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자료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관련 국내논문목록


순번

저자

연도 1)

제목(출처, 페이지)

학살사건(매칭번호)

내용요약

KA-1

강정구

2000a

노근리의 해원을 넘어 베트남 학살의 참회로(『황해문화』, 26, pp.430-441)

 

- 아래 논문과 비슷.

KA-2

강정구

2000b

노근리의 해원을 넘어 베트남 학살의 참회로!: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과 역사청산(『여성과 평화』, (1), pp.280-291)

 

- 『한겨레21』 구수정 통신원의과 베트남 문화통신부의 통계를 인용하며 한국군의 양민학살 사실을 밝힘. 한국군 전사자의 10배가 넘는 게릴라가 정규군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양민학살 희생자가 5천명으로 알려진 것보다 그 규모가 더욱 클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음. 더불어 이에 대한 정부와 일부 참전군인들의 역사인식과 논리를 몇 가지 근거를 들어 비판하고 있음.

- 마지막장에 베트남 학살 관련 외국자료가 제시됨.

KA-3

한홍구

2000

신따쪼로이 베트남(『기독교사상』, 44(9), pp.53-64)

 

- 에세이 형식에 가까운 기고글로, 베트남 민간인학살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고 있음. 내용의 골자는 KA-6과 다르지 않음.

KA-4

김남일

2000

베트남, 우리 미래의 거울(『황해문화』, 27, pp.234-256)

 

- 베트남 전쟁과 파병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정리하고, 라이따이한 그리고 한국기업 진출에 따라 새롭게 발생하는 ‘신’라이따이한, 고엽제피해자 보상문제에 대해 다룸. 마지막으로 “베트남에도 노근리가 있다(1999)”를 인용하여 당시 이슈가 된 한국군 양민학살 사실을 밝히고,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함.

KA-5

목촌귀

2000

國際法上 베트남 良民虐殺行爲에 관한 연구: 한국군에 의한 학살행위를 중심으로(『法學硏究』, 49, pp.305-327.)

빈딘성

* 퀴년시 투이픅군 픅호아사 턴지앙촌 학살(2-2) 2)

* 떤장마을 근처의 학살(2-2) 3)

쿠앙남성

* 디엔안사 퐁니촌 럽담마을 학살(4-1) 4)

* 하미 학살 : 생존자 증언 정리(4-1)

칸호아성

* 닌호아현 살인사건 : 생존자 인터뷰 인용됨 5)

* 남부 판랑지역의 린선사 학살사건(5)

푸옌성 * 투이호아 현 학살(1-1) : 한국군과 싸운 월맹군 레 치 투언의 증언이 인용됨 6)

쿠앙응아이 * 선띤현 학살(3-2) : 한국군 증언

- 베트남전쟁기 한국군 민간인학살의 실태를 밝히고, 그것이 국제법 조항을 어떻게 위반하고 있는지 검토하는 논문임.

- 주로 한겨레가 보도한 증언과 이야기를 인용하여,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 발생했다는 여러 증거들을 정리하여 제시함. 양민학살이 발생한 이유로서, 1) 한국군과 베트남 민간인 사이의 의사소통 부재, 2) 전과에 대한 과잉보상, 3) 베트남전의 성격(국내정치상 높은 전과가 필요/게릴라전) 총 3가지를 제시하였음.

KA-6

한홍구

2001

[사실, 이렇게 본다3] 한국과 베트남전쟁(『내일을 여는 역사』, (4), pp.115-126)

 

-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평가의 일환으로서 베트남 파병문제를 다룸. 1) 파병의 자발성 2) 주한미군 유지에 대한 실질적 효과 3) 작전지휘권 문제와 ‘용병’ 논란 4) 파병과 독재 권력의 관계 5) 전쟁특수에 대한 평가를 논의하는 가운데, 베트남 민간인학살의 원인을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작전구조, 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간략하게나마 분석하고 있음(123-125).

