 기행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경기도 다낭시’란 말이 생길 만큼 수많은 한국인이 연간 베트남을 찾는다. 멀지 않은 장소, 비교적 저렴한 물가, 야자나무와 열대우림으로 대표되는 이국적인 경관 등을 다소 차별적 사고에 결합하여 베트남 여행의 장점으로 꼽을 뿐, 사람들은 다낭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대규모 학살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 베트남 곳곳에는 과거 한국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와 그 상흔이 아직 남아있다. 1965년부터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던 대한민국의 전투부대 백마·맹호·청룡은 베트남의 중부~중남부에 동부 해안선을 따라 주둔하였고, 주둔 지역 베트남 민간인을 상대로 거대 규모의 조직적·집단적 학살을 자행하였다.



하나.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본격적인 기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는 기행에 임하는 마음가짐·태도·시선, 기행을 통하여 포착하고자 하는 것들을 공유하였다. ‘몰랐던 사실에 대한 배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간 연대’ 등 기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환대’, ‘평등한 관계 맺음’, ‘비폭력 대화’ 등 공동체 문화와 관련한 약속을 나누었다.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저자이자 ‘로드스꼴라’ 대표교사 김현아 님의 말처럼, 전쟁은 그 사회가 가진 내부 모순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따라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논의는 현재 사회가 어떤 결핍과 왜곡을 지니고 있는지 성찰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기행에 함께한 우리들은 첫날의 작업을 통하여 ‘비폭력’에 대한 문화적 고민을 시작으로, 역사적 폭력을 성찰하고 상처에 공감하며 죽음을 추모할 준비를 해나갔다고 할 수 있겠다.


베트남 현지에서 해당 공간의 분위기와 서사를 함께 느끼는 것은 본국 한국에서 타국을 상대로 학살을 저지른 자국 가해의 역사를 인지하는 것과 천지 차이이다. 33명의 평화기행단은 주월한국군 중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주둔지였던 꽝남성과 꽝응아이성의 ‘빈호아’, ‘퐁니·퐁녓’, ‘하미’, 그리고 주월미군에 의하여 학살이 벌어졌던 ‘밀라이(선미)’를 방문하였다. 학살 당시 생매장된 사람들이 불태워진 구덩이와 집터, 미군에 의한 성폭행 현장을 지켜본 선미의 곤나무, 퐁니·퐁녓 학살 곁에 함께 있던 야유나무, 분노와 울분을 담아 세운 빈호아의 증오비, 학살 참상이 담긴 비문을 덮은 하미 위령비의 연꽃대리석은 더 이상 서적이나 뉴스에 실린 이미지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 앞에 선 우리들의 눈과 귀와 마음에 닿았다. 버스를 타고 지나오는 길 곳곳에서 공동묘지와 만났다. 집·마을마다 조성된 자그마한 제단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영을 위로하였다. 생(生)의 곁에서 사(死)를 돌보고 기리려는 베트남의 추모 문화가 피부로 느껴졌다.


빈호아 집단 학살 구덩이(좌)와 밀라이 여성 폭력 및 학살 현장의 곤나무(중)와

퐁니 학살 현장의 야유나무(우)


둘. 위령비에 향을 피우며 잊힌 역사에 다가가기

 

