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자료한겨레21 원자료 소장 목록(1999년~2005년)


한겨레21 원자료 소장 목록 (1999년~2005년)


- 작성일: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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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지역

내용 요약

H21-1

1999.09.02.

(제 273호)

구수정

베트남의 원혼을 기억하라

p.42-p.44

르포

베트남 인민군대 정치국의 <전쟁범죄조사보고서-남부 베트남에서 남조선 군대의 죄악>에 소개된 지역 중 과거 한국군 주요 주둔지였던 베트남 중부 5개 성, 9개 현, 13개 사, 수십 개 마을을 직접 돌며 100여 명의 증언을 토대로 특집 기사를 작성. 생존자 레티티엣, 팜티호아(<쿠앙남성 디엔증사> 출처), 빈딩성 푸캇현의 응웬년 등의 사진 수록.

H21-2

1999.09.02.

(제 273호)

구수정

미군보다 잔인했던 ‘용병’

p.46-p.47

르포

 

베트남 중부 푸옌성, 투이호아현, 호아히엡사에서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던 세 차례의 집단 양민 학살에 대한 내용과 생존자들의 증언. 피해자들의 사진 및 당시 주민을 모아 놓고 총을 쏘아 죽인 학살 현장 사진 포함.

- 증언자 : 후이엔수언(79), 응웬탄쭝(50), 응웬흐찐(62), 쩐반호아(63), 보티흥,

H21-3

1999.09.02.

(제 273호)

구수정

영국, 일본인이 달래준 상처

p.50-p.52

르포

학살 당시 희생된 36구의 시신이 묻혀 있는 쭈옹딘 폭탄 구덩이 위쪽에 위치한 한국군 증오비에 대한 소개. 빈호아 양민학살사건으로 한국군에 의해 430명이 희생되었으나, 위령비를 세워주고 학교를 지어주는 등 재원을 지원한 것은 영국인과 일본 단체(피스보트)였음.

쿠앙응아이성, 빈선 현, 빈호아사 9개 마을(커우, 롱빈, 응옥흥 등)

- 커우마을 학살의 유일한 생존자 도안응이아(34)의 증언.

- 1966년 12월 3일 빈호아사, 롱빈마을 주둔 청룡부대 1개 대대가 9개 마을에서 소탕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학살 발생. 3일 동안 총 430명 집단 학살(희생자 중에는 임산부, 여성, 아이도 다수 포함)

- 학살 이후, 한국군이 마을에 설치한 지뢰를 밟아 하반신을 잃은 팜쭉의 사진도 함께 수록.

쿠앙남 성 투이보 촌

- 생존자 응웬티니(85)의 증언과 사진 수록

H21-4

1999.09.02.

(제 273호)

구수정

저주의 욕설, 화해의 술잔

p.54-p.55

르포

1966년 2월 15일(음력 1월 23일), 안빈촌에서의 첫 학살을 시작으로, 1966년 1월 23일(음력)~2월 26일(음력)까지 맹호부대 3개 중대에 의해 15개 지점에서 집단학살 발생. 실종자를 포함해 12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됨(신원확인된 공식 사망자 728명, 이 중 어린이 166명, 여성 231명, 노인 88명, 일가족 전체 몰살 8가구)

빈딘성, 타이선현, 타이빈사(구 빈안사) 15개 지점(안빈, 푸퐁, 푸캇, 고자이, 안칸 등)

안빈 촌

학살 생존자이자 현재 타이빈사 당 서기장인 응웬턴런(사진)의 증언. 그의 어머니 응웬티킴흥(당시 41)과 여동생이 학살에 의해 사망. (인민위원회 사무실에 존재하는 빈안 학살의 희생자 및 생존자 명단 대자보 사진: ‘1966년 남조선 군대에 의해 학살당한 희생자 명단’)

안칸 마을

- 생존자 판티부이(76, 사진)와 그의 사위 응웬반져(62)의 증언

- 생존자 레반호아(39)에 대한 짧은 이야기

H21-5

1999.09.02.

(제 273호)

구수정

아, 전쟁이란 본시 그런 것!

p.56-p.57

인터뷰

 

<전쟁의 슬픔> 작가 바오닌과의 인터뷰. 베트남전과 한국군의 양민학살, 전쟁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눔

H21-6

1999.11.18.