KA-7

이선호

2001

베트남 전쟁의 재음미와 참전 한국군(『동북아논총』, 20, pp.181-209)

 

-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소위 ‘보수’적 시각의 논문. 베트남전의 성격을 상세히 규정하고 군사전략상의 교훈과 당면과제를 논하는데, 당면과제 중 하나로서 ‘참전군인에 대한 용병 및 양민학살 시비 종결’을 제시한다. 학살에 대한 문제제기를 “현대전의 속성상 불가피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또한 우발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인 국부적인 대민피해를 무조건 계획적으로 의도된 집단 양민학살이라고 매도하는 일부 함량미달의 반국가적 식자들이 악의에 찬 거짓주장(207)”이라고 일축하며, 미비한 베트남전 연구를 진척하여 시비를 종결하고 참전군인의 위상을 재고할 것, 고엽제 후유증환자의 대우를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KA-8

윤충로

2002

한국과 베트남, 그 역사와 현실(『황해문화』, 36, pp.91-10)

 

- 한베관계를 1955-75년과 1975년 이후로 나누어 분석하고, 양국간의 관계가 현실주의에 의해 견인되는 가운데 역사적 사실규명과 인식재고는 지체되고 있음을 지적함. 한국 정부가 맞닥뜨린 역사적 과제로서 민간인 학살문제를 제기하며, 냉전적 역사인식이 유지되는 가운데 2001년 대통령의 사과발언 등의 미봉책만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함(104-106).

KA-9

Kimura

Takashi

2002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학살에 관한 연구(『영산논총』, 10, pp.29-48)

(논문에서 제시된 순서에 따라)

1. 푸옌성 뚜이호아현 남호아히엡사 붕따우마을 학살(1-1) 7)

2. 빈딘성 투이픅현 픅호아사 턴지앙촌 학살(2-2) 8)

3. 푸옌성 뚜이호아현 호아히엡사 학살(1-1) 9)

4. 이후 푸옌성, 빈딩성 중심으로 10) 집중적인 학살. 빈안 학살, 고자이 학살(2-1)

5. 꽝아이 성 선띤현 푹빈 마을 학살(3-2)

6. 꽝아이 성 빈선 현 빈호아 사 학살(3-1) 11)

7. 푸옌성 뚜이안 현(1-2) 안린 사 빈쑤언 마을 학살 12)

8. 하미 학살(4-1) 13)

9. 꽝남 성 학살(4) 14)

10. 푸옌성 까루이 학살

(직접 이름은 언급x)(1-3)

-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베트남 참전배경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 후, 민간인학살의 실태와 원인에 대해 서술한 논문임. 주로 김현아((2002)를 인용하여 대표적인 학살사례를 시간 순으로 설명하였으며, 한국군 민간인학살이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곳에 몰아넣고 죽이는 형식이었다고 정리하는 한편, 학살의 원인을 1) 전과에 대한 과잉보상, 2) 통역관의 부재, 3) 게릴라전의 특성 4) 미국과의 동맹강화라는 파병동기 5) 민간인들에 대한 상황논리의 다섯가지로 분석하였음.

KA-10

심주형

2002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기억의 정치(서울대 석사학위논문)

 

- 참전군인들의 기억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그들 내부적으로 경합을 벌이는 양상에 대한 인류학 논문. 참전군인이 1992년 고엽제 피해의 이슈화로 기억투쟁의 주체가 되고, 이후 국가에 맞서 사회적 정체성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양상을 다룸. ‘민간인 학살 책임론’이라는 세부항목(92-95)에서 이 참전군인의 기억투쟁에서 갖는 의미와 그들의 반응에 대해 서술하고 있음.

KA-11

이한우

2006

한국이 보는 베트남전쟁: 쟁점과 논의(『동아연구』, 51, pp.105-147)

 

- 베트남전의 성격과 한국군 참전요인들, 그리고 그것이 한국에게 남긴 과제들을 분석한 논문. 남겨진 과제 중 하나로서 1999-2000년에 대두된 민간인 학살 ‘의혹’ 문제를 정리함. 마이클 존스, 주로 구수정의 한겨레 보도들을 인용하여 밝혀진 민간인 학살 사실에 대해 밝히고, 그를 둘러싼 양자 간의 대립양상 및 진행을 정리하고 있음(135-139).

KA-12

Ngoc, Pham Dieu

2006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한국단체들의 활동과 베트남의 반응(성공회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빈딘 성

- 뚜이픅 현(2-2) 떤장 학살 : 지방차원의 사록이 존재.

- Kim Tai 사 학살 15) : 생존자 Pham Dinh Son 인터뷰. 한국군의 학살로 인해 아내를 제외한 가족들을 잃음.

