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紀行)과 기행(奇行) 사이에서 동행하기’
고민지(극단 신세계)
평화란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이번 평화기행에서 나에게 평화에 다가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더위를 이겨내는 시간들, 피해당사자분들을 마주하는 시간들,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나를 마주한 시간들은 평화를 찾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기행(紀行)이란 ‘여행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반성과 속죄, 도움과 사과, 연민과 우월감, 진정성과 외면, 관광과 생계 등의 키워드로 남겨진 이번 평화기행은 나에게 기록의 기행(紀行)이라기보다는 기이한 행동을 뜻하는 기행(奇行)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마주하고 질문을 남기는 것이 우리가 함께 평화에 다가가는 동행의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 첫 번째 만남 :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
기행에서 나의 첫 마주함은 하미 마을 학살 피해생존자인 응우옌티탄님과의 만남이었다. 탄님은 한국 친구들이 ‘동행’해 준다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탄님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동행으로 이 아픈 역사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이 평화기행에 동행하게 됐을까? 우리는 피해당사자분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정의감 실현, 죄책감의 상쇄 등 각자의 이기심을 이유로 이곳에 모인 건 아닐까? 나는 평화기행에서 이 질문들의 답을 찾고 싶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탄님의 아드님이 자리에 동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영상에서도, 국내 간담회에서도 탄님을 뵀지만, 그분의 가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일은 없었다. 어떤 공적인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볼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을 단일화된 정체성으로 규정짓고 대상화하곤 한다. 어쩌면 나도 탄님을 ‘피해자’로만 생각하며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평화기행단과의 만남이라는 공적인 자리에 가족이라는 사적인 관계가 드러나자, ‘한 사람’으로서의 탄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탄님과의 만남>
나의 첫 마주함의 순간이다. 탄님이 아드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눈빛과 아드님이 탄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 두 번째 만남 : 껌탄·껌낌 마을의 공정여행
공정여행이란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를 맺는 ‘공정무역’에서 따온 개념으로, ‘착한 여행’이라고도 한다. 즐기기만 하는 여행에서 환경오염, 문명 파괴, 낭비 등을 반성하는 여행으로의 노력이라고 한다. 공정여행에서 만난 껌탄·껌낌 마을의 노동자분들은 그들의 숭고한 노동을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바구니배를 체험하러 가는 길, 나는 다시 한번 ‘전쟁’을 떠올렸다. 바구니배는 고기잡이 등을 위한 마을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강에서 생계를, 누군가는 이 강에서 전쟁을 만났으리라.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구니배에 올라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귀가 찢어질 듯 울려 퍼지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쇼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베트남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말 그대로 한국인을 위한 맞춤 관광 서비스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바구니배가 이렇게 커다란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것은 분명 한국 관광객들의 니즈가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구니배들 사이에서 여러 질문이 나를 스쳤다. 우리는 학살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베트남에 무엇을 남기고 간 걸까? 공정여행이 담고 있는 ‘반성’의 의미는 무엇일까? 껌딴·껌낌 마을 사람들에게 관광이란 어떤 의미지? 그런데 아직도 이 바구니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는...
<공정여행 중 바구니배>
강을 꽉 채운 관광객들과 바구니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세 번째 만남 : 응우옌티본
응우옌티본님은 평화기행단과의 공식적인 만남이 처음이라고 했다. 예전에 옆집을 지나가면서 평화기행단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봤었다고 한다. 그때 본인도 본인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나의 목소리로 나의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본님에게는 지난 몇십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본님, 그리고 그 앞에는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가 있었다. 그날 그 순간, 본님의 말들은 우리와 만나, 우리의 몸에 새겨졌다.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졌고 우리가 그 목소리에 다가갔기에 본님의 증언이 한 사람의 말로서 기억된 것이다.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 않았던 본님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내가 찾고 있는 동행의 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많은 만남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순간들, 전쟁의 기억들과 마주하는 7월의 베트남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빈호아 증오비와 위령비 참배를 하는 시간, 문득 더위를 이겨내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나를 발견해 버렸다.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증오비와 위령비에 새겨진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들은 얼핏 보면 글자가 아닌 정교한 무늬처럼 보일 정도로 빼곡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대표적인 학살인 밀라이 학살의 폐허를 목격한 시인 탄타오님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 중 무엇보다 큰 상처는 민간인들이 받은 상처다. 개인의 영혼에 남는 상처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 퐁니·퐁녓 마을 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님의 법정 투쟁기를 담은 다큐 <평화로 가는 길>의 감독 도안홍레님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의 사과만으로도 훼손되었던 것들이 회복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국가폭력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 사람들, 그들의 상처는 정말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정말 무엇 하나만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방문한 모든 마을에는 위령비 또는 증오비가 세워져 있었다. 비에 새겨진 말들을 보면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정말 직접적이고 거침없었다. 쓰린 과거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그들의 삶에는 과거가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을까? 그저 미화하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까지도 말이다. 퐁니·퐁녓 마을 위령비 옆에 있던 거대한 야유나무와의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침묵이 길었지만, 그 어떤 만남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렇다. 정말로, 수십 년의 시간과 함께한 야유나무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꼬마와의 만남>
기행에서의 마지막 날.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난 꼬마와 함께
그네를 타며 웃던 순간이 생생하다.