(제 283호)

정창권

평화로운 강물이 맛있는 술을 빚는다

p.12-p.13

수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평화와 화해를 위한 진료단’이 학살 지역을 직접 방문해 피해자를 만나는 경험을 하며 느낀 부분들에 대하여 쓴 글

H21-7

1999.11.18.

(제 283호)

 

아버지의 뜻을 간직하렵니다

p.13

독자편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자신의 생각, 경험, 의견 등을 담아 <한겨레21>에 보내온 편지들의 내용 소개.

p.13

취재

베트남 시사 주간지 <일요 뚜오이쩨>가 <한겨레21>이 진행 중인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을 소개함. 그에 따른 베트남 현지의 반응에 대해 쓴 글(사진 포함)

H21-8

1999.12.16.

(제 287호)

고경태

베트남의 뜨거운 감동!

p.56-p.64

취재

한국군 양민학살 현장르포를 쓴 호치민의 구수정 통신원과 200여 명의 베트남 청년들이 참여한 ‘구수정과의 교류’라는 이름으로 열린 토론 및 교류 행사에 대한 취재

H21-9

1999.12.16.

(제 287호)

고경태

제발 와서 사실을 알아라

P.66-P.67

인터뷰

(베트남 참전군인)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군 제5사단 20연대장이었던 레 치 투언(72) 예비역 준장과의 인터뷰

H21-10

1999.12.16.

(제 287호)

조성곤

양민인지 아닌지 가려보자

P.68-P.69

인터뷰

(참전군인)

베트남전 당시 주베트남 한국군 초대사령관이었던 채명신(73, 대한해외참전전우회장) 장군과의 인터뷰

H21-11

1999.03.23.

(제 300호)

박노자

아프간.... 체첸, 그리고 베트남!

P.14-P.15

칼럼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의 진상 규명을 위한 <한겨레21>의 취재가 탈 관제 민족주의의 담론적인 관점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하여 쓴 글

H21-12

1999.03.23.

(제 300호)

고경태

참전군인, 위령비에 첫 참배

P.15

인터뷰

(참전군인)

위령비 건립을 위해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쿠앙남성 디엔반현 하미마을에 베트남 현지답사를 다녀온 ‘사단법인 월남참전전우복지회’ 이사장 김문구씨와의 인터뷰

H21-13

2000.01.06.

(제 290호)

고경태

“정부가 사과·배상하라” 78%

p.8

인터뷰

(설문조사)

한국인을 대상으로 ‘베트남전의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에 대한 인식 및 여론 조사를 진행한 결과의 내용을 싣고 있음.

H21-14

2000.01.27.

(제 293호)

고경태

한국군 양민학살, 세계적 이슈

p.10-p.11

분석기사

베트남 정부의 현장취재 불허 속에 ‘빈딘에서의 학살’이라는 제목으로 <로이터 통신>에 특집기사가 보도되었다는 내용. 이는 한-베가 아닌 제 3국의 언론에서 처음으로 한국군 양민학살 문제가 보도된 사례.

H21-15

2000.01.27.

(제 293호)

최종수

미국에서 온 편지

p.11

편지

해외동포 최종수씨가 개인 소장하고 있던 한국군 양민학살 보고서를 한겨레에 보내며 함께 동봉한 편지의 내용을 전하고 있음. 이 보고서는 미국인 부부가 베트남 현지에서 직접 인터뷰를 하여 작성한 보고서로, 한국에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미국 민간인의 보고서임.

H21-16

2000.04.26.

(제 302호)

기미야 다다시

일본이 먼저 반성해야 하듯...

p.10

칼럼

식민지배의 책임문제와 베트남 파병의 역사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글

H21-17

2000.04.26.

(제 302호)

고경태

자, 솔직히 사과하자

p.11

인터뷰

양민학살 현장에 다녀온 두 명의 참전군인(김주황씨, 김종철씨)과의 인터뷰 내용 및 사진 첨부

H21-18

2000.04.26.

(제 302호)

신경구

당연한 보복이라는 생각?

p.11

독자편지

<한겨레 21>을 읽은 독자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감동받은 부분에 대하여 쓴 글.

H21-19

2000.04.27.

(제 305호)

 

마지막 월급 1만6천원

p.10

독자편지

전역을 앞둔 한 병장(배재석, 연천)이 <한겨레21>의 성금모금 캠페인 활동을 돕고자 자신의 월급을 보내며 쓴 편지와 사연을 게재.