* 꽝아이 성 선띤 현(3-2)

- 띤선 사 Bingh Trung 촌 16) 학살 : 생존자 Vo Thi Liem 및 목격자 Ta Cong Uan 인터뷰

- Tinh Thien 사 Nho Lam 촌 학살 : 생존자 Ngo Van Kiet, 17) 그리고 Tinh Thien 사 공산당 부비서 Pham Thanh Do 인터뷰

* 꽝남 성

- 디엔반 현(4-1) 퐁니퐁넛 학살 :생존자 Le Dinh Muc 인터뷰

- 주이쑤엔(Duy Xuyen) 현(4-2) 반꾸엇 양민학살 18): 생존자 Thruong Thi Xuyen 인터뷰

* 푸옌 성 뚜이호아 현(1-1)

- 남 호아히엡 사 Ta Lam 촌 Soi 마을 19) 학살 : 생존자 Bui Thi Nong 인터뷰

- 남 호아히엡 사 Ta Lam 촌 Vung Tau 마을 20) 학살 : 생존자 Vo Thi Huong 그리고 Tran Van Hoa 인터뷰

- 베트남 파병과 민간인 학살이 가진 역사적 배경,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각각의 입장, 베트남 사죄운동과 한국 시민단체들의 활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베트남 측의 여러 입장(정부, 생존자와 가족, 지식인과 학생)들을 내용의 골자로 함.

- (1차자료) 2005년 7월에 꾸앙아이 성과 꾸앙남 성에서 생존자 3명과 목격자 1명, 지방 정부 관계자 2명과 일반 주민 2명에 대해 진행한 인터뷰, 2006년 5월 푸옌 성에서 생존자 2명에 대해 추가로 진행한 인터뷰 수록. 그 외에도 베트남 학생 등 베트남의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 풍부.

KA-13

구수정

2007

아시아로 통하는 두 개의 문, 한국과 베트남: 수교 15주년, 현재와 전망(『황해문화』, 56, pp.265-284)

* 푸옌성 학살(1) : 생존자 릉 티 퍼이

- 수교 15주년, 전쟁역사의 연장선상에서 한류, 국제결혼, 매춘관광 등 한국과 베트남의 현 관계를 점검하고,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베트남을 개발 대상으로만 여기는 실태를 비판하는 기고글임. 1999년 초, 백마부대 주둔지였던 닌호아에서 맹호부대 주둔지인 빈딘성까지 한국군 민간인 학살 지역들을 찾아 진술을 듣던 구수정의 경험에 대해 서술되어 있음 (1차자료)

KA-14

김현숙

(장유리 옮김)

2008

(원문 2001)

한국의 “베트남 문제”: 아시아에서의 전쟁 잔혹행위, 국가 정체성, 그리고 화해(『볼(BOL)』, 7, pp.204-217)

* 하미 학살(4-1) : 위령비 비문 수록

* 빈호아 학살(3-1) : 자장가 이야기

- 2001년 3개월간 한국과 베트남에서의 필드조사를 바탕으로 작성된 보고서로서, 1) 하미의 위령비를 둘러싼 참전군인 및 하미마을주민 간의 논쟁 2) 학살 지역의 여성이미지 중심의 기념물 3) 남한과 베트남 정부의 공통의 ‘침묵’ 노선을 주로 분석함. 결론적으로 학살과 기념물에 대한 논쟁이 시작됨에 따라, 전쟁기억, 포스트식민주의, 국가적 정체성 등의 질문에 대한 정치적 대화의 장이 열렸다고 평가하고 있음.

- 하미 위령비에 대한 한국 참전군인들의 반대논리가 잘 정리되어 있음.

KA-15

찰스 K. 암스트롱

(정병선 옮김)

2008

(원문 2001)

한국의 베트남 전쟁: 침묵을 넘어(『볼(VOL)』, 7, PP.155-169)

 

- ‘한국의 베트남 잔혹사’라는 소제목 하에서 한국 참전의 전말과 한국군의 잔혹한 행위와 그 원인(한국전쟁, 식민지배의 유산, 인종적분할)을 분석하고, 한겨레의 주도로 대항기억이 등장하고 갈등을 빚는 양상을 정리함.