<야유나무와의 만남>
퐁니·퐁녓마을의 시간을 함께한 야유나무의 모습
나는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베트남 전쟁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무수한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나에게 쌓이는 질문들을 흡수하고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충분한 애도와 위로 그리고 과거로부터의 회복을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해 떠난 평화기행은 더 많은 질문을 나에게 남긴 것이다.
나에게 평화를 찾기 위해 떠났던 기행(紀行:여행을 기록하는 것)은 베트남과 피해당사자분들을 마주하는 나 그리고 우리의 기행(奇行:기이한 행동)으로써 큰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마주하게 된 베트남, 학살, 피해당사자분들, 그리고 내가 정말 복잡다단하게 얽혀버린 기이함이었다. 이번 평화기행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해진 건,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베트남전쟁과 여러 가지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내가 연극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내가 경험한 기행(奇行)이 동행이 되는 순간이 언젠가 오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글, 사진 : 고민지
기행(紀行)과 기행(奇行) 사이에서 동행하기’
고민지(극단 신세계)
평화란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이번 평화기행에서 나에게 평화에 다가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더위를 이겨내는 시간들, 피해당사자분들을 마주하는 시간들,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나를 마주한 시간들은 평화를 찾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기행(紀行)이란 ‘여행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반성과 속죄, 도움과 사과, 연민과 우월감, 진정성과 외면, 관광과 생계 등의 키워드로 남겨진 이번 평화기행은 나에게 기록의 기행(紀行)이라기보다는 기이한 행동을 뜻하는 기행(奇行)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마주하고 질문을 남기는 것이 우리가 함께 평화에 다가가는 동행의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 첫 번째 만남 : 하미 마을의 응우옌티탄
기행에서 나의 첫 마주함은 하미 마을 학살 피해생존자인 응우옌티탄님과의 만남이었다. 탄님은 한국 친구들이 ‘동행’해 준다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나는 탄님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동행으로 이 아픈 역사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이 평화기행에 동행하게 됐을까? 우리는 피해당사자분들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정의감 실현, 죄책감의 상쇄 등 각자의 이기심을 이유로 이곳에 모인 건 아닐까? 나는 평화기행에서 이 질문들의 답을 찾고 싶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탄님의 아드님이 자리에 동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영상에서도, 국내 간담회에서도 탄님을 뵀지만, 그분의 가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일은 없었다. 어떤 공적인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볼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을 단일화된 정체성으로 규정짓고 대상화하곤 한다. 어쩌면 나도 탄님을 ‘피해자’로만 생각하며 우리와 같은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건 아닐까? 평화기행단과의 만남이라는 공적인 자리에 가족이라는 사적인 관계가 드러나자, ‘한 사람’으로서의 탄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탄님과의 만남>
나의 첫 마주함의 순간이다. 탄님이 아드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눈빛과 아드님이 탄님의 이야기를 들을 때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 두 번째 만남 : 껌탄·껌낌 마을의 공정여행
공정여행이란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를 맺는 ‘공정무역’에서 따온 개념으로, ‘착한 여행’이라고도 한다. 즐기기만 하는 여행에서 환경오염, 문명 파괴, 낭비 등을 반성하는 여행으로의 노력이라고 한다. 공정여행에서 만난 껌탄·껌낌 마을의 노동자분들은 그들의 숭고한 노동을 보여줌으로써 나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바구니배를 체험하러 가는 길, 나는 다시 한번 ‘전쟁’을 떠올렸다. 바구니배는 고기잡이 등을 위한 마을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강에서 생계를, 누군가는 이 강에서 전쟁을 만났으리라.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더 들여다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구니배에 올라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나는 귀가 찢어질 듯 울려 퍼지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쇼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베트남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말 그대로 한국인을 위한 맞춤 관광 서비스의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바구니배가 이렇게 커다란 관광 상품으로 개발된 것은 분명 한국 관광객들의 니즈가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구니배들 사이에서 여러 질문이 나를 스쳤다. 우리는 학살 가해국의 국민으로서 베트남에 무엇을 남기고 간 걸까? 공정여행이 담고 있는 ‘반성’의 의미는 무엇일까? 껌딴·껌낌 마을 사람들에게 관광이란 어떤 의미지? 그런데 아직도 이 바구니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나는...