H21-20

2000.04.27.

(제 305호)

고경태

 

p.10

사진

서울 영등포구 영남중학교에서 진행된 특별교육활동의 일환으로 베트남 친구들에게 보낼 화해의 엽서를 만드는 활동을 했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

H21-21

2000.04.27.

(제 305호)

황상철

엄청난 일들 34년만에 말한다

p.35-p.37

인터뷰

(참전군인)

베트남전 당시 해병대 중대장으로 1년간 최일선에서 전투를 지휘했던 김기태(65)씨와의 인터뷰 내용. 그는 쿠앙응아이성 선틴현에서 벌인 ‘용안작전’에 대한 증언을 통해 자신이 작전과정에서 체험했던 일들을 상세히 털어놓았음.

H21-22

2000.04.27.

(제 305호)

황상철

‘바늘자국’을 기억하고 있었다.

p.38-p.41

인터뷰/취재

해병대 중대장 김기태씨의 인터뷰 내용 및 증언을 통한 확인을 위해 ‘용안작전’이 이루어졌을 것이라 추정되는 푹빈촌을 찾아 현장을 취재하고 관련 사건 생존자 및 피해 유가족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

H21-23

2000.04.27.

(제 305호)

황상철

여전사의 순애보, 전설이 되어...

p.42

인터뷰

푹빈촌 학살이 일어난 1966년 11월, 한국군에게 폭행 및 강간을 당했던 레 티 응옥(당시 24)의 남편을 만나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 및 사진.

H21-24

2000.05.04.

(제 306호)

황상철

한국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p.10

취재

판 투이 탄 베트남 외무부 대변인이 베트남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활동과 지원에 대해 감사를 표함. 이는 베트남 정부가 이례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 입장을 표명한 것.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거사 문제가 한-베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기존의 베트남 정부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

H21-25

2000.05.04.

(제 306호)

고경태,

황상철

양민학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했다

p.18-p.22

인터뷰

(참전군인)

청룡여단 제 1대대 1중대 장교 세 명(1소대장 최영언, 2소대장 이상우, 3소대장 김기동, 사진)과의 인터뷰. 그들은 자신이 베트남전에서 소대장으로 있었던 상황에서 진행되었던 ‘괴룡 작전’에 대한 증언을 통해,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냄. (<파월한국군전사>에 첨부된 괴룡 1호작전 1중대 전투도 포함)

H21-26

2000.05.04.

(제 306호)

구수정

베트남의 진심은 무엇일까

P.24

인터뷰

학살 피해자 릉티퍼이(66) 할머니와의 짧은 이야기와, 최근 베트남 정부가 TV 프로그램, 영화, 신문, 문예지 등에 한국군 양민학살 관련 보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태도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내용.

H21-27

2000.05.04.

(제 306호)

한홍구

학살은 학살을 낳고

P.26-P.27

칼럼

베트남전에 파병된 한국군들의 한국 근현대사 속 성장 배경과 베트남 파병의 실질적 경제적 이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글.

H21-28

2000.05.11.

(제 307호)

고경태

학살을 자랑할 때 견딜 수 없었다.

p.10

인터뷰

(참전군인)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어 통역관(중사)과 대민 심리전 요원으로 근무했던 참전군인 이완홍(50, 사진)씨와의 인터뷰 내용.

H21-29

2000.05.11.

(제 307호)

문재현

(마을수준교육과정연구소 소장),

이명순, 김명신(초등학교 교사)

베트남 친구야, 정말 미안해!

p.11-p.12

독자편지

교사들로 구성된 교육연구 단체인 ‘마을수준교육과정연구소’에서 <한겨레21>을 통해 베트남전 양민학살 관련 기사를 읽고 이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바꾸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성금 모금, 베트남 친구에게 편지 쓰기 등의 교육을 진행. 이에 글과 성금을 함께 동봉하여 보낸 교사들의 편지를 공개한 것.

H21-30

2000.05.18.

(제 308호)

고경태

참전군인들, 의미있는 첫걸음!

p.14-p.17

현장 취재

쿠앙남성 디엔반현 디엔증사 하미 마을에서 진행된 ‘68년 2.25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비 기공식’의 현장 취재 내용. 월남참전전우복지회 회원과 2.25사건 생존자 및 희생자 가족들을 포함한 쿠앙남성 하미마을 주민 1000여 명이 함께 참여한 행사였음.