- 한겨레를 인용하여 한국군(김기태)의 증언 수록

KA-16

박지현

2008

베트남 전쟁의 문학적 재현에 관한 연구: 한국과 베트남, 베트남전 관련 장편 소설을 중심으로(국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한국에 번역된 베트남 문학 세 편과 1970-80년대 발표된 한국 문학 세 편을 대상으로, 양국의 문학에 반영된 전쟁의 기억과 그 차이를 분석함.

- 한국 문학 안에 민간인 학살이나 ‘가해자’로서의 정체성이 표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다는 것을 분석하며, 민간인학살과 관련된 한국인들의 의식을 비판함(74-79).

KA-17

안해원

2009

전쟁과 기억의 정치: 미국과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중심으로(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한미 양국과 참전군인들의 인식차에 착안하여, 양국에서 전쟁기억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를 공적/사적영역 간의 기억투쟁을 중심으로 비교분석함.

- 미국은 언론의 역할로 사적기억이 강력하게 작용한 반면, 한국은 공적기억이 지배적임. 양국에서 민간인 학살이 이슈화, 진행된 양상을 이런 맥락 하에서 설명하고 있음(직접언급: 25-27, 88-91).

KA

-18

최정기

2009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공식적인 기억과 대항기억의 차이를 중심으로(『민주주의와 인권』, 9(1), pp.65-92)

* 빈딩성 및 따이빈 사 학살(2, 2-1)

- 한국군 참전사실과 더불어 그들에 의해 상당한 규모의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음을 밝히며, 1980년대 등장한 대항기억의 일환으로서 중남부 해안지역에서 한국군의 행적이 보존된 사례를 제시하고 있음.

KA-19

윤충로

2010

한국의 베트남전쟁 기념과 기억의 정치(『사회와역사』, 86, pp.149-180)

* 푸옌 성 뚜이호아(1-1)에서 청룡부대와 백마부대의 학살

* 푸옌 성 동쑤언에서 맹호부대 26연대의 학살 21)

* 꾸앙남 성 디엔반 현 하미 학살(4-1)

- 한-베에 설치되어 있는 전쟁기념물들을 통해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갈등양상을 분석한 논문임. 논리전개에 앞서 한국 내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기억투쟁의 진행과 성과를 정리하고, 각 기념물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일어난 학살사건을 설명하고 있음.

- (1차자료) 구수정 인터뷰(2009/07/09) 및 각 기념물들의 사진

KA-20

이선영

2011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10년 활동과 전망(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석사학위논문)

꽝아이 성

* 디엔니엔 마을 학살(3-2)

* 핫타이 마을 학살(3-2) 22)

* 푹빈 마을 학살(3-2) 23)

* 빈호아 사 학살(3-1) 24)

빈딩 성

* 따이선 현(2-1) 따이빈 사 학살, 25) 고자이 위령비 26)

* Huyen Tuy Phuoc(2-2), Xa Phuc Hung, 뇨럼 마을(Lang Nho Lam) 학살 27)

* Huyen Tuy Phuoc(2-2), Xa Phuc Hoa, 떤잔 마을 학살 28)

* Huyen An Nhon, Xa Nhon Phong, 낌따이 마을(Thon Kim Tai) 학살 29)

꽝남 성

* 탕빈 현(4-4) 빈영사 학살 30)

* 퐁니 마을 학살(4-1)

* 하미 마을 학살(4-1)

- 1999년에 민간인학살 사건이 알려진 것을 계기로,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진료활동을 벌여온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의 설립배경과 활동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최종적으로 활동평가까지 담아낸 논문.

- 민간인 학살에 대한 기본적이고 전반적인 사실을 제공하며,31)  (1차자료) ‘평연’의 활동에 대한 설명과정에서 관련된 마을에 대한 구체적인 학살 정보들이 풍부하게 제시됨. 그 수가 무척 많은데 대부분 그 출처는 제시되지 않음.

KA-21

김성란

2011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 베트남전 참전군인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민주주의와 인권』, 11(1), pp. 217-252)

 

- 2009년 5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교과서에 싣기 위한 일반 시민의 청원 캠페인이 다음 아고라에서 열렸으나 실패한 바 있었음. 이에 착안하여 오늘날까지 민간인학살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이유를 참전 군인에 대한 ‘몰이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 참전군인의 이미지를 청원댓글과 『한겨레21』를 통해 분석하는 논문임.