기타 연주와 노래가 인상적이었던 도안응이어 님, 전쟁의 상처와 평화에의 열망을 시로 노래한 시인 탄타오 님, 매체가 학살을 재현하는 방식과 말뿐인 사죄의 한계를 지적하였던 전(前) 밀라이 박물관장 팜탄꽁 님, 국가배상소송 1심 승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가의 침묵·부정에 답답함을 표하던 응우옌티탄 님과 응우옌득쩌이 님, 노을 지는 퐁니 마을을 뒤로 한 채 씁쓸하고 착잡한 표정으로 증언을 이어가던 레딘믁 님과 레딘먼 님,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 청구 기각에 한숨지으며 위령비 뒤편의 연꽃을 어루만지던 응우옌티탄 님, ‘마음 모둠’이 댁을 방문하였을 때 따뜻하게 환대하여 주신 하미마을 유가족회 현 연락반장 응우옌응옥마이 님. 우리가 평화기행 동안 만나 뵙고 증언을 청해 들은, 과거 학살의 피해생존자 분들이다. 이들의 증언은 국가가 기억하는 베트남 전쟁사 이면의 ‘진짜 전쟁 이야기’이자, 과거의 기억을 안은 채 현재를 살아가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의 진실에 대한 현재의 증거였다. 학살을 도구 삼은 전쟁은 그 자체로 폭력일 뿐 아니라, 전쟁 이후 무수한 ‘n차 피해’를 남겼다. 자국 베트남과 가해국 대한민국을 상대로 치러질 지난한 생존 투쟁과 기억 투쟁은 아직도 불발탄이 터지는 베트남의 땅 위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빈호아 마을의 도안응이어 님(좌)과 퐁니·퐁녓 마을 응우옌티탄 님(우)의 증언 모습




퐁니·퐁녓 마을의 레딘믁님과 레딘먼 님(좌), 그리고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 님(우)의 증언 모습

 

우리는 이따금 향을 피우고 국화를 봉헌하였다. 빈호아 마을의 증오비·위령비에서, 증오비 뒤편 집단 학살이 발생한 공터에서, 밀라이 박물관 곁 밀라이 위령비에서, 다수의 여성이 성폭력과 학살의 대상이 된 집 앞 곤나무 아래에서, 퐁니·퐁녓 위령비와 야유나무 아래의 간이 추모시설에서, 하미마을 위령비에서, 우리는 추모 의식을 거행하였다. 국화 향 뒤로 스치는 매캐한 향불 향에 마음이 아렸다. 모두가 눈을 감는 짧은 묵념의 시간,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제대로 된 말 한마디, 마음 한 조각 건넬 수 없었다. 거대한 죽음들 앞에서 섣부른 그 어떤 한 마디도 무책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란 사과에도, ‘죽음을 추모하고 상처에 공감합니다’란 위로에도, ‘국가의 태도에 화가 납니다’란 분노에도, 진실을 외면하고 피해생존자의 호소에 침묵하여 온 국가현실을 바꿀 만큼의 힘은 없었기 때문이다.


연대가 ‘동사’의 형태이듯(Solidarity is a verb), 추모와 기억 역시 행동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유효성과 장기성을 상실하기 쉽다. 문자 그대로 ‘Remembrance is a verb’여야 함을 절감하였다. 기행의 가장 마지막 날이던 22일, 하미마을에 들렀을 때 나는 처음으로 위령비 앞 추모 시간에 마음을 전하였다. 다짐 내지는 약속에 가까웠다. “기행에서 추모 마음을 잊지 않을게요. 한국에 돌아가거든 베트남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의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 새겨지기 위한 무언가를 꼭 함께 해나가겠습니다” 마음으로 전하였다.


빈호아 위령비(좌), 퐁니·퐁녓 위령비(중), 하미위령비(우)


 셋. ‘미안해요’로부터 한 걸음 더, 연대와 나눔 속 인연 잇기

기행 중 종종 사람들과 우리들의 ‘앞으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앞으로’의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은 어떤 구호와 형태 아래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기행이 끝난 후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간 ‘앞으로’의 우리들은 어떤 마음 자세로 삶을 살아가야 할까, ‘앞으로’ 어떤 공간에서 우리는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 기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말들은 ‘앞으로’를 고민하던 우리에게 실마리가 되어주었다. 학살의 진상을 마주할 때마다 부단히 느끼는 고통과 번민에 대하여 탄타오 시인은 “아프다면 잘 가고 있는 것”이라 다독였다. ‘미안해요 베트남’이라는 오래된 구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사죄’만을 고민하던 우리에게 팜탄꽁 박물관장은 “미래 양국의 어린이들이 배우고 마주해야 할 관계란 사죄보다도 상생과 대화, 평화의 모습”이라 제안하였다.