- 응웬 반 하이(43)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주석 인터뷰 및 사진 포함

- 2.25사건 생존자 팜티 호아 할머니(72) 인터뷰 및 사진 포함

- “베트남이 심상치 않다” : 베트남 전국일간지 <라우동>에 당시 <한겨레21> 구수정 통신원이 쓴 글의 내용 및 사진 포함

H21-31

2000.05.25.

(제 309호)

고경태

와야 해, 그때 그 군인들이

p.14-p.16

인터뷰

베트남 중부지역인 쿠앙응아이성 선틴현 틴선사 푹빈촌을 다시 찾아 학살 생존자 및 주민들의 증언과 사진이 담긴 <한겨레21>을 전달. 푹빈촌의 주민 및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직접 와서 사과하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음.

H21-32

2000.05.25.

(제 309호)

 

사는 게 다 한이야 한...

p.15

인터뷰

학살로 가족들을 모두 잃고 34년간 혼자 살아온 응웬 판, 따 티 타오 와의 인터뷰

H21-33

2000.05.25.

(제 309호)

김형식

그들에게 팔과 다리를!

p.16

기고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고 한-베를 하나로 묶는 긍정적 효과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구촌나눔운동’을 통해 베트남 장애인 지원을 국민적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올해 안에 80명에게 의지와 보조기를 전달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특별 기고글.

H21-34

2000.06.01.

(제 310호)

황상철

한 킬러중대원의 참회

p.22-p.25

인터뷰

(참전군인)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해병(정 아무개, 55)의 증언. 베트남에서 겪은 그의 경험을 위주로 작성된 글. 베트남전이 실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됐는지는 물론, 참전 군인들이 어떠한 고통과 죄책감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도 볼 수 있음.

H21-35

2000.06.01.

(제 310호)

황상철

청룡여단서 양민학살 조작 은폐

p.26-p.27

인터뷰

(참전군인)

해병 헌병대에서 양민학살 문제를 조사했던 수사계장(성 아무개, 65)을 인터뷰해 작성한 글. 그는 상부로부터 ‘왜곡된 조서를 작성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그런 연유로 실제와는 다르게 양민학살을 부인하는 내용으로 조사 결과를 거짓으로 꾸며 보고했다고 진술.

H21-36

2000.06.01.

(제 310호)

 

1대대 1중대 2소대 3분대원의 증언

p.27

인터뷰

(참전군인)

<한겨레21>을 통해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해병 장교들의 증언을 본 독자가 엽서를 보냈고, 이에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내용을 짧게 담음.

H21-37

2000.06.01.

(제 310호)

고경태

남베트남 정부군 우웬 싸의 아픔

p.27

인터뷰

(남베트남 정부군)

남베트남 정부군으로 베트남전에 참여했던 응웬 싸(64, 사진)와의 인터뷰. 퐁니촌 양민학살이 일어났던 1968년 2월 12일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으로써 실제로 보고 겪었던 사건들에 대하여 증언함.

H21-38

2000.06.01.

(제 310호)

한홍구

현대사의 치욕, 박·정·희

p.28-p.30

칼럼

박정희 정권 하에 결정된 베트남 파병이 갖는 시대적 의미와,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보는 글

H21-39

2000.06.29.

(제 314호)

고경태

푸옌성에 병원을 짓겠습니다.

p.10

보도기사

<한겨레21>에서 1999년 10월부터 시작한 ‘베트남전 양민학살 악몽청산을 위한 성금모금 캠페인’의 수익금 사용 방향을 학교를 지으려던 것에서 병원을 짓는 것으로 변경하겠다는 것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의 계획 소개.

H21-40

2000.06.29.

(제 314호)

구수정

금액보다 정성이 소중하다

p.11

인터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응웬 탄 쾅(50) 푸옌성 인민위원회 주석과의 인터뷰 내용

H21-41

2000.06.29.

(제 314호)

구수정

4만명 인구 오지에 병원 하나 없어

p.11

인터뷰

66년 1월 호아히엡사 붕따우 양민학살 사건으로 네 명의 가족을 잃은 팜트아의 사례를 통해, 4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푸옌성 투이호아현 호아히엡사의 의료 실태가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지에 대하여 말하는 글

H21-42

2000.07.06.