KA-22

윤충로

2011

20세기 한국의 전쟁 경험과 폭력(『민주주의와 인권』, 11(2), pp.239-277)

 

- 민간인 학살이 중심이 되지는 않으나, 한국이 경험한 3개의 전쟁 역사 속에서 베트남전을 ‘폭력의 모방과 재현’으로 위치짓고, 가장 두드러진 폭력 형태로 민간인 학살을 제시하며 이 민간인 학살은 일제 식민지배의 유산과 한국전쟁의 경험이 외적으로 발현된 것이었다고 분석하고 있음(255-256).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한국사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음.

KA-23

최정기

2011

민간인 학살의 사회구조적 요인 비교: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중심으로(『민주주의와 인권』, 11(1), pp.321-346)

 

- 한국군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으나, 베트남전쟁기에 발생한 민간인학살 전반을 한국전쟁과 비교하여 학살의 발생 및 진행의 사회구조적 요인을 분석하고 있음. 후루타 모토오(2000)를 인용하여 베트남전쟁기 군인 및 민간인 희생자 통계표를 제시함.

KA-24

강유인화

2013

한국사회의 베트남전쟁 기억과 참전군인의 기억투쟁(『사회와역사』, 97(0), pp.105-135)

꽝남 성

* 유이쑤이엔 현(4-2) 유이선 사 학살 32)

* 탕빈 현(4-4) 빈영 사 학살 33)

- 참전군인들이 기념물 건립운동을 통해 기억투쟁을 벌이고 국가유공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을 다룸. 그 중에서 베트남 전쟁의 기억과 해석의 다층성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민간인 학살을 제시. 권헌익을 인용하여 민간인 학살 문제가 대두된 배경을 제시하고, 현장에 존재하는 학살흔적과 참전군인 인터뷰를 제시함.

- (1차자료) 나와우리 홈페이지와 이인수의 자료를 인용/재인용하여 학살사건 2건과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참전군인 인터뷰 수록.

KA-25

조은

2013

‘미안해요, 베트남’: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지역 위령제 참가기(『역사와책임』, 5, pp.227-236)

* 하미 학살(4-1) : 생존자 팜 티 호아 인터뷰, 당 티 코이의 짧은 일화

* 빈호아 학살(3-1) : 생존자 도안응이아 이야기, 자장가, 증오비

-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지인 빈호아와 하미에 대하여 다루는 학술기사임. 두 마을에 얽힌 학살의 역사와 생존자 인터뷰, 그리고 하미의 경우 위령제 이야기와 함께 참전군인과 위령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함.

KA-26

부이티투투이

2014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에 나타난 반전 이데올로기 연구: 한국, 미국, 베트남 전쟁영화를 중심으로(인하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삼국의 영화 속에서 반전이데올로기가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하는 항목 중에 양민학살 문제가 포함됨(37-42). 미국영화의 경우 종종 미국인의 양민학살을 보여주며 전쟁의 잔인성을 비판하고 있으나, 한국은 단 하나만이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한국군을 동원된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음.

KA-27

윤충로 34)

2015

한국의 베트남 전쟁 기억의 변화와 재구성: 1999년 『한겨레21』 캠페인과 그 이후 변화를 중심으로(『사회와 역사』, 105, pp.7-40)

 

-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학살에 관한 <한겨레21> 캠페인과 진실규명운동의 특징과 그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와 투쟁의 양상, 결과를 잘 분석한 논문. 그에 따르면 냉전의 해체, 한베수교, 노근리 학살의 이슈화를 배경으로 시작된 진실규명운동은 공식기억을 균열시켜 대립양상을 만들었으나, 참전군인들을 중심으로 이념적 대립 또한 강화시켰으며 진실규명운동이 평화운동으로 확장되면서 ‘상대적 약화’로 귀결되었음.

KA-28

후인김응언

2016

베트남과 한국의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대한 인식 연구(한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푸옌 성

* 뚜이화이 구 지역 학살(1-1) 35)

* 뚜이안 구 학살(1-2) 36)

꽝응아이 성

* 빈선 구(3-1) 화빈 면 안프엇 마을 학살 37)

꽝남 성

* 딘반 현 띤안 면 풍넛, 풍니촌 학살(4-1)

 

사진자료)

* 꽝응아이성 빈선현 빈화면 학살 : 위령비 및 증오비(3-1)

* 빈딘성 딘선현 빈안면 학살 : 위령비(2-1)

* 꽝남성 딘반현 퐁니촌 학살 : 위령비(4-1)

* 이엔니엔 학살 : 가족합동묘지 38)

- ‘한국군 베트남 파병’에 대한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인식을 파병동기, 민사심리전 영향, 군사작전 결과 및 효율 등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비교하는 논문이며, 민간인 학살도 같은 층위에서 논하고 있음.