<공정여행 중 바구니배>
강을 꽉 채운 관광객들과 바구니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세 번째 만남 : 응우옌티본
응우옌티본님은 평화기행단과의 공식적인 만남이 처음이라고 했다. 예전에 옆집을 지나가면서 평화기행단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봤었다고 한다. 그때 본인도 본인의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나는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나의 목소리로 나의 말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본님에게는 지난 몇십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본님, 그리고 그 앞에는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가 있었다. 그날 그 순간, 본님의 말들은 우리와 만나, 우리의 몸에 새겨졌다.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해졌고 우리가 그 목소리에 다가갔기에 본님의 증언이 한 사람의 말로서 기억된 것이다. 미세한 떨림이 멈추지 않았던 본님의 증언을 듣는 시간이 내가 찾고 있는 동행의 순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 많은 만남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순간들, 전쟁의 기억들과 마주하는 7월의 베트남은,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빈호아 증오비와 위령비 참배를 하는 시간, 문득 더위를 이겨내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나를 발견해 버렸다.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증오비와 위령비에 새겨진 학살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들은 얼핏 보면 글자가 아닌 정교한 무늬처럼 보일 정도로 빼곡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대표적인 학살인 밀라이 학살의 폐허를 목격한 시인 탄타오님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남긴 상처 중 무엇보다 큰 상처는 민간인들이 받은 상처다. 개인의 영혼에 남는 상처는 치유가 되지 않는다.” 퐁니·퐁녓 마을 학살 피해생존자 응우옌티탄님의 법정 투쟁기를 담은 다큐 <평화로 가는 길>의 감독 도안홍레님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 정부의 사과만으로도 훼손되었던 것들이 회복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국가폭력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 사람들, 그들의 상처는 정말 치유될 수 없는 것일까? 혹은 정말 무엇 하나만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방문한 모든 마을에는 위령비 또는 증오비가 세워져 있었다. 비에 새겨진 말들을 보면 베트남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정말 직접적이고 거침없었다. 쓰린 과거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며 그들의 삶에는 과거가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하고 있을까? 그저 미화하고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 개개인까지도 말이다. 퐁니·퐁녓 마을 위령비 옆에 있던 거대한 야유나무와의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침묵이 길었지만, 그 어떤 만남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그렇다. 정말로, 수십 년의 시간과 함께한 야유나무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꼬마와의 만남>
기행에서의 마지막 날.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난 꼬마와 함께
그네를 타며 웃던 순간이 생생하다.
<야유나무와의 만남>
퐁니·퐁녓마을의 시간을 함께한 야유나무의 모습
나는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베트남 전쟁으로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 그리고 내가 알지 못했던 무수한 이야기들을 마주하며 나에게 쌓이는 질문들을 흡수하고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충분한 애도와 위로 그리고 과거로부터의 회복을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해 떠난 평화기행은 더 많은 질문을 나에게 남긴 것이다.
나에게 평화를 찾기 위해 떠났던 기행(紀行:여행을 기록하는 것)은 베트남과 피해당사자분들을 마주하는 나 그리고 우리의 기행(奇行:기이한 행동)으로써 큰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마주하게 된 베트남, 학살, 피해당사자분들, 그리고 내가 정말 복잡다단하게 얽혀버린 기이함이었다. 이번 평화기행을 통해 한 가지 확실해진 건,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베트남전쟁과 여러 가지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내가 연극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내가 경험한 기행(奇行)이 동행이 되는 순간이 언젠가 오게 되지 않을까?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