(제 315호)

김은형

아주 특별한 ‘사죄의 무대’

p.12-p.13

보도기사

일본군 위안부 문명금 할머니가 정부에서 받은 생활보조금과 성금 전액을 기탁한 것을 시작으로 민간기금으로 추진될 ‘역사기념관’의 설립을 위해 진행되는 공연 행사에 대한 홍보

H21-43

2000.07.06.

(제 315호)

 

신중현 선생에게 경쟁의식을 느끼며...

p.13

인터뷰

<미안해요 베트남> 노래 헌정하는 박치음 교수(42, 사진)와의 인터뷰

H21-44

2000.07.27.

(제 318호)

고경태

드디어 1억원을 돌파했습니다

P.10

보도기사

<한겨레21>을 통해 39주 동안 진행되었던 베트남전 악몽 청산을 위한 성금모금운동으로 성금 1억원이 모였음을 보고하고 감사하는 글

H21-45

2000.07.27.

(제 318호)


한-베트남 관계에 큰 공헌

P.10

서한

응웬 반 쓰엉 주한 베트남대사(52)가 <한겨레21>의 성금모금운동에 대하여 감사의 서한을 보낸 내용

H21-46

2000.07.27.

(제 318호)

구본준

전화위복의 계기로

P.11

보도기사

대한민국 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 양상규 회장과 최학래 한겨레신문사 사장의 만남에 대한 글

H21-47

2000.08.10.

(제 320호)

고경태

미국선 참전군인들 평화운동 활발

p.10-p.11

인터뷰

미국친우봉사회 동아시아 대표 존 페퍼와의 인터뷰 내용. 양민학살 사실에 대하여 사죄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강조.

H21-48

2000.08.10.

(제 320호)

고경태

국방부 장관 즉각 해임

p.11

현장 취재

미군에 의한 수많은 양민학살의 진실 규명을 위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 위원회 창립준비위원회’가 발족.

H21-49

2000.08.10.

(제 320호)

백경하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며...

p.11

독자편지

광주의 한 임산부가 <한겨레21>의 모금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뜻을 담아 성금과 함께 동봉하여 보낸 편지

H21-50

2000.08.17.

(제 321호)

고경태

죄의식이 평생을 따라 다녔다

p.10-p.14

인터뷰

(참전군인)

베트남전 당시 해병 중박격포 중대 2소대 수평통제원이었던 김영만(55)씨와의 인터뷰.

H21-51

2000.08.24.

(제 322호)

반 레

그 눈부시도록 빛나는 양심!

p.8

기고

양민학살 사죄의 노력을 담은 베트남 영화 <원혼의 유언>의 감독 반 레가 영화의 개봉에 힘입어 특별 기고한 내용을 실은 글.

H21-52

2000.08.24.

(제 322호)

고경태

위령비가 올라간다

p.9

보도기사

쿠앙남성 디엔반현 하미마을에 위령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베트남 언론이 이 위령비와 한국군이 벌인 양민학살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과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

H21-53

2000.08.24.

(제 322호)

 

나의 사랑과 베트남 학살

p.9

독자편지

경기대의 한 휴학생이 <한겨레21>의 모금 캠페인에 동참한다는 뜻을 담아 성금과 함께 동봉하여 보낸 편지

H21-54

2000.11.23.

(제 334호)

고경태

잠자던 진실, 30년 만에 깨어나다

p.20-p.24

공식기록

-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2000년 6월 13일, 30년 만에 비밀 해제된 문서에 대한 최초 공개. 보고서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실재했고, 이에 대한 한미 간의 의견교환과 협조가 이뤄졌음을 확인시켜주는 최초의 미국 공식 문서.

- 퐁니·퐁넛촌 보고서에 첨부된 20장의 현장 사진은 한국군이 마을을 공격하고 철수하고 난 뒤 미국 상병이 도착해 촬영한 것으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여성과 아이들인 것이 확인됨.