- (1차 자료) 베트남 현지자료에 기반하여 3개의 학살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 밖에도 5개의 위령비 이미지 수록(온라인 출처도 함께 표시).


1) 연도 외에 월별 순서는 적용 못함.

2) 학살이 얼마나 잔인하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묘사됨. 이 논문 다른 사례들도.

3)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9년 8월 북쪽 3km 떨어진 지역에서 맹호부대가 작전을 수행한 후 매복해 있는 사이, 30여명의 아이와 어른들이 나와서 남은 음식을 먹자 그들을 사살하였다.

4) 통계자료와 규모가 다름. 통계자료에는 모두 61명이 학살되었다고 기록되어있으나, 논문에서는 100명 가까이 죽었다고 한다.

5) 통계자료와 같은 지역이나 다른 년도에 벌어진 사건이다. 1968년 9월, 한국군 백마부대가 한 가옥에 침입하여 여성추행을 시도하고, 이후에 들어온 민간인 남성을 사살한 사건이다. 생존자의 증언이 제시된다.

6) 특정 사건이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상황의 증언. 청룡부대는 무고한 양민마다 쏘아죽였고, 100여명의 여성이 집단으로 학살당하기도 하였다.

7) 통계자료와 같은 지역, 다른 날짜에 벌어진 학살이 제시된다. 1965년 12월 10일 50-60명을 대상으로 한 공격에 45명이 당일 사망하였다(39).

8) 2)와 마찬가지. 통계자료에 제시된 1965년 1월의 학살 이후인, 1965년 12월 22일, 50여명이 넘는 민간인이 학살되었다고 제시된다. 5일 뒤인 12월 27일, 28일에는 푸옌성의 호아히엡에서 9명이 또 죽었다고 한다(39).

9) 미미한 차이. 통계자료엔 1966년 1월 2일, ‘남’호아히엡사, 37명인 반면, 논문에는 1966년 1월 1일, 호아히엡사, 42명.

10)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6년 1월 1일 호아히엡의 학살을 시작으로, 35일동안 ‘미국의 명령’으로 푸옌성과 빈딘성 대부분의 지방에서 350명 이상을 살해했다고 제시됨(39). 김현아의 단행본에서 인용한 내용.

11) 빈호아 사 학살 중에도, 통계자료에 제시된 찌호아 촌 학살이 제시. 그런데 다음날인 12월 6일에도 273명의 민간인을 모아놓고 학살했다고 하는데, 통계자료와 일치하지 않는 규모이다.

12)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7년 2월 9일(음력) 빈쑤언 촌 4개 마을에서 약 100명이 한국군에 의해 죽었다. 

13) 사망자 수가 미미하게 다름. 통계자료 138명, 논문 135명.

14) 통계자료에는 없는 내용. 단, 4-3의 꾸예선 현의 내용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임. 1969년 11월, 미군, 한국군, 월남군이 ‘sea tiger’작전을 수행하여 800인 이상의 주민이 학살되고, 수천명이 강제수용소에 연행되었다.

15)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6) 현재 촌 이름은 Bingh Tho

17) 1966년 8월 14일 오전 8시경, 키엣의 가족 중 13명이 학살당하는 사건 발생. 이후 한겨레 21에도 보도되었다.

18) 번역 문제로 통계자료와 일치여부가 염려됨. Quang Nam 성 Duy Xuyen 현 Duy Thanh 사 Van Quat 촌. 1968년 1월 19일, 아침 7시에 마을주민 36명을 모아놓고 사살. 

19)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6년 음력 3월 24일에 학살이 발생하여 어머니와 동생 두 명이 사망.

20)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5년 음력 12월 10일에 발생한 학살로 어머니와 오빠 한 명이 사망.