퐁니·퐁녓 마을 피해생존자들을 모시고 진행한 간담회와 평화기행단 단체사진


설령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하여도 각자의 고민과 지향과 삶을 공유할 수 있었던 평화기행 내 모든 시간이 좋았다.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계기나 평화기행에 참여하기까지의 여정은 제각기 다르지만, 같은 것을 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은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나갈 ‘앞으로’의 큰 동력이 될 것이다. 곁들여, 밤마다 열린 소소한 맥주파티, 자유시간에 마실 나간 다낭 용다리에서의 불쇼, 형형색색 등불이 저녁 윤슬에 일렁이던 호이안 고거리 나들이, 오랜만에 베트남에서 재회한 아영 님(한베평화재단 후원행사때 알게 된 베트남 유학생)과의 한시장 쇼핑 모두 여행과 기행 사이를 수놓으며 ‘함께’여서 즐거웠던 추억으로 자리하였다.


호이안 고거리 나들이 때 함께 찍은 인생네컷(좌), 다낭 용다리 야경(중)과

그 앞에서 찍은 평화기행단 사람들과의 사진(우)


하미마을에서 이루어진 모둠활동에서 내가 속한 ‘마음 모둠’은 현재 하미마을 유가족회 연락반장이자 하미마을 위령비의 개폐를 담당하던 응우옌응옥마이 님 댁에 방문하였다. ‘쭈(손윗 남성 어른) 마이’는 우리에게 값진 홍삼차를 건넨 후, 집에서 기르는 새를 소개해 주고, 마당 텃밭에서 큼지막한 오이 하나씩을 내어주었다. 그의 푸른 상의 앞면에는 ‘신짜오(Xin chào; 인사말)’가 쓰여 있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우리는 분명 ‘소통’하고 있었다. 처음의 다소 어색했던 시간이 공유한 웃음 몇 번에 쉽게 녹았다. ‘피해생존자와 평화기행 참여자’라는 형식적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진 공간에서, 우리는 알 듯 모를 듯한 몸짓·손짓·표정을 십분 활용하며 서로 질문하고 서로 답하였다. 헤어질 때 그는 우리에게 당신의 연락처를 건넸다. “다음에 베트남에 놀러 오거든 꼭 연락하고 집을 찾아오너라”라고 하였다. 이렇듯 작지만 따뜻하고 힘 있는 인연들이 더 많이 생긴다면, 여행지 다낭보다 좀 더 깊숙한 기억에 한국인의 ‘무례하지 않은’ 발걸음들이 더 많이 놓인다면, 우리는 기꺼이 평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미마을 응우옌응옥마이 님 댁을 방문한 '마음 모둠'의 사진(좌)과 

터샅에서 오이를 따주시는 쭈 마이의 모스(우)


2023년 4월, 베트남 민간인학살 문제를 주제로 글을 준비하던 나는 한베평화재단을 방문하였고 책모임으로 인연을 쌓았다. 평화기행은 책상 위에서의 고민 끝에 글을 마무리하고 삶에서의 실천적 형태로 고민을 진전시켜야 할 과도기에 만났다. 취업을 준비하며 한국 사회 내 ‘한 사람의 몫’을 고민해야 하는 지금의 내게 베트남 전쟁 기억 문제와 베트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은 그 자체의 중요성을 넘어 내가 나를 잃지 않게 하는 동력이자 현실 조건에 타협하고 싶지 않은 지향으로서 그 의미를 더한다.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고, 폭력을 성찰하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진실을 추구하고, 책임 있는 사죄를 건네고, 전쟁과 양립 불가능한 평화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우리는 평화의 관점에서 베트남 전쟁을, 민간인학살 문제를 마음과 몸을 다 해 다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 길에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곁에 있어 소중하고 든든하다. 


글|함수민 님은 한베평화재단 소모임 <기기: 기억과 기념> 원년 멤버이자, 운동설계사 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사진|함수민, 한베평화재단, 평화기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