- 1969년 12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이라는 이름의 보고서 세 건이 주월미군사령부에 제출되었음(주월 한국군 자체조사와 더불어 미국-남베트남-한국군의 합동조사가 실시되었는데, 합동조사반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보상’과 책임자들에 대한 ‘징계처분’을 권고)

- 이후 1970년 1월 <뉴욕타임스>에 한국군의 학살 사실이 알려졌고, 미국 측은 ‘한국군 관련 사건에 대한 보고서가 절대로 언론에 알려지지 않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고 함. 당시 청와대(박정희 대통령, 김정령 대통령비서실장, 최규하 외무장관 등)이 모여 이미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미국과 토의를 하고 있었으며, 한국 언론매체들이 이를 보도하지 못하도록 막았음(당시 주한미대사 포터가 미국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확인 됨)

- 이하는 1969년에 보고된 세 개의 사건.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 1969년 12월 23일,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 샘 샤프 대령이 주월미군사령부 참모장 타운젠트 소장에게 제출한 보고서: 1968년 2월 12일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

- 1969년 2월 12일, 한국 해병 2여단 1대대 1중대가 마을 주변을 지나던 중 저격을 받자 마을을 공격. 한국 해병대에 의해 마을 주민들이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사살됨. 79명(또는 60명)의 베트남 여성과 어린이 사망(몇몇 피해자들이 칼에 찔렸고 한 여성은 가슴이 도려내짐, 이외 총살 다수).

- 퐁니퐁넛 사건을 보고받은 주월미군사령관 웨스트몰랜드는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중장에게 한국군 해병들의 전쟁범죄 가능성을 물었으나, 채명신 사령관은 “퐁니퐁넛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음모”라고 보고.

- 해당일 작전명 : 괴룡1호 작전

쿠앙남성

지 쑤옌현

푹미 사

- 1970년 1월 10일,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 고위 장교 로버트 쿡 대령도 주월미군사령무 참모장 타운젠트 소장에게 비밀보고서 제출 : 1969년 4월 15일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

- 1969년 4월 15일, 한국 해병 2여단 2대대 7중대 3소대가 저격을 받은 뒤 1명이 부비트랩 매설지점에서 수류탄을 제거하려다 폭발사고로 사망하자, 이에 광분하여 한국군 전략촌에 무차별 사격을 가함. 베트남 민간인 4명 사망, 12명 부상, 7명 구타, 대규모 재산피해. 지뢰 폭발로 한국 해병 1명 사망, 미 해병 다수 부상

- 해당일 작전명 : 승룡10호 작전

쿠앙남성 호앙쩌우 마을

*현재는 사리진 구 남베트남 정부 지명. 호아방현, 호아쩌우사일 가능성

- 1970년 1월 11일, 로버트 쿡 대령 또 다시 주월미군사령무 참모장 타운젠트 소장에게 비밀보고서 제출: 1968년 10월 22일 한국군 해병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

- 1968년 10월 22일, 한국 해병 2여단 2대대 6중대 1소대(2여단 2대대 5중대 1,3소대일 가능성도 있음)가 마을 외곽에 야간방어 진지를 구축하던 중 갑자기 저격을 당하여 대원 일부가 사망. 이후 해병대원들은 마을을 포위하고 직격사격으로 대응. 이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한국군들은 주민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 뒤 약탈까지 감행. 베트남 민간인 22명 사망(어린이 8명, 성인 12명, 이외 확인 불가), 16명 부상(어린이 5명, 성인 11명). 95채의 주택이 100% 파괴됨, 저장고 1,000개 파괴, 13마리 물소 사살. 초기 작전 중 한국 해병대 대원 일부 사망.

- 사건 하루 뒤 마을 주민들이 이 사건에 대하여 항의시위를 준비하자, 한국군 해병대는 쌀과 옥수수유, 식용유 등을 지급하였다고 함.

- 해당일 작전명 : 승룡3호 작전

H21-55

2000.11.23.

(제 334호)

고경태

끝없이 벗겨지는 제 2의 밀라이

p.26-p.27

인터뷰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퐁니·퐁넛 마을에서 일어난 청룡부대의 민간인 학살 사건은 전략촌 지역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이라는 점에서 당시 베트남전 참전 한국 장교들과 군인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으며, ‘제 2의 밀라이’로 회자되었음. 유일하게 사진기록이 남겨졌다는 점에서도 밀라이 학살과 닮아 있음.

H21-56

2000.11.23.