21)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22) 통계자료 3-2의 ‘하따이’ 양민학살이라고 생각되나, 추가적인 정보가 제시된다. 논문 25p에 따르면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총 120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3) 통계자료 3-2에 같은 이름의 양민학살이 제시되나, 내용이 다르므로 25p의 내용을 요약한다. 위령비의 내용에 따르면 1966년 10월 9일 양민 68명이 학살되었다고 하며, 한겨레 21의 취재에 의하면 1966년 11월 10일에 학살이 발생했고 죽은 사람도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24) 8), 9)와 같이 같으나 다른 내용. 1967년 10월 한국군이 철수할 당시 총 희생자가 553명이었다는 사실과 여러 구체적인 재산피해들이 제시된다(27).

25) 통계자료에서는 따이빈 사의 개별 학살내용이 기록된 반면, 이 논문에서는 따이빈 사가 “베트남 문화통신부 공인 한국인 최대 민간인학살지”라고 밝히며 1966년 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총 사망자 규모(모두 1200여 명, 공식 사망자는 728명)를 집계하고 있다.

26) 고자이 학살에 대한 정보가 다름. 통계자료에서는 1시간 만에 380명,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위령비 내용을 인용하며 2시간만에 320명이 죽었다고 밝힌다.

27) 통계자료에 같은 학살이름이 제시되나, 날짜와 사망자 수가 다름. 논문 36p에 따르면 1965년 12월 22일 벌어진 학살이며, 140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비가 있다(36).

28) 13)과 같이 날짜와 사망자 수가 다름. 1965년 12월 22일에 발생했다고 하며, 한국군 2개소대에 의해 총 46명이 학살되었는데 그 중 19명이 여성, 14명이 어린이, 60세 이상 노인이 9명이었다(36).

29)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6년 1월 9일에 발생한 학살로, 안년현과 년퐁사의 지방역사자료에도 언급되어 있다. 팜 딘쩌우의 집에서만 37명이 죽었다. 1985년 지방정권에 의해 증오비와 증오탑이 세워졌다(37).

30)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9년 10월 2일 저녁의 폭격으로 시작하여, 마을에 들어온 한국군들이 무차별 사격으로 73명의 주민을 학살하였다(43).

31) “지금까지 조사된 피학살자의 구체적인 숫자는 푸옌성 22건 1,729명, 꽝남성 30건 4천여명, 꽝아이성 18건 1700명, 칸호아성 3건 46명, 빈딘성 8건 1581명이다.”(9쪽 주석에서 인용)

32)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위령비 존재. 1968년 9월 1일에 청룡여단 5대대와 2사단이 20명의 민간인이 학살되고, 16명 부상을 입었는데, 그 중 11명이 어린이였다.

33)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죄악증거비가 존재. 1969년 10월 3일 74명 모아놓고 사살하였고, 11일 된 어린이 한명이 생존했다고 한다.

34) 해당 논문의 서론과 참고문헌에서 과거사청산 운동에서 평화운동으로의 전환으로서 평화박물관운동을 설명하는 한홍구의 글이 언급되었으나, 해당 논문은 온라인 상에서 찾아내지 못하였음. (한홍구, 2009,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에서부터 평화박물관까지”, 동북아역사재단 편. 『일본의 전쟁기억과 평화기념관 Ⅰ』)

35) 통계자료에 제시된 푸옌성 호아미, 호아퐁 사가 언급되는 동시에, 통계자료에는 없는 ‘틴화(틴호아)’ 사도 함께 제시됨. 또한 통계자료에 개별 사건들이 나열된 것과 달리, 총 사망자 규모가 제시됨. 요약하자면 1966년 1월 19일부터 2월 19일 사이에 청룡부대에 의해서 뚜이화 1, 틴화면, 화미면, 화풍면의 민간인 거주지역이 파괴되었고, 화미(Hoa My)에서는 300명이 사망하였으며, 이 두 달 동안 뚜이화구 지역에서 희생된 주민은 1,538명이다. (참고로 논문에서는 지방행정단위를 한국식으로 바꿔서 말하고 있다. 구는 곧 사를 말함.)

36) 총 사망자 규모가 제시됨. 1967년 3월에 뚜이안, 동쑤안, 송따우 구에서 맹호사단이 ‘오작교’ 작전을 시행하던 중, 뚜이안 구에서 주민 532명이 학살되었다. 

37)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1966년 10월 6일 아침에만 이 마을에서 400명의 주민이 학살되었다.

38) 통계자료에 없는 내용.


제공: 민변 베트남전쟁연구모임