(제 334호)

김창석

편견인가, 꿰뚫어 본 것인가

p.28-p.30

공식기록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1968년 2월 12일부터 1969년 4월 15일까지 다낭에 파견됐던 미 정치고문 제임스 맥의 장문 보고서에 대한 보도.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쿠앙남성에 주둔했던 한국군 해병 제2여단에 대한 평가 속에 민간인에 대한 잔혹행위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1968년 2월 12일의 퐁니 학살, 디엔반현에서의 잔혹행위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됨. 학살 외에도 무원칙한 피난민 처리, 암시장 운영 등 각종 부정적 행태들이 존재했음을 전함.

H21-57

2000.11.23.

(제 334호)

김창석

한국군도 많이 당했다

p.32-p.33

인터뷰

(참전군인)

 

전 주월한국군 초대사령관 채명신(74)의 인터뷰(2000.11.11). 그는 미군이 학살의혹과 관련해 여러 차례 조사요청을 했다는 것, ‘민간인 사살 범죄’가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인정. 그러나 동시에 “민간인 사살 사건은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양민학살’과는 전혀 다르다”며, “모든 민간인 피해를 학살로 몰고가지 말라”며 강력히 불만을 표시.

H21-58

2000.11.23.

(제 334호)

고경태

양민학살 현지조사, 불발로 끝나

p.33

공식기록

 

미군의 비밀보고서에 등장하는 한국군과 한국 정부 관계자를 추적한 확인 작업의 결과를 보도. 대부분의 요인들은 보고서에 기재된 사실을 부인하였으며, 합동조사반에 직접 참여했던 이00(70)만이 합동조사반의 구성 사실을 인정하였으나, 그마저도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부인.

H21-59

2000.11.23.

(제 334호)

한홍구

미국의 관심은 ‘학살 은폐 책임’

p.34-p.36

공식기록

 

한겨레21이 입수한 자료와 더불어 필자가 입수한 새로운 자료들을 분석하여, 미국이 한국군의 학살여부에 대해 조사하게 된 전말(사이밍턴 청문회 및 밀라이사건 폭로)과 미국이 학살의 책임소재와 사실은폐에만 집중했다는 사실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함.

H21-60

2001.05.03.

(제 356호)

고경태

그날의 주검을 어찌 잊으랴

p.66-p.69

인터뷰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유일하게 한국군 학살 사진이 남아 있는 퐁니·퐁넛 학살. 사진 속 희생자들에 대한 마을 주민, 생존자의 증언을 취록하여 보도한 자료.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의해 11장 사진에 대한 거의 모든 인물들의 신상명세가 확인 됨.

언급되는

희생자

찐 쩌(13, 사진), 응웬 티 쫑(당시 11, 사진), 응웬 득 퉁(당시 6, 사진), 판 티 응우(당시 32, 사진), 도안 쩨 민(당시 5), 핀 티 찌(당시 34), 응웬 딕 상(당시 15, 현장에서 응웬 티 탄과 함께 유일하게 생존했으나 중상), 응웬 티 탄(당시 21, 사진), 호아 티 지엔, 레 티 탄(70)의 큰시아버지, 쩐 티득(당시 16)

증언한

생존자

쩐 티득(74), 응웬 티 탄(41), 응웬 티 호아(46, 사진), 쩐 티 투언(42), 레 딘 묵(당시 8, 사진), 그 외 마을 주민들.

쿠앙남성 디엔반현 하미 마을

청룡부대원들에 의한 민간인학살이 발생한 하미 마을에 세우기로 한 위령비의 비문 내용(따이한들의 학살에 관한 설명/태극기와 양쪽 추진위 명단을 새기는 문제)에 대한 월남참전전우복지회와 디엔증사 인민위원회 및 주민들의 의견 불일치로 준공식이 지연되고 있음.

H21-61

2001.05.03.

(제 356호)

한승동

한국군과 일본군의 기묘한 일치

p.70-p.71

인터뷰

 

2000년 12월 명동에서 열린 ‘한국군의 베트남 참전 재조명 토론회’를 참관한 일본 교토여자대학 노다 마사야키 교수(비교문화정신의학)와의 인터뷰 내용.

H21-62

2002.03.07.

(제 398호)

김은형

베트남, 상처의 문을 열다

p.54

서평

 

시민단체 ‘나와 우리’의 김현아 대표가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하여 쓴 책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을 소개하는 글

H21-63

2002.05.09.

(제 407호)

고경태

우정의 기쁨을 노래하자

p.12-p.15

취재

 

한겨레신문사와 푸옌성이 공동주최한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 현장 취재.

H21-64

2002.05.09.

(제 407호)

김남일

기억, 그리고 미래

p.16

칼럼

 

한-베 평화공원 기공식을 맞이하며, 진정으로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의 기고글을 작성.

H21-65

2003.01.16.

(제 442호)

고경태,

구수정

사랑과 우정은 열렬했네

p.70-p.76

취재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을 맞이해 베트남 푸옌성에서 진행된 ‘한국-베트남 어린이 문예대회’의 수상작 발표 및 수상 소감 첨부.

- “귀여운 선, 순박한 문체” : 응웬 응옥 꾸앙/한-베 문예대회 푸옌성 조직위원장, 후우 빈/푸옌성 <문화>기자의 심사평 함께 첨부

H21-66

2003.02.13.

(제 445호)

안정애

아이들아, 전쟁을 미워하렴

p.10-p.13

수기

 

2003년 1월 21일 푸옌성 공원현장에서 열린 준공식에 <한겨레21> 독자 대표로 참가한 안정애(42)씨의 베트남 방문기 및 후기

- “친구들이여 푸옌으로 오라”: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의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소감, 진행 내용을 보고한 김소희 기자의 글 포함

H21-67

2003.02.13.

(제 445호)

 

화려하진 않아도 마음이 담겨있네

p.14

수기

 

‘한-베 평화공원’ 준공식 함께한 사람들의 후기 및 소감

H21-68

2003.02.13.

(제 445호)

김소희

다음은 평화역사관!

p.16

인터뷰

 

베트남전 진실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평화역사관에 대한 설명 및 평화역사관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건축가 정기용씨와의 짧은 인터뷰

H21-69

2003.02.13.

(제 445호)

한홍구

마음까지 새까맣게 타버린 당신!

p.18-p.21

칼럼

 

베트남전 참전군인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작성된 글로 전쟁으로 고통받은 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

H21-70

2003.02.20.

(제 446호)

고경태

베트남 성금운동 마칩니다

p.92

보도

 

1999년 10월부터 시작해 39개월 동안 <한겨레21>을 통해 진행했던 베트남 성금운동에 대한 최종 보고(진행 과정, 결과물, 총 모금액 등)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내용

H21-71

2003.02.20.

(제 446호)

 

달려보자, 베트남에서!

p.77

광고

 

한국군이 참전했던 베트남 중부지방에서 한겨레 신문사의 주최로 개최되는 <한국-베트남 평화마라톤대회‘의 광고

H21-72

2005.05.03.

(제 557호)

구수정

이라크 침공은 역사의 단죄 받을 것

p.60-67

인터뷰

 

베트남전 종전 30돌을 맞아 베트남군 전 총사령관 보응웨잡 장군(94)을 만나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 호찌민 베트남민주공화국 주석과 함께 찍은 사진과 일생의 사진은 물론, ‘미안해요 베트남’ 캠페인을 진행한 한겨레 신문의 독자를 위해 직접 써준 친서도 포함되어 있다.

H21-73

2005.05.03.

(제 557호)

구수정

‘무조건 항복’은 위대했다.

p.68-72

 

 

남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즈엉반민의 삶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마지막 결정을 회고하며, 베트남전 종전 30돌을 맞아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반추해보는 글

H21-74

2005.05.03.

(제 557호)

바오닌

(소설가)

꼬마들의 집은 어디인가

p.76-p.77

 

 

소년병으로 전쟁에 직접 참가했던 <전쟁의 슬픔>의 작가 바오닌이 겪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최후의 날에 대한 기억과 경험에 대한 글

H21-75

2005.05.03.

(제 557호)

반레

(소설가/영화감독)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p.78-79

 

 

<그대 아직 살아있다면>의 작가 반레가 겪은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최후의 날에 대한 기억과 경험에 대한 글

H21-76

2005.05.03.

(제 557호)

구수정

빛깔이 다른 두 가지 슬픔

p.79

 

 

구수정 전문위원이 만난 반레와 바오닌이 기억하는 그 날. 직접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둘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각각 다르지만, 1975년 4월 30년 사이공 최후의 날에 대한 기억과 소망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